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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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어에 걸린 낚시바늘을 뽑고 있는 김성기씨. 그는 손맛만으로도 낚시에 걸린 농어의 크기와 수를 정확하게 알아맞히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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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을 찾아갈 적에는 늘 설렘보다도 긴장감이 앞선다. 무엇보다 마음을 불안하게 하는 것은 변덕스런 날씨다. 특히 여름철에는 폭우가 잦고 폭풍주의보가 빈번히 발효되기 때문에 적어도 이틀 중 하루는 비 맞을 각오로 길을 나서야 한다.
이번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보길도에 발을 내딛기도 전에 시작된 비는 그곳을 떠날 때까지 나흘 동안이나 거의 쉬지 않고 쏟아졌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바다는 호수처럼 잔잔했고, 김성기씨(45)의 농어치기는 비오는 날에 오히려 더 어황(漁況)이 좋다고 했다.
보길도 예송리에 사는 김씨는 30여년간 낚시로만 고기를 잡는 노련한 어부다. 해마다 이맘때쯤이면 그는 거의 날마다 농어를 잡으러 가까운 바다로 나간다. 농어는 50m 가량의 모릿줄(주낙에서 수평으로 길게 뻗친 줄)에 길이 2m쯤 되는 아릿줄(모릿줄에 군데군데 매어 낚시바늘을 단 줄) 12가닥이 2, 3m 간격으로 매달린 주낙으로 잡는다.
이 주낙에서는 물고기가 ‘공갈 미끼’임을 눈치채지 않게 하는 것이 성패의 관건이다. 그래서 대체로 날씨가 맑은 날보다는 비가 오거나 사리(조수간만의 차가 큰 음력 16일과 30일) 때에 고기가 잘 잡힌다.
“요 농어라는 것이 아주 눈도 좋고 동작도 잽싸서 속여 묵기가 쉽지 않더라구요. 물속이 깨끗헌 날은 공갈 미끼를 아무리 진짜맹키로 만들어도 숫제 건들지도 않는당께요. 그러나 물빛이 흐릿허먼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공갈 미끼가 영락없이 진짜로 보이기 땜에 농어들이 쉽게 걸려들어요. 그래서 농어치기는 요렇게 비가 많이 오는 날이 훨씬 더 재미가 좋습니다.”
김씨는 모릿줄을 통해서 전해지는 손맛만으로도 낚시에 걸린 농어의 크기와 수, 그리고 농어가 물린 낚시바늘의 순서까지도 정확하게 알아맞히곤 했다.
그러나 그토록 노련한 김씨도 농어를 완전히 배 위로 끌어올릴 때까지 잠시도 긴장을 늦추지 않는다. 낚시에 걸린 농어는 ‘바늘털이’(Tail Walk)를 하면서 곧장 수면 위로 솟구쳐 오르기 때문에 낚시바늘이 빠져버리거나 바늘에 걸린 아가미가 쉽게 찢어진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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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위에서 농어잡이 주낙을 바다에 드리운채 보길도 예송리 앞바다의 소도 주변을 빙빙 돌고 있는 김성기씨. 농어는 주로 섬 주변의 얕은 바다에 서식하므로
파도가 심한 날에는 배가 암초에 부딪힐 위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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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김씨의 농어잡이에 동행했을 적에도 낚시에 걸린 열대여섯 마리의 농어 가운데 절반은 줄을 끌어당기는 과정에서 바늘이 빠져버리고 말았다. 그럴 때마다 김씨는 “요 담에 더 키워서 잡으먼 되죠. 지가 살던 데 놔두고 어디로 가겄습니까?”라며 애써 덤덤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나 어른 팔뚝보다도 큰놈을 바로 코앞에서 놓쳤을 때에는 “고거, 참말로 아깝네, 징허게 아까워”하면서 연신 아쉬움을 토로하곤 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낯빛은 밝고 부드러웠다.
“요렇게 서너 시간쯤 나와서 5kg 이상만 잡으먼 괜찮은 편입니다. 그물값도 미끼값도 안 들고, 인건비로 나가는 것도 없으니께 그럭저럭 먹고 살 만해요. 그리고 누가 간섭하거나 속썩이는 사람도 없응게 심간이 엄청 편해요. 한마디로 신선놀음이라고도 할 수 있죠.”
김씨가 잡은 농어는 주로 횟감으로 쓰인다. 그의 집에는 피서철마다 민박을 하거나 회를 맛보려고 찾아오는 손님들이 적지 않다. 횟집과 민박집을 겸한 그의 집에서 직접 회를 쳐서 팔 때에는 1kg에 5만원을 받는다. 그리고 비수기에는 도매가로 2만~3만원씩을 받고 다른 횟집에다 판다. 그날만 해도 이래저래 10만~25만원 가량의 소득은 올린 셈이니 서너 시간의 ‘신선놀음’ 대가치고는 그리 나쁘지 않을 성싶다.
김씨가 일년 내내 농어만 잡는 것은 아니다. 무르익은 봄에는 우럭 가오리 옥돔 등을 잡고, 농어는 대체로 여름철과 초가을에 잡는다. 그리고 선선한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삼치잡이에 나선다. 그의 가장 큰 수입원이 바로 이 삼치잡이인데, 가을 석달 동안 대략 1000만원을 번다고 한다.
삼치잡이가 끝나고 풍랑이 잦아지는 한겨울엔 집에서 쉬는 날이 많다. 그러다 이듬해 1월부터 3, 4월 사이에는 멀리 추자도와 제주도 근해까지 나가 상어와 장어를 잡는다.
상어잡이 철에는 한시적으로 선원 한명을 고용한다. 상어는 덩치가 크고 성질이 포악해서 혼자 잡기도 어렵거니와 이따금씩 수백 kg이 넘는 놈을 만나면 목숨을 건 싸움을 벌여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97년 4월경에 300kg이 넘는 상어를 기나긴 사투 끝에 잡아 올려 완도해양박물관에 기증했다. 그리고 지난해에도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75kg짜리 돛돔(돔의 일종)을 기꺼이 기증하기도 했다.
“처음에는 쪼깨 아깝더라고요. 허지만 ‘내가 요거 아니먼 밥 못 묵고 산다냐’ 허는 맘이 생기더구만요. ‘내가 요 일을 그만두지 않는 이상 언젠가는 또 잡을 수 있겄제’ 허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래서 세상에 좋은 일 한번 하기로 작심하고 기꺼이 내놓았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참말로 잘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게 말하는 김씨를 보면서 고산 윤선도가 남긴 ‘어부사시사’의 한 대목이 떠올랐다.
“…내일이 또 없으랴 봄밤이 몇덧 새리/ 낚대로 막대 삼고 시비(柴扉)를 찾아보자/ 두어라 어부 생애는 이러구러 지내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