Go to contents

혼자면 충분

Posted September. 06, 2007 07:28,   

ENGLISH

울 강남구 압구정동에 위치한 가수 전영진의 사무실. 3평 남짓한 공간에 비좁게 자리한 모니터 두 대를 켜니 가상의 드럼 이미지와 신시사이저가 펼쳐진다. 예사롭지 않은 기타와 베이스 연주가 이어지고 익숙한 손놀림으로 컴퓨터 키보드와 건반을 오가니 그럴듯한 연주가 방안을 울린다.

그룹 얼바노 출신의 그는 작사, 작곡, 편곡, 보컬, 코러스, 랩, 기타, 베이스, 키드럼, 녹음, 프로듀싱, 엔지니어링 등 1인 12역을 하는 이른바 원맨밴드. 표지 디자인 작업을 제외하고 가내 수공업 형태로 모든 작업을 자급자족하는 그는 최근 1집 올 인 원(All-in-One)을 발매했다. 앨범 뒤표지를 장식하는 크레딧에는 Written, composed, vocal, performed by 전영진이 새겨져 있다.

제작비 줄어들고 창작 과정에 장애물 없어

홍대 인디밴드 출신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처럼 제작비 절감을 위해 원맨밴드를 택한 생계형부터 무릎팍 도사에 출연하며 원맨밴드를 하나의 브랜드로 내세운 올라이즈밴드까지 이젠 싱어송 라이터가 주목받던 시대는 지났다. 1970년대를 풍미했던 원맨밴드의 원조인 김수철이 모든 악기를 실제 연주했다면 돌아온 신()원맨밴드는 다르다. 전영진처럼 컴퓨터 미디시스템의 힘을 빌려 녹음, 엔지니어링 등 음악의 모든 작업을 혼자 해결하는 것.

우선 신 원맨밴드는 고비용 고위험의 음반 제작비를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의 이진원은 음반을 만드는 데 보통 6000만 원에서 1억 원이 넘는데 그 돈 들여 앨범을 만든다고 해도 성공한다는 법이 어디 있느냐며 비록 음반의 질은 떨어져도 비용은 10분의 1도 안 들기 때문에 혼자 작업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매번 1000장 이내로 소량 생산한 음반에 번호를 매긴다. 음반을 유통사에 맡기면 그나마 남길 수 있는 판매마진조차 없기 때문에 홈페이지를 통해 직접 주문을 받아 고객들에게 배달한다. 이제까지 석 장의 정규 앨범을 발표했으며 최근엔 싱글 앨범도 발표했다.

대중음악의 새로운 생산방식 진정한 밴드 아니다

무엇보다 원맨밴드는 창작자의 입장에서 제작자의 입김 없이 작업을 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전영진은 타이거우즈의 팔과 호나우두의 다리를 모아 놔도 유기적인 조합이 이뤄지지 않으면 소용없듯이 최고의 연주자들이 있다고 해도 곡이 프로듀서의 의도대로 표현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창작자의 머릿속에서는 작곡-연주-보컬 등 모든 과정의 조율을 자유자재로 할 수 있다는 얘기다. 당연히 음반 작업을 하는 데 걸리는 시간도 줄어든다.

음악평론가 박은석 씨도 뮤지션이 상상할 수 있는 것을 왜곡되지 않고 구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중가요의 새로운 생산 방식으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하지만 아무리 창작의 길이 고독하다고 해도 음악은 기본적으로 공동작업. 더구나 기계에 의존해 특별한 연주능력이 요구되지 않는 신원맨밴드를 진정한 밴드로 볼 수 있느냐는 지적도 있다. 가수 김수철은 모든 악기를 실제로 연주할 줄 아는 게 밴드의 기본적인 요건 아닌가라며 기계를 조작해 만들어지는 음악을 과연 밴드음악이라 부를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염희진 salth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