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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풍령
- 서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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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거북이처럼 기듯하여 간신히 추풍령 휴게소에 도착했을 때는 점심 무렵이었다. 이미 주차장은 만원이어서 아버지는 갓길의 맨 앞쪽에다 차를 주차시켰다. 아버지의 트럭을 뒤따라 다른 트럭들도 하나 둘 도로변에 늘어섰다.
나는 연희와 동호에 뒤이어 차에서 내렸다. 아버지가 연희와 함께 우동을 파는 곳으로 걸어가는 사이에 동호가 함께 화장실에 다녀오자고 해서 생각도 없었지만 그곳까지 갔다. 동호가 남자화장실로 들어간 사이에 나는 밖에서 기다렸다.
방금 도착한 승용차에서 한 가족이 내렸다.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어린 두 남매로 보이는 가족이었다. 누나인 듯한 여자아이가 남자아이의 손을 잡고 아버지와 어머니로 보이는 어른들의 뒤를 따라 식당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들의 모습이 식당 안으로 사라졌음에도 그들이 사라진 문에서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 한 때 연희가 동호의 손을 잡고 엄마를 찾아 저녁 골목을 돌아다니던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이혼한 다음 날부터 엄마는 집으로 들어오지 않았다. 그것도 모르는 연희와 동호는 서로 손을 꼭 잡고 엄마를 찾아 온 골목을 돌아다녔다. 그러다 어두워지면 집으로 들어와 밥을 먹고는 쓰러져 잠들었다. 나는 동생들을 그대로 내버려두었다. 그렇게 그 아이들이 일주일 정도 다녔을 때 언니가 더 이상 엄마를 찾아 돌아다니면 혼내주겠다고 해서 그만두었다.
동호가 나왔다. 나는 동생의 손을 잡고 식당으로 향했다. 트럭기사들이 한 곳에 모여 우동을 먹고 있었다. 그들의 중간쯤에 앉아서 기다리고 있던 아버지가 손을 들어 흔들었다. 이미 아버지가 사놓은 우동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근데 아저씨, 오늘 누구랑 싸우러 가는데요?"
드디어 동호가 질문을 했다. 동호의 별명은 찰거머리였다. 한 번 질문을 시작하면 상대방 자신도 답을 몰라 대답할 수 없는 지경까지 몰고 갔다.
"정부라는 놈이야." 하고 준태 아버지가 말했다. "그게 뭔데요?"라는 질문에 "그게 뭐냐면 ……." 하면서 준태 아버지가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를 생각하는 듯했다. 준태 아버지는 아주 똑똑한 사람이라고 했다. 고등학교만 나왔는데도 대학 나온 사람보다 더 많이 안다는 것이었다. "그래, 그놈은 얼굴이 없는 놈이지. 하지만 수만 명으로 나눠져 있지."라고 말하면서 준태 아버지는 우동 그릇을 들어 김과 파와 몇 오라기의 우동이 둥둥 떠 있는 국물을 훌훌 들이마셨다. "그게 뭔 말인데요?" 하고 동호가 다시 물었다. "뭔 말이냐 하면, 정부란 나라 살림을 떠맡아서 하는 사람들이 모인 기관을 말하는 건데, 좁게 보면 대통령과 여러 장관들과 그 밑에 많은 공무원들이 모여서 근무하는 행정부를 줄여서 부르는 말이고, 크게 보면 국회의원들이 있는 국회와 법관들이 있는 법원까지 통틀어서 부르는 말이지. 그러니까 실제로 정부라는 놈은 여러 사람들로 나눠져 있는 거야."라고 말하기는 했지만 준태 아버지는 자신의 설명을 동호가 제대로 이해한 것 같지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동호가 눈을 말똥거리며 뭔가를 생각하는 동안 준태 아버지는 "아무튼 오늘 우리가 싸울 대상은 모든 공무원들을 통틀어서 말할 때 쓰는 그 정부란다."라고 덧붙였다. 그러자 동호는 무슨 뜻인지를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더니 "그런데 왜 싸우는 건데요?" 하고 물었다. "여러가지 이유가 있지만 제일 큰 이유는 소수의 차량만으로도 영업을 할 수 있게 해달라는 거지. 그러니까 동호 니가 트럭을 세 대만 갖고 있어도 동호 니 마음대로 짐을 실어나를 수 있도록 해달라는 거지."라는 준태 아버지의 말에 동호가 "그럼 내 차 갖고 내 마음대로 짐을 못 실어날라요?"라고 물었다. "그럼, 적어도 다섯 대 이상은 돼야 영업을 할 수 있게 해주는 거야. 그런데, 웬만한 부자 아니고는 그만한 차를 가질 수가 없잖니? 그래서 자기 차를 갖고 있어도 영업을 하자면 불법이지만 돈 많은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회사에 돈을 얼마씩 주어가며 이름을 걸어야 하지. 이런 걸 지입차라고 하는데, 대부분의 트럭들이 그렇단다."라는 준태 아버지의 대답에 다시 동호가 "그럼 우리 아버지도 그런 거예요?"라고 물었다. 준태 아버지는 탁자 앞에 놓여 있는 요지통을 잡아당겨 뾰족한 요지 한 개를 뽑아 이를 쑤시면서 "물론이지. 너네 아버지의 차주도 어쩔 수 없이 회사에다 돈을 줘가며 영업을 하고 있지."라고 대답했다. "우리 아빠의 차주라니오?" 하고 동호가 물었다. "너네 아빠의 차주인을 말하는 거지."라고 대답하면서 준태 아버지가 웃었다. 동호가 심각한 얼굴을 하고 "차주인은 우리 아빠잖아요?" 하고 물었다. 준태 아버지가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나는 고개를 돌렸다. 사실 동호는 여태까지 아버지가 모는 트럭이 아버지의 차인 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그것이 아버지를 운전수로 고용한 차주의 것이라는 사실을 안다면 얼마나 실망할 것인가? 나는 그런 동호를 보고 있을 수가 없었다.
남동생의 손을 잡고 가던 여자아이의 가족이 바로 뒤편에서 김밥과 우동을 먹고 있었다. 웃고 떠들며 음식을 먹는 그들을 보자 온 가족이 아버지의 트럭을 타고 할머니 집에 가다가 휴게소에 들러 음식을 먹던 옛날이 그리워졌다. 그땐 엄마도 있었고 언니도 있었다. 여자아이의 엄마가 하얗게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그 뽀얀 얼굴 위로 엄마의 얼굴이 겹쳐졌다.
동호는 말없이 우동을 먹고 있었다. 준태 아버지가 무엇이라고 대답해 준 것일까? 얼른 눈치를 채고 자신이 한 말이 실수였다며 둘러댄 것일까? 아니면 아버지는 단지 차주에게 고용된 운전수일 뿐임을 좀더 자세하게 설명해 준 것일까?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음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동호는 지금도 무언가를 묻고 있었을 것이다. 나는 아버지를 쳐다보았다. 묵묵히 무슨 생각에 깊이 빠져, 되새김질하는 소처럼 우물거리며 우동을 먹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무척이나 안쓰러워보였다.
퍼득 오늘 아버지가 우리를 태우고 가는 것이 힘을 얻으려는 목적도 있지만 그보다는 차주의 마음이 변하지 않게 하려는 의도가 더 큰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아버지는 트럭을 자신의 차나 다를 바 없이 생각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차주가 나중에 아주 싼 값에 아버지에게 차를 넘겨줄 의사를 강하게 내비쳤기 때문이었다. 이 기회를 놓치면 아버지는 다시 자기 차를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영원히 잃게 될 것이었다. 그래서 아버지는 차주에게 굽신대면서 마음이 변하지 않게 하려고 노력해왔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아버지는 차주가 아님에도 시위에 나서고 거기에 우리까지 싣고 가는 것일지도 몰랐다. 말하자면 우리는 차주로 하여금 아버지가 아이들이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가정의 가장이라는 사실을 계속 주지하게 하여 마음이 변하지 않게 하려는 목적에 동원된 것일 수도 있었다.
"그런데 왜 농민들도 싸우러 가는 거예요?"
시무룩한 표정으로 우동을 먹고 있던 동호가 다시 물었다.
"농민들은 농민들대로 불만이 있으니까 그런 거지. 생각해 봐라, 배추 한 포기에 생산가도 못 되는 70원씩에 팔았는데, 그게 서울에서는 7,8백원씩에 팔리고 있다면 넌 기분이 어떻겠냐? 배추농사를 지은 사람은 망하고 배추를 사먹는 사람은 비싸게 사먹는 반면에 한쪽에선 그 배추로 30억씩 남기는 사회라면 그게 제대로 된 사회겠냐? 그러니까 한 마디로 힘 있고 돈 있는 놈들 위주로 나라가 움직이고 있다는 증거지."
"그게 뭔 말인데요?"
"뭔 말이라니? 말 그대로야. 힘 있고 돈 있는 놈들 입맛에 맞게 나라가 돌아가는 거라구. 험 그러니까, 그놈들이 부를 독식할 수 있도록 제도를 만들고 그렇게 축적한 부로 도덕적인 비난을 받지 않고 마음껏 즐길 수 있도록 문화를 바꾸어간다는 말이지."
"뭔 말인지 모르겠어요."
"음, 내가 막 흥분해서 그랬는데, 쉽게 이야기하자면… 옳지, 너 왕따라는 거 알지? 그게 사실은 나쁜 건데, 그게 나쁘지 않은 거라고 생각하도록 너희 반의 힘 있는 아이들이 분위기를 만들어간다는 말이나 비슷한 거야."
그때였다. 밖에서 커다란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여러 사람들이 한꺼번에 내지르는 소리였다. 준태 아버지가 하던 말을 중단하고 일어나서 밖으로 나갔다. 아버지도 다른 트럭 운전수들도 모두 밖으로 나갔다. 휴게소의 사람들이 모두 고속도로 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점심을 먹으러 들어오기 전까지만 해도 거북이 걸음이나마 차들이 움직였는데, 이제는 차들이 제자리에 멈춰서 있었고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백여 명 정도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고속도로를 막고 주먹 쥔 한쪽 손을 쳐들면서 함성을 지르고 있었다. 준태 아버지의 뒤를 따라 트럭 운전수들이 우르르 뛰어갔다. 나도 동생들과 함께 아버지의 뒤를 따라 뛰었다.
고속도로는 머리에 띠를 두른 사람들에 의해 점거되어 있었다. 이어서 꽹과리와 징을 든 사람들이 앞으로 나와 뭐라고 소리를 지르며 농악기를 쳐대기 시작했다. 나는 이들이 뉴스에 나오던 농민들 중 일부일 것이라고 짐작했다.
"길 좀 터 주시오. 서울에 바쁜 일이 있단 말이오."
승용차에서 내린 오십대 초반의 남자가 시위대를 향해 소리쳤다. 그러자 여러 사람들이 가세하여 시위대들에게 항의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농민들은 들은 체 만 체였다. 화가 난 청년 한 명이 시위대 쪽으로 뛰어가 몸으로 부딪쳤지만 오히려 성난 시위대의 청년들에게 멱살을 쥐어잡혀 버둥거리다가 바닥에 메다꽂혔다. 그러자 뒤쪽에 있던 사람들이 시위대를 향해 삿대질을 해가며 욕을 해댔다.
"빌어처먹을 놈들, 지들이 농사를 잘못 지어 놓고도 어따가 물어내라고 하는 거야."
귀티가 흐르는 뚱뚱한 오십대 중반의 아주머니가 투덜거렸다. 동호가 그 아주머니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어깨를 으쓱 하여 나도 어느 쪽 말이 맞는지 모르겠다는 뜻을 전했다.
"여러분 저는 부산지역 트럭노조 위원장입니다."
준태 아버지가 시위대 앞으로 나가면서 소리쳤다.
"우리도 지금 여러분들처럼 시위를 하기 위해 서울로 가는 중입니다. 그러니 우리 트럭이 지나갈 수 있도록 길을 터주셨으면 합니다."
준태 아버지가 말을 마쳤을 때 어디선가 싸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가 들려오는 가운데 아버지가 트럭에 올라탔다. 동호가 빨리 타자고 말해 나는 연희의 뒤를 따라 트럭 위로 올라갔다.
과연 시위대들이 길을 터줄까 생각했는데, 아버지의 트럭이 천천히 앞으로 나가자 시위대들이 좌우로 길을 터주면서 손을 흔들어주었다. 아버지가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었다.
"통과하고 있습니다."
시위대를 지나 조금 더 가자 하행선을 타고 경찰차와 전경을 가득 실은 버스가 내려오고 있었다.
돼지를 가득 실은 트럭이 다시 앞에 나타났다. 동호가 손을 흔들자 돼지들과 함께 타고 있는 아저씨가 손을 흔들어주었다. 아버지가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계기판이 50Km를 회복했으나 얼마 못 가 30Km로 떨어졌다. 앞 차들의 속도가 자꾸만 떨어지고 있었다. 아버지가 경적을 울렸고 뒤쪽에서 경적소리가 이어졌다.
"작은누나, 지금 미선이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문득 동호가 물었다. 미선이라면 이웃집에 사는 동호의 여자친구였다. 동호는 왜 갑자기 미선이 생각을 한 것일까?
"글쎄, 일요일이니까, 다른 애들이랑 놀겠지."
그러나 동호는 내 대답을 듣고 싶어한 것이 아니라 그저 한 번 물어본 듯했다. 그의 눈이 몽롱하게 허공을 향해 있었다.
나는 좌석에 편안히 등을 기대고 눈을 감았다. 지난 해 가을, 그 토요일 저녁, 나는 동호가 갔을 법한 곳을 한참 생각하다가 운동장으로 갔다. 동호는 가끔씩 같은 반의 여자 짝인 미선이와 학교운동장에서 놀곤 했다. 추측대로 동호는 미선이와 운동장 한쪽 구석에 있는 놀이터에서 뭔가를 만들고 있었다. 나는 천천히 그들 쪽으로 걸어갔다. 서로 머리를 맞닿을 듯이 쪼그리고 앉아 다정하게 뭔가를 열심히 만들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 너무나 보기에 좋았다. 나는 운동장 한 켠에 서 있는 플라타너스나무 뒤편에 숨어서 그들을 지켜보았다. 그들은 거북이집을 만들고 있었다. 넋을 놓고 지켜보고 있는데, 정문 쪽에서 미선이 엄마가 나타났다. 미선이 엄마는 그들 쪽으로 다가가 앙칼진 목소리로 미선이를 불렀다. 미선이가 화들짝 놀라면서 일어나더니 고개를 떨구었다. 내가 뭐랬어, 저 애하고 놀지 말라 그랬잖아. 미선이 엄마의 가시 돋친 목소리가 길게 나무그림자가 지는 운동장 가득 울려퍼졌다. 그 뒷말이 그대로 사라지지 않고 길다란 학교 건물에 부딪쳐 되돌아왔다. 저 애하고 놀지 말라 그랬잖아. 그 말이 내 귓 속으로 조그만 벌새처럼 날아들어왔다. 벌새는 내 안에 갇혀, 날개를 파닥이며, 끊임없이 맴돌았다. 미선이 엄마와 미선은 정문을 통해 사라졌다. 나는 여전히 플라타너스나무 둥치 뒤에 꼭꼭 숨어 있었다. 내가 모든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는 사실을 동호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 저물어 가는 운동장의 한쪽 모퉁이에서 동호는 조그맣게 손을 말아 눈가를 훔치다가 주머니에서 뭔가를 끄집어내어 내려다보았다. 어깨가 축 처진 동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동호가 들여다보던 것을 주머니에 넣고 운동장을 벗어나 사라졌어도 나는 나무 둥치에 그대로 붙어서서 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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