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19·섬진강가 마을
“어기여차 쉬엄쉬엄 참게잡이 나가세”


  화 개장터의 옛 풍정을 흑백영화의 빛바랜 영 상처럼 그려낸 김동리의 소설 「역마」(驛馬) 의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된다.

「화개장터의 냇물은 길과 함께 세 갈래로 나 있었다. 한 줄기는 전라도 구례쪽에서 오고 한 줄기는 경상도쪽 화개골에서 흘러내려, 여기서 합쳐서, 푸른 산 그림자와 검은 고목 그림자를 거꾸로 비친 채, 호수같이 조용히 돌아, 경상 전라 양도의 경계를 그어주며, 다 시 남으로 흘러내리는 것이 섬진강 물이었 다」.

지금도 화개 삼거리의 언저리에서는 닷새마 다 어김없이 장이 들어서곤 한다. 하지만 간 신히 장터 흉내만 내고 있을 뿐, 삼남의 장 돌림들로 북적대던 시절의 흔적은 어디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간혹 화개장터의 옛 명성 을 좇아 장터를 두리번거리는 이들도 있지 만, 대부분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발길을 되돌리게 마련이다.

오늘은 몇마리 걸렸을꼬
구례군 토지면 송정마을 앞의 섬진강에서 한 어부가 강물에
드리워 놓은 침게 통발을 거둬들이고 있는 모습.

쇠락한 화개장터 부근의 강둑에서 가을햇살 아래 숨죽인 채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찰랑거리는 물소리와 함께 어디선가 미끄러지듯 떠내려온 조각배 한척이 강심(江 心)에 머물렀다. 배 고물에 올라앉은 어부는 물 속에서 그물을 걷어올려 연신 털어냈다.

배를 조금씩 옮기면서 그물을 걷고 털고 다 시 드리우기를 되풀이하던 어부가 삿대로 배 를 저어 강가로 나왔다. 뱃전에는 수많은 물 고기들이 하얀 비늘을 드러낸 채 널부러져 있었고, 찌그러진 양철통 속에는 참게 서너 마리가 집게발을 세우고 있었다. 그이는 『참 게 통발을 몇개 놓았더니 참게는 몇 마리 안 들어오고 잡고기만 들었다』면서 뱃전에 널부 러진 고기들을 다시 강에 던졌다.

참게는 불과 반세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어느 하천에서나 흔히 잡혔다. 조선시대의 지리지인 「동국여지승람」을 보면 「참게는 강 원도를 제외한 7도(道) 71개 고을의 토산물 이었다」는 기록이 있다. 특히 파주의 참게와 영양의 게포(蟹脯)는 온 나라에 널리 알려진 특산품이었다.

또한 「진짜 게」라는 뜻의 이름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우리 조상들은 바닷게보다 민물게 인 참게를 더 선호했다. 정약전이 쓴 「자산 어보」(玆山魚譜)에도 『천해(川蟹)는 「참궤」 (「참게」의 음차인 듯)라고도 하며, 게 중에서 가장 맛이 좋다.

큰 것은 사방 서너치 (9~12cm)이고 몸의 빛깔은 푸르스름한 기운 이 서린 검은색이다. 수컷은 다리에 털이 있 다』고 했다. 그리고 황노직이라는 사람은 「사하십이송해시」(謝何十二送蟹詩)라는 시까 지 지어 참게를 예찬해 「(참게의) 그 모양은 아낙네들의 웃음거리지만 그 풍치와 맛은 사 내들의 얼굴을 편다」고 묘사했다.

‘농가의 효자’ 참게
금천마을에 사는 황홍욱씨가 마을 앞의 여울에
설치해 놓은 통발에서 참게를 꺼내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섬진강 이외의 지방에서는 구 경하기도 쉽지 않을 정도로 자연산 참게는 희귀한 먹거리가 됐다. 섬진강 500리 물길 중에서도 예로부터 참게가 많이 잡히기로 유 명한 곳은 연곡천과 섬진강 본류의 합류 지 점에 위치한 구례군 토지면 외곡마을.

참게는 강과 바다가 만나는 하구에서 산란하는 데, 봄부터 연곡천에서 살던 참게들은 가을 걷이가 끝나고 첫서리가 내릴 무렵이면 알을 통통하게 밴 몸을 이끌고 섬진강 하류 쪽으 로 내려가기 시작한다. 바로 그 때에 맞춰 외곡리 주민들은 마을 앞의 개울가에 그물을 쳐놓고 알 밴 참게를 한 동이씩 잡아들였다 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이곳 외곡리에서조차 참게를 잡는 사람들은 별로 많지 않다. 통발을 수 십개씩 강물에 설치한 주민이 몇몇 있긴 하 지만 대부분 생업이 아니라 심심파적으로 하 는 일이다.

들이는 수고에 비해 어황(漁況)은 워낙 보잘 게 없기 때문이다. 외곡리 기촌마 을의 강가에서 만난 한 촌로도 『참게 통발을 100개 가량 놓았지만 게가 잘 들지 않는다』 면서 『올해에는 큰물이 많이 져 게들이 모두 떠내려가버린 것 같다』고 말했다. 이렇듯 수 월찮게 잡은 참게는 마리당 5000원(1마리) 정도씩에 매운탕집에 팔리고 있다.

참게는 이맘때 쯤의 늦가을말고도 매화꽃 필 즈음의 이른 봄철에도 많이 잡힌다. 강의 하 구에서 겨우내 자란 어린 게들은 영등사리 (음력 2월 그믐)를 전후해 상류 쪽으로 올라 오기 시작한다.

게가 올라오기를 기다리던 어부들은 참게가 지나는 길목을 골라 통발을 설치한다. 이 무렵 잡힌 참게는 가을 참게와 달리 6개월쯤 양식장에 가둬두고 더 키워야 한다. 몸통이 굵어지고 알이 가득 찼을 때 참게 맛이 가장 좋기 때문이다.

그러나 참게 맛이 아무리 좋아도 함부로 먹 으면 아예 먹지 않음만 못한 수가 종종 있 다. 참게는 폐디스토마의 중간숙주인 탓에 잘 끓여 먹지 않으면 디스토마에 걸릴 수 있 다. 섬진강변의 도로를 따라 즐비하게 늘어 선 매운탕집들이 내놓는 참게요리가 참게탕 하나뿐인 까닭도 바로 거기에 있다.

그러나 우리 조상들은 참게탕보다 참게장을 즐겨 먹 었다. 참게로 담근 게장은 아무리 입맛이 까 탈스런 사람도 즐겨 먹던 밑반찬이다. 특히 추수를 끝낸 논에서 잡힌 암게는 알이 꽉차 서 일년 중 가장 맛이 좋은데, 경상도 지방 에서 참게장을 많이 담가 먹었다고 한다. 이 지방에서는 추수가 얼추 끝나고 일손이 한가 해질 무렵이면 다음해 여름에 먹을 밑반찬으 로 참게장을 집집마다 담곤 했다.

참게가 폐디스토마의 중간숙주라는 과학적인 개념까지는 몰랐을 옛사람들도 참게에는 독 이 있어 함부로 먹으면 위험하다는 사실만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참게가 품고 있는 독을 제거하기 위해 펄펄 끓인 간장을 부었다가 따라내고, 또다시 끓여 붓고 따라내기를 아 홉번이나 반복해 게장을 담갔다.

「구증구폭」 (九蒸九曝), 즉 삶고 말리는 과정을 아홉번 되풀이하면 사람의 몸에 해로운 모든 독이 없어진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렇게 담근 참 게장은 작은 단지에 담아서 장독대의 한쪽 귀퉁이에 놓아두고는 입맛이 없을 적마다 조 금씩 꺼내 먹곤 했다.

오늘날 섬진강 유역의 주민들 중에 가을철 내내 한 두마리씩 잡아 둔 참게를 팔지 않고 놔뒀다가 첫서리가 내 릴 무렵에 게장을 담그는 이들이 적지 않다. 어떤 이들은 쇠고기를 먹인 참게로 게장을 담가 먹기도 한다.

직접 게장을 담가 먹는 집을 수소문해서 찾 아갔지만 가을걷이가 바빠서인지 좀체 집주 인을 만날 수가 없었다. 딱히 할 일도 없던 터라 섬진강 물길을 따라 여기저기를 싸돌아 다녔다. 가을하늘처럼 맑고 푸른 강물 위에 는 이따금씩 작은 쪽배들이 보였다.

목청을 높여 말을 걸어도 아무런 대꾸조차 없는 것 으로 보아 어황이 시원찮은 듯했다. 강 건너 편에 새로난 도로를 따라 내려가다가 광양시 다압면 금천마을 앞의 강가에서 참게 통발을 손보고 있던 황홍욱씨(45)를 만났다. 참게잡 이 통발을 50개쯤 설치했다는 그이는, 날마 다 통트기 전에 통발을 거둔다고 했다.

이튿날 새벽, 미처 잠도 덜깬 채 서둘러 황 씨의 통발이 설치된 금천마을 강가로 달려갔 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어스레한 강가에 서는 황씨가 통발 걷을 채비를 서두르고 있 었다. 고무옷을 덧입은 그이는 허리까지 잠 기는 여울 속으로 들어간 다음 능숙한 몸짓 으로 통발을 하나씩 거둬들였다.

쉰개의 통 발에 걸린 참게는 모두 다섯마리. 통발 10개 당 참게가 1마리씩 걸려든 셈이다. 그러나 황씨는 『평소 때보다는 많이 잡힌 셈』이라며 만족스런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이의 밝은 웃음에는 『이 깨끗한 섬진강이 아니면 어디 서 자연산 참게를 구경이나 할 수 있겠소?』 라는 물음이 감춰져 있는 듯했다. 그리고 그 이의 순박한 얼굴이 유난히 여유롭고 부드럽 게 느껴졌다. 아마도 때묻지 않은 섬진강 물 길을 닮았기 때문이리라.


양영훈〈여행칼럼니스트〉





§ 참조하세요

「자산어보」(玆山魚譜)

손암 정약전(1758~1816)이 저술한 우리나라 최초의 수산학 서적으로 일종의 어류·해조 류 도감이다. 천주교 신자였던 손암은 다산 정약용의 둘째 형인데, 신유사옥으로 인해 신지도를 거쳐 흑산도에 유배됐다. 그는 흑 산도의 근해의 수산생물을 손수 채집하고 조 사해 어류 패류 조류(藻類) 해금(海禽) 충수 류(蟲獸類) 등으로 분류한 다음, 각 종마다 명칭 분포 형태 습성 이용 등에 관해 상세하 게 기록한 이 책을 저술했다.

1책 3권으로 구성됐으며, 모두 55개 항목을 다루었다. 손 암은 이 섬의 주민들에게 학문을 가르치거나 틈틈이 글을 쓰며 책을 내면서 고독과 절망 감을 달랬으나 끝내 흑산도를 벗어나지 못하 고 유배 16년만에 숨을 거뒀다.

게장

우리 민족이 게장(또는 게젓)을 담가 먹기 시작한 것은 1600년대부터였다. 게장은 모든 종류의 게로 담글 수 있지만 반드시 살아있 는 게를 사용해야 한다. 싱싱한 게를 물에 담궈 해감을 빼낸 뒤 마늘 통고추와 함께 항 아리에 담고 진장과 청장을 섞어 붓는다. 장 은 게 50마리에 열컵 정도의 분량이 알맞다. 그런 뒤 사흘쯤 지나면 간장을 쭉 따라내어 끓인 다음 차게 식혀서 다시 붓기를 서너차 례 반복한다. 이 게장은 수백년의 세월을 거 쳐오면서 지역에 따라 독특한 향토음식으로 발전했다. 그 중에도 경상도의 참게장, 전라 도의 벌떡게장과 콩게장, 제주도의 「깅이젓」 이 유명했다.

창게장에 은어화·재첩국? “응∼ 침넘어가네”

부도중의 부도
우아한 자태와 단아한 기품이
돋보이는 연곡사 동부도(국보 제53호)

일년 중 섬진강이 가장 아름다운 때는 매화 와 산수유꽃이 피는 3월과 강바람에 억새꽃 이 흔들리는 10월이다. 참게가 내려가는 10 월이면 강물은 더욱 푸르고 강둑에는 새하얀 억새꽃이 무리지어 피어나 섬진강의 가을 정 취는 절정에 이른다. 이른 아침에 강물을 따 라 띠처럼 둘러져 있다가 어느새 자취도 없 이 스러지는 강 안개도 인상적이다.

지리산의 여러 골짜기 중에서도 가장 현란한 빛깔의 단풍을 보여주는 피아골도 빼놓을 수 없는 명소. 예로부터 피아골은 삼홍(三紅)의 경승지로 꼽혀 왔는데, 해마다 단풍빛이 절 정에 이르는 10월말에서 11월초 사이에 산홍 (山紅) 수홍(水紅) 인홍(人紅)을 이루곤 한다.

피아골 초입에 자리잡은 연곡사는 우리나라 에서 가장 아름다운 부도를 간직한 천년고찰 이다. 더욱이 이곳에는 동부도(국보 제53호) 와 북부도(국보 제54호) 등 신라말에서 조선 시대까지의 다양한 부도가 남아있어 시대에 따른 부도의 특징을 한눈에 엿볼 수 있다.

섬진강을 따라 이어지는 19번 국도변에는 섬 진강 명물인 참게탕 은어회 재첩국 등을 전 문으로 하는 음식점이 여럿 있다. 그 가운데 에서도 화개 삼거리에 위치한 동백식당 (0595-883-2439)에서는 섬진강의 여러 별미 음식을 맛볼 수 있고, 미리 주문하면 참게장 도 담가 준다.

강 건너편 광양시 다압면 금 천마을 입구의 제일가든(0667-772-4427)에서 는 참게탕과 은어회를 내놓는다. 그리고 곡 성군 오곡면의 압록유원지 주변에 자리한 용 궁산장(0688-362-8346) 새수궁장 (0688-362-8352) 등도 참게장과 참게탕, 은 어회 등을 전문으로 하는 음식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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