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38. 강원도 고성군 왕곡마을
'송지호 재첩' 맛 좀 보실래요?
  "재칫국
송지호에서 재첩을 채취하는 죽왕면 오봉리 주민들. 그리 큰 규모의 호수가 아닌데도 주민들이 여기저기에 흩어져 재첩을 잡기 때문에 실제보다 훨씬 더 넓어보인다.
사이소, 재칫국 사이소."

어둠이 채 걷히지 않은 꼭두새벽, 항도 부산의 비좁은 고샅길을 구석구석 누비는 재첩국 장수의 날카로운 외침과 함께 사람들의 일과도 시작됐다. 그러나 부산 사투리가 귀선 외지인들은 거개 새벽잠을 깨우는 아낙들의 외침이 무슨 뜻인지를 얼른 알아챌 수가 없었다. '재칫'은 낮으면서도 빠르게, 그러나 '국 사이소'의 '국' 자는 유난히 거센 고음으로 내뱉기 때문이다.

아무려나 이젠 그 정겨운 외침을 더이상 들을 수도 없거니와 그 소리를 기억하는 이조차 그리 흔치 않을 정도로 세월이 흘렀다.

부산의 뒷골목에서 재첩 장수가 자취를 감춘 까닭은 무엇보다도 재첩 채취량이 격감한 데에 있다. 다 자란 것도 몸 길이가 2, 3cm에 불과한 재첩은 일명 '가막조개'로도 불리는 민물조개인데 주로 강물과 바닷물이 합류하는 하구에서 서식한다.

그러나 물이 오염되기 시작하면 금세 자취를 감춘다. 술꾼들의 속풀이에 그만인 재첩국이 부산의 향토음식으로 널리 알려진 것도 전국 최대의 재첩 생산지였던 낙동강과 수영강의 하구를 끼고 있는 덕택이었다.

낙동강과 수영강뿐 아니라 금강 한강 섬진강 등의 하구에서도 재첩이 흔히 잡히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도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재첩이 생산되는 곳은 섬진강뿐이다.

호수로는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의 송지호가 거의 유일한 재첩 서식지다. 송지호말고도 강릉 경포호나 양양 포매호 같은 석호(潟湖)에도 얼마 전까지 재첩이 서식했다. 흔히 '때복'이라 불리던 경포호의 재첩은 붕어회와 더불어 경포의 명물로 이름이 높았고, 양양의 포매호에서는 3, 4년 전까지도 재첩 잡는 광경을 간간이 구경할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인근 마을과 농경지에서 흘러든 생활폐수와 농약으로 거의 멸종되다시피 했다.

죽왕면 오봉리 동쪽의 7번 국도변에 위치한 송지호는 둘레가 6km 가량 되는 아담한 자연호다. 또한 거진항 북쪽의 화진포호와 함께 겨울철마다 수천 마리의 고니 혹고니 청둥오리 등이 날아들던 철새 도래지로도 유명하다. 물이 깨끗해서 민물고기 재첩 등의 먹이가 풍부한데다 호숫가에는 갈대밭이 무성해 경계심 많은 철새들도 안심하고 겨울을 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근래의 '고성산불'로 인해 호수 주변의 숲과 산자락이 모두 민숭해졌을 뿐더러 7번 국도가 호반까지 잠식해 4차선으로 확장되는 바람에 철새의 수와 종류가 크게 줄었다. 그러나 말간 물빛만큼은 예나 지금이나 큰 변화가 없다. 여태까지 이곳에 재첩이 살아남게 된 것도 물빛이 깨끗한 덕택이다.

현재 송지호에서 재첩을 채취하는 사람들은 왕곡 마을로 더 잘 알려진 오봉1리와 오봉2리 주민들이다. 두 마을 주민들 중에서도 군청으로부터 허가를 받은 45가구가 매년 5월1일부터 10월31일까지 재첩을 채취한다. 그러나 실제로 채취 작업을 하는 날은 기껏해야 40여일에 지나지 않는다고 한다. 이 호수에서 재첩을 채취하는 주민 대표인 최무성씨(60)는 그 까닭을 이렇게 말했다.

"180일간의 채취 기간 가운데 농번기와 여름 피서철, 그리고 비가 많이 온 다음날에는 일손이 너무 바쁘거나 재첩이 모래 깊숙이 들어가버리기 때문에 일을 못합니다. 게다가 연이어 이틀 동안 채취한 뒤에 하루는 건너뛰고요. 호수가 별로 크지 않고 재첩도 많지 않기 때문에 매일같이 힘 닿는대로 잡으면 금방 씨가 말라버릴 수 있죠. 이래저래 건너뛰다보면 작업하는 날보다 못하게 되는 날이 훨씬 더 많아요."
재첩잡이를 마치고 마을로 돌아가는 오봉리 주민들. 재첩잡이는 대체로 아침 7시부터 시작되는데, 내외가 함께 일하면 정오 무렵에 가구당 하루 채취량인 60㎏를 채울 수 있다.

재첩잡이는 대체로 아침 7시쯤부터 시작되며, 가구당 하루에 30kg짜리 두 포대, 즉 60kg를 초과해서는 안된다. 작업은 거개 내외가 함께 하는데, 그럴 때에는 정오 무렵에 정해진 양을 채울 수 있다.

송지호는 호수 바닥의 경사가 완만하고 한복판의 수심도 어른 키를 넘지 않을 정도로 얕아서 배를 타지 않고서도 호수 곳곳을 돌아다니며 재첩을 잡을 수 있다. 남자들은 대부분 틈새가 성긴 철제 삼태기(주민들의 말로는 '기계')를 써서 재첩을 잡는다. 긴 대나무 손잡이가 달린 삼태기를 물 속에 드리운 채 호수 밑바닥에 깔린 모래밭을 훑으면 알이 가는 모래와 어린 재첩은 빠져나가고 다 자란 재첩만 남게 된다.

그리고 아낙들은 주로 호수 가장자리의 수심이 얕은 곳을 손으로 뒤적거리면서 잡지만, 체구가 작은 사람들도 쉽게 쓸 수 있도록 가볍고 작게 만든 '기계'를 동원하는 사람도 많다.

언뜻 보기와는 달리, 재첩잡이는 아주 어렵고 고달프다. 무엇보다도 허리를 시종 구부린 상태로 작업해야 한다는 점이 힘들다. 그뿐 아니라 바람결에 일렁거리는 수면을 오랫동안 응시하다보면 어느 순간에 불현듯 생기는 어지럼증으로 인해 몸조차 가누지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더욱이 무거운 철제 삼태기를 모래밭에 박고 뒷걸음질치며 잡아당기는 일도 체력소모가 적지 않다.

또한 수온이 낮은 봄이나 가을철에는 한나절이 넘도록 차가운 물속에 몸을 담그고 있으면 온몸이 얼어붙는 듯한 고통이 뒤따른다. 호수 복판 쪽의 비교적 수심이 깊은 곳에서 작업하는 몇몇 남자들이 아예 겨울용 잠수복을 덧입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이런저런 어려움을 감수하면서 하루에 60kg을 채취하면 현찰 9만원을 고스란히 손에 넣게 된다. 1kg에 1500원씩인 셈이다.

채취 작업을 마친 뒤 물가에 앉아서 재첩에 섞인 돌과 어린 재첩을 골라내고 있는 50대 중반의 부부에게 "재첩으로 올리는 수입이 제법 쏠쏠하군요?"라고 물었다. 그러자 부인이 다급하게 손사래를 치며 "우리 두 내외가 한나절 동안 뼈빠지게 일한 걸 생각하면 그렇게 큰 벌이는 아니다"며 애써 부인했다. 그러면서도 "그날 당장 현찰을 받기 때문에 이런 시골에서는 살림살이에 큰 보탬이 된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의 남편도 "남들은 우리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손쉽게 재첩을 잡아 돈 버는 줄 알고 있지만 이곳에 재첩이 사라지지 않게 하려고 주민들 모두가 적지 않게 공을 들인다"며 부인의 말을 거들었다. 모든 주민들이 합성세제 대신 폐식용유로 손수 만든 빨래비누만 쓰고 집집마다 정화조를 설치함으로써 생활폐수와 분뇨가 호수로 흘러드는 것을 원천봉쇄한다는 것이다.

또한 한달에 두세 차례씩 주민들 모두가 나서서 호수 주변의 쓰레기와 오물을 말끔히 치운다고도 했다. 그러고 보면 이곳 오봉리의 주민들은 아주 현실적이고도 구체적인 환경운동에 진력하고 있는 셈이다.

양영훈〈여행칼럼니스트〉

왕곡마을

오음산과 송지호 사이에 자리잡은 이 마을은 88년 '전통 건조물 보존지구 제1호'로 지정됐다. 이곳에는 스무채의 전통기와집과 초가 한채가 들어서 있는데 대부분의 집들이 방 마루 부엌 외양간 등이 몸채 하나에 붙은 집중식 구조를 갖추고 있다. 이는 겨울철이 유난히 춥고 긴 북부지방의 기후 조건에서 최대한 편리하게 지낼 수 있도록 짜여진 구조다. 몇해 전에 일어난 고성산불의 흔적이 아직도 뚜렷한 데다 마을 풍경도 다소 어수선한 편이지만 강원도 북부지방 특유의 전통가옥을 볼 수 있으므로 지나는 길에 한번 들러봄 직하다.

강원도식 재첩국 "담백해요"
 
재첩은 예로부터 간의 기능을 활성화시키는 성분이 많이 함유된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래서 밤새도록 술독에 빠졌던 '술고래'들도 이른 아침에 푸르스름하면서도 뽀오얀 재첩국을 한사발 들이키고 나면 곧 기력을 되찾을 수 있다고 한다. 재첩은 술국뿐 아니라 간장치료제로도 쓰였다. 싱싱한 재첩을 잘 씻은 다음 물을 붓지 않고 가마솥에다 푹 고면 뽀얀 국물이 우러나는데, 이것을 이레 가량 복용하면 황달 증세가 금세 사라진다는 것이다. 얼마나 근거 있는 말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재첩국이 속풀이 해장국으로 좋다는 것만은 의심할 여지가 없을 성싶다. 송지호에서 채취된 재첩은 대부분 냉동차에 실려 곧장 부산으로 팔려가기 때문에 송지호가 있는 고성군에서도 재첩국 맛보기가 쉽지 않다. 송지호의 재첩으로 조리한 각종 음식을 맛보려면 오히려 속초시 노학동의 미시령 가는 길가에 있는 재첩마을(0392-635-0377)을 찾아야 한다. 이곳의 재첩국은 진하게 우려낸 국물에 실파만 숭숭 썰어 넣고 소금으로 간을 맞춘 경남지방의 재첩국과 조금 다르다. '경남식 재첩국'에다 실파 외에 팽이버섯 다시마 호박 등 9가지 양념과 야채를 추가함으로써 재첩국 특유의 시원하고도 담백한 맛을 극대화시켰다. 그밖에도 재첩국이 딸려나오는 재첩회덮밥, 그리고 재첩칼국수와 재첩부침 등 다른 곳에서는 흔치 않는 재첩요리도 맛볼 수 있다. 값은 재첩국 5000원, 재첩회덮밥 7000원, 재첩칼국수 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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