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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벽 넘을까

Posted March. 03, 2006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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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연 뮤지컬과 맞선의 공통점은?

어떤 사람(작품)일지 궁금하다 첫 만남이 두번째 만남(재관람)을 좌우한다 기대는 적을수록 좋다.

처음 국내 무대에 오르는 프랑스 뮤지컬 벽을 뚫는 남자는 만나기 전부터 한껏 기대를 부풀게 하는 조건을 갖춘 맞선 상대 같은 작품이다.

프랑스 작가 마르셀 에메의 유명 소설이 원작이라는 든든한 배경과 프랑스 최고 권위의 몰리에르상 수상작(최우수 뮤지컬상, 최우수 연출상)이라는 화려한 경력, 그리고 여기에 쉘부르의 우산으로 유명한 영화음악가 미셸 르그랑의 음악이라는 낭만적 매력까지 두루 갖췄다.

어느 날부터인가 벽을 뚫고 지나다니는 능력을 갖게 된 평범한 공무원 듀티율. 이 뮤지컬은 벽을 뚫고 보석집 등을 털어 이웃을 돕던 듀티율이 검사의 아내 이사벨을 사랑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렸다.

벽을 뚫고 다닌다는 설정이 엉뚱한 만큼 논리적인 플롯은 중요하지 않다. 대신 이 작품의 묘미는 생생한 캐릭터들 만끽하는데 있다. 등장인물 12명 전원에게 솔로 곡이 주어질 만큼 이 작품에서 조연 캐릭터들의 비중은 크다.

이에 걸맞게 지난달 28일 막을 올린 이 작품에서 10명의 조연들은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고 싶을 만큼 좋은 1인다역 연기를 보여줬다. 특히 늙은 변호사로 등장한 김성기가 가장 돋보였다. 그가 구구절절 자신의 삶을 늘어놓은 뒤 그러니 무죄로 해 주삼하며 요즘 유행하는 하삼체로 능청스럽게 노래를 끝내면 객석은 박수와 웃음으로 뒤덮였다.

하지만 웃음이 조연의 몫이라면 마지막 짧은 감동은 온전히 주연이 이끌어내야 할 몫. 그러나 첫 날 공연에서 듀티율(박상원-엄기준 더블캐스팅)을 연기한 박상원은 다소 아쉬움을 남겼다. 빠른 곡에서는 가사 전달력이 떨어져 가사에 귀 기울이기 급급한 관객은 듀티율 캐릭터에 공감할 틈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듀티율이 이사벨과 사랑의 2중창을 부를 때도 감동을 이끌어내기 힘들었고, 마지막에 죽어가며 나는 벽 속에 갇힌 채 딱딱하게 굳어가네를 애절히 불러도 아픔에 공감하기 어려웠다.

무엇보다 첫 공연의 긴장 때문인지 박상원의 듀티율은 시종 무겁고 늘어져 감정의 완급조절에 실패했다. 그런 점에서 가볍고 경쾌한 연기에서 매력을 발하는 배우인 엄기준이 연기하는 또 다른 듀티율이 기대된다.

4월2일까지. 화금 8시. 토 4시 8시. 일 3시 7시. 서울 예술의 전당 토월극장. 4만7만원. 1588-7890



강수진 sjka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