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양장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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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덕봉 정상 부근의 풀숲에서 산나물을 뜯는 주민. 토질이 기름지고
산자락이 넓은 구룡덕봉 일대는 우리나라 최대의 산나물 산지로 손꼽힌다. |
구불거리는 산길을 지나 구룡덕봉(1388m) 정상에 올라서니 우람한 백두대간의
준봉들이 일망무애(一望無涯)로 펼쳐졌다. 설악산 점봉산 가리산 오대산 계방산
방태산 개인산 가칠봉….
봉우리마다 워낙 높고 우뚝해서 마을이며 논밭은 하나도 눈에 들어오질 않는다.
삼둔사가리의 피난처를 품은 심산유곡답게 육중한 산줄기와 깊숙한 골짜기를 이루는 선만이
종횡으로 교차했다.
정상 부근의 헬기장과 공터에는 소형 트럭 몇 대만 세워져 있을 뿐, 나물꾼들은 눈에
띄지 않았다. 이미 숲속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산비탈과 골짜기를 뒤덮은 숲이 하도 넓고 울창해서 무턱대고 그 속에 발을 들여놨다가
는 자칫 길을 잃고 헤맬 성 싶었다. 대신 사방의 숲이 한눈에 내려다뵈는 곳에 붙박이로
서서 누군가 밖으로 나오기를 기다리기로 작정했다.
얼추 한시간쯤 지난 뒤에야 초로의 아주머니를 만날 수가 있었다. 멀리 홍천군 서석면
풍암리에서 왔다는 이옥수씨(61)였다.
"우리 동네는 산나물이 별로 안나와요. 그래서 한 삼사년 전에 여기 처음 왔는데 두어달 동안
나물만 뜯어도 벌이가 괜찮더라고요. 잘만 하면 하루에 5만~6만원도 벌 수 있기
땜에 농사짓는 것보다는 훨씬 나아요. 지금은 아예 저 아래 독가촌에다 빈집 하나를 잡아
놓구서 먹고 자면서 나물을 뜯으러 댕기지요."
아닌 게 아니라 이씨의 어깨에 걸쳐진 보자기 걸망에는 산나물이 그득했다. 두어시간
동안 뜯은 것이라는데 그의 가냘픈 체구가 감당하기가 벅차 보일 만큼 많은 양이었다.
이씨는 "오늘 뜯은 건 그냥 집에 갖고 가서 말려뒀다가 나중에 자식들하고 나눠 먹으려고
한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렇게 말을 하는 와중에도 허리 한번 곧추 세우지 않은 채 연신 풀숲을 뒤적거리며 참나물
곰취 곤드래(고려엉겅퀴) 떡취 따위를 뜯었다. 초심자의 눈에는 나물인지 잡풀인지
좀체 구별이 되지 않았다.
그런데도 이씨의 눈썰미는 놀라우리 만큼 빠르고도 정확해서 팔을 한번 휘이 저을 때마다
어김없이 한움큼씩 나물을 뜯곤 했다. 이씨의 세세한 설명을 귀담아 듣고 나서 풀섶을
훑어 보니, 나물은 아래쪽 산비탈의 숲속까지 애써 내려가지 않아도 될 만큼 지천으로
깔려 있었다.
이곳 홍천군 내면 광원리의 구룡덕봉과 방태산, 그리고 인제군 기린면 귀둔리의 점봉산
일대는 우리나라 최대의 산나물 산지로 꼽힌다. 오랫동안 인적이 드물었던 덕택에 이 땅의
어느 곳보다도 자연미가 오롯할 뿐만 아니라 수십 가닥의 산줄기가 사방으로 뻗어
내려 있어 산자락이 유난히 넓고도 우람하다. 게다가 토질은 매우 기름지고 숲은 울창해서
산나물과 약초가 자라기에 최적의 자연 조건을 갖추고 있다.
구룡덕봉 일대의 산나물 채취작업은 대략 4월20일경부터 시작된다. 응달진 산비탈에 잔설이
희끗하고 매서운 꽃샘바람과 눈보라가 이따금씩 몰아치는 그맘때에는 두릅의 새순과
얼레지의 잎이 핀다. 얼레지와 두릅나물이 센 뒤에는 참나물 곰취 곤드래 떡취 더덕취
전옥취 우산나물 병풍쌈 박쥐나물 산마늘 누리대 모시대 취나물 청옥취 등이 우후죽순격으로
돋아난다.
그러나 나물꾼들이 선호하는 산나물은 참나물 곰취 곤드래 떡취 더덕취 취나물 청옥취 등
예닐곱 종에 불과하다. 나머지 종류는 유통업자의 요구나 개인적인 필요에 따라 조금씩만
채취한다.
산나물 채취는 6월 중순까지도 계속되는데, 그때까지는 비오는 날만 아니면 거의 하루도
빠짐없이 광원리 주민 15~20명을 포함해 평균 20~30명의 나물꾼들이 이른 새벽부터 구룡덕봉으로
올라간다. 경험 많고 체력 좋은 나물꾼이 하루에 채취하는 산나물의 양은 대
략 30~50㎏. 체력이 달린 노인이나 일손이 더딘 초보자들도 최소한 20㎏쯤은 거뜬히 채운다.
양이 많건 적건간에 길도 없는 산비탈을 부지런히 오르내리며 산나물을 뜯는 일은 적잖은
고역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고달픈 것은 수십kg의 산나물이 담긴 마대자루를 짊어지거나
머리에 이고 비탈진 산길을 오르는 일이다. 이고 진 짐이 원체 무겁다 보니 모두
소걸음처럼 느릿하다. 그런데도 곰취나 참나물이 눈에 띄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짐을 길가에 부려놓은 뒤 한동안 나물을 뜯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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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산하기에 앞서 한 유통업자가 산나물의 무게를 재고 있다. 나물꾼들은 유통업자의
차를 타고 산에 오르내리는 대신 자신들이
채취한 나물을 모두 그 유통업자에게 팔아 넘긴다. |
온종일 채취한 산나물은 산을 내려가기도 전에 모두 돈이 된다. 채취 작업이 끝날 즈음에
산 위로 올라온 유통업자들이 현장에서 무게를 달아서 나물값을 치르기 때문이다.
요즈음 시세(1kg 기준)로 치면 참나물은 1500~2000원, 곰취는 2500~3000원에 유통업자에게
넘긴다. 그렇게 해서 한 사람이 하루에 5만~6만원 가량의 수입을 올린다고 한다.
물론 10만~12만원의 높은 수입을 올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2만~3만원밖에 못버는 이도
드물지 않다.
마침 한 아주머니가 얼굴에 환한 미소를 머금은 채 나물값을 헤아리고 있었다. 그이더러
"오늘 수입이 아주 괜찮은가 보죠?"라며 넌지시 물었더니 "아니래요"하며 손사래를
쳤다. 그런데도 낯빛이 밝은 까닭을 그이는 이렇게 부연했다.
"이런 시골에서는 이 일 아니면 당장 현찰을 만질 수 있는 일이 없어요. 밭농사나 논농사는
봄에 씨뿌려서 가을에 거둬들일 때까지 시간이 좀 많이 걸려요? 가을에 돈좀 만진다고
해도 농약값 비료값 품삯을 빼고 나면 어떤 때는 되려 번 돈보다 들어간 것이 더 많을
때도 있어요. 근데 이건 날마다 일 끝나면 곧바로 돈을 받을 수 있으니까 좋고, 내 몸만
갖고 하는 일이니까 달리 돈 들어갈 게 없어서 좋구요. 그래서 남들보다 조금 못벌어도
산에만 올라오면 마음이 늘 편해요."
그이뿐 아니라 모두들 수입이 많건 적건 하나같이 얼굴표정이 밝아 보였다. 허리가 끊어질듯
요동치는 트럭의 적재함에 몸을 싣고 산하는 도중에도 함박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그토록 밝고 여유로운 마음은 아마도 그들이 깃들이어 살아가는 구룡덕봉의 넉넉함에서
비롯된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