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32. 강원도 삼척시 갈남마을
줄어만 가는 돌미역 늘어만 가는 주름살


  강릉과 동해를 지나 삼척 땅으로 들어서는 7번 국도는 줄곧 동해바다를 옆구리에 끼고 남쪽으로 내달린다. 모처럼 드러난 봄햇살이 눈부시도록 맑고 화사하다. 햇살 아래 일렁이는 바다는 온통 비취빛과 쪽빛. 그러나 가까이에서 바라본 바다는 훨씬 더 다채로운 빛깔이다.

초록빛 주황빛 잿빛…. 심산유곡의 계류처럼 투명한 물 속에 잠긴 돌과 모래와 해초에 따라 바다의 빛깔도 천차만별이다. 삼척시 원덕읍 갈남마을은 이렇듯 깨끗하고 아름다운 동해바다를 품은 갯마을이다.

겨우내 한가로워 보이던 마을은 봄빛이 절정에 이를 즈음부터 몹시 부산해진다. 흔히 '돌미역'이라 불리는 자연산 미역을 따고 말리는 작업이 4월 중순부터 시작되기 때문. 이일은 한달쯤 계속되다가 5월 중순에 끝나는데, 갈남마을뿐 아니라 동해안의 거의 모든 갯마을 주민들이 이 일에 매달린다.

갈남마을의 바닷가에 펼쳐 놓은 간이 덕장에다 미역을 널고 있던 김원준씨(54)도 퍽 분주해 보였다. 하지만 김씨는 "아직까지는 별로 바쁘지 않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바쁜 일손을 멈추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옛날 같지 않다"
김원준씨(가운데)가 떼배를 타고 나가서 건져온 미역을 그의 맏형 동준씨(왼쪽)가 다듬고 있다. 뻣뻣해진 아래쪽의 줄기와 뿌리는 잘라버리고 부드럽고 야들야들한 위쪽 줄기만 가지런히 펴서 말린다.

"예전 같으면 벌써 미역 일이 시작됐을 땐데 올해는 미역이 별로 없어서 아직까진 물에 떠다니는 것만 주으러 다녀요. 왜 이렇게 미역이 줄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들은 백화현상 때문이라고도 하고 이상기온 탓이라고도 하데요. 전에는 봄철만 되면 해변이 죄다 미역으로 덮였는데…. 그때는 한해 농사 중에 미역 농사만큼 큰 것도 없었고요."

현재 120여 가구에 이르는 마을 주민들 가운데 어촌계에 속한 어민은 66가구. 김동준씨 처럼 어촌계에 속한 주민들만 미역을 채취할 수 있다. 마을 앞바다에는 큰섬(월미도) 작은 섬 잔바위 구릉바위 검등바위 하백 상백 애바위 등 모두 여덟 구역으로 나눠진 미역밭이 있다. 각 미역밭은 6∼12명씩의 어촌계원으로 구성된 8개 조에 한 곳씩 분배된다.

미역밭 분배와 조 편성은 해마다 한번씩 3월중에 제비뽑기로 결정하는데, 김씨를 포함한 7명의 어촌계원들에게는 큰섬 오른쪽의 여러 갯바위로 이뤄진 '잔바위'가 할당됐다. 갈남마을을 비롯한 동해안 지방의 돌미역은 주로 수심 3m 이내의 얕은 바다와 반쯤 잠긴 갯바위에서 서식한다.

양식 미역은 인공배양된 포자가 붙은 줄을 9∼10월 사이에 바다에 드리웠다가 12월 초부터 이듬해 4월 중순까지 거둬들이는 것이지만, 동해안의 돌미역은 따고 말리는 작업 말고는 사람의 손길을 전혀 타지 않는 '진짜 자연산'이라고 한다. 그러나 아무리 깨끗한 바다에서 채취한 자연산 미역도 햇볕 좋고 샛바람이 알맞게 부는 날을 골라 2∼3일쯤 잘 말려야 상품가치가 높아진다.

어민들이 미역 채취 사흘 전의 날씨를 헤아리는 까닭도 이 때문이다. 잘 건조된 돌미역은 검푸른 빛깔을 띠지만 국을 끓이면 푸른 빛깔이 되살아나고 해초 특유의 향기가 진하게 풍겨온다. 그래서 값도 양식 미역에 비해 두세 곱이나 비싸다.

그러나 최근 몇년 동안은 생산량도 적고 값도 헐해서 "별로 재미를 못 봤다"고 한다. 지난해 이 마을 어촌계원들이 미역으로 올린 수입은 가구당 평균 30만원 가량. 그나마 올해는 10만원쯤 줄어들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요즘 시세가 한 통(40장)에 10만∼12만원 쯤이니, 가구당 생산량은 두 통에 불과한 셈이다. 미역은 수협을 통해 위탁판매를 할 수 없기 때문에 헐값을 감수하면서도 중간 도매상들에게 넘길 수밖에 없다고 한다.

아직 본격적인 미역철이 시작되지 않은 것도 사실은 생산량이 적은 탓이다. 작황이 좋았던 시절에는 온 가족이 꼬박 한달을 매달려야 작업을 끝낼 수 있었는데, 몇 해 전부터는 쉬엄쉬엄 해도 일주일이면 더 채취할 미역이 없다.

그래도 김씨는 날마다 이른 아침부터 바닷가로 나간다. 그에게는 바다가 논이고 밭이기 때문이다. 바닷가에 나가면 뭔가 할 일이 생기게 마련. 요즘에는 낫 같은 갈고리가 매달린 장대로 물 위에 떠다니는 미역을 건져올리는 게 큰 일거리다. 밤새도록 파도가 거칠게 몰아쳤던 날 아침에는 아예 떼배를 타고 마을 앞의 얕은 바다를 샅샅이 살핀다.

간밤에 바람 불고 파도가 거세게 일던 날은 갯바위에 붙어 있던 미역이 뿌리째 떨어져 여기저기에 둥둥 떠다니기 때문이다. 이렇게 물 위에 떠다니는 미역을 '절박미역'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먼저 건지는 사람이 임자다.

절박미역 어디 있나
김씨가 떼배의 이물 끝에 앉아 경통(鏡桶)으로 물속을 들여다보며 '절박미역'을 찾고 있다. 뒤편에 보이는 섬이 월미도.

그러나 갯바위에 달라붙은 미역은 그 구역을 할당받은 어촌계원들에게 만 채취권이 있다. 또한 제 구역이라 하더라도 다른 조원들과 공동작업을 하는 경우가 아니면 혼자서 마음대로 채취할 수 없다. 조원들끼리 공동으로 채취해서 똑같이 분배하는 게 원칙이기 때문이다.

김원준씨는 갈남마을에서 나고 자랐지만 지금은 경상북도 영주에서 살고 있다. 이곳에는 맏형 동준씨(61)를 비롯한 여러 형제들이 살고 있는데, 그는 잠수병으로 인해 몸이 불편한 형을 돕기 위해 잠시 고향에 돌아왔다.

동준씨는 서른네살 때 수심이 서른 발도 넘는 바닷속까지 내려가 '머구리질' (우주복처럼 생긴 잠수복과 헬멧을 착용하고 헬멧에 연결된 호스를 통해 배로부터 공기를 공급받는 잠수작업)을 하다가 잠수병에 걸렸다.

목발을 짚고 걸어야 할 만큼 몸이 불편한데도 지난해까지 잠수 일을 계속했다. 그러나 환갑이된 올해부터는 체력이 달려 포기했다. "몸생각 보다 일 욕심만 너무 앞선" 젊은 시절의 무모함이 여태까지도 후회스럽다고 했다. 그래도 그는 바다를 탓하지는 않는다. 늘 넉넉하고 그윽한 바다는 그의 변함없는 삶터이기 때문이다.

양영훈〈여행칼럼니스트〉


§ 참조하세요

백화현상

바닷속의 바위에 흰색 이물질이 달라붙어 바 위가 하얗게 변하는 현상. 백화현상이 생기 면 바닷속에는 해삼 멍게 전복 미역 다시마 등과 같은 바다 생물들이 살 수 없기 때문에 '바다의 사막화 현상'이라고도 한다. 우리나 라의 연근해에서는 20여년 전 남해안에서 처 음 발생했으며, 그 원인은 아직까지도 확실 히 알 수 없다. 다만 전세계적인 이상기온과 수온상승, 인공구조물에 의한 조류 흐름의 저해, 육상에서의 오염물질 유입 등을 그 원 인으로 추정할 따름이다.

떼배

통나무를 뗏목처럼 엮어 만든 배. 제주식의 '테우'와 육지식의 떼배로 구분되는데, 지금 도 동해안 일부 지역에서 미역을 채취할 때 사용하는 떼배는 물에 잘 뜨는 오동나무 8∼ 10개를 엮어 만든다. 지름 20㎝ 안팎에 길이 2∼3m 가량 되는 오동나무의 옆구리에 구멍 을 뚫고 거기에 길다란 막대(가새)를 관통시 켜 서로 연결한다. 밑판에 '놋좆' 틀과 노만 설치된 아주 원시적인 형태의 배지만 뱃전에 서 무게 중심을 잡기가 쉽고 가장자리에 벽 체가 없어 미역 같은 해초를 끌어올리기가 수월하다. 배의 수명이 적어도 10∼20년에 이르는 것도 장점. 갈남마을에는 네 척의 떼 배가 남아 있다.

생선회+소주 '셋이 3만원이면 거뜬'

갈남마을에서 남쪽으로 8㎞쯤 떨어진 원덕읍 임원항은 삼척에서 가장 규모가 큰 어항. 이 른 아침이면 고기잡이를 마치고 돌아오는 어 선들로 분주하고 어항 특유의 활기와 정취가 늘 가득해서 찾아갈 적마다 오붓한 여정을 느끼게 한다. 이곳 부둣가에도 어김없이 횟 집촌이 형성돼 있는데, 동해안의 여러 횟집 촌 가운데 여기만큼 부담없이 생선회를 맛볼 수 있는 곳도 흔치 않다. 횟값만 저렴한 게 아니라 횟감도 아주 물이 좋다. 양식 횟감을 자연산으로 둔갑시키는 비양심적인 일도 거 의 없다. 광어와 우럭을 제외한 대부분의 횟 감은 자연산이다(광어와 우럭도 자연산이 있 지만 양식산에 비해 값이 세 배나 비싸다). 회맛의 절반은 분위기가 좌우하는데, 이곳의 다채로운 풍정은 회맛을 배가시킨다. 횟집촌 거리를 곧장 질러 나가면 끄트머리에 등대가 우뚝 서 있는 방파제가 이어지고, 방파제 바 로 옆으로는 갈매기떼 노니는 하얀 백사장이 펼쳐진다. 임원항에는 60여곳의 횟집이 있는데, 집집마 다 횟감의 질과 값에 별 차이가 없다. 그래 도 단골로 삼을 만한 집은 따로 있게 마련. 인심 넉넉하고, 성격 사근사근하고, 눈속임 없고, 매운탕 솜씨 좋은 집이 단골도 많은 법. 경남7번횟집(0397-573-4481)과 등대횟집 (0397-573-3398)이 바로 그런 곳이다. 대체 로 3∼4만원이면 두셋이서 소주와 매운탕을 곁들여 푸짐한 생선회를 맛볼 수 있다. 또한 갈남마을의 돌미역을 구입하려면 김동 준씨(0397-572-4176)나 어촌계장 이상봉씨 (0397-573-1140)에게 문의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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