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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풍령                       - 서문경


6.

"와, 헬리콥터다!"
동호가 위쪽에서 들려오는 기계음 소리에 창밖을 내다보고는 소리쳤다.
"어디, 나도 좀 봐."
연희가 동호 쪽으로 바싹 다가갔다. 고속도로 왼쪽 상공에서 헬기 한 대가 날아오고 있었다.
"정말이네."
"작은누나, 저거 경찰 헬기야?"
"글쎄. 내 생각엔 방송국 헬기 같애. 왜 너도 봤잖아, 추석 때나 그럴 때면 방송국 헬기가 떠서 취재하고 하는 거."
내가 한 말이 맞는지, 가까이 날아온 헬기는 아버지의 트럭 위쪽에서 크게 원을 그리기 시작했다. 엉뚱하게도 나는 타조가 날 수 있다면 저런 모습일까, 하고 생각해 보았다. 아마도 여전히 타조가 머릿속에 남아 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연희야, 저 헬기, 타조 같지 않어?"
나는 연희의 알 수 없는 머릿속이 궁금해졌다. 연희는 어떻게 생각할까?
"응, 그런 것도 같애. 엄마 타조."
"왜, 엄마 타조야?"
동호가 물었다.
"우리 앞에서 날고 있으니까. 그리고 난 아빠 트럭과 뒤따르는 다른 차들은 새끼 타조들처럼 생각돼. 지금 우리는 하늘을 날고 있는 거야."
연희의 생각은 오로지 엄마와 결부되어 있었다. 동호가 트럭 행렬을 코끼리 떼와 비슷하다고 했을 때도 연희는 엄마와 연결시켰었다.
"전에 언니랑 같이 본 영화 있잖아. 아름다운 비행. 거기서처럼 우리는 따뜻한 곳을 향해 가는 거야."
연희의 상상력에 의해 트럭 행렬은 나에게도 타조 떼로 변모했다. 그리고 다시 을숙도의 새 떼로 바뀌었다. 타조 떼는 덩치만 컷지 머릿속에 마이크로칩을 내장당해 언제든 잡혀서 죽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을숙도의 힘없는 조그만 새 떼나 다를 게 없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것은 트럭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크기는 승용차의 서너 배나 되지만 사실상 지입차이기 때문에 타조나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힘없는 조그만 물고기들은 서로 떼를 지어 커다란 한 마리의 물고기처럼 보이게 함으로써 크고 힘센 물고기들로부터 자신을 보호한다고 한다. 그것은 되새 떼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하늘 가득 새까맣게 무리를 지어 커다란 새가 날아다니는 듯이 보이게 하여 독수리나 매 같은 맹금류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한다는 것이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알게 된 그러한 사실을 떠올리며 나는 뒷창을 통해 보이는 트럭들도 그렇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 떼를 지어 간다고 생각했다. 힘이 없고 약하기에, 저렇듯 떼를 지어, 고속도로에 무슨 커다란 괴물이 느릿한 속도로 움직이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려고 하는 것 같았다. 정말이지 멀리서 본다면 그렇게 보일 법도 했다. 더구나 오십여 대의 트럭들이 연달아가며 경적을 울려댈 때는 이상한 괴물이 질러대는 괴성처럼 들리기도 했다. 우리는 타조 떼였다. 이렇게 우리가 한 데 모여 하늘을 날아가는 것은, 길이가 3천 리나 되며 한 번 날개를 치면 9만 리를 날아간다는, 언젠가 책에서 읽은 붕새라는 새처럼 거대한 새로 보이게 하기 위해서라고 생각되었다.
"아, 지금 뭐하는 겁니까?"
갑자기 앞쪽에서 마이크 소리가 들려왔다. 경찰차에서 나오는 소리였다. 나는 누구에게 하는 소린가 싶어 두리번 거리다 돼지를 싣고 가는 트럭임을 알았다. 돼지 무리에 섞여 있던 남자가 막 뒤판걸쇠를 벗겨내는 중이었다.
"어이, 정지! 정지!"
경찰차에서 당황하여 다급하게 내지르는 목소리가 났지만 돼지를 실은 트럭의 남자는 막무가내였다. 결국 뒤판을 벗겨내어 밑으로 늘어지게 한 사내는 안쪽으로 들어가더니 천천히 돼지들을 밀어냈다. 나는 나도 모르게 의자에 바싹 기댔다.
돼지들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고속도로 바닥 위로 떨어진 돼지들은 귀청이 찢어지는 듯한 비명을 내지르면서 드럼통처럼 나뒹굴었다. 경찰차가 급정거를 했다. 그와 동시에 아버지 역시 급제동을 걸었다. 돼지들은 점차 멀어져 가는 트럭에서 천천히 한 마리씩 떨어졌다. 문득 나는 돼지가 타조처럼 날고 싶어서 뛰어내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날개달린 돼지를 생각하자 쿡쿡 웃음이 나왔다. 그러나 피투성이가 된 채 버둥거리면서 죽어라고 비명을 질러대는 고속도로 위의 돼지들을 보는 순간 웃음기가 싹 달아나버렸다.
경찰관 두 명이 차에서 내려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멍하니 돼지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일부 돼지들은 죽어서 넘어져 있고, 일부 돼지들은 정신이 없는지 중앙분리대 쪽에 주저앉아 꿀꿀거리고 있었다. 또 일부 돼지들은 비틀거리면서 경찰차 앞쪽의 고속도로 위를 돌아다녔다. 승용차에서 내린 사람들과 경찰관들이 돼지를 도로 옆으로 몰아내는 동안 아버지는 담배를 피워물었다.
아버지가 다시 트럭을 출발시킨 것은 한 시간쯤 지나서였다. 고속도로는 뻥 뚫려 있었다. 아버지가 속도를 높여 50Km에 고정시켰다.
"2607호! 2607호! 속도를 내세요!"
앞서 달리는 순찰차에서 명령조의 말이 확성기를 통해 흘러나왔다.
"헛참, 세상 참 오래 살고 볼 일이네. 맨날 속도가 빠르다고 딱지 끊던 놈들이 오늘은 웬일로 속도를 내라니."
아버지가 콧방귀를 끼면서 낮게 중얼거렸다.
"2607호! 2607호!"
"망할 자식들이 지금 무슨 소릴 하는 기고. 우린 지금 규정 속도를 지키는 거란 말이다."
아버지가 욕설을 퍼부으며 투덜거렸다. 오늘 따라 아버지는 어딘지 모르게 화가 잔뜩 난 사람처럼 보였다. 돼지들이 바닥에 뒹굴 때도 아버지의 표정은 크게 변하지 않았었다. 아무리 순찰차에서 소리를 쳐대도 계기판의 속도는 올라가지 않았다. 순찰차에서 나오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는 듯 아버지가 라디오를 틀었다.
"지금 전국의 고속도로는 부채 경감을 요구하는 농민들의 시위와 트럭 노조의 시위로 곳곳에서 차량통행이 중단되는 국가 대동맥 마비 사태를 겪고 있습니다. 오전 11시쯤 경남 거창에서는 농민회원 2백여 명이 차량 1백여 대를 몰고 88고속도로 가조 인터체인지 근처에서 점거 농성을 벌이는 바람에 88고속도로 상,하행선이 한 때 마비됐습니다. 경북 대구 근교의 경부고속도로 상행선 도로에서는 12시쯤부터 농민 1백여 명이 각종 깃발을 내건 채 상여 시위를 벌이며 차량 통행을 막았습니다. 또 상주지역 농민 3백여 명도 경부고속도로 추풍령 휴게소 부근 상,하행선을 점거했습니다. 농민들은 트럭 1백여 대를 타고 고속도로에 진입하려 했으나 경찰이 막아 무산되자 차량을 인근 4번 국도변에 세워두고 주변 산을 넘어 추풍령 휴게소로 집결했습니다. 이에 따라 이 일대 차량 통행이 2 시간 넘게 중단됐습니다. 그런가 하면 오산 근교의 경부고속도로상에서는 가격이 폭락한 돼지를 트럭에 싣고 가다가 도로에 버리기도 했습니다. 호남지역에서는 농민 1 만여 명이 19개 시,군별로 궐기대회를 가졌습니다. 나주 농민들은 트랙터를 몰고 2Km쯤 떨어진 나주시청으로 몰려가 청사 정문에 설치한 바리케이드를 뚫고 싣고 온 무, 배추, 배, 쌀가마 등 농작물을 시청 앞 광장에 내던졌으며, 남원시의 한 농민은 깨진 병으로 자해 소동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오후 2시쯤에는 충남 논산시 벌곡면 호남고속도로 상행선에서 궐기대회를 마치고 호남고속도로에 진입한 일부 농민들이 화물트럭을 이용하여 차량 통행을 막아 상행선 2Km 정도가 극심한 혼잡을 빚었으며, 고속도로에 진입한 일부 농민들은 차량 타이어 10여 개를 불태우며 시위를 벌이기도 했습니다. 한편 이 시간 현재 서울로 향하는 부산지역 트럭노조는 경부고속도로상에서 시속 10Km에서 50Km 정도로 서행하여 극심한 정체를 빚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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