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마을은
 |
|
허벅지까지 빠지는 갯벌에서 맛조개를 캐는 대포마을의 한 아낙. 함지박이 올려져 있는 널빤지는 갯벌에서 이동할 때 타고다니는 '뻘배'다.
|
전남 보성군 벌교읍의 한 갯마을이다. 순천만 바다와 넓은 개펄을 끼고 있는 이 마을은 여태까지도 정월 대보름날마다 어김없이 풍어제가 열리는 곳으로 유명하다. 면면히 이어져온 역사가 자그마치 500여년에 이르거니와 그 규모와 내용도 여전히 실하다. 황소 한마리가 제물로 올려지고 농악과 당산제, 각종 굿거리 등의 제의(祭儀)가 사흘간이나 계속된다.
이처럼 성대한 풍어제가 오늘날까지 전승된다는 사실은 곧 이곳 사람들의 삶이 아직도 자연에 크게 의존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더욱이 여느 어촌에 비해 젊은이들이 유난히 많은 것을 보면 집집마다 살림살이가 포실한 듯하다.
마을 포구에서 만난 젊은 어부 박효성씨(36)가 귀향을 결심하고 오랜 객지생활을 청산할 수 있었던 것도 바로 그런 점 때문이라고 한다.
"그전에는 소래포구에서 친구하고 둘이서 고깃배를 하나 사갖고 부렸는디, 벌이가 그럭저럭 괜찮았어요. 헌데 100만원을 벌면 80~90만원이 어디로 간지도 모르게 금세 녹아뿔더라고요. 그러나 여그서는 고기를 10만원어치 잡으먼 2만원 정도만 허비허고 8만원 가량은 고스란히 냄길 수 있거든요. 적게 벌더라도 들어가는 것이 많지 않응게 오히려 더 살만 헙디다. 그리고 아무래도 내 고향잉개 마음도 훨씬 더 편허고요. 지금은 '여기도 살만헌디 그동안 뭣 땜시 객지에서 그 고생을 했다냐' 허는 생각도 들어요."
박씨가 고향에 되돌아온 지는 올해로 만 3년째. 환란으로 인한 불황과 국민의 고통이 절정에 달했던 지난해에도 그는 이렇다 할 만한 어려움은 없었다고 한다. 전반적인 경기침체에도 불구하고 고기 시세와 어획량이 모두 괜찮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경기가 차츰 회복되고 있다는 올해 들어서야 'IMF'를 실감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지난해와는 반대로, 어획량이 적은 데도 시세가 영 시원찮은 탓이다.
박씨는 포구에서 배로 10여분 가량 떨어진 얕은 바다에 덤장 다섯개를 설치해 놓았다. 그의 덤장은 고기 잡는 원리나 형태가 남해군 지족해협의 죽방렴과 아주 흡사했다.
죽방렴은 참나무 말뚝을 촘촘히 박아서 부채꼴 모양의 '살'을 만들지만, 덤장은 참나무 말뚝을 듬성듬성 박은 다음 말뚝과 말뚝 사이에 그물을 친다는 점이 달랐다. 그리고 죽방렴의 '불통'(살 안쪽의 뾰족한 부분에 대나무로 촘촘하게 발을 쳐서 만든 통) 대신에 입구만 있고 출구가 없는 통발을 설치해 두었다.
이렇게 덤장을 쳐 놓으면 밀물을 따라 들어왔던 고기들이 썰물 때 다시 먼바다 쪽으로 나가다가 저도 모르는 새에 자연스럽게 통발 안으로 들어오게 된다. 일단 통발 안에 들어온 고기들은 다시 빠져나갈 수가 없다.
그 고기들은 하루에 한 두 차례씩 배를 타고 나가 거둬오기만 하는 되는데, 그 일은 말 그대로 식은 죽 먹기처럼 수월해 보였다. 새벽 4시에 포구를 떠난 박씨 내외가 다섯개의 통발에 든 새우 낙지 숭어 등을 전부 거둬들이는 데에는 채 한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그러나 박씨의 부인 조완실씨(36)는 "이 일이 쉬워보일랑가는 모르겄지만 나름대로 힘든 점도 많다"면서 말을 이었다.
 |
|
대포마을의 젊은 어부 박효성씨 내외가 밤새 통발 안으로 들어온 고기를 거둬들이는 모습. 새우가 많이 잡히는 요즘에는 하루 10여만원 가량 수입을 올린다고 한다.
|
"한번 쳐놓은 그물은 찢어질 때꺼정 두고두고 쓰는 게 아니라 보름마다 어김없이 갈아줘야 허거든요. 이상허게도 그물에 때가 많고 지저분허먼 고기들이 잘 들지를 않아요. 특히 새우들은 더러운 그물을 아주 싫어하더라고요. 그리고 말뚝도 수시로 살펴서 썩은 것은 갈아줘야 허고 멀쩡하더라도 최소한 2년에 한번씩은 뽑아가지고 가서 잘 말린 다음에 다시 박거나 아예 새 말뚝으로 교체해야 돼요."
조씨는 이런 육체적인 어려움에다 마음 고생 또한 적지 않다고 덧붙였다. 무엇보다도 통발에 든 고기를 도둑맞았을 때에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상실감이 크다고 한다. 주로 날씨가 흐리고 바람 부는 날에 고기가 유난히 많이 드는데, 그런 날에 고기 도둑들이 극성을 부린다.
그 자들은 통발에 든 고기를 송두리째 턴 다음 통발을 묶지도 않고 달아나기 일쑤다. 그리 되면 이후에 통발 안으로 들어온 고기들도 죄 빠져나가기 때문에 이중 삼중의 경제적 손실를 입게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덤장도 아무 데나 칠 수가 없다. 일단 목이 좋은 곳이어야 하는데, 그런 자리가 다른 사람의 어장이나 양식장에 속한 곳이면 일정한 금액의 임대료를 내야 한다. 박씨네 덤장도 다른 사람 소유의 양식장 안에 설치돼 있다. 그러나 임대료는 따로 지불하지 않는 대신 명절 때마다 '인사'를 한다.
현재 80여 가구에 이르는 대포마을 주민 가운데 박씨와 같은 전업 어민들은 50%쯤 된다. 그러나 나머지 주민들도 전적으로 농사에만 의존해 생계를 꾸려가지는 않는다. 농사일은 대체로 남정네가 맡고 여자들은 주로 마을 앞 넓은 갯벌에서 맛조개 꼬막 낙지 등을 잡는다.
이 갯벌은 원래 마을의 공동 양식장이지만 현재는 1억3000만원에 '업자'에게 임대됐다. 임대료로 받은 돈은 주민을 위한 공동기금으로 적립하거나 주민들끼리 공평하게 분배했다고 한다. 그런 사정으로 인해, 이 마을 주민들이 갯벌에서 조개를 채취해서 얻는 수입은 예전보다 크게 줄었다.
요즘에는 주로 맛조개를 채취한다. 갯벌이 물 밖으로 드러나는 여섯시간 동안 부지런히 채취하면 적어도 50~60kg, 많게는 90~100kg을 채취한다. 이렇게 캐낸 맛조개는 1kg당 2000원씩에 중간상인에게 넘긴다.
그 중에서 조개를 캐온 주민들에게 돌아가는 돈은 800원이고, 나머지 1200원은 갯벌을 임대한 업자 몫이다. 업자가 가만히 앉아서 챙기는 액수에 비하면 보잘것 없지만, 그래도 농사일의 하루 품값이 2, 3만원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결코 작은 돈은 아니다.
이처럼 살림이 오붓한 덕택인지는 모르겠지만, 대포마을 사람들은 만나는 이들마다 낯빛이 밝고 부드러웠다. 낯설고 눈도 선 타향이더라도 그런 사람들이 모여사는 곳은 고향처럼 푸근하게 마련이다. 처음 찾아간 대포마을에서도 내내 그런 느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