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에 기대어 살아가는 뱃사람들은 몸이 뭍에 있을 때에도 마음은 늘 창망(滄茫)한 바다 위에 떠 있다.
삶과 죽음이 바다에 맞닿아 있는 사람들인지라, 일상에서 반복되는 희로애락마저 바다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
바다가 폭풍우로 들끓으면 그들의 가슴에도 노여움이 일렁이고, 바다가 평온하고 풍요로워질
때에는 그들도 너그럽고 넉넉해진다. 뱃사람들이 모여 바다처럼 격정적인 삶을 이어가는 포구는 언제나
활기가 그득하다. 경북 영덕의 강구항은 특히 겨울철에 어느 포구보다도 치열한 삶과 왕성한 생명력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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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와 싸우고 그물과 씨름하고
강구항의 대게잡이 어부 김일수씨가 해거름녘이 다 돼서야
포구에 들어온 창용호의 일을 돕고 있다. 대게는 집게로 그
물을 물고 늘어지는 습성이 있어 그물에서 잘 떨어지지 않을
뿐더러 그물을 곧잘 끊어버리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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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구항의 하루는 출어를 앞둔 어부들의 부산
한 움직임과 함께 시작된다. 어둠이 짙게 깔
린 새벽 4시, 뿌연 입김을 내뿜으며 나타난
어부들은 저마다 배 위에 올라 출어준비를
서두른다.
요란한 엔진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뱃전을 환하게 밝힌 불빛들로 부두
는 금세 불야성을 이룬다. 이미 출항신고를
마치고 칠흙같은 바다로 내달리는 어선들도
적지 않고, 야간작업을 마치고 수십개의 집
어등을 환하게 밝힌 채 귀항하는 오징어잡이
배들도 있다.
부두 한쪽에 몰려 있는 대게잡이 어선들도
대략 새벽 5시경이면 출어를 시작하는데, 청
운호(3.71t)의 선장 김일수씨(46)가 부두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도 그맘때 쯤이다. 그러
나 겨울바다는 한치 앞도 예측할 수 없을 만
큼 날씨가 돌변하기 때문에 출어시간은 일정
하지 않다고 한다. 그래도 김씨는 매일같이
새벽 서너시만 되면 어김없이 일어난다. 기
상상태를 먼저 확인한 다음 출어가 결정되면
때이른 아침식사를 서둘러 마치고 부두로 나
선다.
김씨가 자신 소유의 청운호로 대게잡이에 나
선지는 올해로 3년째. 그는 강구항에서 북쪽
으로 40여리쯤 떨어진 어촌인 영덕읍 석리에
서 나고 자랐지만, 원래의 직업은 뱃일과는
거리가 먼 건설기능공이었다. 한창 중동 건
설붐이 일던 시절에는 머나먼 사우디아라비
아에 파견되어 제법 많은 돈을 송금하기도
했다. 그러나 막상 고향에 돌아와 보니 그가
낯선 이국 땅에서 땀흘려 번 돈은 한푼도 남
아 있지 않았다. 당시의 신문지상에 하루도
빠짐없이 오르내리던 ‘사우디 파견 근로자와
부정한 아내’에 관한 기사가 바로 자신의 이
야기였던 것이다.
부인과 이혼한 뒤 그는 세
자식들과 함께 이곳 강구항으로 들어와 뱃일
을 시작했다. 청운호를 장만하기 전까지는
독도와 일본 연근해에서 오징어나 홍게를 잡
는 큰 어선의 선원생활을 10여년 동안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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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선의 꿈을 싣고…’
대게잡이 조업을 마치고 강구항으로 들어오고 있는 청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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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청운호는 선장인 김씨와 선주격인 남영
갑씨(여·49)의 공동 소유다. 김씨와 절친했
던 의형(義兄)의 부인인 남씨는 몇해 전 남
편(김일수씨와는 동명이인으로, 큰 어선의
선원으로 일할 적에 만났다가 서로 의형제를
맺었다고 한다)이 세상을 뜨자 김일수씨와
절반씩 투자해 청운호를 사들였다고 한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김씨와 남씨는 함께
조업할 뿐만 아니라 배에서 얻는 수익금도
똑같이 나누는 동업자 관계다.
김씨의 청운호와 같이 강구항에 적(籍)을 두
고 대게잡이를 나서는 배는 모두 15척 가량
되지만, 일본과의 중간수역인 대화퇴어장이
나 독도 근해까지 나가 조업하는 30~50t급의
중대형 어선은 2척에 지나지 않는다. 나머지
는 모두 3~5t급의 소형 어선들이라 조금만
파도가 높거나 바람이 불어도 부두에 발이
묶이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혹 날씨가 좋은
날에도 먼 바다로는 나가지 못하고 항구에서
15∼25km쯤 떨어진 근해에서만 조업한다.
청운호가 대게잡이 그물을 설치해 둔 지점도
포구에서 배로 1, 2시간쯤 떨어진 해역이다.
대게는 강구항와 강원도 삼척 사이 수심 120
∼370m 가량의 연근해에 형성돼 있는 ‘무화
짬’과 ‘왕달짬’이라는 해저산맥(海底山脈)에
주로 서식한다.
이 해역에는 밑바닥에 개흙
대신 깨끗한 모래가 깔려 있어 대게가 서식
하기에 아주 좋은 환경이라고 한다. 그러나
청운호와 같이 작은 대게잡이 어선들은 주로
수심 120∼200m쯤 되는 해역에다 그물을 드
리운다. 대게잡이에 있어서는 그물을 놓는
위치를 잘 잡는 것이 관건인데, 먼저 대게들
이 이동하는 길목에 그물을 놓아야 만선의
기쁨을 맛볼 수 있다.
목 좋은 곳이더라도
다른 배의 그물과 얽히지 않도록 간격을 넉
넉하게 유지해서 그물을 설치해야 한다. 대
게잡이 그물은 길이가 750m에 달하는 데다
해류를 따라 조금씩 이동하기 때문에 서로
얽히는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물을 설치해 놓은 위치는 어군탐지기의
GPS(Global Position System·위성항법장
치) 기능을 이용해 정확한 위도와 경도를 노
트에 기록해 둔다.
망망하고 어두운 바다에서 제 배의 그물이
설치된 곳을 찾는 일은 백사장에서 바늘 하
나를 찾아내는 것과 같다. 그래서 예전에는
그물의 위치를 표시한 부표를 찾아 한나절이
나 바다를 헤매고 다니는 일도 종종 있었다
고 한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소형 어선에도 GPS기능
을 갖춘 어군탐지기가 설치돼 있어 부표를
찾기가 그다지 어렵지 않다. 항구를 빠져나
온 뒤부터 어군탐지기에 표시된 위치를 수시
로 확인하면서 바다를 달려온 청운호의 선장
김씨도 깜깜한 수면 위에 떠 있는 부표를 단
번에 찾아냈다. 배를 멈춰 세우고 부표 끝에
매달린 줄을 끌어올리자 그물과 함께 길쭉한
대게가 연신 따라올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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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얼마나 받을라나…
강구 수협의 위판장에서 대게를 경매하는 모습. 대게는 자율적으로 판매할 수 있기 때
문에 경매를거치지 않고 상인이나 일반 소
비자들의 손으로 넘어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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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나올 때마다 뱃멀미에 시달린다는 동
업자 남씨도 재빨리 작업복을 덧입고서 그물
에 걸린 대게를 떼어내기 시작했다. 거센 파
도와 바닷바람 때문에 배가 뒤집힐 듯 요동
치는데도 김씨와 남씨는 각자 정해진 자리에
걸터앉아 분주하게 손을 놀렸다. 두어시간쯤
계속된 조업은 해가 수평선 위로 한참 솟아
오른 뒤에야 모두 끝났다. 내내 긴장된 표정
으로 그물을 거둬올리던 김씨가 밝은 낯빛을
띠며 포구 쪽으로 뱃머리를 돌렸다.
“오늘같이 파도가 치고 바람 부는 날은 그래
도 견딜 만합니다. 바닷일을 하기에 어디 좋
은 날이 있습니까. …좋게 생각하면 늘 좋은
거고 안좋게 생각하면 발 밑이 칠성판이죠.
내 능력 밖의 일들은 내가 거기에 맞춰 사는
수밖에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렇게 무덤덤한 속내를 내비치면서도 김씨
는 “바다에 나가 있다 보면 육지가 그립고,
멀리 포구가 눈에 들어오면 반가운 마음이
앞선다”고 했다.
거센 파도와 바람 속에서 거둬들인 대게는
포구에 도착하자마자 그물에서 일일이 손으
로 떼어낸다. 대게는 집게로 그물을 물고 늘
어지는 습성이 있어 그물에서 잘 떨어지지
않을 뿐더러 그물을 곧잘 끊어버리곤 한다.
그래서 대게잡이 그물은 세번 이상을 쓰기가
어렵다. 또한 그물에 걸린 대게라고 해서 모
두 상품이 되는 것도 아니다. 흔히들 ‘빵게’
라고 일컫는 암컷과 몸통 길이가 9㎝를 넘지
못하는 어린 대게는 산 채로 다시 바다에 방
류해야 한다. 게다가 그물에서 대게를 빼내
는 작업은 일정한 장소에 배를 정박시켜 놓
은 상태에서 이루어지는데, 이는 어린 대게
와 ‘빵게’의 불법적인 유통을 막기 위함이다.
그물에서 대게를 떼내는 작업을 할 때에는
경찰들이 수시로 작업상황을 지켜보기도 하
고, 방류 대상으로 분류된 대게의 수량은 '방
류일지'에 기록된다. 그리고 이런 과정을 거
쳐 선별된 대게는 수협 위판장을 통해 경매
에 붙여지거나 상인과 일반 소비자들에게 곧
바로 팔려나기도 한다.
대게를 그물에서 모두 떼낸 뒤에는 다시 그
물을 추스리는 작업이 이어졌다. 어느 한 곳
성한 데 없이 찢긴 그물을 끝까지 죄다 추스
르는 김씨의 모습이 저녁노을이 내려앉은 수
면에 어른거렸다. 치열하고도 고달픈, 그러나
강인한 생명력과 끈기로 이어져온 뱃사람 김
씨의 하루도 그렇게 저물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