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39. 섬진강 옥정호 어부들
쪽배에 삶 싣고 '몰래 고기잡이'
  오랜만에
땅거미가 내려앉기 시작한 옥정호의 수면을 고기잡이에 나선 조각배 하나가 소리없이 떠가고 있다.
찾은 옥정호의 정경은 여전히 깨끗하고도 한가로웠다. 그러나 호수에 비친 하늘은 금방이라도 억수 같은 장대비를 퍼부을 것처럼 잔뜩 흐렸다. 호수 언저리에 살고 있는 주민들의 심사도 먹장구름 뒤덮인 장마철의 하늘 못지 않게 찌푸려 있었다. 그들의 삶터인 옥정호가 8월1일부터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지정되기 때문이다. 라디오에서는 임실군 운암면의 주민 100여명이 임실군청으로 몰려가 철야농성을 하고 있다는 뉴스가 매시간마다 흘러나왔다.

옥정호를 사이에 두고 임실군 운암면과 마주<보고 있는 정읍시 산내면의 여러 마을을 쏘<다녔다. 호숫가에 자리잡은 마을마다 한적하다 못해 을씨년스런 기운이 감지된다.

옥정호에서의 고기잡이와 가두리양식이 금지된 바람에 주민들도 크게 활기를 잃은 듯하다. 정읍시 산내면 종성리에서 만난 한 주민은 "호수 주변의 산비탈에 있는 손바닥만한 논밭만 갖고서는 생계를 잇기가 쉽지 않다"며 얼굴에 수심이 가득했다.

이곳 주민들 가운데는 조상 대대로 부쳐먹던 농토가 섬진강댐이 건설된 뒤로 물 속에 잠기게 되자 아예 고기잡이를 주업으로 삼은 이들이 적지 않다. 앞으로는 그마저 어렵게 됐으니 자나깨나 긴 한숨만 터져나올 수밖에 없다고 한다.

섬진강댐에서 흘러내린 물줄기를 따라 하류쪽으로 내려갔다. 이 길 도중에 희여터 덕치 갈담리 일중리 등 임실군 덕치면과 강진면의 여러 마을을 지나게 된다. 강가와 산기슭마다 제법 너른 들녘을 끼고 있는 이 마을들은 한국전쟁 당시 회문산을 근거지로 삼은 빨치산과 국군 사이에 치열한 공방전이 거듭됐던 곳이다.

그러나 주민들로부터 당시의 상황에 관한 증언을 듣기란 쉽지 않다. 평생토록 지울 수 없는 심신의 상처를 입거나 입힌 사람들이 거개 형제나 이웃, 아니면 가까운 친구였기 때문이다. 다만 회문리의 덕치지서에 남아 있는 철옹성 같은 보루가 당시의 정황을 짐작케 할 뿐이다.

이튿날 어스레한 새벽길을 달려 덕치면 장암리 진메(長山)마을 앞의 강가로 나갔다. 강이건 바다건 고기 잡는 사람들은 대체로 새벽에 그물을 거두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메마을을 거쳐 천담마을까지 가는 동안 그물을 거두는 사람은 하나도 만나지 못했다. 천담마을에서 임실군의 마지막 마을인 구담마을로 가는 강변길을 따라가다 마주친 한 주민의 말을 듣고서야 그 까닭을 짐작할 수 있었다.

"사실 여그서 정치망으로 고기를 잡는 건 불법입니다. 낚시나 투망을 쓰는 건 괜찮아도 정치망이나 밧데리로 잡다가 걸리먼 호되게 경을 쳐요. 그러나 낚시나 투망으로 잡아서는 어디 밥벌이가 됩니까? 전에는 고기잡이로 먹고사는 주민들헌테 군청에서 3년짜리 어업권을 내줬는디 그게 만료된 뒤로는 새로 허가를 안 내줘뿌러요. 그러니 어떡허요? 먹고살라먼 요렇게라도 허는 수밖에요."

그래서 사람들의 왕래가 뜸하거나 눈에 잘 띄지 않은 곳을 택해 한밤중에 그물을 쳐놓았다가 꼭두새벽에 그물을 거둬들인다는 것이다. 주로 쏘가리와 붕어가 많이 걸리고, 운이 좋으면 간혹 자라가 잡히는 경우도 있다. 그물을 거둘 때에는 대개 2인 1조로 작업을 한다. 한 사람이 그물을 거둬들이는 동안 다른 한 사람은 강둑에 서서 망을 봐야 하기 때문이다. 아닌 게 아니라 저벅거리는 물소리에 강쪽으로 눈길을 돌리니 그의 '파트너'인 듯한 사람이 보였다.

그는 고무튜브에다 널판지 하나를 얹어 만든 쪽배를 타고 그물을 거두고 있었다. 그물에 걸린 고기를 빼내는 중에도 연신 주변을 두리번거리며 불안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사정이 그렇다 보니 두 사람 모두 사진촬영은 물론이고 이름조차 밝히기를 끝끝내 거부했다.

도리 없이 강물과 나란히 달리는 흙길을 따라 구담마을까지 내려갔지만 결국 다리품은 헛되고 말았다. 다시 천담마을을 지나 진메마을 쪽으로 물길을 거슬러 올랐다. 날이 훤하게 밝은 뒤에 바라보는 강의 풍경이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굽이치는 강물은 아침 햇살 아래 은빛으로 반짝이고, 한가로이 헤엄치며 노닐던 흰뺨검둥오리떼가 갑작스런 인기척에 놀라 일제히 날아올랐다.

진메마을은 '섬진강'의 시인 김용택씨의 고향 마을이다. 이 마을을 에돌아 흐르는 섬진강<의 물빛은 옥정호보다도 더 맑아 보였다. 강바닥에 깔린 돌마다 칙칙한 빛깔의 물이끼가 끼어 있기는 하지만, 먼발치에서도 물 속이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깨끗했다.

가까이 다가가 물 속을 들여다보니 피라미 모래무지 송사리 등이 돌틈 사이로 부산하게 헤엄쳐 다니고 물이끼로 뒤덮인 돌에는 다슬기들이 잔뜩 달라붙어 있다.

삼복염천의 따가운 햇살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초로의 아낙이 부지런히 다슬기를 잡고 있었다. 회문산 초입의 일중리에 산다는 그이는 "요새같이 농사일이 바쁘지 않을 때는 맨날 여그 와서 대수리허고 우렁이를 잡는데, 잘만 허먼 한나절만에 5만원어치를 잡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어떤 해는 농사짓는 것보담도 대수리를 잡는 것이 훨씬 더 오질 때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자칫하면 물때 낀 바위를 디뎠다가 넘어지기 일쑤이고, 흐르는 물을 온종일 들여다보면 어지럼증에다가 뒷골까지 뻣뻣해지는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온종일 섬진강을 끼고 이어지는 비포장길을 오르락내리락했다. 해거름녘 무렵에는 폭풍전야처럼 고요한 옥정호를 바라보며 국도를 따라 달리다가 금기붕어의 산지로 유명한 운암면 금기리의 호숫가로 내려갔다. 장마철임에도 불구하고 호수는 물 속에 잠긴 곳보다 물 밖에 드러나 있는 부분이 더 많을 만큼 수위가 낮았다. 그래서인지 고기잡이에 분주해야 할 조각배들도 수초만 무성한 강가에 쳐박혀 있었다.

길고도 긴 여름 해가 지고 붉은 노을이 수면에 드리워질 즈음, 건너편 기슭에서 작은 쪽배 하나가 소리없이 호수 한복판으로 미끄러져 나왔다. 옥정호와 섬진강에 깃들어 사는 사람들의 '은밀한 생업'이 어둠과 함께 시작된 것이다.
임실군 덕치면 진메마을을 에돌아 흐르는 섬진강에서 다슬기를 잡는 아낙. 잘 잡는 날에는 하루 5만원 가량의 수입을 올리기도 한다.

재첩잡이는 대체로 아침 7시쯤부터 시작되며, 가구당 하루에 30kg짜리 두 포대, 즉 60kg를 초과해서는 안된다. 작업은 거개 내외가 함께 하는데, 그럴 때에는 정오 무렵에 정해진 양을 채울 수 있다.

송지호는 호수 바닥의 경사가 완만하고 한복판의 수심도 어른 키를 넘지 않을 정도로 얕아서 배를 타지 않고서도 호수 곳곳을 돌아다니며 재첩을 잡을 수 있다. 남자들은 대부분 틈새가 성긴 철제 삼태기(주민들의 말로는 '기계')를 써서 재첩을 잡는다. 긴 대나무 손잡이가 달린 삼태기를 물 속에 드리운 채 호수 밑바닥에 깔린 모래밭을 훑으면 알이 가는 모래와 어린 재첩은 빠져나가고 다 자란 재첩만 남게 된다.

그리고 아낙들은 주로 호수 가장자리의 수심이 얕은 곳을 손으로 뒤적거리면서 잡지만, 체구가 작은 사람들도 쉽게 쓸 수 있도록 가볍고 작게 만든 '기계'를 동원하는 사람도 많다.

언뜻 보기와는 달리, 재첩잡이는 아주 어렵고 고달프다. 무엇보다도 허리를 시종 구부린 상태로 작업해야 한다는 점이 힘들다. 그뿐 아니라 바람결에 일렁거리는 수면을 오랫동안 응시하다보면 어느 순간에 불현듯 생기는 어지럼증으로 인해 몸조차 가누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더욱이 무거운 철제 삼태기를 모래밭에 박고 뒷걸음질치며 잡아당기는 일도 체력소모가 적지 않다.

또한 수온이 낮은 봄이나 가을철에는 한나절이 넘도록 차가운 물속에 몸을 담그고 있으면 온몸이 얼어붙는 듯한 고통이 뒤따른다. 호수 복판 쪽의 비교적 수심이 깊은 곳에서 작업하는 몇몇 남자들이 아예 겨울용 잠수복을 덧입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이런저런 어려움을 감수하면서 하루에 60kg을 채취하면 현찰 9만원을 고스란히 손에 넣게 된다. 1kg에 1500원씩인 셈이다.

채취 작업을 마친 뒤 물가에 앉아서 재첩에 섞인 돌과 어린 재첩을 골라내고 있는 50대 중반의 부부에게 "재첩으로 올리는 수입이 제법 쏠쏠하군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부인이 다급하게 손사래를 치며 "우리 두 내외가 한나절 동안 뼈빠지게 일한 걸 생각하면 그렇게 큰 벌이는 아니다"며 애써 부인했다. 그러면서도 "그날 당장 현찰을 받기 때문에 이런 시골에서는 살림살이에 큰 보탬이 된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의 남편도 "남들은 우리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손쉽게 재첩을 잡아 돈 버는 줄 알고 있지만 이곳에 재첩이 사라지지 않게 하려고 주민들 모두가 적지 않게 공을 들인다"며 부인의 말을 거들었다. 모든 주민들이 합성세제 대신 폐식용유로 손수 만든 빨래비누만 쓰고 집집마다 정화조를 설치함으로써 생활폐수와 분뇨가 호수로 흘러드는 것을 원천봉쇄한다는 것이다.

또한 한달에 두세 차례씩 주민들 모두가 나서서 호수 주변의 쓰레기와 오물을 말끔히 치운다고도 했다. 그러고 보면 이곳 오봉리의 주민들은 아주 현실적이고도 구체적인 환경운동에 진력하고 있는 셈이다.

양영훈〈여행칼럼니스트〉

섬진강댐

전북 임실군 강진면 용수리와 정읍시 산내면 종성리의 섬진강 상류에 위치한 우리나라 최초의 다목적 콘크리트댐. 61년 8월 착공해 65년 12월 준공했다. 댐의 높이는 64m, 제방 길이는 344m다. 이 댐의 완공으로 생긴 옥정호의 총저수용량은 4억6600만t이며, 28개 리의 9371정보가 수몰됐다. 또한 이곳의 물은 약 6km의 수로를 통해 정읍시 칠보면의 섬진강수력발전소에 공급돼 연간 1억8000만kWh의 전기를 생산한다. 발전에 이용된 물은 다시 동진강 유역과 계화간척지 일대에 농업용수로 공급된다.

금기붕어

임실군 운암면 금기리 앞의 섬진강에서 잡힌 붕어를 일컫는다. 이 붕어는 맛도 좋지만 특히 남자들의 양기를 북돋우는 데에 탁월한 효험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옛날에는 붕어 한마리 값이 쌀 한가마니 값과 맞먹었다고도 하고, 조선 후기에는 궁궐에 진상했다고도 전해진다. 또한 예로부터 청웅의 남양수시, 성수산의 송이버섯, 관촌 방수리의 쏘가리, 삼계 어은리의 콩잎 등과 함께 임실군의 대표적인 특산품으로 손꼽혔다.

"전라도 다슬기국 드셔볼래요"
 
오염되지 않은 민물에서만 서식하는 다슬기는 고동 민물고동 고뎅이 대수리 올갱이 올뱅이 등 지역에 따라 그 이름도 천차만별이다. 다슬기는 그냥 삶아서 옷핀이나 바늘로 속살을 빼먹기도 하지만 국물을 넉넉하게 해서 해장국으로 먹는 게 가장 담백하고 맛있다. 특히 다슬기를 넣고 우려낸 국물에다 된장을 풀고 부추를 듬뿍 썰어 넣은 다음 간단한 양념으로 간을 맞춰 끓여낸 '올뱅이국'은 충청도 지방의 별미로 유명하다. 그러나 전라도의 섬진강 유역에서는 미역국이나 감자국에도 소고기나 멸치 대신 다슬기를 넣어 맛을 낼 만큼 아주 쓰임새가 다양하다. 충청도의 올뱅이국과 같은 '대수리탕'에도 부추 대신 호박과 수제비를 넣는다. 그러나 전라도의 대수리탕과 충청도의 올뱅이국은 모두 담백하고 시원한 맛이 일품이거니와 숙취를 풀어주는 효과도 크게 차이가 없다. 섬진강댐 근처에 위치한 임실군 덕치면과 강진면의 국도변에는 민물매운탕과 다슬기국을 내놓는 집이 여럿 있는데, 그중에서도 덕치면 망월촌 삼거리의 강산에(0673-643-5786)와 강진면 갈담리 사거리의 섬진강매운탕집 (0673-643-7597)이 권할 만하다. 참붕어 메기 쏘가리 등 섬진강에서 잡은 민물고기로 조리한 각종 탕과 찜도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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