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다 연어야…그물 터지게 몰려오라”
  땅
거미가 내려앉을 무렵, 온종일 쾌청했던
가을하늘에 짙은 먹구름이 몰려들었다. 이윽
고 밤이 이슥해지자 제법 굵은 빗방울이 떨
어지기 시작했다. 비온 다음날에는 연어가
많이 든다는 말을 익히 들었던 터라, 밤새도
록 그칠 줄 모르는 가을비가 오히려 반가웠
다.
이튿날 새벽, 어둠이 걷히지 않은 빗길을 달
려 찾아간 강릉 연곡천의 연어잡이 살막에서
는 이효치(57) 최종렬씨(59) 등이 날이 밝기
를 기다리고 있었다. 작은 비닐하우스 같은
살막은 장정 셋이 앉기에도 비좁아 보였지
만, 염치불구하고 좁은 방바닥에 올라앉았다.
 |
“백마리는 넘는 것 같지?”
연곡천 연어포획장의 관리를 맡은 이효치씨와 최종렬씨가
둔치에 서서 간밤에 포획망 안으로 들어온 연어의 수를 헤아리고 있다.
|
연곡천의 연어포획장은 현재 이효치씨와 최
종렬씨가 공동으로 관리를 맡고 있다. 이씨
가 이곳의 관리를 맡기 시작한 것은 양양 내
수면연구소가 설립된 지난 84년. 내수면연구
소의 설립과 함께 강릉의 연곡천, 양양의 남
대천, 고성의 명파천과 북천에 연어포획장이
설치된 것이다.
해마다 10월11일부터 11월30
일까지 설치되는 연어포획장은 내수면연구소
에서 직접 관리하는 남대천을 제외하고는 모
두 현지 주민들 중에 선정된 두 사람이 맡고
있다. 연곡천 하구의 영진2리에 사는 이씨는
부근의 바닷속을 손바닥처럼 훤히 꿰고 있는
베테랑 잠수부이기도 하다.
『이 일을 처음 맡았을 때는 영진리 어촌계장
이었는데, 누구 하나 자진해서 이 일을 하겠
다는 사람이 없었더래요. 일은 번거롭고 돈
도 한푼 받지 못할 일을 누가 하려고 들겠어
요. 도리없이 어촌계장인 내가 떠맡게 됐죠』
그렇게 시작한 일이었지만 『오랫동안 하다보
니 재미도 나고 취미도 붙어서 지금껏 손을
못놓고 있다』고 한다. 최종렬씨는 이씨와의
친분때문에 6년전부터 이 일을 해 왔고, 그
의 형인 종철씨는 『공기좋은 데서 바람이나
쐬며 동생 일을 거들어주려고』 나와 있다.
연어포획장을 관리하는 일은 따로 보수를 받
지 않는다. 보수는커녕 도리어 사비를 들여
포획장을 손질할 때도 있다. 그러니 이씨의
말마따나 재미나 보람을 느끼지 못하면 쉽지
않은 일인 듯했다.
보수와 지원금이 없는 대신 채란(採卵)과 방
정(放精)을 끝낸 연어는 관리인들이 임의로
처분할 수 있다. 하지만 그에 따른 경제적
이득은 거의 없다고 한다. 연어를 구하러 오
는 사람들이 대부분 친지들이거나 인근 마을
의 주민들이라 돈을 받고 팔기가 민망스럽기
때문이다.
어쩌다 연어가 의외로 많이 잡히
는 날이면 귀신처럼 알고 몰려온 사람들로
인해 둔치가 장바닥처럼 붐빈다. 그런 날에
는 심신이 더욱 고달퍼지게 마련이지만, 그
래도 『그물이 터지도록』 연어가 몰려오는 날
이 계속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만큼 일에
대한 보람도 크거니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연어를 나눠줄 수 있기 때문이다.
 |
천하별미 연어포
빨랫줄에 매달린 채 연어포로
만들어지고 있는 연어. |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받다가 밖을 내다보니
어느덧 비는 그치고 동녘하늘이 조금씩 열리
고 있었다. 고무옷을 챙겨든 이씨와 최씨가
밖으로 나갔다. 노을이 붉게 드리워진 덕에
어슴푸레하나마 물속이 들여다보였다.
둔치에 서서 그물 안을 들여다보던 이씨가 『한
서른마리쯤 들어왔구먼』 하면서 포획 채비를
서둘렀다. 그물 안으로 들어간 이씨와 최씨
는 익숙한 솜씨로 연어떼를 한쪽으로 몰아붙
였다.
갑작스런 인기척에 놀란 연어들이 좌
충우돌하며 그물 안을 휘젓고 다녔지만 두
사람의 재빠른 뜰채질을 피하지 못했다. 뜰
채를 한번 걷어올릴 때마다 두세마리씩 잡힌
연어는 암수별로 나뉘어 다시 가두리 그물
속에 던져졌다.
연곡천 하구의 솔숲 사이로 엷은 아침햇살이
비칠 즈음에야 언어포획작업이 모두 마무리
됐다. 강바람이 제법 서늘한데도, 연어들과
사투를 벌인 두사람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
글송글 맺혀 있었다. 물에 젖은 고무옷을 벗
고 따뜻한 커피 한잔으로 한기를 덜어낸 이
씨는 『낮에 다시 들리겠다』며 살막을 떠났
다.
최씨와 그의 형 종철씨는 내수면연구소
의 연구사들이 채란작업을 하러 올 때까지는
연어를 지켜야 한다고 했다. 한창 연어떼가
몰려올 때에는 불법으로 연어를 잡는 사람들
이 적지 않아 잠시도 감시와 단속을 소홀히
할 수 없다.
포획된 연어는 암수별로 가두리 그물에 가뒀
다가 그날 중에 채란과_방정이 이뤄진다. 수
정된 연어알은 인공부화실에 60~70일쯤 넣어
두면 부화하고, 몸길이가 4~6cm 가량으로 자
란 치어는 상류의 깨끗한 물에 방류된다.
올해 양양 내수면연구소에서는 남대천에 1000
만마리, 그리고 나머지 세개의 작은 하천에
100만마리씩 해서 모두 1300만마리의 새끼
연어를 방류했다.
방류된 치어들은 모천에서 30~50일쯤을 보낸
다음 가까운 바다로 나가서 얼마쯤 지낸다.
그러다가 몸길이가 6~10cm쯤 되면 베링해나
알류샨열도 부근의 북태평양으로 이동해 서
너해 동안을 살게 된다.
그곳에서 길이
50~80cm, 무게 3~5kg까지 자란 연어는 먹이
를 배불리 먹고 튼튼한 체격을 갖춘 뒤에 다
시 모천(母川)을 찾아 1만6000km의 멀고 험
난한 여로에 오른다.
그토록 멀리 떨어진 제 고향을 연어가 어떻
게 어김없이 찾아갈 수 있는지는 아직까지도
확실히 알 수 없다고 한다. 다만, 연어는 사
람의 땀 한방울을 800억배의 물에 희석시켜
도 그것을 구별해낼 수 있을 만큼 후각이 예
민하기 때문에, 자신이 태어난 강의 냄새를
맡아가면서 찾아가는 것이 아닌지 짐작할 뿐
이다. 또 어떤 학자들는 별을 보고 방향을
짐작하며 찾아가는 것이라고도 한다.
그러나 제 아무리 후각이 예민하고 기억력이 뛰어난
연어도 제 고향을 다시 찾는 것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거의 바다로 나가기도 전에 모천
의 육식성 어류에 잡아먹히고, 간신히 바다
까지 나갔더라도 큰 물고기의 먹이가 되거나
연근해의 길목마다 쳐놓은 정치망(定置網)에
걸려들기 때문이다.
온갖 우여곡절과 위험을
겪고서 동해안의 모천으로 되돌아오는 연어
는 1.5%도 되지 않는다고 한다.
연어에는 참연어 시마연어 홍연어 등을 비롯
해 모두 7종이 있는데, 영동지방의 하천과
연근해에서 잡히는 것은 대부분 참연어다.
옛날에는 영동지방의 하천말고도 경상도의
동해안이나 낙동강, 섬진강 등지에서도 연어
가 많이 잡혔다고 한다. 연어가 흔했던 그
시절에는, 수입해온 훈제연어나 연어통조림
을 주로 먹는 요즘 사람들과는 달리 소금을
뿌려서 햇볕에 말린 연어포나 소금에 절인
연어알젓을 즐겨먹었다.
오늘날 전해오는 옛
_문헌 중에도 연어의 관한 내용이 적지 않
은데, 특히 연어의 맛이 매우 좋다는 점을
빠짐없이 언급하고 있다.
연어의 모천회귀 행렬이 절정에 이르는 시기
는 대체로 10월25일에서 11월10일까지의 보
름간이다. 보통 하루에 10~30마리쯤 포획되
는 연곡천에서도 이 기간에는 100마리가 넘
게 잡히는 날이 있다. 이곳 연곡천에서는 지
난해에만 모두 1098마리의 연어가 잡혔다고
한다.
그밖에 남대천 1만6250마리, 명파천
1194마리, 북천 828마리 등 양양 내수면연구
소 관할의 네 하천에서 잡힌 연어는 모두 1
만9370마리였다.
아직 만족할 만한 포획량은
아니지만, 96년의 1만5337마리와 비교하면
크게 늘어난 것이다. 더욱이 올해에는 지난
해보다 40%쯤 증가할 것이라고 하니 앞으로
의 전망은 매우 밝은 편이다. 그러고 보면
우리 선조들이 별미로 여겼던 연어포와 연어
알젓을 다시 즐겨먹게 될 날도 그리 멀지 않
은 듯하다.
양영훈〈여행칼럼니스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