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이 씨가 말랐어… 망태엔 수심만 가득”
  해
마다 이맘때가 되면 강원도 양양 지방의 산중 사람들은 고양이의 손발이라도 빌려야 할 만큼 일손이 바빠진다. 산곡간(山谷間)의
논밭에는 갈바람에 혀를 깨물고 자란 곡식들이 수확의 손길을 기다리지만, 그것에는 마음쓸 겨를조차 없다. 워낙 산(山)일이 화급한 탓이다.
현북면의 깊숙한 산중에 들어앉은 면옥치마을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누렇게 익은 곡식들이 고개를 푹 떨구고 있어도 추수하는
농부의 모습은 좀체 보이질 않았다. 마을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다 만난 아낙에게 그 까닭을 물으니 “모두 산 일을 하러 가서 그렇다”면서 “한창
송이 따는 철이지만 올해는 송이 농사가 흉년이라 능이버섯과 고무버섯을 따거나 도토리를 주워 온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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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다 송이야” 잘 자란 소나무에 둘러싸인 송이밭.
송이를 뒤덮고 있던 솔잎을 걷어낸 뒤에 찍은모습. |
양양군은 우리나라 최대의 송이 산지다. 그밖에 동해안의 고성 양양 강릉 삼척 울진 등과 소백산맥이 지나는 영월 영주
봉화 등지에서도 송이가 많이 난다. 이들 지역은 대부분 수령 20∼90년 사이의 적송 숲이 넓게 펼쳐져 있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송이는 적송 숲이 아니면 잘 돋아나지 않는다. 땅 속에 10cm쯤 묻힌 적송의 뿌리에 균근(菌根)을 형성해서 공생하는 버섯이기 때문이다.
적송 숲이라고 해도 낙엽이 두텁게 쌓였거나 물기가 지나치게 많은 땅에서는 잘 자라지 못한다. 대체로 단단하면서도 푸슬푸슬한
화강암의 풍화토가 깔려 있고 햇빛이 알맞게 들어오는 곳이 송이가 자라기에 좋은 땅이다. 양양군에서 가장 송이가 많이 나는 곳은
면옥치마을을 비롯한 현북면과 서면 일대의 산지인데, 이 지역은 송이가 좋아하는 여러 조건을 잘 갖추고 있다.
지난해 양양군에서 생산된 송이의 양은 2만9798kg, 수매가로는 모두 32억4000만원이었다. 양양 임업협동조합에 수매된 것만 그렇다는
말이니 실제 생산량은 그보다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송이를 따서 얻은 1인당 수입도 적게는 200만∼300만원에서 많게는
2000만∼3000만원이나 된다고 한다. 평균 잡아서 보통 500만원 이상은 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올해에는 예년의 10∼30%에 불과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한다. 지난 여름 내내 계속된 폭우로 송이의 포자가 많이 떠내려간데다
9월 초에 계속된 늦더위로 그나마 남아 있던 포자마저도 말라버렸기 때문.
면옥치마을의 이종해씨(45)는 “보통 1000만원어치는 땄는데, 올해에는 기껏해야 200만원어치도 안된다”며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이웃 마을인 어성전에 사는 김연석씨(62)의 처지도 크게 다를 바 없었다. 김씨는 매년 1000만∼2000만원의 소득을 보장하는 1만2000평쯤의
개인 송이밭을 갖고 있는데, 올해에는 100만원어치도 못딸 것이라고 했다.
그래도 이 순박한 산골 사람들은 이따금씩 송이밭에 올라가 보기를 게을리 하지 않는다. 능이버섯을 따거나 도토리를 줍는 일도 송이밭을
돌아보고 나서야 시작한다. 하지만 다른 산 일은 왠지 송이 따는 일만큼 신명이 나질 않는다고 한다. 일년 농사 중 송이만큼 큰 수입원이 없기 때문이다.
제법 한기가 느껴지는 어스름 새벽, 이종해씨 일행를 따라 마을 근처의 국유림에 있는 송이밭에 올랐다. 국유림이라도 사유림과 마찬가지로
아무나 송이를 딸 수 있는 건 아니다. 대체로 현지 주민들에게 우선권을 준다. 그러나 면옥치마을에 할당된 송이밭은 크지 않기 때문에
지난 해까지는 전체 가구를 두 팀으로 나눈 뒤 팀마다 한해씩 걸러 송이를 따왔다고 한다.
그러다가 올해부터는 마을 사람들 모두가 함께 송이를 따서 똑같이 나눈다고 한다.
어둑한 산길을 따라 앞서 가던 이씨는 조심스럽게 걸음을 내딛어야 된다며 주의를 환기시켰다. 송이는 몸체를 드러내지 않은 채 은밀하게
돋아나기 때문에 경험없는 사람들은 무심코 밟는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련한 송이꾼들은 잰걸음을 놓다가도 슬쩍 발에 닿는 감촉만으로
대번에 송이인 줄 알아차린다고 한다.
이씨의 말로는 “흰 실 같은 균사가 땅속에서 일정한 방향으로 뻗어가기 때문에 송이가 돋아날 자리를 미리 알 수 있을 뿐더러 송이가
한번 돋아난 자리에서는 이듬해에 다시 난다”고 했다.
산중턱의 가파른 적송 숲을 서너 시간쯤 훑고 다닌 끝에 이씨네 일행이 딴 송이는 1kg쯤 됐다. 그날의 송이 수매가는 1등품(1kg당)이
31만690원, 2등품이 28만990원. 모두 2등품으로만 쳐도 이씨의 일행 네명이 각자 7만원씩 나눠 갖게 되는 셈이다. 그러나 송이 작황이 좋지
않은 때에는 1, 2등품보다는 3등품이나 등외품의 비율이 높기 때문에 실제로 그이들 손에 쥐어진 돈은 훨씬 적었을 것이다.
송이 값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을 정도로 등락이 심하다. 특히 일본 시장의 상황과 일본행 항공편의 결항 여부에 따라서 송이값도 널뛰듯
한다. 송이에_대한_일본인들의_애정도 유별나거니와 일본은 세계 최대의 송이 수입국이기 때문이다. 올해에는 수매
첫날(9월3일)에 14만7000원(1등품)으로 시작해 매일 조금씩 등락을 거듭하다가 8일에는 7만5100원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송이의 생산량이 예년에 비해 크게 감소하자 수매가도 다시 큰 폭으로 오르기 시작했다. 14일에는 14만8570원, 그리고 17일에는
25만3000원에 수매가가 결정됐다. 그러다가 18일에는 32만원까지 치솟았다. 열흘만에 무려 네곱절이 넘게 폭등한 셈이다.
그래도 수매 최고가가 50만원이 넘었던 92∼94년과 97년에 견주면 그리 높은 값도 아니다. 이는 전후 최악의 불황을 겪고 있는 일본의
수입량이 크게 감소한데다 내수 시장마저도 [IMF 한파]로 위축돼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에서인지 양양 5일장에는 송이를 직접 팔러
나온 사람들이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장에서 만난 한 아낙은 “친정이 인제 귀둔인데 그 쪽은 이미 송이 공판이 끝나서 이리 갖고 나왔다”면서 “이렇게라도 파는 게 그나마
한푼이라도 더 이문이 남는다”고 했다.
여느 해 이맘때 쯤 같으면 수확의 기쁨으로 만나는 사람들마다 희색이 만면할 터인데, 올해에는 수심만 가득했다. 지난 여름
지겹도록 내린 폭우 때문에 논농사 밭농사도 여의치 않은데다, 기대하던 송이농사까지 일찌감치 작파해 버렸으니 낯빛이 어두울 수밖에.
그래도 그들은 하늘을 탓하지 않는다. 어성전마을에서 만난 한 송이꾼은 “하늘이 하시는 일이 어디 사람 뜻대로만 되겠느냐”면서 “이 고비만
넘기면 내년에는 좋아질 것”이라는 말로 내밀한 바람을 언뜻 내비쳤다. 대자연으로부터 입는 은혜는 때에 따라 넘치거나 모자랄 수도 있지만,
거기 기대어 사는 사람들의 믿고 의지하고 감사하는 마음은 늘 한결같은 듯했다.
양영훈〈여행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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