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29·서산 옹도의 조개잡이 남정네들
“조개 캐는데 남녀가 따로 있나유?”


  웅 도(熊島)는 서해 가로림만(加露林灣)에 떠 있는 작은 섬이다. 면적 1.58㎢에 해안선의 길이가 5km에 불과하지만, 가로림만의 여러 섬 중에서는 가장 큰 축에 든다. 더구나 하루에 두차례씩 반복되는 썰물 때마다 섬 면적의 몇배나 되는 개펄이 사방에 펼쳐진다.

특히 조수의 들고남이 가장 큰 한사리(음력 15, 30일) 전후의 썰물 때 가로림만의 바다가 강줄기처럼 가늘어지면 웅도 주변에는 평야처럼 광활한 개펄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처럼 넓은 개펄을 품고 있는 웅도에서는 주민들도 대부분 개펄에 생계를 기댄다. 바 닷가의 야트막한 둔덕과 마을 주변의 편편한 산기슭에 자리잡은 논밭이 모두 7만2000평쯤 되지만 거기에서의 소출은 자급자족할 양밖 에 되지 않는다. 반면에 개펄은 바지락 굴 김 등의 양식장으로 허가받은 면적만도 28만 평에 이른다. 수입의 대부분이 개펄에서 얻 어지다 보니 웅도 주민들에게는 개펄이 논밭 이나 다름없다.

소달구지에 희망을 싣고
서산시 대산읍 웅도리의 한 주민이 구미섬 주변의 양식장
에서 바지락 채취작업을 마치고 돌아갈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갯일을 하러 나갈 적에 소달구지를 앞세우는 것도 농우(農牛) 몰고 농사일 나가는 농부의 모습과 흡사하다. 요즘은 여느 농촌에서도 소달구지를 구경하기가 쉽지 않지만, 갯마을 웅도리에서는 소달구지가 오히려 경운기보다 흔하게 눈에 띈다. 웅도리 2반 반장인 김봉 곤씨(44)는 그 까닭을 이렇게 말한다.

『여기는 논밭이 많지 않아서 경운기는 쓸 일 이 별로 없슈. 그리고 「대우」(뒷바퀴에 동력을 전달하는 트랜스미션)가 없는 경운기는 뻘에 들어가먼 푹푹 빠져버려유. 「대우」를 단 경운 기는 몇백만원은 줘야 하는디, 이것 하자고 그 돈들일 수 있슈? 달구지야 목돈 들 일도 없고 웬만하면 잘 빠지지도 않으니께 아주 그만이유.』

게다가 경운기처럼 기름값도 들지 않고 갑자 기 고장나거나 말썽부리지도 않으니 그야말 로 일석삼조다. 웅도의 바지락 양식장에서 만난 다른 주민들도 『뻘에 들어가기에는 달 구지가 최고로 편허고 좋아유』라며 이구동성 으로 말했다. 전체 49가구인 웅도리 주민 가 운데 소달구지를 갖고 있는 집은 30가구쯤 된다. 얼추 세가구당 두대꼴인 셈인데, 달구 지가 없는 사람들은 가까운 이웃의 달구지를 함께 사용한다.

개펄로 조개잡이를 나갈 때는 20여대의 달구 지가 동원된다고 한다. 이렇게 많은 소달구 지들이 꼬리를 물고 갯밭으로 들어가는 광경 은 보기 드문 구경거리가 될 듯싶어 기대가 컸다. 하지만 실제로는 주민들마다 갯일 하 러 들어가는 시간이 달라 그런 진풍경은 볼 수 없었다. 아쉽긴 했지만, 두어사람씩 태운 소달구지가 삼삼오오 굴러가는 모습도 퍽 이 채롭고 정겨운 광경이었다.

가로림만의 웅도 주변에는 바지락 공동양식장이 두곳인 데, 면적이 각각 3만6000평 가량 된다. 두곳 가운데 요즘 웅도리 주민들이 바지락을 채취 하는 곳은 작은 무인도인 구미섬과 웅도리 2 반 마을 사이에 펼쳐진 개펄이다.

이 양식장 은 바닷물이 크게 써는 한사리를 전후로 5~8 일 동안만 물 밖으로 드러난다. 그러므로 바 지락을 캘 수 있는 날은 한달 가운데 많아야 보름 정도. 더구나 5월에서 9월까지 다섯달 동안은 바지락의 속살이 줄거나 빠져나가는 것이 많아 아예 채취작업을 하지 않는다.

이러 저런 사정을 감안하면 삼백예순날 중에 조개잡이를 하는 날은 백일 안팎에 불과하 다.

안개 낀 아침풍경
안개가 자욱하게 깔린 웅도리의 아침 풍경. 몇몇 주민들이
소달구지에 몸을 싣고 바지락 양식장으로 향하고 있다.

가구당 채취량은 그날그날 똑같이 정해지는 데, 중간도매상이 요구하는 양을 가구 수로 나눈 것이 곧 그날의 채취량이다. 이 달 들 어서는 대략 50∼60kg 선에서 결정됐다고 한다.

그러나 바지락의 씨알이 별로 굵지 않 은데다 채취하는 사람의 수에 비해 양식장의 면적도 협소해 혼자 캐거나 손놀림이 더딘 사람들은 그마저도 다 채우기가 쉽지 않다. 굵은 모래가 많이 섞인 뻘에서 외따로 바지 락을 캐던 김홍규씨(80)도 그런 경우.

『우리는 두 늙은이가 하는디, 아주 잘 긁어 야 하루 50kg쯤 해유. 어저께는 36kg 해서 1kg에 천원씩 삼만육천원 벌었슈. 두 내우가 한나절 내내 캔 것치고는 별거 아뉴. 그래도 이거라도 해야제 어떡해유?』

그러면서 김씨는 『아직꺼정 이런 갯일쯤은 거뜬히 할 수 있으니께 「아이네프」(IMF) 땜 에 힘든 자식들헌테는 부담주지 말아야지유』 라고 했다. 그 말과 함께 김씨의 얼굴에 갑 자기 그늘이 드리워졌다.

개펄에서 조개나 굴 따위를 캐는 갯일은 흔 히 아낙네의 몫이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갯 일에 남녀의 구별이 없다. 앞서 언급했듯이, 다른 가족도 없이 혼자 작업하면 그날 정해 진 채취량을 다 채우기 어렵기 때문이다. 게 다가 조개를 물에 씻거나 달구지에 싣는 일 등 여자들한테 힘에 부치는 일은 남자들이 도맡아 해야 한다.

그런 연유로 내외가 함께 작업하러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아낙들 의 조개 캐는 모습만 눈에 익은 사람에겐 이 곳 풍경이 낯설고 어색하겠지만, 불청객이야 어떻게 생각하든 이웃 아줌마고 아저씨인 주 민들끼리는 우스갯소리와 객담을 스스럼없이 주고받는다.

작업을 시작한지 네시간쯤 지나자 사람들의 몸짓이 더욱 분주해졌다. 작업을 마무리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그날의 채취 정량인 60㎏을 이미 다 채운 사람들은 조개 를 바닷물에 깨끗이 씻은 뒤 달구지에 실었 다.

작업시간 내내 모래톱 위에 서서 무심한 표정으로 되새김질만 하던 소들도 왕방울 만 한 눈을 끔벅이며 떠날 채비를 서둘렀다. 대 체로 손놀림이 빠르고 상대적으로 젊은 부부 들이 먼저 작업장을 떠났다. 그러나 물때까 지는 아직 두어시간의 여유가 있어서인지, 60kg을 다 채우지 못한 사람들은 여전히 쪼 그리고 앉은 채 호미질을 계속했다.

“욕심없이 살어유”
마을 입구의 길가에 설치된 계량소에서 바지락의
무게를 측정하고 있다. 바지락 대금은 작업기간이
끝난 뒤에 일괄 지급된다.

소달구지에 싣고 나간 바지락은 마을 입구의 길가에 설치된 계량소에서 무게를 달아 곧바 로 트럭에 실린다. 바지락의 무게를 측정하 고 기록하거나 나중에 대금을 지급하는 일은 이장이자 어촌계장인 윤용일씨(49)의 몫이다.

정량 초과분은 따로 떼어내 마을공동기금의 재원(財源)으로 쓰인다. 그리고 한달에 두차 례씩의 작업기간이 끝나고 나서 정산되는 대 금은 수수료를 공제한 뒤 이장을 통해 가구 별로 지급된다.

계량소 앞의 좁은 찻길이 앞다퉈 몰려드는 소달구지들 때문에 더욱 비좁아졌다. 무릎까 지 쑥쑥 빠지는 뻘에서 한나절 내내 고된 작 업을 마친 뒤끝인데도 저울의 눈금을 유심히 살피는 사람이나 차례를 기다리는 사람이나 그다지 피로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하루일과를 마무리했다는 성취감과 홀가 분함으로 저마다 희색이 만면했다. 어떤 아 낙은 저울에 올려놓은 두개의 자루가 정량에 훨씬 미달되는데도 연신 입을 벙긋거리면서 『남들보다 많이 캐지는 못했어도 기분은 좋 네유』라고 했다.

아낙의 밝고 순박한 얼굴에 는 『세상에 별로 부러울 게 없다』는 속내가 드러나는 듯했다. 그런 웅도 사람들을 보면 서, 사람의 행불행(幸不幸)은 소유의 많고 적 음이 아니라 소유한 것의 다소(多少)를 어떻 게 받아들이느냐에 달려 있다는 생각이 새삼 스레 들었다.

양영훈〈여행칼럼니스트〉


§ 참조하세요

수수료

수수료는 양식장의 입어료(入漁料)인 셈인데, 주민들이 양식장에서 얻는 소득의 5%를 공 제한다. 이곳의 바지락 양식장에서 하루에 채취되는 양은 대략 200만원어치(2000kg)쯤 이므로 5~8일 동안 계속되는 작업기간 중에 매일 10만원씩의 수수료가 걷히는 셈이다.

이렇게 조성된 기금은 마을 공동의 행사를 치르거나 양식장을 관리하는 비용으로 쓰인 다. 특히 5~10년 간격으로 양식장의 어업권 을 연장하거나 재허가를 받기 위해 소요되는 어장 관리비가 적지 않다고 한다.

적어도 5년에 한번씩 양식장에 뿌리는 종패(種貝)의 구입비도 적지 않을 뿐더러 어업권의 연장이 나 재허가를 신청하기에 앞서 양식장의 면적 과 위치를 측량하고 설계도를 작성하는 데에 도 이 기금을 사용한다.

가로림만

충남 태안군 태안읍의 북쪽에 있는 만. 입구 의 폭은 2~3km이며, 만입(灣入)의 길이는 25km에 이른다. 해안선의 굴곡이 심하고 수 심이 얕아서 각종 어족의 산란장으로도 유명 하다.

특히 조수간만의 차이가 심해 오래 전 부터 조력발전소의 유력한 후보지로 거론돼 왔다. 게다가 조수의 들고남이 큰 한사리 때 에 썰물이 지면 해역의 70∼80%가 개펄을 드러낼 정도로 간석지가 잘 발달돼 있다.

이 만의 서쪽으로는 태안군의 이원면-소원면, 남쪽으로 태안읍, 동쪽으로 서산시의 팔봉면 -지족면-대산면이 둘러싸고 있으며, 남쪽으 로는 태안읍을 사이에 두고 천수만이 깊숙이 만입해 있다.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조운 (漕運) 항로를 단축하기 위해 두 만 사이에 「굴포조거」라는 운하를 개설하려는 공사가 수 차례에 걸쳐 시도됐으나 끝내 수포로 돌아갔 다.

하루 두차례 ‘모세의 기적’
제부도 뺴닮은 ‘웅도’

천연 소금밭
서산읍 오지리의 한 염전. 이곳에는
아직도 재래식 방법으로 천일염을
생산하는 염전들이 많다.

웅도는 여러 모로 경기도 화성군의 제부도를 빼닮았다. 하루 두번씩의 썰물 때마다 「모세 의 기적」 같은 바닷길이 열린다는 점도 그렇 고, 섬의 크기며 주변에 넓은 개펄이 형성돼 있다는 점도 서로 닮았다.

그러나 외지의 관 광객들도 조개를 채취할 수 있는 제부도의 개펄과는 달리, 웅도에서는 주민들만 채취권 을 갖는다. 그래서 개펄을 파헤치면서 조개 를 직접 캐보는 재미는 맛볼 수 없지만, 제 부도보다 훨씬 더 한적하고 여유로운 분위기 와 때묻지 않은 자연만은 아주 인상적이다.

이 섬에 들어가려면 미리 물때를 확인해야 하는데, 국립해양조사원의 조석정보 ARS(03 2-887-3011)를 이용하면 원하는 날짜의 물때 를 미리 알 수 있다(웅도의 조석 시간은 서 해 안흥항을 기준으로 삼아서 계산할 수 있 다. 대체로 안흥항 저조시간의 3시간 전쯤에 웅도와 육지를 잇는 도로의 차량통행이 가능 해진다).

웅도가 속한 서산시 대산읍에는 대규모 석유 화학단지가 조성돼 있지만, 가로림만에 접해 있는 웅도와 오지리의 여러 마을은 한가롭고 아늑한 갯마을의 정경을 보여준다. 특히 오 지리의 외진 바닷가 곳곳에서 아직까지도 재 래식 방법으로 천일염을 생산하는 염전들은 도시 사람들에게 색다른 풍광으로 느껴진다.

그리고 오지리의 맨 끝마을인 벌말은 포구의 풍정과 낙조가 매우 아름답다. 선착장 부근 에는 벌천포횟집(0455-681-5262)을 비롯해 몇 군데의 횟집도 들어서 있어 가로림만의 비옥한 뻘과 깨끗한 바다에서 잡은 각종 해 산물을 맛볼 수 있다. 숙박시설은 벌말의 민 박집이나 대산읍내에 있는 그린파크(0455-66 5-5423) 가야파크(0455-681-3322) 등의 장급 여관을 이용해야 한다. 그러나 웅도에는 별 다른 숙식시설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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