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기여차 쉬엄쉬엄 참게잡이 나가세”
  화
개장터의 옛 풍정을 흑백영화의 빛바랜 영
상처럼 그려낸 김동리의 소설 「역마」(驛馬)
의 첫머리는 이렇게 시작된다.
「화개장터의 냇물은 길과 함께 세 갈래로 나
있었다. 한 줄기는 전라도 구례쪽에서 오고
한 줄기는 경상도쪽 화개골에서 흘러내려,
여기서 합쳐서, 푸른 산 그림자와 검은 고목
그림자를 거꾸로 비친 채, 호수같이 조용히
돌아, 경상 전라 양도의 경계를 그어주며, 다
시 남으로 흘러내리는 것이 섬진강 물이었
다」.
지금도 화개 삼거리의 언저리에서는 닷새마
다 어김없이 장이 들어서곤 한다. 하지만 간
신히 장터 흉내만 내고 있을 뿐, 삼남의 장
돌림들로 북적대던 시절의 흔적은 어디서도
찾아보기 어렵다.
간혹 화개장터의 옛 명성
을 좇아 장터를 두리번거리는 이들도 있지
만, 대부분 실망감을 감추지 못하고 발길을
되돌리게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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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몇마리 걸렸을꼬
구례군 토지면 송정마을 앞의 섬진강에서 한 어부가 강물에
드리워 놓은 침게 통발을 거둬들이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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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락한 화개장터 부근의 강둑에서 가을햇살
아래 숨죽인 채 흐르는 강물을 바라보고 서
있었다. 찰랑거리는 물소리와 함께 어디선가
미끄러지듯 떠내려온 조각배 한척이 강심(江
心)에 머물렀다. 배 고물에 올라앉은 어부는
물 속에서 그물을 걷어올려 연신 털어냈다.
배를 조금씩 옮기면서 그물을 걷고 털고 다
시 드리우기를 되풀이하던 어부가 삿대로 배
를 저어 강가로 나왔다. 뱃전에는 수많은 물
고기들이 하얀 비늘을 드러낸 채 널부러져
있었고, 찌그러진 양철통 속에는 참게 서너
마리가 집게발을 세우고 있었다. 그이는 『참
게 통발을 몇개 놓았더니 참게는 몇 마리 안
들어오고 잡고기만 들었다』면서 뱃전에 널부
러진 고기들을 다시 강에 던졌다.
참게는 불과 반세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어느 하천에서나 흔히 잡혔다. 조선시대의
지리지인 「동국여지승람」을 보면 「참게는 강
원도를 제외한 7도(道) 71개 고을의 토산물
이었다」는 기록이 있다. 특히 파주의 참게와
영양의 게포(蟹脯)는 온 나라에 널리 알려진
특산품이었다.
또한 「진짜 게」라는 뜻의 이름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 우리 조상들은 바닷게보다 민물게
인 참게를 더 선호했다. 정약전이 쓴 「자산
어보」(玆山魚譜)에도 『천해(川蟹)는 「참궤」
(「참게」의 음차인 듯)라고도 하며, 게 중에서
가장 맛이 좋다.
큰 것은 사방 서너치
(9~12cm)이고 몸의 빛깔은 푸르스름한 기운
이 서린 검은색이다. 수컷은 다리에 털이 있
다』고 했다. 그리고 황노직이라는 사람은
「사하십이송해시」(謝何十二送蟹詩)라는 시까
지 지어 참게를 예찬해 「(참게의) 그 모양은
아낙네들의 웃음거리지만 그 풍치와 맛은 사
내들의 얼굴을 편다」고 묘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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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가의 효자’ 참게
금천마을에 사는 황홍욱씨가 마을 앞의 여울에
설치해 놓은 통발에서 참게를 꺼내고 있다. |
그러나 지금은 섬진강 이외의 지방에서는 구
경하기도 쉽지 않을 정도로 자연산 참게는
희귀한 먹거리가 됐다. 섬진강 500리 물길
중에서도 예로부터 참게가 많이 잡히기로 유
명한 곳은 연곡천과 섬진강 본류의 합류 지
점에 위치한 구례군 토지면 외곡마을.
참게는 강과 바다가 만나는 하구에서 산란하는
데, 봄부터 연곡천에서 살던 참게들은 가을
걷이가 끝나고 첫서리가 내릴 무렵이면 알을
통통하게 밴 몸을 이끌고 섬진강 하류 쪽으
로 내려가기 시작한다. 바로 그 때에 맞춰
외곡리 주민들은 마을 앞의 개울가에 그물을
쳐놓고 알 밴 참게를 한 동이씩 잡아들였다
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이곳 외곡리에서조차 참게를
잡는 사람들은 별로 많지 않다. 통발을 수
십개씩 강물에 설치한 주민이 몇몇 있긴 하
지만 대부분 생업이 아니라 심심파적으로 하
는 일이다.
들이는 수고에 비해 어황(漁況)은
워낙 보잘 게 없기 때문이다. 외곡리 기촌마
을의 강가에서 만난 한 촌로도 『참게 통발을
100개 가량 놓았지만 게가 잘 들지 않는다』
면서 『올해에는 큰물이 많이 져 게들이 모두
떠내려가버린 것 같다』고 말했다. 이렇듯 수
월찮게 잡은 참게는 마리당 5000원(1마리)
정도씩에 매운탕집에 팔리고 있다.
참게는 이맘때 쯤의 늦가을말고도 매화꽃 필
즈음의 이른 봄철에도 많이 잡힌다. 강의 하
구에서 겨우내 자란 어린 게들은 영등사리
(음력 2월 그믐)를 전후해 상류 쪽으로 올라
오기 시작한다.
게가 올라오기를 기다리던
어부들은 참게가 지나는 길목을 골라 통발을
설치한다. 이 무렵 잡힌 참게는 가을 참게와
달리 6개월쯤 양식장에 가둬두고 더 키워야
한다. 몸통이 굵어지고 알이 가득 찼을 때
참게 맛이 가장 좋기 때문이다.
그러나 참게 맛이 아무리 좋아도 함부로 먹
으면 아예 먹지 않음만 못한 수가 종종 있
다. 참게는 폐디스토마의 중간숙주인 탓에
잘 끓여 먹지 않으면 디스토마에 걸릴 수 있
다. 섬진강변의 도로를 따라 즐비하게 늘어
선 매운탕집들이 내놓는 참게요리가 참게탕
하나뿐인 까닭도 바로 거기에 있다.
그러나
우리 조상들은 참게탕보다 참게장을 즐겨 먹
었다. 참게로 담근 게장은 아무리 입맛이 까
탈스런 사람도 즐겨 먹던 밑반찬이다. 특히
추수를 끝낸 논에서 잡힌 암게는 알이 꽉차
서 일년 중 가장 맛이 좋은데, 경상도 지방
에서 참게장을 많이 담가 먹었다고 한다. 이
지방에서는 추수가 얼추 끝나고 일손이 한가
해질 무렵이면 다음해 여름에 먹을 밑반찬으
로 참게장을 집집마다 담곤 했다.
참게가 폐디스토마의 중간숙주라는 과학적인
개념까지는 몰랐을 옛사람들도 참게에는 독
이 있어 함부로 먹으면 위험하다는 사실만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참게가 품고 있는 독을
제거하기 위해 펄펄 끓인 간장을 부었다가
따라내고, 또다시 끓여 붓고 따라내기를 아
홉번이나 반복해 게장을 담갔다.
「구증구폭」
(九蒸九曝), 즉 삶고 말리는 과정을 아홉번
되풀이하면 사람의 몸에 해로운 모든 독이
없어진다고 믿었던 것이다. 그렇게 담근 참
게장은 작은 단지에 담아서 장독대의 한쪽
귀퉁이에 놓아두고는 입맛이 없을 적마다 조
금씩 꺼내 먹곤 했다.
오늘날 섬진강 유역의
주민들 중에 가을철 내내 한 두마리씩 잡아
둔 참게를 팔지 않고 놔뒀다가 첫서리가 내
릴 무렵에 게장을 담그는 이들이 적지 않다.
어떤 이들은 쇠고기를 먹인 참게로 게장을
담가 먹기도 한다.
직접 게장을 담가 먹는 집을 수소문해서 찾
아갔지만 가을걷이가 바빠서인지 좀체 집주
인을 만날 수가 없었다. 딱히 할 일도 없던
터라 섬진강 물길을 따라 여기저기를 싸돌아
다녔다. 가을하늘처럼 맑고 푸른 강물 위에
는 이따금씩 작은 쪽배들이 보였다.
목청을 높여 말을 걸어도 아무런 대꾸조차 없는 것
으로 보아 어황이 시원찮은 듯했다. 강 건너
편에 새로난 도로를 따라 내려가다가 광양시
다압면 금천마을 앞의 강가에서 참게 통발을
손보고 있던 황홍욱씨(45)를 만났다. 참게잡
이 통발을 50개쯤 설치했다는 그이는, 날마
다 통트기 전에 통발을 거둔다고 했다.
이튿날 새벽, 미처 잠도 덜깬 채 서둘러 황
씨의 통발이 설치된 금천마을 강가로 달려갔
다.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어스레한 강가에
서는 황씨가 통발 걷을 채비를 서두르고 있
었다. 고무옷을 덧입은 그이는 허리까지 잠
기는 여울 속으로 들어간 다음 능숙한 몸짓
으로 통발을 하나씩 거둬들였다.
쉰개의 통
발에 걸린 참게는 모두 다섯마리. 통발 10개
당 참게가 1마리씩 걸려든 셈이다. 그러나
황씨는 『평소 때보다는 많이 잡힌 셈』이라며
만족스런 웃음을 지어보였다.
그이의 밝은
웃음에는 『이 깨끗한 섬진강이 아니면 어디
서 자연산 참게를 구경이나 할 수 있겠소?』
라는 물음이 감춰져 있는 듯했다. 그리고 그
이의 순박한 얼굴이 유난히 여유롭고 부드럽
게 느껴졌다. 아마도 때묻지 않은 섬진강 물
길을 닮았기 때문이리라.
양영훈〈여행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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