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34. 경남 남해군 지족마을
"죽방렴 놓아 고기잡는다 아입니꺼"
  서울에서 남해까지는 천리길. 차로 쉬지 않고 달려도 꼬박 여섯시간이나 걸리는 먼 길 이지만 심리적인 거리는 실제보다 훨씬 짧다. 그 길의 막바지에 섬진강의 하동포구 팔십리 물길을 따라가기 때문이다. 숨죽이며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노라면 먼 길을 달려 오느라 다급해진 마음이 절로 느즈러지고, 구례에서 남해까지의 한 두시간은 지루함을 느낄 짬도 없이 훌쩍 지나간다.

창선교 위에서 내려다본 지족해협도 섬진강 처럼 편안하고 여유롭다. 바다의 폭은 강처 럼 좁고, 양안(兩岸)의 산자락을 기댄 채 들 어앉은 어촌의 풍경도 섬진강의 어느 강마을 과 흡사하다. 일정한 방향으로 유장하게 흐 르는 조류도 섬진강 물길을 연상케 한다. 바 로 이런 점으로 인해 오늘날까지도 이곳에 수십개의 죽방렴(竹防簾)이 남아 있게 된 것 이다.

죽방렴은 말 그대로 대나무로 만든 어살(漁 箭)이다. 독살(石防簾)과 마찬가지로 아주 오 랜 옛날부터 고기잡이에 활용됐을 뿐만 아니 라 기본적인 원리도 독살과 거의 같다. 먼저 수심이 별로 깊지 않은 바닷속에 길이 5~10m 가량 되는 참나무 말뚝을 'V'자 형태 로 박는다. 이처럼 부채꼴로 박은 말뚝을 '살'(삼각살)이라고 하는데, 이것의 한 변은 길이가 무려 80m에 이른다. 그리고 살 안쪽 의 뾰족한 부분에는 참나무 말뚝을 둥그렇게 박은 다음 대나무로 촘촘하게 발[簾]을 쳐서 불통을 만든다.

죽방렴에서 방금 건져온 멸치를 바닷가 어장막에서 데쳐내고 있는 이기준씨. 죽방렴으로 잡은 멸치는 그물로 잡은 것보다 곱절이나 높은 값에 팔린다.
불통과 살 사이에는 대나무를 엮어 만든 문 짝이 매달려 있다. 이 문짝은 밀물 때에는 조류의 힘으로 활짝 벌어져 있다가 썰물 때 에는 축 늘어져서 꽉 닫히게 된다. 그러므로 일단 불통 안으로 들어온 고기들은 다시 빠 져나갈 수가 없다. 불통 안에 갇힌 고기는 하루 두번씩의 물때에 맞춰 후릿그물이나 뜰 채로 떠올리기만 하면 된다.

이처럼 죽방렴은 원리도 간단하고 고기를 잡 는 일도 수월하지만, 연근해의 어족자원이 거의 고갈되다시피 한 요즘에는 별로 고기가 들지 않는다. 삼동면 지족리에 사는 손성원 씨(68)는 그 까닭을 이렇게 설명했다.

"광양만이나 사천만 같은 데에 있던 간척지 들이 전부 메워져삐리니까 고기덜이 알 낳을 데가 없다 아입니까. 자꾸 알을 까서 고것이 자라야 잡을 게 생기는 벱인데 지금은 알 낳 을 데가 어디 있어야지예. 근데다가 '고대구 리' 배들은 그물에 걸린 건 죄다 쓸어가삐리 고, 요즘에는 날씨조차 요상시럽게 따뜻해서 고마 어장 형성조차 제대로 안되는 기라요. 다른 해 같으먼 불통 안에 들어온 멸치떼를 퍼담느라꼬 하루 두번 물때도 모자랄 판이지 만 요즘은 하루에 한번 뜨기도 힘드네예."

아닌 게 아니라 그날 낮 물때에 손씨네 죽방 렴의 불통 안에 든 고기는 뜰채로 한번 건져 올릴 만큼도 안되는 멸치떼와 어린애 손바닥 만한 도다리 두마리, 그리고 한마리씩의 한 치와 갑오징어가 전부였다. 결국 손씨는 말 뚝에 걸린 쓰레기와 불통 안에 떠다니는 해 초를 제거하는 작업만 한 뒤 빈손으로 되돌 아올 수밖에 없었다.

반면에 이기준씨(57)와 임종영씨(55)가 공동 운영하는 죽방렴은 손씨네 것과 이웃해 있는 데도 불통 안에 든 고기는 훨씬 더 많아 보 였다. 좁은 불통 안을 휘젓고 다니는 멸치떼 의 은빛이 눈부실 정도이고, 팔뚝만한 숭어 에다 도다리 한치 갑오징어 쏙(바닷가재의 일종) 학꽁치 등도 몇마리씩 눈에 띄었다. 그 러나 이씨는 "이 정도로 들어와 갖고는 두 사람의 인건비도 안된다"면서 "그냥 놔뒀다 가 밤 물때에 한꺼번에 뜰 것"이라고 했다.

죽방렴이 들어서기에 아주 좋은 자연조건을 갖춘 지족해협에는 현재 약 30개의 죽방렴이 설치돼 있다. 밀물 때 조류가 흘러드는 지족 리의 장고섬에서 조류가 빠져나가는 금송리 의 흰벼랑 앞바다에 이르기까지 제각기 일정 한 간격을 두고 물살을 향해 두 팔을 벌리듯 이 자리잡았다.

그런데 죽방렴마다 어획량의 차이가 적지 않 다고 한다. 해협의 가장자리보다는 복판 쪽 에 가까울수록 좋은 목으로 꼽는데, 이는 수 심이 깊고 조류의 흐름이 거세 고기가 많이 들기 때문이다. 이씨와 임씨가 공동으로 운 영하는 죽방렴은 바로 그런 목에 들어서 있 다.

그리고 목에 따라 어획고의 차이도 천차만별 이다. 이를테면, 물목의 가장자리쪽에 자리한 손씨의 죽방렴에서는 한해에 대략 1000만 ~2000만원의 어획고를 올리는 반면, 거기서 20~30m의 거리에 불과한 이씨와 임씨 공동 소유의 죽방렴에서는 적어도 4000만~5000만 원어치를 잡는다고 한다.

죽방렴에서 가져온 고기를 크기와 종류별로 분류하는 이씨와 임씨의 가족.
죽방렴은 대체로 4월부터 11월까지의 8개월 동안만 설치해 둔다. 고기가 별로 들지 않는 겨울철에는 살(말뚝)은 그냥 놔둔 채 불통만 철거했다가 이른 봄에 다시 설치한다. 그리 고 죽방렴에 드는 고기는 도다리 광어 전어 숭어 갑오징어 보리새우 한치 장어 학꽁치 등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옛날에는 조기 갈 치 등이 가장 중요한 수입원이었으나 근래에 는 거의 잡히지 않고, 대신에 멸치가 주종을 이룬다.

멸치는 날씨가 따뜻한 봄부터 가을까지 드는 데, 죽방렴으로 잡은 멸치는 그물로 잡은 것 보다 곱절이나 높은 값에 팔린다. 그물로 잡 은 멸치는 금세 숨이 끊어지는 데다 비늘이 다 벗겨지고 온 몸에 상처를 입어 맛이 떨어 진다.

반면, 조류를 따라 자연스레 죽방렴 안에 들 어온 멸치는 전혀 손상되지 않을 뿐더러 산 채로 곧장 삶아서 말리기 때문에 맛이 훨씬 더 좋다고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큰 차이는, 그물을 사용하는 어로방식은 고기를 쫓아다 녀야 하지만 죽방렴은 고기가 제 스스로 들 어오기를 기다린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죽방렴이야말로 오늘날 행해지는 어 로방식 가운데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지 않는 거의 유일한 고기잡이 방식이라고 할 만하 다.

'죽방멸치'는 신선도를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 다 중요하다. 이기준씨의 말로는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일분 일초를 다툰다"고 한다. 실제로 이씨와 임씨가 죽방렴에 든 멸치를 건져올리기 위해 선착장을 떠난 시각이 새벽 2시인데도 뭍에 남은 가족은 어장막으로 나 가 멸치 삶을 준비를 서둘렀다. 곧바로 데쳐 서 널어 놓지 않으면 값이 크게 떨어지기 때 문이다.

비단 이씨와 임씨네 가족뿐만 아니라 창선교 부근의 바닷가 곳곳에 들어선 어장막마다 불 을 환히 켜고 죽방렴에 나간 배가 돌아오기 를 기다렸다. 그러다 보면 밤잠을 설치거나 꼭두새벽부터 분주하게 일손을 놀리는 날이 다반사지만, 이미 일상이 돼버린 탓인지 모 두들 귀찮게 여기거나 피곤해 하는 기색은 찾아보기 어렵다.

아니, 그들은 어쩌면 밤을 꼬박 새우는 날이 더 많아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 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들의 삶과 미래가 이 죽방렴과 지족해협의 좁은 물목에 걸려 있기 때문이다.

양영훈〈여행칼럼니스트〉

참나무 말뚝

말뚝으로 참나무를 쓰는 이유는 다른 나무에 비해 잘 썩지 않기 때문이다. 소나무를 비롯 한 다른 목재는 기껏해야 2~3년밖에 쓸 수 없는 반면, 참나무는 수명이 두배나 길다고 한다. 최근에는 참나무 대신 철로용 레일을 박기도 한다. 한번 박아두면 반영구적으로 쓸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워낙 비용 이 많이 드는 탓에 대부분 참나무 말뚝 사이 에 드문드문 몇개만 박는다.

자연조건

죽방렴이 들어서려면 먼저 말뚝을 박을 수 있을 정도로 수심이 얕아야 한다. 그리고 길 게 해협을 이루되 뭍과 뭍 사이의 거리가 너 무 멀지 않으며, 조수간만의 차가 크고 물살 이 빨라야 한다. 이런 조건을 두루 갖춘 곳 이 바로 지족해협이다. 썰물 때에는 해협의 한가운데조차 사람 키를 넘지 않을 만큼 수 심이 얕고, 폭도 1km가 채 안되는 탓에 시 속 13~15km의 빠른 속도로 조류가 들고난 다. 게다가 조수간만의 차이가 심해서 만조 시에는 길이가 5~7m의 말뚝이 윗부분만 조 금 남기고 물속으로 잠길 정도로 수심이 깊 어진다.

멸치회 갈치회
비린내 전혀없고 '달콤'
미조항 공판장 앞 공주식당의 갈치회와 멸치회
남해군은 한려수도의 청정해역을 끼고 있어 썩 괜찮은 횟집들이 제법 많다. 특히 남해군 에서 가장 큰 어항이자 미항(美港)인 미조항 의 공판장 부근에 자리한 공주식당 (0594-867-6728)는 갈치회와 멸치회 전문 횟 집으로 유명하다. 갈치와 멸치는 서로 닮은 점이 아주 많다. 반짝이는 은빛 비늘을 갖고 있는 데다 비린 내가 유독 많이 난다는 점, 그리고 잡히면 제 성깔을 못이기고 곧바로 숨이 끊어질 정 도로 성질이 급하다는 점이 서로 쏙 빼닮았 다. 바로 그런 성질 때문에 멸치회와 갈치회 는 산지가 아니면 맛보기가 어렵다. 비린내가 심한 생선이라 회맛도 그저 그럴 것 같지만, 실제로는 비린내도 전혀 없이 달 콤하고 고소하고 담박한 맛을 낸다. 비린내 가 나지 않게 하는 것이 비결이다. 멸치는 대소쿠리에 문질러서 비늘을 벗겨낸 다음 막 걸리에 살짝 적셨다가 건져내면 비린내가 말 끔히 없어진다고 한다. 그리고 갈치는 칼로 비늘을 긁어낸 뒤에 먹 기 좋은 크기로 뼈째 토막을 내는데, 뼈가 생각만큼 억세지 않고 씹히는 맛이 아주 좋 다. 이 집의 멸치회와 갈치회는 양파 풋고추 미나리 등의 갖은 야채에다 초장으로 양념을 해서 버무려 먹는데, 직접 담근 고추장과 막 걸리 식초로 만든 초장 맛이 일품이다. 값은 각각 한접시에 2만원이며, 서너명이 먹을 수 있을 만큼 양이 푸짐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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