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지금 동생들이 앉아 있는 운전석 뒤편의 길다란 좌석은 아버지의 여관방이었다. 아버지는 화물을 싣고 타지방으로 가면 하루나 이틀 후에 집에 들어온다. 싣고 간 화물을 부리고 다시 다른 화물을 받아 싣고 오자면 그렇게 걸린다고 했다. 그렇게 타지에서 밤을 보낼 때 아버지는 트럭에서 잠을 잔다고 했다.
때로 그 자리는 우리들의 잠자리가 되기도 했다. 명절을 맞아 시골에 있는 할머니댁에 갈 때면 우리들은 언제나 아버지의 트럭을 타고 갔다. 할머니댁은 부산에서 세 시간쯤 걸리는 곳에 있는데, 명절 때는 언제나 차가 막혀 다섯 시간쯤 걸렸다. 그래서 우리들은 뒷좌석에 앉아 손놀이를 하거나 장난을 치다가 결국은 지루함을 이기지 못해 그대로 잠에 골아 떨어지곤 했다. 언젠가 아버지는 그렇게 잠든 우리들의 모습이 할머니댁의 처마 밑에 까놓은 제비새끼들처럼 보였다며 웃었다. 어쩌면 아버지에게는 앞자리의 좌석으로 양쪽이 막혀 아늑하게 느껴지는 뒷좌석이 제비둥지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 뒷좌석이 할머니집의 다락방처럼 느껴졌다. 아버지의 차를 타면 언제나 나는 할머니집의 다락방에 올라앉아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곤 했다. 그렇게 느껴진 것은 내가 중학교 1학년이었던 여름방학 때 할머니댁에 놀러갔다가 우연히 다락방에 올라가 본 이후부터였다. 다락방은 세 개의 방 중에서 안방으로 쓰고 있는 중간방에서 올라가도록 되어 있었다. 다섯 개의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천정이 낮아 허리를 굽히고 지나다녀야 하는 나직하고 아늑한 다락방이 나타났다. 남쪽으로 조그만 창이 나 있어 햇빛이 들어오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는 어두워서 무엇을 찾거나 보자면 한쪽 귀퉁이에 매달려 있는 알전등을 켜야만 했다.
그날 처음 다락방에 올라가 본 이후 나는 그 방을 비밀의 방이라고 이름붙였다. 왜냐하면 다락방은 아버지의 소년시절과 청년시절을 알 수 있는 비밀이 간직되어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비밀이 담겨 있는 박스는 다락방의 한쪽 구석에 놓여져 있었다. 절대 열어보지 말 것. 박스의 뚜껑을 봉인해 놓은 종이 위에는 빛바랜 경고문이 쓰여져 있었다. 오히려 그 문구가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누렇게 변색되고 풀기가 말라 한쪽 귀퉁이가 떨어져 너덜거리는 종이봉인을 살짝 잡아당기자 쉽게 뜯겨져 나왔다. 그것은 큰고모의 사물함이었다. 그 안에는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하루도 빠짐없이 써온 큰고모의 일기장이 차곡차곡 쌓여져 있었다. 처음에는 약간 겁이 났으나 호기심을 누를 수 없어 몇 장을 읽고 나자 대담해졌다. 나는 그저 동화책 읽듯이 일기장을 읽어나갔다.
그렇게 정신없이 큰고모의 과거를 탐독하다 보니 어느 새 점심 때가 되었다. 다락방 바로 밑은 부엌이었다. 그래서 할머니가 점심 차리는 소리와 나를 찾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놈의 가시나가 점심 때도 모르고 어데 가서 노는구마. 연희야, 빨리 가서 언니 찾아온나."
할머니는 내가 마을에 사귀어 놓은 친구집에 간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대로 다락방에 눌러앉아 일기장에 매달렸다. 일기장의 내용들은 배고픔을 잊게 하기에 충분한 것들이었다. 바로 거기에는 드문드문 아버지의 과거들이, 누렇게 탈색된 종이 위에 볼펜 똥이 번져 얼룩이 진 형태로, 그러나 슬픈 영화 속의 한 장면들처럼 찍혀 있었다.
나는 일기장을 통해 왜 아버지가 초등학교밖에 나오지 못했는지를 알았다. 아버지는 할머니가 없는 돈을 꾸어서 중학교 등록금을 납부해주었음에도 입학식을 며칠 앞두고 집에서 도망쳤다. 그 이유를 큰고모는 이렇게 써놓았다.
<아마도 영춘은 육성회비 독촉의 시달림을 더 이상 바라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은 이미 국민학교에서 받은 것만으로도 충분했을 것이다. 그리고 돈을 꾸러 이집저집 다니는 어머니의 모습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것 역시 지난 6 년의 세월만으로도 충분했을 것이다.>
집에서 도망친 후 아버지는 서울로 갔다. 그때부터 아버지의 유랑은 시작되었다. 자전거수리점의 점원으로 출발하여 도금공장의 종업원, 식당종업원, 다방의 주방장, 호텔의 보이, 등등 이루 셀 수 없을 정도로 이곳저곳을 전전했다. 한 곳에서 6 개월 내지 1 년 정도 있다가 자리를 옮겼고 그때마다 집으로 편지를 보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는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한다고 해서 홍길동이란 별명이 붙었다.
<시장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겨우 찾아낸 그곳은 낡은 건물의 3층에 있었다. 사람 한 명이 겨우 오르내릴 수 있는 좁은 시멘트 계단을 타고 올라가자 아귀가 맞지 않아 삐딱하게 반쯤 닫혀 있는 낡은 샷시문이 나타났다. 내부가 비스듬히 들여다보이는 안쪽에서 고약한 냄새가 흘러나왔다. 문은 조금 더 여는 것으로 활짝 열렸다. 지독한 냄새 때문에 머리가 어찔해지는 현기증을 참고 안으로 들어가자 길다란 복도처럼 생긴 좁고 어둑한 공간이 나타났다. 공간에는 희고 푸르스름한 연기가 가득 들어차 있었고, 새벽안개 속에서 어렴풋이 모습을 드러내는 나무들처럼, 연기 속에서 사람들의 모습이 흐릿하게 나타났다. 아이들이었다. 정확히 몇 명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대여섯 명쯤 되어보였고 여자아이들도 끼여 있었다. 대부분 열서너 살 가량쯤 되어 보였는데, 머리가 아플 정도로 유독한 냄새임에도 그들은 이미 만성이 돼 버린 듯 태연한 자세로 뭔가를 열심히 만지거나 운반하고 있었다. 오른쪽 벽 밑에서 반짝거리고 있는 여러 개의 물체가 시선을 끌었다. 온통 회색과 검푸른빛뿐인 어둑한 공간에서 그것들만이 금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칙칙한 물이 담겨 있는 길다란 붙박이세멘트통 위에 설치되어 있는 걸개에 나란히 걸려 있는 그것들은 막 도금이 끝난 금목걸이들이었다. 안쪽 구석에서 고용주인 듯한 남자가 건너다 보면서 어떻게 왔느냐고 물었다. 동생을 만나러 왔다고 말하자 내 목소리가 귀에 익은 것이었던 듯 안쪽의 구석진 곳에서 푸르스름한 연기가 솔솔 피어오르는 통 안의 뭔가를 휘젓고 있던 사내아이가 놀란 눈으로 쳐다보았다. 빛을 보지 못한 식물처럼 핼쓱한 얼굴에 내부의 습기와 유독성 연기에 찌든 초라한 몰골의 소년이었다. 동생이었다.>
새벽에 아버지가 잠을 깨우기 전까지, 나는 이상하게도 큰고모의 일기장에서 읽은 부분을 현실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는 꿈을 꾸고 있었다. 나는 푸르스름한 유독성 연기로 가득 찬 내부에 모여 있는 아이들을 보고 있다가 질식할 것만 같은 심정을 가눌 수 없어 뛰어나오다가 계단에서 굴러떨어지면서 잠을 깼다. 다행히 아버지가 말없이 내려다보고 있는 방안이었다. 그때의 아버지의 모습은 마치 큰고모가 묘사해놓은 일기장의 아버지처럼 초췌해보였다.
<그곳은 무허가 도금공장이었다. 동생과 더불어 아이들은 유독한 화공약품에 그대로 노출된 채 일을 하고 있었다. 편지봉투에 적힌 주소를 보고 찾아간 나를 동생은 당황스런 얼굴로 바라보다가 옥상으로 데리고 올라갔다. 그곳에서 잠시 그동안의 근황을 이야기하다가 숙식은 어떻게 해결하느냐고 물었다. 동생은 사장이 밥을 사주어서 먹는다고 하면서 옥상의 한쪽 구석으로 데리고 갔다. 그곳에는 빈 종이박스들이 쌓여 있었다. 동생은 그곳을 가리키면서 그냥 거기서 잔다고 말했다. 너무 어이가 없어, 자다가 비가 오면 어떻게 하느냐고 묻자 동생은 그냥 맞으며 잔다고 했다. 나는 동생에게서 고개를 돌리고, 구름이 잔뜩 내려앉은 하늘로 시선을 주면서 종잇장처럼 말라붙는 목구멍을 트기 위해 목을 움켜쥐었다.>
나는 큰고모가 보지 못한 비맞은 아버지의 모습을, 잠을 깨워놓고 묵묵히 내려다보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보았다.
아버지가 담배를 피워물었다. 창밖을 향해 훅, 내뱉은 담배연기는 나에게 꿈 속의 장면을 현실로 옮겨다주고는 사라졌다. 나에게 트럭은 아버지가 소년기를 보냈던 도금공장의 좁은 내부처럼 느껴졌다. 한 번도 도금공장의 내부가 어떻게 생겼는지 보지 못했지만 큰고모의 일기장에 묘사되어 있는 도금공장만으로도 그곳이 선연히 그려졌다. 아버지는 여전히 소년시절의 도금공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유독성의 푸른 연기처럼 담배연기가 피어오르고 다른 한쪽에서는 도금된 목걸이들처럼 자식들의 눈이 반짝반짝 빛나는 그 좁은 공간에서.
그뿐만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쓰고 있는 선글라스는 여전히 아버지가 그 안경알 공장에서도 벗어나지 못한 상태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큰고모의 일기장에 박제되어 있는 아버지의 여러 소년시절의 모습들 중에는 아버지가 도금공장을 떠나 천호동의 어느 수공업 안경알 공장에서 일하던 때의 장면도 있었다.
<그곳은 언덕받이를 넘어가는 넓은 밭의 한가운데에 세워져 있는 허름한 집이었다. 도대체 저기가 무엇을 하는 곳일까? 이번에는 녀석이 어느 농부의 머슴살이로 들어간 것은 아닐까? 배추가 심어져 있는 밭 한가운데로 난 질퍽한 흙길을 따라 들어가자 치아를 가는 듯한 소름끼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알고 보니 그라인더에 안경알을 가는 소리였다. 동생은 유리가루가 먼지처럼 부유하는 조악한 무허가 안경알 공장에서 견습공 노릇을 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그곳에서도 오래 있지 못하였다. 왜 아버지는 한 곳에 진득이 붙어 있지 못하였던 것일까? 그 이유를, 고학을 하며 야간 여자상업고등학교에 다니던 큰고모는 이렇게 적어 놓고 있었다.
<열악한 작업 환경은 몸약한 영춘이 일할 수 있는 한계를 6 개월 정도만 허락했다. 아니 동생뿐만 아니라 그 어떤 소년이라도 그런 환경에서는 그 이상 버티기가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녀석은 국민학교만 겨우 나온 아이를 번듯한 곳에 소개해줄 직업소개소는 그 어느 곳에도 없다는 사실도 모른 채 계속해서 다람쥐 쳇바퀴 돌듯 이곳저곳으로 옮겨다닌 것이다.>
결국 아버지는 뒤늦게야 그런 사실을 깨달았다. 아무리 돌아다녀도 마음에 드는 직장은 나오지 않으며 몇 번만 더 되풀이했다간 객지에서 병들어 죽을 것이란 사실을.
<마침내 녀석이 자존심을 꺾은 것 같았다. 아니 죽지 못해 그 길을 선택한 것 같았다. 처음에는 죽으면 죽었지 그런 곳엔 절대 안 간다고 편지에 써보냈던 녀석이, 다방에서 주방장을 하고 있다는 편지를 보내왔다. 집안 사람들에게, 그리고 그에게 다방은 치욕스런 곳으로 인식되고 있었기 때문에 직업소개소에서 소개해줄 때마다 녀석은 싫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결국은 그곳을 선택하고 말았다.>
그러나 아버지의 그런 인식은 미아리 고개 너머의 어느 극장에 딸려 있던 다방에서도 오래 버티지 못하게 했고, 그 후의 호텔 보이는 물론 그와 유사한 직업에서 역시 그 이전의 도금공장과 같은 곳을 전전할 때처럼 유랑하게 만들었다.
결국 그런 생활로 십대를 거의 다 보내면서 아버지가 터득한 것은 배워야 한다는 것이었던 모양이다. 언제 그런 결심을 하게 되었는지는 모르지만 아버지는 한 때 밤에라도 혼자 공부하려고 시도한 적이 있었다. 이 역시 큰고모의 일기장이, 아버지는 까맣게 잊어버렸을지도 모를 그 결심의 순간과 시간들을 섬세하게 박제해 놓았다.
<영춘이 먹고 잠자는 중국집 골방에서 뒹굴고 있는 때묻은 가방에서 튀어나온 것은 독학으로 공부하게 만들어 놓은 영어 강의록이었다. 알파벳 쓰기에 이어 간단한 문장들로 구성된 열 권짜리 강의록은 처음 몇 페이지만 지렁이 기어가는 듯한 영춘의 알파벳 글씨로 채워져 있을 뿐 깨끗했다. 혼자서 공부한다는 것이, 더구나 온종일 일에 시달리다 밤에 틈을 내어 공부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을 것인지를 말해주는 대목이다. 얼마나 공부를 하고 싶었을까? 사회는 변해가고 자꾸만 접하는 영어의 세계. 그 벽 앞에서 영춘은 얼마나 자주 좌절하며 자신의 운명을 저주했을까?>
그러던 아버지는 서울을 떠나 부산으로 갔다. 그곳에서 트럭조수로 들어갔다가 발이 묶였다. 그 바로 전에 자갈치 시장 부근의 어느 식당에서 일할 때 알게 된 동갑내기 어머니와의 사이에서 언니가 태어났기 때문이었다. 아버지의 나이 스무 살 때였다. 아버지는 식당을 떠나 트럭조수로 일하는 동안 어머니가 임신한 사실을 알았다. 더 이상 떠돌아다닐 수가 없었다. 게다가 트럭조수로 일하다 트럭기사가 되는 것은 아버지의 어렸을 때의 꿈이기도 했기 때문에 아버지는 그 자리에 안주하기로 한 것 같았다.
<영춘은 결국 트럭운전수가 되었다. 그것은 유년의 그가 한 때 꾸었던 꿈이었다. 이웃집 아이가 타고 노는 세발 자전거를 부러워하면서 늘 그 아이를 밀어주며 보내던 어느 날, 앞바퀴가 달아나고 뒷바퀴만 남아 있는 고물세발자전거 한 대를 어딘가에서 주워왔다. 영춘은 그때부터 그 고물자전거를 밀면서 골목을 돌아다녔다. 넌 도대체 커서 뭐가 될래, 하고 어머니가 나무라면 재무시 운전수, 하고 말했다. 재무시란 GMC에서 나온 힘센 트럭을 일컷는 일본식 발음인데, 영춘은 고물자전거를 재무시로 생각하고 일부러 가파른 언덕길이나 진창 같은 곳으로 밀고 돌아다녔다. 세발자전거의 뒷바퀴가 앞바퀴가 되고 빠져달아난 한쪽 바퀴 대신 영춘의 두 다리가 뒷바퀴 노릇을 했다. 그런 상태에서 자전거를 가게 하자면 허리를 굽혀 안장받침대를 잡고 밀어야 했다. 지금의 구부정한 영춘의 자세는 아마도 골격 형성기였던 그때의 영향 탓인지도 모른다.>
사실 지금까지의 일기장 내용은, 아무리 내가 암기력이 뛰어나고, 그 내용이 너무나 가슴을 찌르는 것이어서 여러 번 보았다고 하더라도, 내 기억이 정확히 되살리지는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표현상 다소 다르기는 할지라도 내용만은 거의 일치하고 있다. 더구나 처음 본 큰고모의 글은 너무나 내 마음에 들어서 내가 수십 번도 더 베껴본 것이었다. 그래서 지금의 나의 글쓰는 방식이 큰고모의 글쓰는 방식과 많이 닮아 있을 만큼 내가 떠올린 일기장 내용은 원본과 거의 부합할 것이다. 공부도 잘 하고 글쓰는 재주도 뛰어났지만 가난 때문에 야간 상업고등학교에 다녀야만 했다는 큰고모. 그래서 그 재능을 살리지 못하고 평범한 주부로 살아가고 있는 큰고모. 그 고모를 생각하면 웬지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어디에서 나타났는지 돼지를 가득 실은 트럭 한 대가 앞줄에 끼여들었다. 줄곧 추월선으로 달려오다가 트럭 행렬의 선두 차량인 아버지의 차를 간신히 추월하자마자 차선을 바꾸어 주행선으로 들어선 것이 분명했다. 트럭은 아버지 트럭의 반 정도밖에 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타이탄 트럭에 비하면 큰 편이었다. 붉으레한 몸통이 흰털로 덮여 있는 돼지들은 서른 마리 가량 돼 보였고 서로 엉덩이를 붙인 채 바싹 긴장된 표정으로 실려가고 있었다. 트럭의 옆판에는 '축산농가 살려내라'라는 구호가 붉은 글씨로 쓰여진 현수막이 붙어 있었다.
"와아, 막내누나, 돼지 좀 봐!"
뒷자리에서 연희와 이야기를 하고 있던 동호가 소리쳤다.
"와 진짜네. 근데 어딜 가는 거지?"
돼지들의 앞쪽, 운전석 바로 뒤편에 한 남자가 보였다. 구릿빛으로 탄 삼십 대의 남자는, 춥지도 않은지, 돼지들 틈에 끼여, 돼지의 일부인 듯이 앉아 있었다. 그러다 동호가 손을 흔들자 오른손을 번쩍 들어 브이 자를 만들어 보이며 씨익 웃었다.
차량의 꼬리가 점점 길어지고 있었다. 아버지는 시계를 힐끗 보더니 또 한 번 경적을 울렸다. 그리고 그것을 신호로 뒤따르는 차들이 연달아가며 경적을 울려댔다. 그렇게 아버지는 10 분마다 한 번씩 경적을 울렸고 고속도로에는 10 분마다 경적음이 길게 꼬리를 그리며 이어졌다.
핸드폰이 울렸다. 아버지는 한 손으로 운전대를 잡고 한 손으로 핸드폰을 받았다. 이야기 내용으로 보아 준태 아버지는 아니고 다른 트럭기사인 것 같았다.
"아무렴 데리고 가지."
저쪽에서 뭐라고 물었는지 아버지가 무표정한 얼굴로 대답했다. 아마도 저쪽에서 동호도 데려가느냐고 물었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아버지의 대답에는 일정한 틀이 있었기 때문에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전에 같았으면 아버지는 방금 한 대답 끝에 웃으면서 이렇게 덧붙였을 것이다. 우리집 재산목록 1혼데, 빼놓을 리가 있나. 자주 아버지는 동호를 일러 그런 말을 하곤 했다.
나는 왜 아버지가 아들에 집착했는지도 큰고모의 일기장을 보고 알았다. 중학교 2학년이었던 겨울 방학 때 비밀의 방에 올라가 본 나는 깜짝 놀랐다. 전에 본 일기장 이후에 쓴 큰고모의 일기장이 가방 가득 들어 있었던 것이다. 아마도 큰고모는 집에 일기장을 남겨두면 고모부나 아이들이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할머니와 할아버지만 살고 있는 시골집에 갖다 놓은 것 같았다. 이번에는 종이로 봉인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자크만 내리면 열리는 커다란 트렁크 안에 넣어져 있었다. 깨끗한 대학노트에 만년필로 써내려간 큰고모의 일기는 이렇게 쓰여져 있었다.
<다른 사람들은 영춘이 능력도 없으면서 아들을 바라 자식을 많이 낳았다고 욕하지만 나는 영춘을 이해한다. 동생은 실패한 자신의 인생을 아들을 통해 만회해 보려고 했던 것이다. 남들에게는 그것이 천박한 욕심으로 비칠지 몰라도 그들이 영춘이 되어 보지 않고는 그의 심정을 알지 못한다.>
저쪽에서 그토록 좋아하는 동호 이야기를 꺼냈을 텐데도 아버지의 표정은 어두웠다. 도대체 아버지는 누구와 싸우러 가는 것일까?
연희는 눈을 감고 있었다. 하지만 잠든 것은 아니었다. 나는 연희가 을숙도에서 새 떼들과 날아다니는 상상을 한다고 생각했다. 연희와 함께 을숙도에 다녀온 날 연희가 나에게 보여준 글에는 연희의 알 수 없는 세계가 적나라하게 표현되어 있었다.
<나는 모래 밑바닥에 있는 나의 성으로부터 밖으로 기어나왔다. 저물어가는 을숙도의 하늘에 새 떼들이 날고 있다. 하늘 높이 치솟은 검은 연기처럼 새 떼는 까맣게 무리를 지어 빙빙 돌고 있다. 나는 엄마새를 찾으려고 고개를 뒤로 젖히고 새 떼들의 둥근 궤적을 따라 돌았다. 나는 새 떼들이 일으킨 회오리바람에 휩싸였다. 나는 빙글빙글 돌다가 픽 쓰러졌다. 새 떼들이 돌듯이 을숙도가 돌고 있었고 나에게서 한참 떨어져 혼자서 걷고 있는 작은언니도 돌고 있었다. 서쪽 하늘의 핏빗 노을이 돌고, 그 노을이 돌고 돌아 빨간 띠가 만들어진 둥근 원도 돌고 있었다. 나는 하늘로 날아올랐다. 나는 너무나 기뻐서 소리쳤다. 새들아, 나도 끼워줘. 새들이 나를 틈에 끼워주었고 나는 새들과 함께 날아다녔다. 나는 날면서 엄마새를 찾으려고 애를 썼다. 푸른 깃털에 검은 눈을 가진 새가 제일 앞에서 날고 있었다. 그 새가 엄마새인 것 같아 힘껏 두 팔을 휘저었다. 그러나 나는 더 이상 접근할 수가 없었다. 새들은 바람처럼 빠른 속도로 날았다. 커다란 검은 비닐 조각이 저녁 하늘에서 휙휙 날아다니듯이 날았다. 갑자기 하강하여 모래바닥에 닿을 듯하다가, 다시 공중으로 높이 솟구치면서. 나는 어지러웠다. 그래서 눈을 감고 그냥 팔만 휘휘 내저었다. 나는 엄마새에게 물어보고 싶었다. 혹시 우리 엄마가 어디에 있는지 아느냐고, 왜 아버지나 언니들은, 시골의 할머니는, 고모들은 그곳을 가르쳐 주려고 하지 않는지, 아니 엄마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하게 하는지. 나는 한때 엄마가 새가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언젠가부터 엄마는 집에서 자꾸만 날아가려고 했으니까, 아버지가 들어오지 않는 날에는 일찍 잠깨는 참새처럼 새벽에야 슬그머니 집으로 들어왔으니까. 그런 날의 엄마 몸에서는, 시골 할머니집 뒤란에 있는, 유월에 한창인 밤꽃 냄새가 났다.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엄마가 어딘가에서 죽었음에 틀림없다고 생각한 것은 어느 날 갑자기 엄마가 사라진 날로부터 한 달쯤 지났을 때였다. 나는 엄마새에게 우리 엄마 무덤이 어디에 있는지를 물어보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눈을 떴을 때는 이미 새들은 어둠이 되어 보이지 않았다. 내 손에는 모래가 잔뜩 움켜쥐어져 있었다. 나는 작은언니를 찾았다. 벌써 어두워졌지만, 작은언니는 여전히 미친 여자처럼 돌아다니고 있었다. 작은언니는 흙으로 빚은 칙칙한 토인의 얼굴처럼 굳은 얼굴이었다. 그런 얼굴로 가끔씩 낄낄거리며 웃다가 느닷없이 쿨쩍쿨쩍 울기도 했다. 나는 배가 고팠다. 작은언니에게 다가가서 집으로 가자고 말하고 싶었다. 그러나 미쳐버린 듯한 작은언니에게 말을 건네기가, 아니 접근하기조차 꺼려졌다. 나는 좀더 작은언니를 내버려두기로 했다.
풀이 듬성듬성 자라난 동그란 모래 언덕들이 해변에 흩어진 모래 무덤들처럼 여기저기 솟아 있었다. 나는 그들 가운데서 나의 성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곳은 내 몸을 끼워넣을 수 있을 만큼 알맞게 움푹 파인 아늑한 구석자리였다. 나는 그곳 모래 속에 성을 지어놓고 살고 있다. 나의 성에 있으면 나는 사람들이 모래를 밟고 지나가는 소리와 멀리 해변에서 철썩이는 파도소리와 하늘에서 날고 있는 새 떼의 울음소리를 모두 들을 수 있다. 하지만 사람들은 나를 발견할 수 없다. 한낮의 지열에 데워진 모래바닥의 온기가 엉덩이 아래쪽에서부터 따뜻하게 전해져 왔다. 작은언니는 여전히 몽유병자처럼 돌아다니고 있었다. 나에게는 작은언니가 스스로 걷고 있다기보다는 지구의 회전운동이 작은언니를 돌리는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언젠가 책에서 지구의 회전운동과 중력에 대해 읽게 되었을 때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던 것이 이제야 뭔가 조금 이해되는 것 같았다. 내가 정말 지구는 도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작은언니를 지켜보고 있는 동안 어깨 위를 무겁게 내리누르면서 잠이 몰아쳐왔다. 나는 나의 성으로 내려가려고 모래를 파헤쳤다.>
비록 내 문장의 외피를 입고 있기는 하지만, 중학교 2학년에 막 올라간 상태였던 연희의 글은 나와 차이를 보이지 않으면서도 내가 생각할 수 없었던 점을 표현하고 있었다. 나는 은근히 시기심까지 났다. 그래서 연희보다 자신이 있다고 생각되는 산문에 복문과 묘사를 많이 사용하는 버릇이 생겨났다.
나는 좌석의 등받이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았다.
그날 나는 밤새도록 미친 여자처럼 백사장을 돌아다녔다. 내가 을숙도 돌기의 긴긴 행보를 끝냈을 때는 새벽이었다. 발바닥에서 느껴지는 모래알의 간지러움도, 파리한 초승달의 칼날 같은 빛남도, 뭍으로 기어오르며 건네는 조수의 속삭임도, 끊임없이 콧구멍 속으로 기어드는 비릿한 바다의 체취도, 양볼을 타고 입 속으로 스며든 눈물방울의 짠맛도 더 이상 나의 싸늘하게 식은 피를 격동시키지 못했다. 그렇게 함으로써 나는 어둠에의 입회식을 끝냈다고 생각했다. 멀리 검푸르게 뒤척이는 새벽 바다 위로 동이 터오고 있었다. 나는 한참 잠에 빠져 있을 남자 친구에게 말했다. 나는 어둠의 세계에서 살기로 작정했어. 내가 아무리 발버둥쳐도 네가 살고 있는 그 반듯하고 품위 있는 빛의 세계로 나갈 수 없다는 것을 알아. 나 같은 여자가 빛의 세계로 나가보았자, 오히려 결점만 드러나 구경꺼리만 될 뿐이지. 내가 힘을 얻을 수 있는 곳은 어둠의 세계인 것 같아. 안녕.
연희는 모래톱의 오목한 곳에 태아처럼 쪼그리고 앉아 잠들어 있었다. 나는 말없이 동생을 흔들어 깨우고 을숙도를 떠났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나는 감기에 걸린 것을 알았다. 나는 아스피린 두 알을 먹고 이불을 뒤집어 써서 혈관을 달군 다음, 감기 인플루엔자를 끓는 땀방울에 실어 밖으로 내보내는 방법을 쓸 것인가, 아니면 소주에 고춧가루를 타서 마시고 잠드는, 친구들이 늘상 말하는 방법을 쓸 것인가를 두고 잠시 고민했다. 아스피린 두 알을 먹고 이불을 뒤집어 써서 혈관을 달구는 방법, 그리하여 체공을 통해 감기 인플루엔자를 땀방울로 배출하는 방법, 그것은 가장 저렴한 가격으로 감기를 몰아내는 비방으로, 아버지가 알려준 이후 종종 써먹어온 것이었다. 생각 끝에 나는 친구들이 말하던 방법을 선택하기로 했다. 이제 어둠의 사람이 되었으니 그에 걸맞는 방법을 써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술맛은 썼다. 왜 이런 걸 아버지와 세상 사람들은 그리도 좋아하는지. 그러나 그 의미를 깊이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왜 소주를 마시기로 마음먹었는지도 생각해볼 여유도 없이, 소주병이 바닥을 드러내기도 전에 나는 방바닥에 쓰러졌다, 짜증을 부리며 닥달하던 엄마가 빠져나간 빈 자리에, 그 자리를 지키다 힘에 겨웠는지 어쨌는지 가출해 버린 언니의 빈 자리에.
엄마와 아버지가 이혼했던 날, 내가 밖에서 돌아와 방문을 열자 술냄새가 확 풍겨나왔다. 어둑한 방 한가운데에 언니가 소주 한 병을 다 마시고 쓰러져 잠들어 있었다. 언니 주변은 토사물 투성이였다. 엄마와 아버지가 이혼하기 얼마 전, 언니가 엄마에게 맞서던 날이 희미하게 되살아났다. 그래, 이년아, 기껏 낳아주고 먹여주고 입혀줬더니, 에미를 남의 집 똥개 쳐다보듯 해,라고 외치며 엄마는 두눈에 쌍불을 켜고 언니를 올라타고 앉아, 그 탄력 넘치는 육실한 엉덩이로 언니의 배를 굴러댔고, 언니는 누가 낳아달라고 했나, 오히려 낳아준 것이 원망스러워 죽겠다, 그리고 니가 에미야? 니가 에미냐구? 이 암캐야,라고 외치며 맞받아쳤다. 언니는 완전히 미쳐 있었다. 어떻게 엄마에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지. 엄마도 언니의 돌연한 행동에 멍하니 서서 부들부들 떨다가 언니처럼 미쳐서, 언제나 화날 때면 드는 빗자루를 찾아 정신없이 휘둘러댔다. 엄마와 언니의 싸움을 지켜보던 나는 곧 언니의 심정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새벽바람이 미처 다 털어내지 못한 엄마의 몸에서 번져나오는 불순한 기운을 감지하면서, 엄마의 빗자루가 딸의 참됨과 미래를 위해 휘두르는 것이 아니라, 구차한 현실에서 연유하는 짜증의 발산용으로 휘두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표독스럽게 그 빗자루에 맞서온 언니만큼이나 나에게도 엄마의 빗자루는 이미 권위를 상실한 것이었다.
그날의 언니처럼 나는 엄마가 나를 깔고 앉아 굴러대고 있는 듯한 무게를 느끼며, 언니처럼, 니가 에미야, 니가 에미야,라고 소리치며, 이제는 관 속에서 빠져나간 듯한 기분이겠지, 흐응, 시원해서 좋겠구나, 라고 중얼거리다가, 우웩우웩 토악질을 해가며 발버둥쳤다. 그렇게 미운 엄마였어도 아버지와 이혼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치 못했으며 그런 건 손톱만큼도 원하지 않았다는 언니처럼 나도 그냥 그렇게 시간이 흘러갈 줄로만 알았다. 방바닥에 흥건한 토사물이 얼굴과 몸에 달라붙었지만 나는 끈적거림도 냄새도 알아채지 못했다. 가슴이 타는 듯한 뜨거움을 견디지 못해 머리를 쥐어뜯으며 울부짖다가 마침내 힘이 소진되어 쓰러져 잠들었다.
대구 4Km. 이정표가 천천히 다가와 트럭 옆으로 스쳐 지나갔다. 계기판은 10Km로 떨어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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