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 옛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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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바람에 쓰러진 이팝나무 묘목을 곧추세우고 있는 이광민씨. 이씨의 새로운 삶터인 큰이채골의 가파른 산비탈에는 모두 6만여 그루의 이팝나무와 복자귀(단풍나무의 일종)가 심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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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살 데는 골골마다 있다"는 말이 있다. 경북 문경시 농암면의 큰이채골에 들어섰을 때 문득 이 말이 뇌리를 스쳤다.
두메산골인 율수리 상율마을을 뒤로 하고 흙먼지 폴폴 날리는 농로와 울창한 수림 아래의 자드락길을 따라 큰이채골로 들어가는 동안 그 골짜기 어디에도 사람 사는 데가 있을 성싶지 않았다. 그런데 한 가닥의 햇빛도 스며들지 않을 정도로 우거진 솔숲길을 지나자마자 갑작스레 눈앞이 훤해지며 얼마간의 밭과 작은 처소 한채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걸 보니 "사람 살 데는 골골마다 있다"는 그 속담이 한치도 어긋나지 않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이곳은 오랫동안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을 꿈꿔 왔다는 이광민씨(44)의 새로운 삶터다. 길 오른편의 물가에 일궈놓은 채마밭에는 배추와 옥수수가 가득하고, 왼편의 가파른 산비탈에는 1, 2m 가량 자란 수만 그루의 이팝나무가 빼곡이 심어져 있다. 그리고 소나무 서너 그루가 손바닥만한 그늘을 드리운 둔덕 위에는 이씨의 집이 올라앉아 있다. 집이라고는 하지만 '캐빈형' 텐트에다 비닐을 덧씌운 임시 처소에 불과했다. 그 처소와 단출한 세간은 이씨가 이곳에 정착한지 얼마 되지 않았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올해 초에 들어왔습니다. 길 다듬고 밭 일구고 축대 쌓고…, 오랫동안 사람 살지 않던 곳이라 화급한 일들이 너무 많더라고요. 그래서 아직 집 짓는 것까지는 엄두를 못냈죠. 저 텐트도 지금 당장은 생활하는 데에 전혀 불편한 게 없습니다. 하지만 기왕에 뿌리를 내리기로 작정하고 들어왔으니까 겨울이 되기 전까지는 어떻게든 집을 지어야 될 것 같아요. 내 한몸 편히 쉴 수 있으면 그만이니까 작은 흙집이나 한 채 지을 작정입니다."
원래 경남 합천군 묘산면에서 나고 자란 이씨는 열아홉살 때에 고향을 떠나 상경했다. 그 뒤로 20여년 동안 여느 도시인들과 마찬가지로 직장생활을 하고 가정도 꾸렸지만 늘 흙냄새 짙은 자연이 그리웠다. 마침내 마흔살 되던 해에 직장을 그만두고 온 가족과 함께 서울 근교인 파주시 금촌으로 들어가 부추 농사를 지었다.
하지만 서울 근교에서의 어설픈 전원생활은 자연 속의 삶에 대한 그의 갈망을 풀어주지는 못했다. 더욱이 조경수(造景樹) 키우는 일을 시작한 그에게는 수만 그루의 묘목을 심을 수 있는 널찍한 땅이 필요했다. 경제적인 여유가 별로 없었기 때문에 아무리 멀고 험한 산중이라도 길과 식수만 있다면 기꺼이 들어가서 살 작정이었다. 몇달 동안 중부지방의 여러 산골을 샅샅이 훑고 다닌 끝에 찾아낸 곳이 큰이채골이었다. 그러나 온 가족이 함께 살기에는 두 아이의 교육문제가 걸렸다.
"사실 그게 가장 큰 문제였습니다. 그것 때문에 처음에는 집사람의 반대가 무척 심했어요. 결국에는 제 뜻을 받아들인 집사람이 아이들과 함께 지금껏 살던 곳에 그냥 남아 있기로 했습니다. 어머니와 형제들도 기꺼이 제 일을 도와주시고 있어요. 칠순을 훌쩍 넘긴 어머니는 일주일간 여기에 계시면서 이팝나무 심은 산비탈에 무성한 잡초를 일일이 뽑아주기도 하셨고, 형님은 큰물 지면 위험하다며 물가에 축대를 쌓아주더라고요. 이렇게 멀리 떨어져 있지만 저를 믿어주는 가족들을 생각하면 마음 든든하고 편안합니다."
그의 말대로 마음은 편안할지 몰라도, 언뜻 들여다본 그의 일상은 별로 편안해 보이질 않았다. 25년 가량 도시에 살았던 사람이 전기와 전화도 들어오지 않는 '문명의 사각지대'에서 이웃과 교통수단도 없이 홀로 산다는 것은 생각만큼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동틀 무렵부터 땅거미가 내려앉을 즈음까지 고달픈 일과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어쩌다 일손이 한가한 날에도 그는 느긋하게 쉬는 법이 없다. 그런 날엔 골짜기 아래의 상율마을로 내려가 마을 공동작업을 하거나 틈틈이 그에게 도움을 아끼지 않는 신현길씨(60)의 농사일을 돕는다. 이씨가 사는 곳에서 가장 가까운 마을인 상율마을까지 가려면 꼬박 40분쯤을 쉬지 않고 걸어야 한다. 집 근처의 숲길을 지나면 줄곧 그늘 한점 없는 들길이어서 이맘때 쯤의 삼복염천에 그 길을 걷다보면 땀으로 멱을 감다시피 한다. 그래도 이씨는 그 먼길을 마다하지 않고 마을로 내려간다. 처음엔 사상이 의심스럽다거나 이상한 사람이라 여기며 그를 경계하던 마을 주민들도 그의 타고난 성실성과 슬거운 마음씨를 알게 된 지금은 든든한 후견인이자 농사일의 스승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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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잎을 수확한 밭에서 비닐을 걷고 있는 신현길씨 내외와 이씨. 이씨는 일손이 한가한 날이면 마을로 내려가 신현길씨의 농사일을 품앗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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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음으로써 겪는 불편함도 시어빠진 김치를 날마다 먹어야 하는 것말고는 별로 느끼지 않는다고 했다. 모든 일은 땅거미가 지기 전에 끝마친 뒤 어둠이 내리면 곧 잠자리에 들기 때문이다. 게다가 왼종일 바쁜 일과가 이어지므로 자리에 누우면 곧바로 깊은 잠에 빠진다고 한다. 때때로 가족에 대한 그리움이나 갖가지 상념 때문에 잠이 오지 않을 때에는 밖으로 나와 우수수 쏟아져 내릴 듯한 별빛을 헤아리거나 반딧불이의 아름다운 비행을 지켜보곤 한다.
칠흙 같은 어둠이 깔린 첩첩산중의 밤이지만, 그는 무섭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도 했다. 짐작컨대 그가 "두려움은 나 이외의 모든 것을 믿지 못하는 마음에서 생겨난다"는 진리를 아는 신심(信心) 깊은 불자(佛子)이기 때문인 듯하다. 또한 간간이 눈에 띄는 뱀이나 두꺼비도 일부러 쫓거나 내치지 않는다. 자연의 도움 없이는 자신의 꿈을 이룰 수 없느니 만큼, 그는 적어도 스스로 자연을 해치는 일은 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물과 땅을 오염시키는 세제나 농약은 가급적 쓰지 않는다. 다행히도 그가 식수와 생활용수로 쓰는 계곡물은 그냥 마셔도 탈이 없을 만큼 깨끗한 데다 때가 잘 빠지는 단물이어서 흰 옷에 밴 흙탕물도 하룻밤만 지나면 감쪽같이 빠진다. 그는 오랫동안 꿈꿔왔던 삶을 꾸려가고 있기 때문인지, 자연이 주는 모든 것들을 진실로 고마워했다.
그이더러 "먼 훗날의 꿈이 무엇인가"고 물었다. 그러자 "사회로부터 소외된 사람들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는 공동체를 세우고 싶다"고 대답했다. 그러면서 "그 꿈을 이루려면 돈도 많이 벌어야 된다"는 말을 덧붙였다. 낮으면서도 희망에 가득한 목소리로 말하는 그의 입가에 잔잔한 미소가 드리워졌다. 천년의 모진 풍상을 이겨온 어느 마애불을 닮은 미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