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마 17·경상남도 창녕 우포늪
끝없는 자연늪서 우렁이 잡는 아낙네들


  자 욱한 안개 속에 잠긴 우포늪은 견고한 적막감에 휩싸여 있었다. 이미 동이 튼 지가 오래인데도 주변의 사물들은 형체만 어슴푸레했다.

그런 몽환적인 풍경에 오랫동안 도취해 있다 보니 눈 앞의 세상이 꿈결인지 현실인지 분간조차 하기 어렵다. 시간이 얼마쯤 더 흐른 뒤 아침 햇살이 따가 워지기 시작하자 좀체 스러지지 않을 것 같 던 안개가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내내 조용하던 소목마을 나루터에도 사람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었다. 대부분 검은 잠수복 차림 에 커다란 함지박을 머리에 인 아낙들이다. 우렁이를 잡으러 나선 아낙들은 긴 대나무 삿대로 능숙하게 쪽배를 앞으로 밀어내며 수 초 사이를 헤쳐나갔다.



적당한 곳에 이르면 사람들은 배에서 내려 함지박과 사람의 몸을 끈으로 연결한 다음 우렁이 잡이를 시작한다. 무릎 아래의 얕은 늪에서는 바닥을 손으로 더듬으며 우렁이를 건져 올린다. 그리고 가슴까지 빠지는 깊은 곳에서는 구멍이 숭숭 뚫린 플라스틱 소쿠리를 물에 담궈 수초에 붙은 우렁이를 훑어낸다. 그러나 아무리 깊어도 온몸이 잠기는 데는 거의 없다.

장마가 지면 수심이 5m에 이르기도 하지만 평소에는 1, 2m 남짓하기 때문이다. 늪의 바닥에는 오랜 옛날부터 수많은 동식물 들이 생멸을 거듭한 끝에 쌓인 부식층이 두 터워 개펄처럼 발이 푹푹 빠지지도 않는다.

부식층 때문에 언뜻 보면 물빛이 시꺼멓지만 가까이서 보면 물속이 들여다뵐 만큼 깨끗하 다. 수면을 뒤덮은 마름 생이가래 자라풀 개 구리밥 가시연꽃 등의 수생식물이 끊임없이 인과 질산 같은 오염물질은 빨아들이고 산소 는 뿜어내기 때문이다. 늪지 전체가 하나의 커다란 자연정화조인 셈이다.

이맘 때의 초가을에는 대체로 오전 8시부터 오후 5시까지 우렁이를 잡는다. 하루에 보통 20kg쯤 잡지만, 많게는 30∼40kg을 잡기도 한다. 대합면 대곡리에 산다는 한 할머니는 『크고 기운 센 젊은 사람들은 잘 잡지만 난 다리도 짧고 기운이 없어서 많이 못잡는다』 고 했다.

그러나 아무리 기력 좋고 다리가 긴 사람이라도 뙤약볕 아래에서 온종일 허리 를 구부린 채 우렁이를 잡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을 듯했다. 더욱이 두꺼운 잠수복이나 비 옷을 입고 일하기 때문에 땀이 비오듯 쏟아 진다고 한다. 이곳은 그야말로 수서곤충의 천국이라 두꺼운 옷을 입지 않으면 물벌레들 의 집요한 공세를 당해낼 수가 없다.

잡은 물고기 정리
늪에서 잡아올린 물고기를
바구니에 담는 소목마을의 노기열씨(57) 내외.

이런 어려움을 감내한 끝에 벌어들이는 수입은 하루에 5만∼10만원 가량 된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다 빠듯한 농촌 살림으로 볼 때 결코 적은 돈은 아니지만, 그이들의 노고를 고려하면 그리 큰 돈도 아닐 성싶다.

게다가 우렁이를 잡는 것으로만 일이 끝나는 게 아니다. 예전에는 도매상들이 마을마다 돌아다니며 우렁이를 사갔지만 지금은 창녕 5일장이나 대구까지 가서 손수 팔아야 한다.

그래도 고단한 일과를 마치고 풀섶에 앉아 차를 기다리는 대곡리 아낙들의 입가에는 밝 은 웃음이 가득했다. 주영경씨(62)는 『올 여 름에 물이 넘쳐서 벼농사를 모두 망쳤는데, 이 일마저 못하게 됐다면 어찌 살았을까 싶 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그들의 웃음에는 자연의 넉넉함에 대한 고마움과 자연의 순리 를 거스르지 않으려는 마음이 담겨 있는 듯 했다.

우포늪 주변에 자리잡은 13개 마을에는 모두 2300여명의 주민들이 산다. 그 가운데 100명 가량의 주민들이 총면적 69만9000여평에 이 르는 이 늪지대를 절실한 생계의 터전으로 삼고 있다. 물고기를 잡거나 가물치를 양식 하는 사람이 열댓명이고, 나머지는 거개 우 렁이를 잡는 아낙들이다. 20∼30년 전까지만 해도 이곳 주민들은 소득의 80%쯤을 이 늪 에서 얻었다고 한다.

그러나 농약의 남용과 환경오염으로 인해 미 꾸라지나 민물새우는 거의 사라졌고 우렁이 붕어 메기 등도 크게 줄었다. 그나마도 지금 은 아무나 잡지 못한다. 이 늪지가 지난해에 자연생태계 보호지역으로 지정된 데 이어 올 해 초에는 람사협약에 의한 국제보호습지로 등록됐기 때문이다. 군청으로부터 어업허가 를 받거나 논우렁 채취인으로 등록된 주민들 만 잡을 수 있다.

현재 우포늪에 기대어 사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는 규제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이해하는 듯했다. 그러나 처음에는 지역주민들의 반발 이 적지 않았다. 람사습지 지정을 반대하는 주민 수백명이 군청에 몰려가 시위를 벌인 일도 있었다. 보호 습지로 지정되면 재산권 의 행사도 제한될 뿐더러 논우렁과 물고기를 잡는 것조차 불가능할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 다.

소박한 삶
생이가래와 개구리밥이 녹색의
융단처럼 뒤덮인 우포늪에서 대합면
대곡리의 한 주민이 우렁이를 잡고 있다.

결국 정부에서는 오랫동안 어로작업을 해오던 현지 주민들에 한해서는 우렁이 채취와 고기잡이를 허용하고, 보호지역 내의 사유지는 정부에서 순차적으로 매입하기로 했다.

그 뒤로 주민들의 반발도 수그러들었고, 지금은 많은 주민들이 우포늪의 생태학적 가치와 보호의 당위성을 인정하고 있다. 사실 이 늪지대가 더욱 깨끗해지기를 가장 열망하는 사람은 주민들일 수밖에 없다.

늪 주변의 불법어로와 환경오염 행위를 감시하 며 외지인들에게 우포늪에 관해 안내도 해주 는 창녕환경운동연합의 성춘경씨(50)도 『이 늪이 크게 오염되거나 훼손되면 가장 큰 피 해를 보는 사람은 현지 주민들이다. 물고기 와 우렁이가 살 수 없게 되면 주민들의 생계 도 막막해지기 때문이다』고 했다.

그러니 누가 굳이 시키지 않아도 주민들은 기꺼이 환경 파수꾼의 역할을 자임한다. 소 목마을 주민 노기열씨(57)는 늪지 주변에 쓰 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외지인들을 신고해서 표창을 받기도 했다. 주민들의 그런 노력과 지역 환경단체들의 지속적인 보호활동 때문 인지, 5년만에 다시 찾은 우포늪의 환경은 예전보다 오히려 좋아진 듯했다.

더욱이 우포늪을 아끼고 보호하려는 사람들 이 점차 늘고 있음을 생각하면 머지 않아 사 람과 자연이 아름답고 건강하게 공존하는 본 보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양영훈〈여행칼럼니스트〉



§ 참조하세요

우포늪
경남 창녕군의 유어면 이방면 대합면에 걸쳐 있는 우리나라 최대의 자연 늪지대. 가장 큰 우포를 비롯해 목포 사지포 쪽지벌 등 모두 네개의 늪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곳에 늪지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은 1억4000만년 쯤 전이라고 한다. 당시 낙동강 유역의 지반이 내려앉게 되면서 물이 강으로 흘러들지 못하게 되자 이 일대의 곳곳에 자연호수가 생겨났다는 것이다.

일제시대까지만 해도 창녕 함안 창원 등 낙동강의 하류 유역에는 백여개의 자연늪이 있었으나 대부분 농경지로 바뀌고 지금은 19개만 남았다. 우포늪과 그 주변에는 현재 430여 종의 식물들이 서식하는데, 특히 우리나라에 분포하는 수생식물의 종류 중 50∼60%를 이곳에서 볼 수 있다.

람사협약
정식 명칭은 「물새 서식처로서 특히 국제적으로 중요한 습지에 관한 협약」. 1971년 2월2일 이란 람사(Ramsar)에서 채택되어 75년 12월에 발효됐으며 현재 스위스에 사무국을 두고 있다. 국경을 넘어 이동하는 물새를 국제자원으로 규정한 이 협약에 따라 가입국들은 보전가치가 있는 습지를 한곳 이상씩 협약 사무국에 등록하고 지속적으로 보호정책을 펴야 한다.

이 협약에는 우리나라의 대암산 용늪과 창녕 우포늪을 포함해 전세계의 880여곳에 이르는 습지가 등록돼 있다.

가시연꽃
수련과에 속하는 일년생 수생식물로 아시아 특산의 1속(屬) 1종(種)의 희귀식물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한때 경기도 이남에 널리 분포했으나 환경오염과 남획으로 인해 지난 89년 환경부에 의해 멸종 위기종으로 지정됐다. 오늘날에는 우포늪 이외의 지역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잎과 꽃은 물론이고 열매에도 가시가 돋아나 있으며, 바닥에 부식토가 두껍게 깔려 있는 수심 1, 2m의 습지에 주로 서식한다. 다 자란 잎은 지름이 50∼60cm쯤 되지만 1, 2m가 넘는 것도 있다.

칠팔월에 긴 꽃대가 물 밖으로 나오면 그 끝에서 길이 4cm쯤의 자주색꽃이 핀다. 꽃은 사흘간, 오전 10시∼오후 2시 사이에만 피고 지는 개폐운동을 되풀이한 뒤 물 속에 잠긴 채 씨앗을 형성한다. 바닥에 가라앉은 씨앗들은 이듬해부터 몇 년에 걸쳐서 하나 둘씩 싹을 틔운다.

‘억새 축제’구경가세요
「제2의 경주」라 불리는 창녕군에는 둘러볼 만한 문화유적이 여럿 있다.

국가지정의 문화재만도 교동-송현동의 고분군(사적 제81·82호), 진흥왕순수비(국보 제33호), 술정리의 동삼층석탑(국보 제34호)과 하병수씨 가옥(중요민속자료 제10호), 석빙고(보물 제310호), 영산만년교(보물 제564호), 관룡사의 대웅전(보물 제212호)과 용선대 석가여래좌상(보물 제295호) 등을 포함해 모두 19개에 이른다.

그리고 화왕산은 억새밭이 장관을 이루는 곳으로 유명한데, 해마다 10월초에는 억새꽃 만발한 산정에서 「억새제」가 열리기도 한다.

소슬한 갈바람에 물결처럼 일렁이는 우포늪의 억새밭과 갈대숲도 오래도록 잊히지 않을 풍정(風情)이다.

우포늪 주변에는 소목마을의 우포민박집(0559-532-9052) 말고는 숙박시설이 없으므 로 이십리쯤 떨어진 창녕읍까지 나가야 한 다. 시간적인 여유가 있다면 온천욕도 즐길 수 있는 부곡온천의 숙박업소를 이용하는 것 도 좋다.

온천관광단지에는 부곡로얄 (0559-536-6661) 부곡하와이(0559-536-6331) 등의 호텔과 깔끔한 장급 여관이 많이 있다.

우포민박집에서는 민물고기 매운탕을 맛볼 수 있고, 창녕 읍내의 장안숯불갈비집 (0559-533-5111)과 영산읍 성내리의 풍천장 어구이집(0559-536-5902)은 창녕을 대표할 만한 맛집이다.

그리고 부곡온천에 자리한 원조현풍할매곰탕집(0559-536-5265)은 곰탕 맛이 일품이다.



Copyright(c) 1997 All rights Reserved.
E-mail: newsroom@mail.dong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