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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풍령                       - 서문경


4.

차가 대구를 스쳐지날 때 나는 아버지의 심정이 누구보다도 착잡할 거라고 생각했다. 대구는 언니가 있는 곳이었다. 내가 그런 사실을 알게 된 것은 며칠 전 이웃에 살고 있는 작은고모가 밤에 집에 들렀을 때, 그 고모에게 아버지가 털어놓던 이야기를 듣고서였다. 그날 나는 언니가 자던 구석자리에 누워 잠든 척하면서 아버지와 고모가 나누던 대화를 모두 들었다.
"아, 글쎄, 생활보호자 신청 땜에 동사무소에 들러보이, 윤희가 주민등록등본에서 빠져나갔더라고. 고마 기가 칵 막히는 기라."
언니는 1 년 전에 가출한 후 그 한 달 뒤쯤에 대구에서 전입신고를 함으로써 아버지의 주민등록등본에서 말소되어 있었다.
고민 끝에 아버지는 주소를 들고 언니를 찾아나섰다. 언니는 대구 외곽의 어느 오래된 다세대주택의 지하방에 세들어 살고 있었다. 아버지는 근처에서 망설이다 벨을 눌렀지만 아무도 없었다. 할 수 없이 밖으로 나와 담배를 피워물고 기다리던 중에, 골목 끝에서 아이를 둘쳐 업고 오는 언니를 먼저 보았다. 아버지는 얼른 옆 골목으로 숨어들었다. 혹시 다른 여자를 언니로 잘못 본 것은 아닌가 싶어 슬쩍 고개를 내밀고 확인했지만, 백일쯤 지나 보이는 아이를 둘쳐업고 지하방으로 들어가는 여자는 언니가 틀림없었다. 아버지는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은 듯한 충격으로 풀썩 주저앉았다. 나이 사십에 할아버지가 되다니. 아버지는 벽에 등을 기대고 쪼그려앉아 멍하니 하늘을 쳐다보았다. 그날 따라 하늘은 구름으로 가득 덮여 있었다. 우중충한 하늘을 올려다보고 있자니 언니에 대한 배신감이나 미움보다 자신의 신세에 대한 한탄이 먼저 비어져나왔다.
한참 하늘을 쳐다보다가 아버지는 비로소 깨달았다, 세상에는 원하지 않아도 어쩔 수 없이 되고 마는 지위가 있다는 것을, 이십 년의 시간을 껑충 뛰어, 아버지가 할아버지라고 인정하는 나이인 육십대의 시간 속으로 떠밀려들어가는 수가 있다는 것을, 아버지가 스물에 언니를 낳았을 때 아버지 역시 자신의 아버지를 사십대 초반의 나이에 할아버지로 만들었으며 자신이 지금 느끼고 있는 이 원하지 않는 감정을 자신의 아버지도 느끼게 만들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동시에 자신은 미혼부가 되고 아내를 미혼모로 만들었던 자신의 전철을 자식들에게만은 밟지 않게 할 작정이었지만 결국은 첫딸이 밟고 말았다는 사실을. 아버지는 정녕 그 나이에 할아버지가 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할아버지가 되어 버렸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오만 생각이 아버지를 덮쳐왔다. 언니가 아버지를 배신하였듯이, 아버지 몰래 주민등록등본에서 빠져나가선 1 년 동안 한 번도 연락도 안 주었듯이, 아버지도 모른 척 언니를 깨끗이 잊어버리고 싶었다. 신세 한탄에 막혀 있다 뒤늦게야 끓어오르는 배신감으로 아버지는 괴로웠다.
한 때는 아버지가 어머니를 용서하여 같이 살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언니가 결사 반대했다. 언니는 어머니가 집에 들어오면 자신이 나가겠다고 눈에 불을 켰다. 자기가 엄마 역할을 모두 해내겠으니 엄마 없이 살자는 것이었다. 엄마와 아버지의 이혼 초기에 그 충격으로 폭주족에 가담하는 등 빗나간 적이 있는 언니기에 또다시 잘못 빠지지는 않을까 걱정되어 아버지는 언니의 말대로 했다. 그 말대로 언니는 자신과 우리 동생들의 용돈을 직접 벌겠다며 새벽에 잠을 설쳐가며 우유 배달을 하는 등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는 듯했다. 저녁에도 일찍 집으로 돌아와 우리들의 옷을 빤다, 저녁밥을 짓는다, 엄마가 하던 일을 도맡아 했다. 그러나 결국은 고등학교 졸업을 한 달여 앞두고 가출을 하고 말았다. 그래서 언니의 졸업장을, 동호가 입학할 때도 그랬던 것처럼 근처에 살고 있는 작은고모가 대신 가서 받아왔다.
"망할 년,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 누나, 정말 난 윤희가 그럴 줄은 몰랐어. 아무리 애비가 못 났다고 하지만, 애비를 그렇게 무시할 수가 있어? 정말이지, 배신감 땜에 아랫입술이 질끈질끈 물리는 거야."
그러나 곧 아비로서의 본심이 밀어닥쳤다. 아직은 한창 꿈에 젖어 뭔가를 이루려고 노력해야 할 언니, 친구들과 어울려 조잘거리며 젊음을 만끽해야 할 언니, 그런데 그 언니가 갓난아이를 데리고 지방도시의 어느 지하방에 틀어박혀 지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자 아버지에게는 금세 언니에 대한 미움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애틋함이 가득 고여들었다.
"그러자 좀 전의 미움이 윤희를 그렇게 만든 놈한테로 번져가는 거야. 이 망할 놈이, 그래도 여자 예쁜 거는 알아갖고……."
하지만 그 망할 놈의 자식은 곧바로 아버지 자신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그 막막하고 힘들었던 시절, 그저 따뜻한 말 한 마디를 해주는 누군가가 간절히 그리웠던 시절, 식당에서 열아홉 살의 엄마를 처음 만났을 때 아버지는 붉게 피어난 한 송이 동백꽃을 본 듯 매료되었었다. 서로가 힘든 삶을 살아가고 있었기에, 서로에게 쉽게 이끌렸고, 아무도 통제하는 사람이 없는 가운데, 미래에 대한 아무런 계획도 책임감도 없이 그저 감정에 휩쓸려 들었고, 그러다 보니 얼떨결에 언니를 낳았었다.
"누나, 그 망할 놈의 자식도 그랬던 걸까? 그리고 윤희도 지 에미처럼 그런 감정이었을까?"
언니가 사라진 뒷길에 아이를 업은 언니의 모습이 남았다. 이제 겨우 스무 살밖에 되지 않은 언니. 그건 바로 언니를 낳았을 때의 엄마 모습이었다.
"결코 딸아이만큼은 나 같은 놈은 안 만나기를 바랐어. 까짓거 잘 생긴 건 안 바라도 대학물이라도 먹고 넥타이 매고 직장다니는 남자를 만나기를 바랐어. 그랬는데 천상 내 신세나 매한가지인 공돌이를 만나다니."
아버지는 언니를 만나러 가기 전에 작은고모로부터 대충 언니의 남자에 대해 들었다. 작은고모는 언니가 졸업을 앞두었을 무렵부터 집 근처의 철공소에 다니는 남자와 가까이 지낸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설마 그럴 리가 있을까 하고 무심히 넘겼다고 했다. 그 남자도 이혼한 어머니 밑에서 자란 남자라고 했다.
끼리끼리 만나기 마련이라는 옛말이 어찌 이리도 딱 들어맞는단 말인지, 왜 결손 가정의 아이들이면 꼭 그와 같은 비슷한 길을 걸어야 한단 말인지, 아버지는 아득한 수렁으로 빠져들어가는 기분이었다.
"정말이지 누나, 이때만큼 내 신세가 처량하게 느껴진 적은 없었어."
결국 아버지는 그날 언니를 만나지 않고 그냥 돌아왔지만 짐을 싣고 대구를 지나칠 때마다 마음이 무거워져서 견디기 힘들었다고 했다.
"누나, 도대체 이 모든 불행이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난 그게 아내를 유혹한 그놈에게서 시작된 것 같아. 그리고 윤희를 임신시킨 놈도 한 몫 거든 거 같고. 나와 같은 놈은 나 하나만으로도 족해. 윤희 아이의 아버지를 생각할 때마다 떠올리기도 싫은 내 과거를 보여주는 거울 같이 느껴져. 그래서 울화가 치밀 때면 내가 모는 트럭을 갖고 아내를 꼬여간 그놈하고 윤희를 미혼모로 만든 그놈을 확 깔아뭉개고 싶은 생각이 들곤 해."
아버지는 울고 있었다. 작은고모는 야야, 아이들 깰라, 그러면서 아버지를 달랬다.
아버지는 집안에 먹구름이 드리우기 시작한 것이 엄마가 털실로 옷을 만드는 보세 공장에 나가면서부터라 생각하고 있었다. 엄마는 처음엔 힘들어 하는 것 같더니 차츰 적응이 되는지 점차 활기를 찾아갔다. 화장도 짙어지고 옷도 자주 사 입었다. 그러더니 일이 많아서 그렇다며 점점 늦게 들어오기 시작했다. 아버지가 집에 들어오지 않는 날은 새벽이 되어서야 들어왔다. 아버지는 우리들에게서 그런 사실을 듣고는 그저 일이 많아서 그러려니 믿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버지의 친구가 엄마가 어떤 남자와 여관에서 나오는 것을 보았다고 아버지에게 알려주었다. 아버지는 엄마를 다그쳤고 엄마는 사실을 털어놓았다.
"누나, 따지면 그놈도 아내가 공장에 안 나왔더라면 유혹할 일도 없었을 거라고 변명할 거 아냐? 하긴 그놈 말도 맞는 말이긴 해. 그렇다면 잘못이 어디에 있는 걸까?"
그러면서 아버지는 할머니의 말대로 가난이 원인이었는지도 모르겠다며 훌쩍였다. 가난하지만 않았어도 엄마가 보세공장에 나가는 일이 없었을 거고, 그랬더라면 공장의 작업반장과 눈이 맞는 일도 없었을 것이며, 그랬더라면 이혼하는 일도 없었을 것이고, 그랬더라면 언니와 내가 이 모양이 되는 일도 없었을 거라는 것이었다.
"가난이 원수로구나."
집안이 엉망으로 헝클어졌을 때 부산에 내려온 할머니는 그렇게 한탄하면서 울었다.
"못난 것, 지금이사 다른 사나가 좋아 갔지만, 늙어지면 후회할 끼구마."
그날 할머니는 자신의 아들을 배신한 여자임에도 엄마를 크게 욕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 마지막 고비를 못 참고 나가다니, 조금만 더 참았더라면 됐을 낀데."라면서 가정을 박차고 나간 엄마가 불쌍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런 시선 뒤에는 산전 수전을 다 겪은 사람이 인생에 대해 내리는 혜안이 들어 있을 것이겠지만, 무엇이 마지막 고비고 무엇을 조금만 더 참았더라면 됐다는 말인지, 나는 그 말의 의미를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표면적으로는 마지막 고비가 가난한 생활을 지칭하며 그것이 멀잖아 끝나 행복을 누리게 될 텐데 그 시간을 더 못 참아 가정을 버렸다는 의미 같았지만, 빚더미에 올라앉아 있는 우리 가정이 그 빚을 벗어던지기에는 역부족인 것 같았고 우리가 자라 가난을 청산하기에는 긴 시간이 남아 있는 점으로 미루어, 다른 의미이거나 더 깊은 뜻이 들어 있는 듯이 보였다.
"누나, 그럼 나는 왜 가난한 걸까? 물론 못 배운 탓이겠지. 그러나 따지면 그것만이 꼭 원인이었던 건 아닌 거 같아. 나는 열심히 일했어. 그런데도 언제나 그만큼의 대가는 주어지지 않았어."
그러면서 아버지는 그 한 예를 들었다. 아버지가 여기저기서 돈을 꾸어 중고차이긴 하지만 어렵게 트럭을 마련하여 차주가 되었을 때였다. 차주가 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그만 실수로 사고를 일으켜 차가 반파되고 적재한 물건도 못 쓰게 된 일이 발생했다. 그때 아버지가 지입하고 있는 회사가 한 일은 아무 것도 없었다. 돈이 없어 보험도 반밖에 들지 않은 상태여서 적재한 물건 값과 파손된 차의 손해를 고스란히 혼자서 감당해야 했다. 회사가 한 일이란 그저 아버지에게서 일정한 돈을 받고 아버지가 영업을 할 수 있도록 회사 이름만 빌려준 것뿐이었다.
"도대체 그런 회사가 왜 필요한 거야? 자기 차로 자기가 영업할 수 있도록 해주면 왜 안 되는 거냐구? 그러면 지입료를 낼 필요도 없어지잖아. 그랬더라면 그 돈으로 못 든 보험에도 들 수 있었을 거고 그랬더라면 빚더미에 올라앉는 일도 없었을 거잖아. 아무튼 누나, 나는 왜 내가 가난을 못 벗어나는지 모르겠어. 누나도 알다시피 내가 그렇게 헤프게 쓰는 놈도 아니잖아?"
대구는 이미 저만치 뒤로 지나갔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언니를 찾아갔던 그날의 건물벽에 등을 기대고 앉아 있는 기분일 것이었다. 나는 가슴이 답답하여 창을 열었다. 차가운 바람이 날아들어와 얼굴을 할켰다. 마치 가시덤불 속으로 뛰어든 기분이었다.
돼지를 실은 트럭이 속도를 냈다. 앞차와의 거리가 점점 벌어지면서 회색빛 바닥의 면적 또한 넓어졌다. 아버지의 차를 타면 자주 그랬듯이 최면에 걸린 듯 몽롱한 상태가 엄습해왔다.
문득 아버지가 타조 신세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아버지의 머릿속에도 타조들의 머리에 들어 있는 마이크로칩이 들어 있는 건 아닐까. 죽을 때까지 마이크로칩을 머리에 간직하고 살 수밖에 없는 타조처럼 아버지도 영원히 이런 가난의 굴레에서 살다가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은 아닌가. 날개를 갖고 있으면서도 날 수 없는 타조처럼 잘 살아야겠다는 의욕은 있지만 영원히 잘 살 수 없는 것은 아닌가. 울타리에 갇혀 마음껏 돌아다닐 수 없는 타조처럼 남의 차 운전수로, 행여 나중에 다시 아버지의 차를 가진다 해도 지입 회사라는 굴레 안에서만 차를 몰다가 가는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은 나에게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나는 마치 그날의 타조를 지금 내 눈 앞에서 보고 있는 듯이 느껴졌다. 타조들은 울타리에 갇혀 있다. 타조들을 풀어주면 나도 현재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타조들과 나 사이에는 얇은 철제 울타리가 막고 있다. 철제 울타리는 조립한 것이어서 스패너로 나사를 풀면 해체가 가능한 것이다. 하지만 내 손에 그런 것이 있을 리 없고 있다 해도 실현 불가능한 것이다. 나는 타조들에게 속삭인다. 자, 탈출할 수 있어. 날면 되는 거야. 날아봐. 어서. 왜 못 나는 거지? 너희들은 날개가 있지 않느냐? 자, 날개를 펄럭여 봐. 힘차게. 어서. 그래서 그 울타리를 벗어나란 말이다. 그리고 저 광할한 하늘로 날아올라 대오를 지어 너희들이 오매 불망 그리던 아프리카의 대초원으로 날아가란 말이다. 어서. 어서. 하지만 타조들은 그 커다란 눈으로 내가 내젓는 손을 말똥말똥 바라만 볼 뿐이다. 나는 비애를 느꼈다. 타조들에게 주문한 것이 고스란히 나 자신을 향해 주문한 것이었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서울은 가까워오지만 나는 점점 탈출 의욕을 상실해 가고 있었다.
아버지가 급제동을 했다. 앞서 달리던 돼지 실은 트럭이 속도를 갑자기 줄였기 때문이었다. 돼지 실은 트럭 앞에서 달리던 차들이 멈춰서 있었다. 무슨 일이지, 하는 생각으로 앞쪽을 보니, 멈춰선 차들 앞쪽에 깃발을 쳐든 사람들이 고속도로를 가로막은 채 시위를 벌이고 있었고, 그들 뒤쪽에는 방패로 앞을 가린 전경들이 그들과 대치하고 있었으며, 시위대와 전경의 한가운데에는 흰꽃으로 장식한 상여를 멘 상두꾼들이 요령잡이의 선소리에 따라 가락을 뽑고 있었다. 얼핏 보기에는 상여를 앞세우고 고속도로를 따라 서울로 가려던 농민들이 전경대에 막혀 못 가고 있는 것 같았다.
"북망 산천, 어서 가세."
"워어어, 워어어, 어허, 넘차, 워어."
선소리를 먹이는 요령꾼의 말은 분명히 들려왔지만 상두꾼들의 뒷소리는 대충 그 정도의 소리로만 들려왔다.
"어서 가게, 길 비키소."
"워어어, 워어어, 어허, 넘차, 워어."
구슬프게 뽑아대는 그들의 가락을 듣고 있자니, 아버지가 우리에게 들려주었던 할아버지의 이야기가 불쑥 떠올랐다. 할아버지는 마을에 초상이 나면 상여의 맨 앞에서 요령을 흔들며 선소리를 먹였다고 했다. 얼마나 구슬프게 먹여대는지 상두꾼들마저 울 정도였다는 것이다.
이제 생각해 보니 할아버지가 그렇게 구슬픈 음성을 낼 수 있었던 것은 평생을 농부로 살아오면서 삭신이 녹아내릴 정도로 고생한 할아버지 자신의 신세가 죽은 자의 고생스러웠던 삶과 허망함에 동화되어 서러웠을 테고, 그 보상을 해주리라 기대를 걸었던 아들은 초등학교만 마친 채 서울로 뺑소니를 쳐서, 어려운 시대의 조혼 풍습에 따라 스무 살에 아비가 된 자신을 그대로 답습하여, 결혼도 안 한 상태로 떡 하니 딸을 낳아 집에다 팽개치고는 다시 달아나 버림으로써, 마흔 초반에 할아버지가 된 자신의 신세가 또한 한탄스러웠기 때문이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며칠 전 아버지가 작은고모에게 신세 타령을 할 때 할아버지 얘기도 했었다.
"그런데도 아버진 첫손주랍시고 윤희를 알뜰하게도 키워주셨어. 그렇게 실망을 준 자식이었는데도, 그 자식이 낳은 딸을 정성껏 키워주셨단 말야. 그런데 난 어땠어? 나는 윤희를 만나러 갔다가 윤희가 업고 있는 자식을 보고는 그냥 돌아오고 말았어. 누나, 내가 아버지한테 끼친 실망이나 윤희가 나에게 끼친 실망이 무슨 차이가 나겠어? 그런데도 난 그냥 돌아오고 말았어."
그 할아버지는 오십을 겨우 넘겼을 때 아파서 타계했다. 웬지 상두꾼들이 내는 소리가 서글프게 들려왔다.
준태 아버지가 농민시위대에게로 가고 있었다. 그가 요령꾼에게 뭔가 한참 말하고 나자 시위대가 길을 트고 상여도 한쪽으로 벗어났다. 준태 아버지가 손을 들어 진행 신호를 보냈다. 선두 차량이 움직이고 돼지 실은 트럭도 움직였다. 아버지는 빼두었던 기어를 1단에 넣고 천천히 액셀러레이터를 밟았다. 상여가 길을 터서인지 전경대도 한쪽 옆으로 벗어났다. 그 대신 길 옆에 서 있던 경찰차가 돼지 실은 트럭과 우리 트럭 사이로 끼여들었다. 막혔던 봇물이 터지듯 차량들이 일제히 속도를 높이기 시작했다. 돼지 실은 트럭이 내달리자 경찰차도 뒤따랐다. 아버지가 경적을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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