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30·경기도 남양주시 수동면 내방2리
서울근교에 ‘고로쇠 마을’이 있다고?


  ‘경 기도 속의 강원도땅’이라는 남양주시 수동면 내방2리는 일명 ‘고로쇠 마을’이다. 저 남쪽의 지리산이나 백운산 아래 어느 산자락도 아닌 서울 근교에 고로쇠마을이 있다는 말이 생소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분명한 사실이다. 필자 또한 반신반의하면서 남양주 고로쇠마을을 찾아 갔다.

신비의 건강음료
내방2리 주민인 이기봉씨가 비닐주머니에 담긴 고로쇠 수액을
물통에 담고 있다. 대체로 20ℓ들이 물통 하나를 꽉 채우려면 50여
개의 비닐주머니에 담긴 수액을 모아야 한다.

마석을 지나 수동면에 들어서자 장성(長城) 처럼 둘러쳐진 산자락들이 맨 먼저 시야에 들어 왔다. 축령산 서리산 주금산 철마산 등 수동면 전역을 타원형으로 에워싼 산봉우리 들이 제법 높고 우뚝해서 '경기도 속의 강원 도'라는 말이 실감났다. 수동(水洞) 또는 '물 골안'이라는 지명도 이처럼 높은 산자락에 둘러싸인 지형에서 비롯된 듯하다. 산이 듬 직하고 숲도 울창하면 맑고 시원한 계류가 사시사철 끊이지 않게 마련인데, 수동면도 그런 경우이다. 즉 '물이 끊임없이 흐르는 골 짜기의 안'이라는 뜻에서 물골안이라는 이름 이 붙게 됐을 터이다.

속칭 '비금리'로도 불리는 내방2리는 산 높고 골 깊은 물골안에서도 가장 깊숙한 곳에 자 리잡았다. 해발 800m가 넘는 서리산과 주금 산이 동쪽과 북쪽에 제각기 우뚝 솟았고, 마 을 남쪽으로 흘러내린 골짜기는 가파르고 비 좁아 자동차 한대 지나기도 힘겨운 듯하다.

아닌 게 아니라 계곡의 물길과 맞닿은 도로 는 수마(水魔)에 깎이고 무너져내린 생채기 를 곳곳에 간직하고 있었다. 지난해 여름 온 마을을 물바다로 만들고 13명의 목숨을 앗아 간 수재의 흔적이 아직도 아물지 않았다.

마을 길가에 세워진 커다란 표석에는 '내방2 리'라는 지명보다 몇곱이나 더 크고 선명하 게 '고로쇠 마을'이라고 새겨져 있었다. 표석 과 인접한 마을회관에서는 몇몇 주민들이 고 로쇠물을 채취하러 갈 채비를 서둘렀다. 그 들을 따라 주금산의 한 골짜기에 들어섰다. 산자락은 멀리서 보기보다 훨씬 더 비탈진데 도 초로(初老)의 주민들은 마치 평지처럼 가 뿐하게 올라갔다.

얼음과 잔설이 여태껏 두 텁게 깔린 골짜기를 두어 차례 가로지르고, 잡목이며 덤불이 빽빽하게 우거진 산비탈을 한참동안 힘겹게 오르자 둥치 굵은 고로쇠나 무들이 여기저기서 눈에 띄었다. 밑동이 조 금 굵어 보이는 고로쇠나무마다 기다란 비닐 주머니가 한두 개씩 어김없이 매달려 있었 다. 하늘을 반쯤 덮은 나뭇가지 사이로 주금 산의 정상 언저리가 언뜻 드러나는 것을 보 면 해발고도가 얼추 600∼700m 가량은 될 성싶었다.

저만치 앞서가던 주민들도 그제야 편편한 산비탈에 걸터앉아 고로쇠수액을 한 잔씩 권하며 갈증을 덜었다.

관광상품으로
마을 주민들이 물통에 모아온 수액을 산중턱에 설치된 간이
집수통에다 쏟아붓고 있다. 집수통의 수액은 다시 가느다란
호스를 따라 산 아래의 대형 집수통에 모인다.

고로쇠라는 말의 어원은 '골리수'(骨利水). 고로쇠수액의 성분을 과학적으로는 분석하지 못했을 옛적에도 이 물이 사람의 뼈에 이롭 다는 사실만은 분명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고로쇠 수액은 칼슘이나 망간같은 무 기물의 함유량도 많을 뿐더러 당분인 자당도 물의 40여배에 이르기 때문에 신경통이나 위 장병에 특별한 효험이 있다고 한다. 함께 채 취작업에 나선 주민 최주철씨(57)는 "아무리 마셔도 배탈나거나 물리지 않고, 이렇게 가 파른 산에 오를 때도 딱 한잔만 마시면 다리 가 아프거나 힘든 줄 모른다"며 수액의 효험 을 침이 마르도록 강조했다.

잠시 한담을 나누던 주민들은 곧 자리를 털 고 일어섰다. 이 즈음부터서는 각자 20ℓ들 이 물통을 하나씩 들고 흩어져 비닐주머니에 담긴 고로쇠 수액을 물통에 담는다. 대체로 물통 하나를 꽉 채우려면 50여개의 비닐주머 니에 담긴 수액을 모아야 한다. 그렇게 해서 물통에 모은 수액은 산중턱 곳곳에 설치된 간이 집수통에다 쏟아붓는다. 집수통의 수액 은 다시 가느다란 호스를 따라 산 아래의 대 형 집수통에 모인다.

이 통에 설치된 꼭지를 틀면 고로쇠수액이 쏟아져 나온다. 이런 설 비를 마련함으로써 산꼭대기에서 물통을 몇 개씩 지게에 지고 내려와야 하는 수고는 덜 게 됐다. 그래도 그냥 서 있기조차 힘겨울 만큼 가파른 비탈을 이 잡듯 뒤지면서 비닐 주머니에 조금씩 담긴 수액을 물통에 모으는 일은 수월치 않아 보였다.

일행 가운데 가장 젊은 이기봉씨(37)도 가파 른 산등성이를 다람쥐처럼 부지런히 오르내 리면서 고로쇠수액을 거둬들였다. 채취량이 얼마나 되느냐고 물으니 그는 낙심한 목소리 로 "날씨탓인지 오늘은 영 시원찮다"며 "올 해 채취량은 작년치의 절반도 안될 것 같다" 고 했다.

내방2리 주민들이 고로쇠수액을 본격적으로 채취하기 시작한 해는 지난 97년. 물론 이전 에도 마을 주변의 서리산과 주금산 중턱에 고로쇠나무 군락지가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 었다.

그러나 그때는 고작해야 몇몇 주민들 이 한두되씩 받아다가 가족이나 이웃끼리 나 눠 마시는 정도였다. 그러다가 몇해 전부터 전국 각지의 산골 주민들이 고로쇠수액을 채 취해서 적잖은 소득을 올린다는 얘기가 알려 지자 이곳 주민들도 작목반을 결성해 채취에 나섰다.

일부 주민들은 오래 전부터 고로쇠수액을 채 취해 온 광양 백운산 인근 마을까지 가서 채 취방법과 기술을 직접 배워 오기도 했다. 시 청에서도 고로쇠수액이 농가의 중요한 소득 원일 뿐 아니라 새로운 관광상품으로 개발될 수도 있겠다고 판단하고 적극적인 지원을 아 끼지 않았다. 1500만원짜리 대형 냉장고를 구입해 줬는가 하면 올해에는 물통 구입비로 500만원을 지원했다.

처음으로 고로쇠수액을 채취했던 97년에는 작목반에 가입된 24가구가 각자 400만원씩, 그리고 지난해에는 300만원씩의 수입을 올렸 다고 한다. 이른 봄철의 농한기에, 그것도 30~40일 동안의 짧은 기간에 벌어들인 농가 소득치고는 적지 않은 액수이다. 그러나 마 을 이장인 신경재씨(62)에 따르면 그만큼의 수입을 올리기까지 들어가는 비용과 노동력 이 만만치 않다고 한다.

고로쇠 수액 모으기
채취작업을 마치고 하산하는 내방2리 주민들. 채취한 수액을
중간 집수통과 호스를 통해 내려보내게 된 뒤로는 여러 개의
물통을 지게에 지고 산길을 내려오는 수고는 덜었다.

"남들은 동네 앞산에 가서 고로쇠나무에 구 멍 뚫고 호스만 꽂으면 되는 줄 알겠지만, 그렇지가 않습니다. 우선 여러 관청의 허가 절차를 거쳐야 고로쇠수액을 채취할 수 있어 요. 주금산과 서리산은 도유림이라 경기도청 에 가서 임대계약을 하고, 남양주시청의 산 림과에서 다시 채취허가를 받아야 됩니다. 올해는 모두 2500주를 임대하고 임대료조로 도청에 400만원을 냈어요."

채취허가를 얻어도 아무 나무에나 구멍을 뚫 은 수는 없다. 직경이 15cm 이상인 나무에만 구멍 하나를 뚫을 수 있고, 두개를 뚫으려면 적어도 30cm는 돼야 한다. 그리고 구멍의 크 기도 지름 1.2cm, 깊이 1.5cm를 초과할 수 없고, 채취작업이 끝나면 나무의 상처를 빨 리 아물게 해서 세균의 감염을 막는 '펩신토 스트'라는 약을 구멍에 발라줘야 한다. 주민 들은 법에 따른 규제와 처벌이 무서워서라기 보다는 고로쇠나무가 자신들의 재산이라는 생각으로 이처럼 까다로운 규정들을 철처히 지킨다고 한다.

현재 남양주시 수동면의 여러 마을 중에서 고로쇠수액을 채취하는 곳은 내방2리를 포함 해 모두 여섯 마을. 그 가운데서도 생산량이 가장 많은 내방2리에서는 지난해에 1300여 통의 고로쇠수액을 채취했다고 한다. 그러나 앞서 이기봉씨도 말했듯이, 올해에는 채취량 이 크게 줄어들 것 같다고 한다.

날이 갈수 록 심각해지는 이상기후에다 "IMF 때문에" 계속된 불경기로 판로마저 여의치 않은 탓이 다. 외줄 타는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 는 도시의 샐러리맨들뿐 아니라 이처럼 깊은 산중에서 고로쇠수액을 채취하고 외딴 섬마 을의 개펄에서 조개잡는 사람들조차 그 찰거 머리처럼 질기고도 모진 'IMF 망령'에 시달 리고 있다.

양영훈〈여행칼럼니스트〉


§ 참조하세요

축령산

남양주시 수동면 외방리와 가평군 상면 행현 리 사이에 위치한 산. 주변의 서리산이나 주 금산보다 높으며 산세도 꽤 험준한 편이다. 1390년경 태조 이성계가 조선을 개국하기 전 에 사냥을 하러 이 산에 온 적이 있었다. 이 성계는 500보 떨어진 버들잎을 꿰뚫을 정도 로 명궁(名躬)인데도 이날은 온종일 토끼 한 마리 잡지 못했다. 그러자 몰이꾼들이 "이 산은 신령스러운 산이므로 산신령께 고사를 지내야 짐승을 잡을 수 있다"고 했다. 이튿 날 이성계가 산꼭대기에 올라 제사를 지내고 다시 사냥에 나서자 이내 멧돼지를 다섯 마 리나 잡을 수 있었다. 그 뒤로 산 이름을 축 령산(祝靈山)이라 했고, 다섯 마리의 멧돼지 를 잡은 산은 '오득산'이 됐다고 한다.

골리수

통일신라 말기에 도선국사가 광양 백운산에 들어가서 모진 고행을 거듭한 끝에 어느 봄 득도했다. 이에 기뻐하면서 자리를 털고 일 어서려 했으나 무릎이 좀처럼 펴지질 않았 다. 하는 수 없이 옆에 서 있던 나무를 잡고 일어섰는데, 마침 부러진 가지에서 흘러나오 던 물을 한모금 마셨더니 무릎이 펴졌다. 그 물이 바로 고로쇠 수액이었고, 그후 '뼈에 좋 은 물'이라는 뜻에서 골리수라 불리게 됐다 고 한다.

날씨

고로쇠 수액의 채취량은 날씨의 변화에 따라 크게 달라진다. 대체로 눈비가 오고 바람이 불거나 기온이 너무 따뜻하면 잘 나오지 않 는다. 반면에 영하까지 떨어졌던 기온이 갑 자기 확 풀리거나 일교차가 매우 클 때, 그 리고 하루 중에서도 산자락 구석구석까지 햇 살이 고루 퍼지는 오전 10시쯤에 가장 많이 나온다고 한다. 그렇게 고로쇠나무 하나에서 한 철에 채취되는 수액은 대략 10~20ℓ쯤 되 지만 90ℓ(다섯 말)도 넘게 나오는 아름드리 나무들도 몇그루 있다고 한다.

고로쇠 물 먹고 통나무집서 하룻밤
“추억만들기 떠나요”

그림같은 숲속의 집
축령산 자연휴양림의 울창한
잣나무숲에 들어앉은 통나무집.

남양주시 수동면 내방2리 마을의 고로쇠수액 채취작업은 대체로 3월말 경에 끝나지만, 꽃 샘추위가 계속되면 4월 초순까지도 이어진 다. 3월 말일에 채취작업이 끝난다고 해도 4 월5일까지는 고로쇠수액를 판매한다. 이곳에 서 채취한 고로쇠수액은 내방2리 마을회관 (0346-591-9389)이나 미금의 남양주시청 안 에 임시로 마련된 직판장에서 구입할 수 있 다. 그리고 서울이나 수원-인천 등지에서 전 화 주문을 하면 2, 3일에 한번씩 직접 배달 도 해준다. 값은 5000원(1.8ℓ) 2만5000원(10 ℓ) 4만원(18ℓ).

그러나 내방2리 마을까지는 서울 도심에서도 승용차로 1시간30분밖에 걸리지 않아 주말이 나 휴일을 이용해 직접 찾아가 볼 만하다. 이렇다 할 볼거리나 명소는 없지만 높은 산 자락과 깊숙한 골짜기에 둘러싸인 마을 정경 이 아늑하고, 마을 주변의 산자락과 골짜기 에서는 점차 무르익어 가는 봄기운을 느낄 수 있다. 이 마을에는 도로를 따라 비금산장 (0346-591-1060) 벽계수가든(0346-591-6737) 비금손두부집(0346-592-6763) 등 민박집과 음식점들이 여러 곳 있어 숙식을 해결하기도 불편하지 않다.

내방2리와 이웃한 외방리의 전지라골에는 축 령산 자연휴양림(0346-592-0681)이 자리잡고 있다. 울창한 잣나무숲에 들어 앉은 통나무 집들이 아주 운치있고 조용해서 하룻밤 묵으 며 자연미를 만끽하기에 그만이다. 휴양림 위쪽으로 이어진 등산로를 따라 축령산과 서 리산의 정상까지 산행을 즐길 만도 하다. 이 곳 통나무집은 사용하기 전 달의 1일부터 예 약할 수 있으며, 이용료는 3만원(4~5평형) 4 만원(6~7평형) 5만원(8평형)이다. 침구와 취 사도구는 직접 준비해야 하고, 입장료(어른 1000원)와 주차료(승용차 3000원)를 따로 내 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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