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 속의 강원도땅’이라는 남양주시 수동면 내방2리는 일명 ‘고로쇠 마을’이다.
저 남쪽의 지리산이나 백운산 아래 어느 산자락도 아닌 서울 근교에 고로쇠마을이 있다는
말이 생소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분명한 사실이다. 필자 또한 반신반의하면서 남양주
고로쇠마을을 찾아 갔다.
 |
신비의 건강음료
내방2리 주민인 이기봉씨가 비닐주머니에 담긴 고로쇠 수액을
물통에 담고 있다. 대체로 20ℓ들이 물통 하나를 꽉 채우려면 50여
개의 비닐주머니에 담긴 수액을 모아야 한다.
|
마석을 지나 수동면에 들어서자 장성(長城)
처럼 둘러쳐진 산자락들이 맨 먼저 시야에
들어 왔다. 축령산 서리산 주금산 철마산 등
수동면 전역을 타원형으로 에워싼 산봉우리
들이 제법 높고 우뚝해서 '경기도 속의 강원
도'라는 말이 실감났다. 수동(水洞) 또는 '물
골안'이라는 지명도 이처럼 높은 산자락에
둘러싸인 지형에서 비롯된 듯하다. 산이 듬
직하고 숲도 울창하면 맑고 시원한 계류가
사시사철 끊이지 않게 마련인데, 수동면도
그런 경우이다. 즉 '물이 끊임없이 흐르는 골
짜기의 안'이라는 뜻에서 물골안이라는 이름
이 붙게 됐을 터이다.
속칭 '비금리'로도 불리는 내방2리는 산 높고
골 깊은 물골안에서도 가장 깊숙한 곳에 자
리잡았다. 해발 800m가 넘는 서리산과 주금
산이 동쪽과 북쪽에 제각기 우뚝 솟았고, 마
을 남쪽으로 흘러내린 골짜기는 가파르고 비
좁아 자동차 한대 지나기도 힘겨운 듯하다.
아닌 게 아니라 계곡의 물길과 맞닿은 도로
는 수마(水魔)에 깎이고 무너져내린 생채기
를 곳곳에 간직하고 있었다. 지난해 여름 온
마을을 물바다로 만들고 13명의 목숨을 앗아
간 수재의 흔적이 아직도 아물지 않았다.
마을 길가에 세워진 커다란 표석에는 '내방2
리'라는 지명보다 몇곱이나 더 크고 선명하
게 '고로쇠 마을'이라고 새겨져 있었다. 표석
과 인접한 마을회관에서는 몇몇 주민들이 고
로쇠물을 채취하러 갈 채비를 서둘렀다. 그
들을 따라 주금산의 한 골짜기에 들어섰다.
산자락은 멀리서 보기보다 훨씬 더 비탈진데
도 초로(初老)의 주민들은 마치 평지처럼 가
뿐하게 올라갔다.
얼음과 잔설이 여태껏 두
텁게 깔린 골짜기를 두어 차례 가로지르고,
잡목이며 덤불이 빽빽하게 우거진 산비탈을
한참동안 힘겹게 오르자 둥치 굵은 고로쇠나
무들이 여기저기서 눈에 띄었다. 밑동이 조
금 굵어 보이는 고로쇠나무마다 기다란 비닐
주머니가 한두 개씩 어김없이 매달려 있었
다. 하늘을 반쯤 덮은 나뭇가지 사이로 주금
산의 정상 언저리가 언뜻 드러나는 것을 보
면 해발고도가 얼추 600∼700m 가량은 될
성싶었다.
저만치 앞서가던 주민들도 그제야
편편한 산비탈에 걸터앉아 고로쇠수액을 한
잔씩 권하며 갈증을 덜었다.
 |
관광상품으로
마을 주민들이 물통에 모아온 수액을 산중턱에 설치된 간이
집수통에다 쏟아붓고 있다. 집수통의 수액은 다시 가느다란
호스를 따라 산 아래의 대형 집수통에 모인다.
|
고로쇠라는 말의 어원은 '골리수'(骨利水).
고로쇠수액의 성분을 과학적으로는 분석하지
못했을 옛적에도 이 물이 사람의 뼈에 이롭
다는 사실만은 분명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고로쇠 수액은 칼슘이나 망간같은 무
기물의 함유량도 많을 뿐더러 당분인 자당도
물의 40여배에 이르기 때문에 신경통이나 위
장병에 특별한 효험이 있다고 한다. 함께 채
취작업에 나선 주민 최주철씨(57)는 "아무리
마셔도 배탈나거나 물리지 않고, 이렇게 가
파른 산에 오를 때도 딱 한잔만 마시면 다리
가 아프거나 힘든 줄 모른다"며 수액의 효험
을 침이 마르도록 강조했다.
잠시 한담을 나누던 주민들은 곧 자리를 털
고 일어섰다. 이 즈음부터서는 각자 20ℓ들
이 물통을 하나씩 들고 흩어져 비닐주머니에
담긴 고로쇠 수액을 물통에 담는다. 대체로
물통 하나를 꽉 채우려면 50여개의 비닐주머
니에 담긴 수액을 모아야 한다. 그렇게 해서
물통에 모은 수액은 산중턱 곳곳에 설치된
간이 집수통에다 쏟아붓는다. 집수통의 수액
은 다시 가느다란 호스를 따라 산 아래의 대
형 집수통에 모인다.
이 통에 설치된 꼭지를
틀면 고로쇠수액이 쏟아져 나온다. 이런 설
비를 마련함으로써 산꼭대기에서 물통을 몇
개씩 지게에 지고 내려와야 하는 수고는 덜
게 됐다. 그래도 그냥 서 있기조차 힘겨울
만큼 가파른 비탈을 이 잡듯 뒤지면서 비닐
주머니에 조금씩 담긴 수액을 물통에 모으는
일은 수월치 않아 보였다.
일행 가운데 가장 젊은 이기봉씨(37)도 가파
른 산등성이를 다람쥐처럼 부지런히 오르내
리면서 고로쇠수액을 거둬들였다. 채취량이
얼마나 되느냐고 물으니 그는 낙심한 목소리
로 "날씨탓인지 오늘은 영 시원찮다"며 "올
해 채취량은 작년치의 절반도 안될 것 같다"
고 했다.
내방2리 주민들이 고로쇠수액을 본격적으로
채취하기 시작한 해는 지난 97년. 물론 이전
에도 마을 주변의 서리산과 주금산 중턱에
고로쇠나무 군락지가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
었다.
그러나 그때는 고작해야 몇몇 주민들
이 한두되씩 받아다가 가족이나 이웃끼리 나
눠 마시는 정도였다. 그러다가 몇해 전부터
전국 각지의 산골 주민들이 고로쇠수액을 채
취해서 적잖은 소득을 올린다는 얘기가 알려
지자 이곳 주민들도 작목반을 결성해 채취에
나섰다.
일부 주민들은 오래 전부터 고로쇠수액을 채
취해 온 광양 백운산 인근 마을까지 가서 채
취방법과 기술을 직접 배워 오기도 했다. 시
청에서도 고로쇠수액이 농가의 중요한 소득
원일 뿐 아니라 새로운 관광상품으로 개발될
수도 있겠다고 판단하고 적극적인 지원을 아
끼지 않았다. 1500만원짜리 대형 냉장고를
구입해 줬는가 하면 올해에는 물통 구입비로
500만원을 지원했다.
처음으로 고로쇠수액을 채취했던 97년에는
작목반에 가입된 24가구가 각자 400만원씩,
그리고 지난해에는 300만원씩의 수입을 올렸
다고 한다. 이른 봄철의 농한기에, 그것도
30~40일 동안의 짧은 기간에 벌어들인 농가
소득치고는 적지 않은 액수이다. 그러나 마
을 이장인 신경재씨(62)에 따르면 그만큼의
수입을 올리기까지 들어가는 비용과 노동력
이 만만치 않다고 한다.
 |
고로쇠 수액 모으기
채취작업을 마치고 하산하는 내방2리 주민들. 채취한 수액을
중간 집수통과 호스를 통해 내려보내게 된 뒤로는 여러 개의
물통을 지게에 지고 산길을 내려오는 수고는 덜었다.
|
"남들은 동네 앞산에 가서 고로쇠나무에 구
멍 뚫고 호스만 꽂으면 되는 줄 알겠지만,
그렇지가 않습니다. 우선 여러 관청의 허가
절차를 거쳐야 고로쇠수액을 채취할 수 있어
요. 주금산과 서리산은 도유림이라 경기도청
에 가서 임대계약을 하고, 남양주시청의 산
림과에서 다시 채취허가를 받아야 됩니다.
올해는 모두 2500주를 임대하고 임대료조로
도청에 400만원을 냈어요."
채취허가를 얻어도 아무 나무에나 구멍을 뚫
은 수는 없다. 직경이 15cm 이상인 나무에만
구멍 하나를 뚫을 수 있고, 두개를 뚫으려면
적어도 30cm는 돼야 한다. 그리고 구멍의 크
기도 지름 1.2cm, 깊이 1.5cm를 초과할 수
없고, 채취작업이 끝나면 나무의 상처를 빨
리 아물게 해서 세균의 감염을 막는 '펩신토
스트'라는 약을 구멍에 발라줘야 한다. 주민
들은 법에 따른 규제와 처벌이 무서워서라기
보다는 고로쇠나무가 자신들의 재산이라는
생각으로 이처럼 까다로운 규정들을 철처히
지킨다고 한다.
현재 남양주시 수동면의 여러 마을 중에서
고로쇠수액을 채취하는 곳은 내방2리를 포함
해 모두 여섯 마을. 그 가운데서도 생산량이
가장 많은 내방2리에서는 지난해에 1300여
통의 고로쇠수액을 채취했다고 한다. 그러나
앞서 이기봉씨도 말했듯이, 올해에는 채취량
이 크게 줄어들 것 같다고 한다.
날이 갈수
록 심각해지는 이상기후에다 "IMF 때문에"
계속된 불경기로 판로마저 여의치 않은 탓이
다. 외줄 타는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
는 도시의 샐러리맨들뿐 아니라 이처럼 깊은
산중에서 고로쇠수액을 채취하고 외딴 섬마
을의 개펄에서 조개잡는 사람들조차 그 찰거
머리처럼 질기고도 모진 'IMF 망령'에 시달
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