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27·덕유산 향적봉 산장지기 허의준씨
산이 좋아 산으로 간 ‘덕유산 산할아버지’


  ‘산 꾼’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지리산이나 설악 산 같은 명산의 어느 한자락에 파묻혀 사는 산장지기를 꿈꾸게 마련이다. 세속의 영욕과 인연을 털어버리고 자연에 묻혀 살아가는 산 장지기의 삶은 산꾼들뿐 아니라 모든 도시인 들이 동경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얻 기보다 버리기가 더 어려운 게 인간사인지 라, 세속의 모든 영예와 관계를 끊고 깊은 산중으로 들어가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그래서 산장지기를 꿈꾸는 이는 많 아도 그 꿈을 이룬 사람은 흔치 않다.

천상 ‘산꾼’
향적봉 산장 앞에서 등산객들과 함께 일출을
감상하고 있는 허의준씨(맨 오른쪽). 잿빛 구름과
소백산맥의 중첩된 산자락 사이로
펼쳐진 햇살이 황홀하기 그지없다.


덕유산(德裕山) 향적봉(1614m) 기슭에 자리 잡은 ‘산악인의 집’ 관리인 허의준씨(70)는 그런 꿈을 이룬, 몇 안되는 산꾼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가 이 산장의 관리인을 처음 맡 은 것은 향적봉에 유인대피소가 세워진 1983 년 9월.

“그전에는 관공서에 윤활유 등을 납품하는 사업을 했는데, 같은 일을 오래 하다보니 뭔 가 새로운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 지더군요. 사업을 정리한 뒤 마음도 추스리 고 새로운 일도 구상할겸 해서 1년간 이 산 저 산을 돌아다녔습니다. 그때 지리산 어느 산장에 들렀다가 덕유산에 유인대피소가 들 어설 것이라는 얘기를 듣게 됐지요.”

지리산에서 돌아오자마자 허씨는 대한산악연 맹 전북지부를 통해 산장 관리인을 자청했 다. 산에 대한 그의 열정과 고집은 누구도 막을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신혼시절부터 체 득한 아내는 그의 선택을 반대하지 않았다. 허씨도 아내보다 대학 졸업을 앞둔 아들이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생전에 꼭 하고 싶 은 일을 하다가 죽고 싶다”는 소망이 더 간 절했을 뿐만 아니라 이미 “산에 미쳐 있었던 상태”였다.

그가 산에 빠져들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교 시절이었다. 고향인 황해도 금천에서 초등학 교 4학년까지 다니다가 5학년 때 개성으로 전학했는데, 당시 큰형님과 함께 개성 송악 산을 오르내리면서 산의 넉넉함과 산행의 즐 거움에 매료됐다. 그러나 중학교를 졸업한 뒤로는 한동안 산을 잊고 지낼 수밖에 없었 다. 해방 직후에 고향 땅의 논밭을 모두 몰 수당해 지주 집안이던 그의 가족들은 갑자기 생계가 막막해졌기 때문이다.

가족과 함께 서울에 정착한 그는 낮에는 돈 벌이가 될 만한 일을 하고, 퇴근후에는 야간 고등학교에 다니면서 학업을 계속했다. 그러 다 6·25전쟁이 터지자 곧바로 군에 입대했 고, 55년 대위로 예편할 때까지 산행할 기회 를 갖지 못했다. 그러나 결혼 이듬해에 시작 한 사업이 웬만큼 자리를 잡자 ‘산행병’이 도 졌다.

물 길어오는 허의준씨
향적봉 산장의 관리인 허씨가 산장에서
200m쯤 떨어진 샘터까지 내려가서 물을 길
어오고 있다.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틈만 나면 산에 올랐다. 서울 근교의 북한산 도봉산은 말할 것도 없고, 지리산 설악산 두타산 태백 산 소백산 등 전국의 명산이란 명산은 죄다 섭렵했다. 그는 특히 지리산의 웅장함과 설 악산의 수려함에 매료돼 각각 250여차례나 오르내렸다. 70년대 후반부터 8년 동안 한국 산악회의 일반지도위원장을 맡으면서 '허대 장'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처럼 그는 이미 산에 푹 빠져 있었기에 바 깥세상에는 아무런 미련도 두지 않고 덕유산 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그러나 막상 산장지 기 생활을 해보니 생각했던 만큼 낭만적인 것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그를 고통스럽게 만든 것은 하염없이 가슴을 파고드는 외로움 과 고립감이었다.

“처음에는 어찌나 외롭고 쓸쓸하던지 눈물도 많이 흘렸습니다. 혼자 있을 때는 그래도 견 딜 만한데, 어쩌다가 친구들이나 후배들이 찾아왔다가 훌쩍 떠나버리면 괜히 눈물이 나 더라고요. 사실 산에서 혼자 산다는 것은 자 기와의 싸움입니다. 그 싸움에서 이기려면 뭔가 늘 몰두할 수 있는 일이 있어야 돼요.”

그래서 시작한 것이 사진촬영이었다. 예전에 도 산행할 적마다 카메라를 들고 나서기는 했지만 그저 기념사진이나 찍는 수준이었다. 그런 허씨가 짧은 기간에 프로급의 실력을 쌓은 것은 피사체를 바라보는 안목이 탁월한 데다, 덕유산의 변화무쌍한 풍광을 늘 가까 이에서 지켜볼 수 있다는 이점 때문이었다.

그의 카메라에 잡힌 덕유산의 아름다움은 산 악 전문잡지를 비롯한 여러 매체와 달력 엽 서 등을 통해 일반인들에게도 널리 알려졌 다. 지난 94년 제1회 국립공원사진공모전에 서는 그의_작품이 대상을 받기도 했다. 적어 도 덕유산에 관해서는 최고의 사진가로 인정 받은 셈이다.

그러나 그는 “사진촬영은 취미에 불과하고 내 본업은 산장을 지키는 일”이라는 지론을 갖고 있다. 그래서 허씨는 더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 산장에서 멀리 떨어진 곳까지 가 지는 않는다고 한다. 산장을 오랫동안 비워 두면 이곳을 찾은 그 누군가가 불편을 겪을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다. 게다가 이따금씩 조난사고가 발생하는 겨울철에는 어느 때, 어떤 이가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할지 몰라 산장을 비워두기 더욱 어렵다고 한다.

실제로 덕유산은 눈이 많이 내릴 뿐 아니라 기상변화가 유난히 심한 곳이어서 겨울마다 등산객들 중 한두명은 조난사당하곤 한다. 그때마다 조난현장에 맨먼저 달려간 허씨 덕 분에 목숨을 건진 등산객도 여럿이다.

그런 투철한 직업의식을 가진 그인지라, 그의 작품 속에 담긴 피사체도 산장과 향적봉 주변 이거나 그곳에서 바라본 풍경이 대부분이다. 요즘 들어 그는 카메라를 잡는 일이 부쩍 줄 었다. 제한된 공간에서 사진을 찍다 보니 더 는 찍을 만한 것도 없을 뿐더러 “이제는 모 든 일에 욕심부리지 않고 편안하게 여생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다.

허씨의 산장지기 생활은 단조롭고 여유로우 면서도 하루 일과는 대체로 규칙적이다. 새 벽 6시에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먼저 20ℓ들 이 물통을 지게에 지고 200m쯤 떨어진 샘터 에서 물을 길어온다. 샘터까지의 길이 멀진 않지만, 심하게 비탈진데다가 눈이 수북하게 쌓여 있어 젊은 사람들에게도 쉬운 길은 아 니다.

그런 길을 그는 잘 닦인 평지를 걷듯 오르내린다. 아침식사는 빵이나 비스켓에 커 피를 곁들여 간단히 때운 뒤에 산장과 주변 을 청소한다. 그는 향적봉 산장 주변에 펼쳐 진 자연을 자신의 정원으로 여긴다. 그러니 산장 주변은 물론이고 향적봉 정상까지도 늘 깨끗하다.

청소를 끝내고 난 뒤에는 한가로운 시간이 오랫동안 지속된다. 더욱이 등산객들의 발길 이 뜸한 요즘에는 넓은 산장에서 홀로 지내 는 날도 많다. 그런 날이면 외로움과 추위를 떨치기 위해 술잔을 기울일 법도 하건만, 그 는 산장 안에서는 좀체 술을 마시는 일이 없 다. 찾아오는 손님이 있든 없든 이 산장이 자신의 직장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간혹 산장에서 하룻밤 묵는 등산객들이 술잔을 권 하는 경우에도 그는 ‘근무중’임을 내세워 정 중히 사양하곤 한다. 그러다 보니 이 산장에 머무르고 있는 동안은 술을 아예 끊을 수밖 에 없게 됐다.

카메라는 내 친구
눈 덮힌 덕유산의 풍경을 카메라에 담고
있는 허의준씨. 중봉 삿갓봉 무룡산 남덕유
산으로 이어지는 덕유산 능선뿐 아니라 지리
산 반야봉까지도 저 멀리 아스라하게 보인다.


수입으로만 따지면 이 산장이 그리 좋은 직 장은 아닐 성싶다. 요즘처럼 등산객의 발길 이 뜸한 철에는 하루 매출액이 5만원을 넘지 못하는 날이 다반사다. 더구나 국립공원관리 공단에 지불해야 하는 임대료가 1년에 400여 만원이나 되고, 매점의 물건을 인력이나 헬 기로 운반할 때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그밖에 전기료와 전화료까지 모두 제하고 나 면 실제로 손에 쥐는 돈은 인건비도 되지 않 는다. 그러니 세속의 잣대와 욕심을 모두 버 리지 않으면, 또 산에 미치지 않으면 하기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허씨는 “그래도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맑은 공기 마시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게 행복이 아니겠는가”고 반문하면서 “이 생활 이 정말 편안하다”고 했다. 그런 허씨를 보 면서 문득 덕유산의 크고 넉넉한 산세가 떠 올려졌다.


양영훈〈여행칼럼니스트〉


§ 참조하세요

덕유산

소백산맥의 중간지점에 솟아오른 고봉으로 전라북도 무주군과 장수군, 경상북도 거창군 과 함양군에 걸쳐 있다. 주봉인 향적봉 (1614m)을 중심으로 적상산 두문산 거칠봉 칠봉 중봉 삿갓봉 무룡산 남덕유산 등의 해 발 1000m가 넘는 고봉들이 덕유산맥이라고 일컫는 작은 산맥을 이룬다.

이 일대는 산세 가 웅장하고 계곡미가 수려한 데다 각종 동 식물들이 분포돼 있어 지난 75년 2월 국립공 원으로 지정됐다. 덕유산국립공원을 대표하 는 구천동계곡은 33경으로 유명하다.

28km 에 이르는 계곡을 거슬러오르면 제1경인 나 제통문에서 제32경인 백련담에 이르기까지 기암괴석 폭포 연담(淵潭)과 깨끗한 계류, 울 창한 숲 등이 잘 조화된 절경을 감상할 수 있다. 향적봉은 구천동의 제33경이다.

그의 작품

이 공모전에서 허의준씨에게 대상의 영예를 안겨준 작품은 덕유산 능선의 만개한 진달래 꽃에 상고대가 하얗게 달라붙은 장면을 찍은 사진이다. 89년 5월13일 아침에 찍은 작품인 데, 향적봉을 스쳐가던 구름이 갑자기 기온 이 크게 떨어지자 서리처럼 진달래꽃에 달라 붙었던 것이다.

대체로 기온의 변화가 심한 이른 봄과 늦가을에 많이 나타나는데, 햇살 만 비추면 금세 녹아없어져 버리기 때문에 여간해서는 구경하기가 힘들다. 허씨는 당시 에 부상으로 받은 상금 300만원을 라이카 카 메라 구입에 썼다고 한다.

화사한 눈꽃·해돋이 장엄
“덕유의 겨울 환상적”

덕유산이 한눈에
적상산 안국사에서 바라본 덕유산의
우람한 모습. 스키 슬로프가 나 있는 맨 오
른쪽 봉우리가 덕유산 향적봉이다.

덕유산은 사계절 중에서도 겨울철의 풍광이 가장 웅장하고 수려하다. 특히 눈이 내린 날 이면 향적봉 주변에 무리지어 선 구상나무와 주목마다 화사하게 피어난 눈꽃이 장관이다. 게다가 탁트인 향적봉의 정상에 올라서면 지 리산 남덕유산 가야산 기백산 적상산 등 소 백산맥의 여러 준봉들이 일망무제로 펼쳐질 뿐 아니라 중첩된 산자락 위로 펼쳐지는 해 돋이도 장엄하기 그지없다.

무주 구천동에서 덕유산 정상까지의 등산로 는 비교적 수월한 편이다. 매표소에서 백련 사까지는 평탄한 계곡길이 이어지는데, 빙설 (氷雪)과 정적 속에 잠긴 겨울철의 계곡은 색다른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백련사에서 향적봉까지는 가파른 능선길이므로 겨울철에 는 아이젠을 반드시 준비해야 한다. 매표소 에서 백련사까지는 1시간쯤, 그리고 백련사 에서 정상까지는 2시간 가량 소요된다.

향적봉 정상에서 일출을 감상하려면, 무리해 서 야간산행을 시도하기보다 ‘산악인의 집’(0657-322-1614)에서 하룻밤을 묵는 게 좋다. 이 산장에서는 침낭(3000원)과 전기장 판(2인용·5000원)을 대여할 수 있고, 라면 통조림 커피 비스켓 음료수 등도 구입할 수 있다. 산장 이용료는 하루에 3000원.

덕유산국립공원의 북서부지역인 적상산 (1034m)도 한번 둘러볼 만하다. 최근 양수발 전소가 들어서면서 정상 부근까지 찻길이 뚫 려 쉽게 오르내릴 수 있다. 정상 부근에 자 리잡은 안국사는 조선시대 당시 적상산 사고 (史庫)를 지키는 승병들의 숙소였던 고찰이 다. 지금은 댐 건설로 본래의 절터를 옮기는 바람에 고색창연한 멋을 느낄 수는 없지만 경내 어디에서도 우람한 덕유산이 한눈에 들 어올 만큼 조망이 빼어나다.



Copyright(c) 1997 All rights Reserved.
E-mail: newsroom@mail.dong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