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오름에 소 방목…우린 소처럼 산다우”
  흔
히 “제주도가 한라산이고, 한라산이 곧 제주도”라고 한다. 제주도 한복판에 한라산이 치솟은게
아니라 섬 자체가 한라산이라는 말이다. 쾌청한 날에 진도나 완도의 어느 산정(山頂)에서 제주도를
바라보면 이 말이 실감난다. 검푸른 수평선 위로 제주도가 아스라한데, 마치 거대한 산 하나가
바다에 떠있는 듯하다. 그러나 배를 타고 제주도 가까이 다가가면 한라산 중턱부터 바닷가까지
곳곳마다 알통처럼 불거진 숱한 오름들이 눈에 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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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값 파동에 시름만…
용눈이오름의 공동목장에 방목했던 소떼를 몰고 마을로 돌아오는 주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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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면적 1820㎢의 제주도에 흩어져 있는
오름은 모두 360여개. 대략 5㎢마다 하나씩
있는 셈이다. 그러나 오름의 최대 밀집지인
북제주군 구좌읍 송당리 일대에는 평균 2.6
㎢에 1개꼴로 솟아 있다. 이곳 오름들의 좌
장격인 높은오름(高岳·405m)의 꼭대기에
서서 사방을 둘러보면 오롱조롱 솟아오른 오
름들이 열병식에 늘어선 병사들 모습처럼 장
중하고 엄숙하다. 아부오름 당오름 체오름
샘이오름 민오름 비치미오름 백약이오름 동
거문오름 용눈이오름 손자봉 돛오름 다랑쉬
오름(월랑봉)….
관광객들에게는 이 오름들이 이국적이고 목
가적인 풍경으로만 비칠지 모르지만, 제주
사람들에게는 피눈물로 개척한 생업의 터전
이었다. 특히 오름이 밀집된 중산간(中山間)
지역의 주민들은 ‘오름 아래에서 태어나 오
름에 깃들여 살다가 오름 중턱에 묻힐’ 정도
로 오름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그들의 가장 중요한 생업 목축업은 삼별초군
이 진압된 뒤 제주도가 몽고의 목마장이 된
13세기 후반부터 본격적으로 발달했다. 그리
고 바로 이 무렵부터 외세에 의한 제주도의
지배가 강화돼 오름은 제주 사람들의 피와
눈물이 얼룩진 역사의 현장이라는 의미도
갖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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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공동목장
용눈이오름 정상에서 본 상도리 공동목장. |
제주도를 점령한 몽고는 말을 기르기에 좋은
이 섬을 고려로부터 분리시켜 원(元)의 직할
자치구로 만들고 일본 정벌의 중간 기지로
삼았다. 그리고 충렬왕3년(1277) 수산평(지금
의 성산읍 수산리 일대)에 몽고 말 160마리
를 방목한 이후 소 나귀 양 낙타 등의 가축
과 목호(牧胡·몽고인 목자)들을 들여와 목
장의 체계를 갖췄다.
약 100년간 계속된 몽
고의 지배가 끝나고 조선시대에 들어와서는
그동안 열곳이던 목장을 세종 때 열세곳으로
늘리고 관리를 체계화했다. 그러나 목마(牧
馬)에 따른 관의 작폐가 극심해서 섬 사람들
의 고통이 이만저만 큰게 아니었다.
몽고의 지배기부터 조선 중기까지 지속된 관
영목장제도는 정조 때 비로소 폐지됐다. 그
리고 목장의 소유권이 인근 마을의 백성들에
게 주어짐에 따라 자연부락 단위의 공동목장
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한라산 중턱의 구릉
지대부터 바닷가까지 부챗살처럼 펼쳐진 목
장과 목초지는 마을의 크기에 따라 공평하게
나뉘어 마을 공동목장의 토대가 됐다.
북제주군 구좌읍 상도리의 마을공동목장도
처음엔 그렇게 시작됐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러나 가축 수가 점차 늘자 인근의 사유지
를 사들이거나 일부 주민들이 자기 땅을 희
사했고, 오늘날에는 전체 면적이 70만평으로
늘어났다. 이 공동목장이 들어선 곳은 마을
에서 시오리 가량 떨어진 중산간지역의 오름
지대. 한복판에 솟아있는 용눈이오름(247m)
을 비롯해 30여만평의 목초지에만 마소를 방
목하고, 나머지 40만평은 억새와 덤불이 우
거진 황무지로 남아 있다.
이곳이 마을공동목장이긴 하지만 모든 상도
리 주민들이 공동으로 소유권을 갖는 것은
아니다. 법률적이고도 실제적인 소유권과 사
용권은 동부축산계의 계원들만 갖고 있다.
150여호에 이르는 상도리 주민들 가운데 동
부축산계의 계원으로 가입된 사람은 현재 63
명. 축산계장인 정공삼씨(40)에 따르면 {계원
이 아닌 사람이 공동목장에 말이나 소를 입
식하려면 먼저 가입비를 내고 계원으로 가입
해야 한다}는 것이다. 계원의 가입과 탈퇴는
별로 까다롭지 않은 반면 재산권의 행사는
매우 제한적이고 엄격하다. 특히 목장을 매
매하는 등의 문제는 전체 계원이 만장일치로
동의하지 않으면 효력이 없다.
옛날에는 마을 주민이면 누구나 마을공동목
장에 마소를 방목할 수 있었다. 설령 군유지
나 국유지라고 해도 목초만 무성하면 마소떼
를 이동시키며 풀을 뜯게 했다. 이처럼 자유
로운 방목지였던 땅이 개인소유의 대규모 목
장으로 바뀌기 시작한 것은 1968년부터. 당
시 축산진흥정책을 내걸었던 정부에서는 축
산 기업농들에게 각종 금융지원과 특혜를 베
풀었다. 그러자 목축하기에 좋은 조건을 두
루 갖춘 제주도에도 대규모 목장이 속속 들
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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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키우는 일 그만둬야겠어…”
특별한 표식이 없어도 많은 소들 가운데서 제소를 어김없이 찾아낸다. |
그러나 정부의 축산정책이 실패하면서 목장
조성은 땅투기의 구실로 전락했고, 70년대
중반에 이르러서는 제주도 전역이 투기 열풍
에 휩쓸렸다. 그 결과 중산간 초원지대의
70~80% 가량이 외지인들에게 넘어갔을 뿐
아니라 60년대까지 120군데가 넘던 마을 공
동목장도 40여개나 사라져버렸다. 실패한 축
산정책이 남긴 폐단은 그뿐이 아니었다.
브라만 산타 앵거스 샤르레 시멘탈 등과 같이
이름조차 생소한 외국산 고깃소가 대량으로
도입됨으로써 육질 좋고 일 잘하는 제주 토
종 한우가 급격히 사라져 갔다. 더욱이 마을
공동목장의 소유권을 둘러싸고 송사가 빈번
해서 순박한 마을 사람들이 법정에 드나드는
일까지 생겨났다. 옛날에는 마을공동목장의
소유권이 몇몇 유지의 이름으로 등기돼 있는
경우가 많았는데, 땅값이 크게 오르자 그 후
손들이 제 것이라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상도리 마을공동목장의 소유권이 모든 계원
들의 명의로 등기돼 있는 것도 그런 송사를
방지하려는 의도인 듯하다.
상도리의 공동목장에 마소를 방목하는 기간
은 매년 5월5일부터 11월30일(또는 10월31
일)까지로 정해져 있다. 이 기간이 아닌 때에
는 어느 누구도 가축을 목장 안에 들여 놓을
수 없다. 그리고 방목된 소나 말은 사료를
주거나 돌보지 않아도 되며, 간간이 목장 주
변의 울타리를 보수하거나 방역 작업하는 것
말고는 특별히 신경쓸 일이 없다.
게다가 섬이라는 지리적 특성상 육지로 반출
하거나 도살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소들을
도난당할 우려도 거의 없다. 그러니 육지의
축산농가보다 훨씬 적은 비용으로 수월하게
소를 키울 수 있는 것이다. 대신에 계원이라
해도 공동목장에 방목하려면 해마다 입식료
(入植料)를 내야 한다. 입식료는 연초에 열리
는 정기총회에서 그해에 들어올 가축의 수와
목장운영비를 감안해 정해지는데, 올해에는
두당 3만원이었다. 그렇게 거둬들인 돈은 목
장의 토지세, 목장 주변의 울타리 보수비, 계
원들의 새참값 등으로 쓰인다.
근래에는 동부축산계 계원들 모두가 소만 키
우는데, 지난해 300여마리에 달했던 소가 올
해 상반기에는 170여마리로 줄었다. 그리고
소값이 폭락하자 11월말에는 다시 80여마리
로 크게 줄었다. 열다섯살 때부터 시작해 70
여년간 목축업을 해왔다는 고순표씨(85)도
“올초까지만 해도 30여마리의 소를 키웠지만
한두마리씩 팔아치우고 지금은 열다섯마리만
남았다”면서 “그것도 모두 팔아버리고 이제
는 소 키우는 일을 그만두겠다”고 말한다.
평생 해온 일에서 기꺼운 마음으로 손을 떼
지 못하는 그이의 처지가 안타까워 보였다.
그뿐 아니라 이 오름에 깃들여 사는 모든 사
람들이 맞게 될 올 겨울은 유난히도 길고 추
울 성 싶었다. 이 머나먼 남쪽 섬의 외진 들
녘까지도 ‘IMF의 모진 광풍’이 휘몰아치고
있기 때문이다.
양영훈〈여행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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