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에서 남해까지는 천리길. 차로 쉬지
않고 달려도 꼬박 여섯시간이나 걸리는 먼 길
이지만 심리적인 거리는 실제보다 훨씬 짧다. 그 길의 막바지에 섬진강의 하동포구
팔십리 물길을 따라가기 때문이다. 숨죽이며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노라면 먼 길을 달려
오느라 다급해진 마음이 절로 느즈러지고,
구례에서 남해까지의 한 두시간은 지루함을
느낄 짬도 없이 훌쩍 지나간다.
창선교 위에서 내려다본 지족해협도 섬진강
처럼 편안하고 여유롭다. 바다의 폭은 강처
럼 좁고, 양안(兩岸)의 산자락을 기댄 채 들
어앉은 어촌의 풍경도 섬진강의 어느 강마을
과 흡사하다. 일정한 방향으로 유장하게 흐
르는 조류도 섬진강 물길을 연상케 한다. 바
로 이런 점으로 인해 오늘날까지도 이곳에
수십개의 죽방렴(竹防簾)이 남아 있게 된 것
이다.
죽방렴은 말 그대로 대나무로 만든 어살(漁
箭)이다. 독살(石防簾)과 마찬가지로 아주 오
랜 옛날부터 고기잡이에 활용됐을 뿐만 아니
라 기본적인 원리도 독살과 거의 같다. 먼저
수심이 별로 깊지 않은 바닷속에 길이
5~10m 가량 되는 참나무 말뚝을 'V'자 형태
로 박는다. 이처럼 부채꼴로 박은 말뚝을
'살'(삼각살)이라고 하는데, 이것의 한 변은
길이가 무려 80m에 이른다. 그리고 살 안쪽
의 뾰족한 부분에는 참나무 말뚝을 둥그렇게
박은 다음 대나무로 촘촘하게 발[簾]을 쳐서
불통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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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방렴에서 방금 건져온 멸치를 바닷가 어장막에서 데쳐내고 있는 이기준씨.
죽방렴으로 잡은 멸치는 그물로 잡은 것보다 곱절이나 높은 값에 팔린다. |
불통과 살 사이에는 대나무를 엮어 만든 문
짝이 매달려 있다. 이 문짝은 밀물 때에는
조류의 힘으로 활짝 벌어져 있다가 썰물 때
에는 축 늘어져서 꽉 닫히게 된다. 그러므로
일단 불통 안으로 들어온 고기들은 다시 빠
져나갈 수가 없다. 불통 안에 갇힌 고기는
하루 두번씩의 물때에 맞춰 후릿그물이나 뜰
채로 떠올리기만 하면 된다.
이처럼 죽방렴은 원리도 간단하고 고기를 잡
는 일도 수월하지만, 연근해의 어족자원이
거의 고갈되다시피 한 요즘에는 별로 고기가
들지 않는다. 삼동면 지족리에 사는 손성원
씨(68)는 그 까닭을 이렇게 설명했다.
"광양만이나 사천만 같은 데에 있던 간척지
들이 전부 메워져삐리니까 고기덜이 알 낳을
데가 없다 아입니까. 자꾸 알을 까서 고것이
자라야 잡을 게 생기는 벱인데 지금은 알 낳
을 데가 어디 있어야지예. 근데다가 '고대구
리' 배들은 그물에 걸린 건 죄다 쓸어가삐리
고, 요즘에는 날씨조차 요상시럽게 따뜻해서
고마 어장 형성조차 제대로 안되는 기라요.
다른 해 같으먼 불통 안에 들어온 멸치떼를
퍼담느라꼬 하루 두번 물때도 모자랄 판이지
만 요즘은 하루에 한번 뜨기도 힘드네예."
아닌 게 아니라 그날 낮 물때에 손씨네 죽방
렴의 불통 안에 든 고기는 뜰채로 한번 건져
올릴 만큼도 안되는 멸치떼와 어린애 손바닥
만한 도다리 두마리, 그리고 한마리씩의 한
치와 갑오징어가 전부였다. 결국 손씨는 말
뚝에 걸린 쓰레기와 불통 안에 떠다니는 해
초를 제거하는 작업만 한 뒤 빈손으로 되돌
아올 수밖에 없었다.
반면에 이기준씨(57)와 임종영씨(55)가 공동
운영하는 죽방렴은 손씨네 것과 이웃해 있는
데도 불통 안에 든 고기는 훨씬 더 많아 보
였다. 좁은 불통 안을 휘젓고 다니는 멸치떼
의 은빛이 눈부실 정도이고, 팔뚝만한 숭어
에다 도다리 한치 갑오징어 쏙(바닷가재의
일종) 학꽁치 등도 몇마리씩 눈에 띄었다. 그
러나 이씨는 "이 정도로 들어와 갖고는 두
사람의 인건비도 안된다"면서 "그냥 놔뒀다
가 밤 물때에 한꺼번에 뜰 것"이라고 했다.
죽방렴이 들어서기에 아주 좋은 자연조건을
갖춘 지족해협에는 현재 약 30개의 죽방렴이
설치돼 있다. 밀물 때 조류가 흘러드는 지족
리의 장고섬에서 조류가 빠져나가는 금송리
의 흰벼랑 앞바다에 이르기까지 제각기 일정
한 간격을 두고 물살을 향해 두 팔을 벌리듯
이 자리잡았다.
그런데 죽방렴마다 어획량의 차이가 적지 않
다고 한다. 해협의 가장자리보다는 복판 쪽
에 가까울수록 좋은 목으로 꼽는데, 이는 수
심이 깊고 조류의 흐름이 거세 고기가 많이
들기 때문이다. 이씨와 임씨가 공동으로 운
영하는 죽방렴은 바로 그런 목에 들어서 있
다.
그리고 목에 따라 어획고의 차이도 천차만별
이다. 이를테면, 물목의 가장자리쪽에 자리한
손씨의 죽방렴에서는 한해에 대략 1000만
~2000만원의 어획고를 올리는 반면, 거기서
20~30m의 거리에 불과한 이씨와 임씨 공동
소유의 죽방렴에서는 적어도 4000만~5000만
원어치를 잡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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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방렴에서 가져온 고기를 크기와 종류별로 분류하는 이씨와 임씨의 가족. |
죽방렴은 대체로 4월부터 11월까지의 8개월
동안만 설치해 둔다. 고기가 별로 들지 않는
겨울철에는 살(말뚝)은 그냥 놔둔 채 불통만
철거했다가 이른 봄에 다시 설치한다. 그리
고 죽방렴에 드는 고기는 도다리 광어 전어
숭어 갑오징어 보리새우 한치 장어 학꽁치
등 종류가 매우 다양하다. 옛날에는 조기 갈
치 등이 가장 중요한 수입원이었으나 근래에
는 거의 잡히지 않고, 대신에 멸치가 주종을
이룬다.
멸치는 날씨가 따뜻한 봄부터 가을까지 드는
데, 죽방렴으로 잡은 멸치는 그물로 잡은 것
보다 곱절이나 높은 값에 팔린다. 그물로 잡
은 멸치는 금세 숨이 끊어지는 데다 비늘이
다 벗겨지고 온 몸에 상처를 입어 맛이 떨어
진다.
반면, 조류를 따라 자연스레 죽방렴 안에 들
어온 멸치는 전혀 손상되지 않을 뿐더러 산
채로 곧장 삶아서 말리기 때문에 맛이 훨씬
더 좋다고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큰 차이는,
그물을 사용하는 어로방식은 고기를 쫓아다
녀야 하지만 죽방렴은 고기가 제 스스로 들
어오기를 기다린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볼 때, 죽방렴이야말로 오늘날 행해지는 어
로방식 가운데 자연의 순리를 거스르지 않는
거의 유일한 고기잡이 방식이라고 할 만하
다.
'죽방멸치'는 신선도를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
다 중요하다. 이기준씨의 말로는 "신선도를
유지하기 위해 일분 일초를 다툰다"고 한다.
실제로 이씨와 임씨가 죽방렴에 든 멸치를
건져올리기 위해 선착장을 떠난 시각이 새벽
2시인데도 뭍에 남은 가족은 어장막으로 나
가 멸치 삶을 준비를 서둘렀다. 곧바로 데쳐
서 널어 놓지 않으면 값이 크게 떨어지기 때
문이다.
비단 이씨와 임씨네 가족뿐만 아니라 창선교
부근의 바닷가 곳곳에 들어선 어장막마다 불
을 환히 켜고 죽방렴에 나간 배가 돌아오기
를 기다렸다. 그러다 보면 밤잠을 설치거나
꼭두새벽부터 분주하게 일손을 놀리는 날이
다반사지만, 이미 일상이 돼버린 탓인지 모
두들 귀찮게 여기거나 피곤해 하는 기색은
찾아보기 어렵다.
아니, 그들은 어쩌면 밤을 꼬박 새우는 날이
더 많아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는지도 모른
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들의 삶과 미래가
이 죽방렴과 지족해협의 좁은 물목에 걸려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