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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만으론 로비 한계 결론은 스킨십

Posted December. 09, 2006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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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로비 업무에 관여하고 있는 L 씨는 올해 초 비자면제협정 문제의 열쇠를 쥐고 있는 미국 의회의 한 간부에게 인사를 드리고 싶다. 한 번 만나고 싶다는 전갈을 넣었다. 그러나 번번이 돌아오는 대답은 바쁘다는 것이었다. 간신히 사무실 방문 허락을 받았지만 앉자마자 면박 주듯이 로비할 생각 말라고 쐐기를 박았다.

참담한 심경으로 돌아온 L 씨는 그러나 시간 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라는 정중한 감사 편지를 보냈다. 그러자 기대하지 않았던 호의적인 반응이 나타나기 시작했고 마침내 그와 수시로 식사를 하고 전화를 주고받는 사이가 됐다. 이 간부가 비자면제협정 문제에서 한국 편이 됐음은 물론이다.

걸음마 1년

한국 정부가 로비에 관심을 두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봄부터. 주미 한국대사관 간부들은 주요 법안이 간발의 차로 통과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이것 봐라 하며 감탄했다. 공화당 지도부가 로비스트를 동원해 소속 의원들을 줄 세우는 것이었다.

2005년 여름부터 로비스트 물색에 나섰다. 검토 결과 한국계 미국인인 토머스 김 씨가 공동 운영자로 있는 스크라이브 전략&자문이란 로비회사가 가장 좋은 점수를 받았다. 김 씨는 조지타운대, 존스홉킨스대 국제대학원을 졸업하고 무역대표부(USTR) 등에서 근무한 경력이 있는 인터넷 컨설턴트 출신. 2005년 1012월 활동비를 포함해 월 1만 달러의 시범 로비 계약을 했다. 이어 올해 초 비자면제 프로그램과 한미 관계 등 두 과제를 위한 로비에 월 3만 달러를 지급하는 내용의 정식 계약을 했다. 이와 별도로 최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이 본격화하면서 경제 분야에서도 로비 활동이 본격화됐다. 계약은 전국경제인연합회 및 한국무역협회가 맺고, 대사관이 이를 활용하는 방식이다. 전경련은 전직 의원이 세운 회사를 고용했다.

1년간 한국 정부가 펼친 로비의 가장 가시적인 결과물은 한국의 비자면제 프로그램 가입 지지 여론을 높인 것. 하원의 경우 행정부에 지지 서한을 보낸 의원이 35명에 달한다. 미 행정부의 한 관계자는 7일 지난주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비자면제 협정을 융통성 있게 운용하는 방향으로 개편하겠다고 밝힌 것도 의회의 긍정적인 목소리가 행정부에 전달된 덕분이라고 귀띔했다.

사람 사는 세상은 다 마찬가지

로비스트들과 로비 업무에 관여하는 외교관들은 지난 1년간 주요 의원과 보좌관, 언론인들을 집요하게 찾아다녔다. 인사를 나눈 뒤 식사에 초대하는 게 순서다. 반응은 천차만별이었다.

한 의회 간부는 사무실에선 딱딱하기 그지없었으나 식당으로 초대하니 태도가 바뀌었다.

골프장으로 초청하는 경우도 가끔 있다. 그린피가 1인당 50100달러인 중상급 퍼블릭 코스를 주로 이용한다고 한 로비스트는 전했다. 물론 규정상 선물이나 접대 한도는 50달러 이내이지만 주말에 워싱턴 근교에서 50달러 미만짜리 골프장을 찾기는 쉽지 않다.

정치인들을 움직이는 가장 큰 힘은 역시 표와 후원금. 특히 한국계 유권자가 많은 지역의 의원들에겐 한국계의 표심을 강조하면 십중팔구 어떻게 도와줄까라는 반응이 나왔다. 국무장관에게 한국을 비자면제 대상국에 포함시켜야 한다는 내용의 편지를 써 주면 좋겠다는 식의 부탁을 한다. 1주일 만에 편지를 보내 주는 의원도 있었다.

정치 후원금을 노골적으로 요구하는 경우는 드물지만 아예 모른 척하면 섭섭해하기도 한다. 남부 출신의 한 의원은 사석에서 한국 경제인들이 중요한 메시지가 있으니 시간을 내달라고 해서 만나 보면 잘 부탁한다고 자기들 얘기만 잔뜩 하고 돌아간다고 불만을 토로 했다.

한 관계자는 식사 말미쯤에 다음 달에 펀드레이징(기금 모금) 행사가 있어서 바쁠 것 같다는 식으로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는 의원이나 보좌관이 많다며 그러면 대부분의 경우 참석해서 성의를 표시한다고 말했다.

갈 길은 멀고 산은 높다

미 하원에서 일본군위안부 결의안 문제가 논의되자 일본 정부는 헨리 하이드 국제관계위 위원장과 동향(일리노이 주)이며 1994년 민주당 하원 원내대표를 지낸 밥 마이클 씨에게 로비를 맡겼다. 거물급이라, 그 문제 해결에만 월 6만 달러를 주는 조건으로 알려졌다. 한국 정부의 전체 로비액이 월 3만 달러인 것과 비교가 안 되는 규모다. 한 자료에 따르면 기업 로비를 합쳐 2004년 기준으로 일본은 연간 1341만 달러, 대만은 625만 달러를 사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툭하면 청와대나 여권에서 터져 나오는 문제 발언들도 로비의 효과를 반감시키는 요인으로 지적된다. 현장에서 어렵게 쌓아 올린 친한() 감정이 바닷가 모래성처럼 쓸려 나간다는 것이다.



이기홍 김승련 sechepa@donga.com sr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