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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미디언 구봉서씨 별세 “웃음엔 퇴직 없어…죽는 날이 은퇴 날”

코미디언 구봉서씨 별세 “웃음엔 퇴직 없어…죽는 날이 은퇴 날”

Posted August. 29, 2016 07:05,   

Updated August. 29, 2016 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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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웃음에는 퇴직이 없소. 나 죽는 날이 은퇴하는 날이오.”(1997년 자서전 ‘코미디 위의 인생’에서)

 영원한 ‘막둥이’. 한국 코미디의 큰 별 구봉서(具鳳書) 씨가 27일 세상에 은퇴를 고(告)했다. 향년 90세. 유족 측은 구 씨가 폐렴으로 열흘 전쯤 입원해 치료를 받던 중 갑자기 상태가 악화됐다고 설명했다. 

 서울성모병원 빈소에는 수많은 코미디언 동료와 후배, 교인들이 찾아와 그의 영면을 슬퍼했다. 두 달 전 고인을 만났다는 절친 송해 씨(89)는 “어려운 시절 국민을 위로하는 코미디로 귀감이 됐던 분”라며 “저세상에선 먼저 가신 선배들 만나 즐겁게 생활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인을 따랐던 후배인 엄용수 한국방송코미디협회장은 “코미디는 물론이고 영화 악극 등 다양한 장르에서 보여준 출중한 연기는 후배들이 따라가기 벅찰 정도였다”며 “시대에 대한 올곧은 비판정신을 지녔으면서도 세상에 대한 따뜻한 마음이 가득했던 분”이라고 말했다.

 고인은 1945년 악극단 희극배우로 시작해 배삼룡 서영춘 곽규석 등과 함께 텔레비전 코미디의 기틀을 잡은 1세대 코미디언이다. 400여 편의 영화와 980여 편의 방송에 출연했으며 ‘형님 먼저 아우 먼저’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 등의 유행어로도 인기를 얻었다.

 1926년 11월 평양에서 태어난 고인은 19세에 ‘태평양 악극단’의 단원이 되며 희극 무대에 데뷔했다. 고인은 1956년 영화 ‘애정 파도’에 출연하며 활동 무대를 스크린으로 옮겼다. 그에게 ‘막둥이’란 별명을 안겨준 작품은 코미디언 이종철 김희갑 양훈과 출연한 영화 ‘오부자(五父子)’(1958년)였다. 이후 희극영화 전성시대를 열며 1960년대 중반까지 배우로 활동했다. 그가 출연한 유현목 감독의 영화 ‘수학여행’(1969년)은 국내 최초로 테헤란국제영화제에서 작품상도 받았다.

 방송에서 MBC ‘웃으면 복이 와요’는 고인과 떼려야 뗄 수 없는 프로그램이었다. 1969년부터 1985년까지 15년 8개월간 한 회도 빠짐없이 개근했다. 고인은 1963년 동아방송 개국 라디오 프로그램인 ‘안녕하십까? 구봉서입니다’를 진행하며 사회 풍자도 선보였다. 5분간 원맨쇼로 진행되는 이 프로그램에서 그는 “이거 되겠습니까, 이거 안 됩니다”라는 말을 유행시켰다. 그는 생전 한 인터뷰에서 “코미디는 그냥 웃고 마는 게 아니다. 메시지가 있어야 한다. 말초적인 개그는 사람들을 잠깐 웃길 수 있지만 생각하게 할 순 없다”고 강조했다.

 고인은 2009년 뇌출혈로 뇌수술을 받기 전까지 “웃음을 주는 직업이 진정 보람되다”며 왕성한 무대 활동을 이어갔다. 고 배삼룡(1926∼2010)과 함께 ‘그때 그 쑈를 아십니까’(2002년)란 작품도 선보였다. 2013년엔 대중문화예술상인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그는 생전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구봉서를 떠올리며 ‘그래 옛날에 구봉서가 있었지. 그 사람 코미디할 때 좋았어’ 그래 주면 고맙고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유족은 부인과 네 아들이 있다. 발인은 29일 오전 6시. 장지는 경기 남양주시 모란공원.

정양환 기자 ra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