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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향 그윽한 양반동네의 익살

Posted February. 23, 2002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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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안동 의성김씨 지촌공파 13대 종손 김원길(61안동 예총회장)씨. 김씨는 퇴계학파의 거두 학봉 김성일(15381593) 선생 백부의 증손자이자 조선 숙종때 대사간을 지낸 지촌 김방걸(16231695) 선생의 종손. 10여년전 대학교수로 있던 김씨는 임하댐 건설로 선대의 유산인 고건축물 10여동이 수몰위기에 처하자 건물 모두를 안동시 임동면 박곡리 뒷산 자락에 옮겨 지었다. 4년에 걸쳐 이전 건축을 한 뒤 대학교수를 그만두고 지례()예술촌이라 이름붙여 운영하고 있다.

지례예술촌은 1664년 조선 숙종때 지어진 종택, 제청(제사 지내는 집), 서당 등 10여동 125칸의 복합주택으로 방만 17개다. 그동안 국내의 내로라 하는 시인 소설가 연극인, 외국의 유명 인사 등 무려 5000여명이 다녀갔을 정도로 이미 명소로 자리잡았다.

지난 20일 김씨와 함께 마을로 들어서며 앞서 소개한 영구차 기사 이야기를 들었다. 안동시내에서 영덕방향으로 국도를 따라 임하호를 굽어 보며 30여분쯤 달리다 비포장 도로를 오르 내리며 다시 40여분을 더 갔다. 정말 고래등같은 기와집이 갑자기 나타난다. 야밤에 이런 풍경을 보고 반갑다는 생각보다 섬뜩하다는 생각을 했을 기사 생각을 하니, 슬며시 웃음이 난다.

고색이 창연한 솟을대문을 들어서 안채를 휘둘러 보니 340여년의 세월을 뛰어넘은 듯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간 느낌이다. 삼면이 산으로 둘러싸이고 앞은 확트여 호수가 보이는 배산임수()의 절경. 유럽에만 고성이 있는 것이 아니다. 지례예술촌은 한국판 고성이고, 김씨는 성주()인 셈이다. 이 집에서 가장 전망이 좋다는 별묘()방에 앉으니 낮게 앉은 담이 멀리 보이는 산, 호수와 절묘한 조화를 이뤄내고 있다. 바람소리 말고는 들리는 것이 없다.

김씨는 이야기를 참 재미나게 한다. 유머와 위트가 넘친다고 할까. 나지막한 목소리에 특유의 톤을 섞어 가만가만 이야기하는데도 자꾸 웃음이 터져 나온다. 저 사람이 안동사람, 그것도 양반집 종손 맞아? 그에게는 유교적 이미지의 고루하다는 느낌이 없다. 안으로 종가를 지키면서도 밖으로 개방한 그의 유연함은 입담에도 잘 나타나 있는 것이다.

그가 펴낸 안동의 해학은 농경 제사 접빈 풍류 등과 관련된 구전 우스개 소리들을 모은 일종의 유머집이다. 우리 문학사에 유머는 당당하게 하나의 장르를 차지한다. 해학, 골계문학이 바로 그것이다. 정신적 긴장과 물질적 빈곤이 심할수록 사람들은 해학으로 어려움을 풀고 극복해 나갔다. 에피소드마다 넘치는 안동사람 특유의 숙맥과 엉뚱함 이면에는 당시 신문명과의 충돌에서 겪었을 우리들의 당혹감과 급속한 시대 변천에 우리들이 어떻게 반응하며 살아왔는지가 읽힌다. 농담의 사회학이라고나 할까.

김씨는 미친 사람소리 들어가며 종가를 옮겨 수몰위기에서 구하고 이번에 이야기까지 복원했다. 세상이 아무리 빨리 돌아간다해도 바보같지만 어질고 착한 우리 모습들을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안동의 해학

김원길 지음

현암사



허문명 angelhu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