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24·경남 창원 ‘주남 저수지’
“새떼예? 우리한텐 농사 망치는 웬수라예”


  새 를 찾아 떠나는 여행, 즉 탐조여행만큼 감동적이고도 낭만적인 여행도 드물다. 새는 그 자체가 살아 있는 자연이고, 탐조여행은 바로 그 생명력 넘치는 자연과 하나가 되는 여행이기 때문이다. 수천 수만마리의 새들이 한꺼번에 하늘을 날아오르는 모습은 어떠한 자연경관보다도 감동적이며,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노라면 노루 꼬리만한 겨울 해가 아쉽기만 하다.

철새, 보기는 좋지만…
철새보호원인 이정한씨(48)가 해거름녘에
동판저수지로 날아드는 철새를 관찰하고 있다.

그리고 아무리 소박한 때깔의 새라도 저마다 독특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것을 보면 탐조여행의 재미는 더욱 쏠쏠해진다.

예닐곱해 전쯤 처음으로 탐조여행의 매력을 알고 난 뒤부터 해마다 겨울이면 ‘철새들의 낙원’이라는 경남 창원의 주남저수지를 찾곤 했다.

특히 해가 뜨고 질 무렵마다 주남저수 지의 오렌지빛 하늘을 무대삼아 펼쳐지던 가 창오리떼의 현란한 군무(群舞)는 평생토록 잊히지 않을 감동과 경이였다. 게다가 고니 떼의 우아한 자태와 기러기들의 정연한 비행 대열도 지척에서 바라볼 수 있었기에 그곳까 지의 천리길이 멀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올 겨울에 다시 찾은 주남저수지는 더 이상 철새들의 낙원이 아니었다. 희귀 철 새인 재두루미(천연기념물 제203호)와 노랑 부리저어새(천연기념물 제205호)는 물론이고 예전에는 아주 흔하던 청둥오리 기러기 고니 (천연기념물 제201호)들도 눈에 띄게 줄었다.

8년째 이곳에서 철새보호원으로 일했다는 유 차석씨(47)는 그 가장 큰 이유를 “인근 마을 에 사는 어부들이 저수지에서 무분별하게 고 기를 잡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대체로 11월 초순경부터 새들이 날아드는 데, 올해는 추석이 지나자마자 날아들었습니 다. 한달쯤 빨리 찾아온 셈이죠. 처음엔 재두 루미도 한 300마리가 무리지어 날아와 저수 지 상공을 40여분쯤 빙빙 돌기도 했습니다.

그러더니 20~30마리는 저수지 안쪽의 갈대밭 에 내려앉고 나머지는 그냥 날아갔어요. 내 려앉았던 새들도 고깃배들의 요란한 모터소 리에 놀라서 금새 달아났습니다. 아마 일본 으로 건너간 것 같아요.”

현재 주남저수지에서 월동하는 재두루미는 두 마리. 그나마도 깊숙한 갈대숲에 숨어 있 다시피 해서 육안으로는 찾기가 쉽지 않았 다. 예전에는 저수지의 갈대숲과 수심이 얕 은 모래톱에서 수천마리씩 무리지어 앉아 있 거나 자맥질하는 기러기 청둥오리 고니 등을 쉽게 볼 수 있었는데, 올 겨울에는 통틀어 100마리도 되지 않을 성싶었다. 그런데도 탐 조객들의 발길은 끊임없이 이어졌고, 텅빈 저수지를 바라보던 그들은 이내 실망감을 감 추지 못했다.

‘주남저수지’라는 지명은 흔히 주남저수지 동 판저수지 산남저수지 등 세 저수지를 통칭하 는 말. 총면적이 180만평쯤 되는 세 저수지 는 오래 전에 낙동강이 범람해 형성된 자연 습지로서 물길이 서로 이어져 있는데다 거리 가 가까워 하나의 자연 생태계를 이룬다.

이곳에 겨울 철새들이 떼지어 날아들기 시작 한 것은 15년 전쯤부터였다고 한다. 한때 동 양 최대의 철새 도래지였던 을숙도에 낙동강 하구언댐이 건설돼 강물의 오염이 점차 심각 해지고 갈대숲의 면적도 크게 줄었다. 그러 자 을숙도에서 겨울을 나던 철새들은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아 이곳에서 30km쯤 떨어진 주남저수지로 날아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을숙도를 떠나온 철새들이 이곳을 새로운 보 금자리로 선택한 것은 무엇보다도 먹이가 풍 부하기 때문이었다. 저수지의 얕은 물 속에 는 검정말 마름 생이가래 개구리밥 등의 수 초와 각종 민물고기가 많이 서식하고, 주변 의 드넓은 들판에는 벼이삭과 곡식의 낟알이 지천으로 깔려 있으니 수만마리의 철새가 몰 려와도 먹이가 부족하진 않았다.

게다가 저 수지 가장자리에 우거진 갈대숲은 새들의 훌 륭한 은신처이자 보금자리가 됐고, 저수지의 서남쪽으로는 산자락이 병풍처럼 둘러 있어 새들이 겨우내 아늑하게 지낼 수가 있었다.

또한 한겨울에도 수면이 잘 얼어붙지 않는 남쪽 지역이기 때문에 새들이 자맥질하며 먹 이를 구하기 쉽다는 점도 새들이 겨울을 나 기에 적합한 조건이었다.


동판저수지에서 밤을지샌 기러기들이
아침안개와 함께 먹이를 찾아서 날아가고 있다.

이처럼 철새도래지로서의 조건을 두루 갖춘 주남저수지에는 매우 다양한 종류의 겨울 철 새들이 해마다 평균 5만여마리씩 찾아들곤 했다.

특히 가창오리 청둥오리 큰기러기 쇠 기러기 큰고니 고니 고방오리 흰죽지 등은 수천에서 수만이나 되는 큰 무리를 지어 날 아들어와 겨울을 보냈다.

그리고 많은 수는 아니지만, ‘겨울의 진객(珍客)’이라는 재두루 미와 노랑부리저어새도 해마다 어김없이 이 곳을 찾았다. 그러나 올해에는 이곳의 세 저 수지에서 월동하는 철새의 수가 모두 1만마 리도 되지 않을 듯했다. 이는 국내 최대의 겨울 철새도래지로 손꼽히던 10여년 전에 비 하면 5~10%에 지나지 않는 수다.

밀렵 폐수방류 등과 같은 불법행위가 예전보 다 많이 줄었음에도 불구하고 철새의 수가 이처럼 격감한 것은 ‘합법적인’ 환경파괴행위 가 늘어났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저 수지에서의 무분별한 어로작업이 그 대표적 인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이들은 물고기를 몰기 위해 뱃전을 요란하게 두들기는가 하 면, 배의 엔진소리를 최대로 높여 수면에 앉 은 철새들을 내쫓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그 런데도 어로 허가를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아 무런 제재도 없을 뿐더러 오히려 지방자치단 체에서는 내수면어업허가를 2000년 3월까지 연장해주기까지 했다.

주변 농경지에 비닐하우스가 증가하는 것도 새들을 감소하게 하는 요인. 비닐하우스가 들어서면 새들이 먹이를 주워먹을 만한 땅은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이다. 더욱이 비닐하우 스가 설치되지 않은 논들 중에는 갈아엎은 곳이 적지 않다.

그러니 새들은 이래저래 먹 고살기가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주민들의 입장에서 볼 때에는 농사를 망치는 새들을 너그럽게 봐줄 수가 없다. 떼지어 몰 려온 새들은 파종한지 얼마 되지 않은 씨앗 은 물론이고 막 돋아나기 시작한 밀과 보리 의 새싹까지 남김없이 먹어치우기 일쑤다.

특히 보리의 새파란 잎을 아주 좋아하는 기 러기떼가 보리밭에 앉으면 그해 보리농사는 ‘결딴’이 난다. 그런 이유로 아예 보리농사를 작파한 채 겨우내 논을 묵혀두는 주민도 적 지 않다고 한다.

주남마을의 한 주민은 “새떼로부터 본 피해 는 한푼도 보상해주지 않으면서 새들만 보호 하라고 들볶아대는 정부의 처사에 분통이 터 진다”면서 언성을 높이기도 했다.

“날자 날자꾸나”
곡식낟알을 주워먹던 기러기들이
무엇엔가 놀란듯 떼지어 날아 오르고 있다.

정부에서 는 ‘두루미들의 천국’으로 불리는 일본 이즈 미_지방의 경우처럼 주변의 농지를 겨우내 임차하는 방안도 모색하고 있다지만, 소요될 예산이 만만치 않아 실현 가능성은 밝아 보 이지 않는다.

그밖에도 동판저수지 인근의 동읍 신엄리에 들어선 1000세대 규모의 고층아파트 단지도 철새들의 편안한 휴식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다. 아파트 공사가 시작될 때부터 지역의 환 경운동 단체들은 “고층 아파트가 들어서면 새들이 날아다니다 부딪힐 우려가 있을 뿐 아니라 밤에 아파트의 불빛으로 인해 새들이 편안하게 잠을 잘 수 없을 것”이라며 공사 중지를 요구했다.

그러나 이 문제는 공사 주 체인 군(軍)과 아파트 입주자들이 철새 보호 운동에 적극 동참하겠다는 다짐을 하는 것으 로 일단락됨으로써 본질적인 문제는 전혀 개 선되지 않았다.

이런 일들이 계속되는 가장 큰 이유는 주남 저수지의 철새를 보호하려는 당국의 의지와 정책이 매우 미흡한 탓이다. 특히 관할 지자 체에서는 이곳을 영구히 보존해야 하는 자연 생태계로 인식하기보다는 수익성 높은 관광 상품쯤으로 보고 있는 듯하다.

그러니 이렇 다할 정책은 마련하지 않고, 진입로의 확-포 장, 주차장 개설, 전망대와 안내판 설치, 편 의시설 확충 등에만 예산을 쓰고 있다. 일본 이나 구미 선진국들에서처럼 철새도래지의 농민과 어민들이 보는 피해를 적법하게 보상 해줌으로써 사람과 새들이 공존할 수 있게 하는 정책과는 한참 거리가 멀다.

가시적인 철새보호정책으로는 주남저수지 입 구에 감시초소를 설치하고 철새보호원들을 배치한 것을 들 수 있다. 그나마도 지난해까 지는 26명을 채용했다가 올해에는 4명으로 줄였다.

이 철새보호원들은 11월1일부터 이 듬해 2월말경까지 넉달 동안 임시로 채용돼 하루에 10시간 가량 근무하고 일당 2만9650 원을 받는다고 한다. 그들은 스스로를 ‘철새 따라 왔다가 철새따라 돌아가는 인생’이라고 자조섞인 농감을 곧잘 하지만, 그래도 그들 의 순찰활동 덕분에 독극물이나 공기총에 의 한 밀렵행위는 크게 줄었다고 한다.

하지만 정부와 지자체의 적극적이고 실효성 있는 보호정책이 한시 바삐 마련되지 않으면 이 ‘낙원’에서도 철새들의 힘찬 날갯짓을 더 이상 볼수 없게 될지도 모르겠다.


양영훈〈여행칼럼니스트〉


§ 참조하세요

가창오리
수컷의 머리부분에 선명한 태극무늬를 띠고 있어 태극오리 반달오리라고도 불리는 겨울 철새. 전세계에 10여만마리밖에 남지 않은 국제보호조이기도 하다. 시베리아의 우수리 지방에서 번식하는 가창오리는 찬바람이 불 기 시작할 무렵부터 이듬해 2월말경까지 우 리나라에서 겨울을 난다.

그동안 주남저수지 는 가창오리의 대표적인 도래지였는데, 적게 는 몇천마리에서 많게는 5만마리쯤이 해마다 날아들곤 했다. 그러나 주남저수지의 환경이 급속히 악화된 3, 4년 전부터서는 서산 천수 만간척지와 논산의 탑정저수지가 가창오리의 새로운 도래지로 자리잡고 있다.

이즈미_지방
두루미를 비롯해 재두루미 흑두루미 등 1만 여마리가 월동하는 세계 최대의 두루미류 도 래지로서 1694년부터 두루미들이 날아들기 시작했다고 한다. 두루미류는 주로 시베리아 에서 번식하는데, 해마다 10월 중순부터 한 반도를 거쳐 이곳으로 날아와 월동한 뒤 이 듬해 3월 번식지로 되돌아간다.

이 기간에 정부에서는 두루미 월동지 주변의 농경지 51ha를 임차해 새들이 편안히 쉴 수 있도록 배려해 주고, 주민들도 새들을 놀라게 하거 나 해를 끼치는 행위를 절대로 하지 않는다 고 한다. 민관이 합심해서 펼치는 그런 노력 과 보호정책 덕택에 이곳이 ‘두루미의 천국’ 이 될 수 있었다고 한다.

“끼룩 끼룩 끼루룩”
새들이 부른다

자연의 몸속으로
주남저수지의 제방에서 자전거를
타고 있는 어린이들이 평화롭다.

철새들의 수가 크게 줄어들긴 했지만, 주남 저수지는 여전히 탐조여행을 즐기기에 가장 좋은 조건을 갖춘 곳이다. 고속도로와 국도 에 인접해 있어 찾아가기도 쉬울 뿐더러 수 면이 넓지 않은 편이라 새들을 관찰하기도 쉽다. 탐조여행을 떠날 때는 될 수 있으면 원색의 옷차림은 피하고 쌍안경과 조류도감 을 미리 챙겨가는 게 좋다.

주남저수지를 찾 은 사람들의 대부분은 주남저수지의 제방 위 를 잠깐 걷다가 훌쩍 떠나버리기 일쑤인데, 그곳까지 찾아간 김에 동판저수지를 둘러보 기를 권한다. 유명세를 타는 것은 주남저수 지이지만 실제로 많은 철새들이 몰려 있는 곳은 동판저수지다.

또한 새 구경을 하기에 가장 좋은 시간은 가장 활발하게 새들이 움 직이는 동틀녘과 해거름녘이며, 안개 자욱한 동판저수지의 새벽 풍경은 그 자체로도 놓칠 수 없는 볼거리이다.

주남저수지에서 그리 멀지 않은 창원시 동읍 과 진영에는 장급여관이 몇군데 있다. 그리 고 주남저수지에서 차로 20~30분 거리인 창 원시 북면 신촌리의 마금산온천은 여느 온천 지구와는 달리 한적한 분위기에서 여유롭게 온천욕을 즐길 수 있고, 온천탕과 객실을 갖 춘 호텔과 장급여관도 여럿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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