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알이 맺힌 ‘천년의 神’
  우
리 속담에 「명찰(名刹)에 절승(絶勝)」이란 말이 있다. 「금상첨화」(錦上添花) 정도와 같은 뜻인데,
전남 곡성군 죽곡면 원달리 동리산 기슭에 자리한 태안사(泰安寺)는 이 말이 썩 잘 어울리는 곳이다.
유서깊은 선사(禪寺)의 고요함과 평온함이 깃들여 있는 가람 자체도 좋지만 녹음 짙은 초입의 오솔길이
특히 인상적이다. 절의 들머리에서 일주문에 이르기까지 햇빛 한가닥 스며들지 않을 정도로 울창한
참나무 숲길이 계곡을 따라 이어진다. 인적마저 드문 오솔길을 청아한 물소리와 새소리를 벗삼아 걷다
보면 2km의 거리가 짧게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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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찰에 절승 불단에 공양 올릴 준비를 하느라 분주하게 움직이는
한 스님. |
오늘날 태안사는 이름조차 생소한 사찰이지
만, 한때는 송광사 화엄사 선암사 등을 말사
로 거느리며 선풍(禪風)을 드날렸던 곳.
이 절은 신라 경덕왕 1년(742)에 창건된 것으로
전해지지만 대가람의 면모를 가춘 것은 그로
부터 100년쯤 지난 뒤였다.
문성왕 9년(847)
에 적인선사_혜철(寂忍禪師 惠哲)이 구산선
문(九山禪門)의 하나인 동리산문(桐裏山門)을
열고 이곳을 종찰로 삼았던 것이다.
고려 태
조 때는 광자대사 윤다(廣慈大師 允多·
864~945)가 절을 132칸 규모의 대찰로 중창
했는데, 송광사 등을 말사로 거느렸던 것도
바로 이 때였다.
그러나 고려 중기에 송광사가 조계종의 본산
이 되어 떨어져 나가고, 조선시대에는 억불
정책으로 인해 사세가 크게 기울었다.
그나마 근근히 지켜오던 가람마저 한국전쟁 때
모두 불타버렸다. 당시 이곳의 전투가 매우
치열했음을 말해주는 경찰충혼탑이 능파각
위쪽 산기슭에 세워져 있다.
현재 태안사에 들어선 건물 가운데 가장 눈
길을 끄는 것은 능파각(凌波閣)이다. 이 건물
은 특이하게도 누각과 다리의 기능을 함께
갖췄다.
정면 1칸 측면 3칸 규모에 팔작지붕
을 올린 구조도 특이하다. 계곡 양쪽의 자연
암반에 쌓은 석축에 두 개의 큰 통나무를 걸
치고, 통나무 양쪽에는 한 단의 각진 침목
(枕木)을 놓은 다음 그 위에 기둥을 세워 건
물을 지었다.
1737년에 처음 세워진 이래 수
차례에 걸쳐 중수를 거듭했지만 예스러운 정
취와 빼어난 풍광만은 여전하다. 걸음을 잠
시 멈추고 이곳에 걸터앉아 있으면 계류의
냉기에 등골이 오싹하고, 누각 아래의 와폭
(臥瀑)이 쏟아내는 물소리가 청량하기 그지
없다.
능파각을 건너면 길은 다시 아름드리 측백나
무들이 빼곡이 들어찬 숲속으로 들어선다.
줄곧 돌계단으로 이어지는 측백나무 숲길을
따라 200m쯤 오르면 일주문이다.
이 일주문은 화려한 다포집(처마 아래의 공포가 여러
겹으로 짜인 집)이면서도 소박한 멋이 있다.
별로 다듬지 않은 통나무 기둥이 천연스러운
데다 위로 손을 뻗으면 「동리산 태안사」라는
현판이 닿을 정도로 규모가 아담하다.
일주문 안쪽에는 널찍한 부도밭이 자리잡고
있다. 쭉 뻗은 측백나무와 청청한 대숲에 둘
러싸인 부도 밭에는 여러 형태의 부도가 듬
성듬성 세워져 있는데, 그 중 광자대사 윤다
의 부도(보물 제274호)와 부도비(보물 제275
호)가 가장 먼저 눈에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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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안사의 명물 누각과 다리의 기능을 함께 갖추고 있는 능파각. |
부도는 광자대사가 입적한 지 5년만인 950년
에 세워진 것으로 높이 2.8m의 팔각원당형
(八角圓堂形)이다. 몸돌에는 각 면마다 사천
왕상 문비(門扉·문짝) 향로 등이 새겨져 있
으며, 지붕돌에는 기왓골 서까래 부여(附椽
·덧서까래) 막새기와 등의 목조건물 양식이
정교하게 모각(模刻)되어 있다.
그러나 조각
의 입체감은 다소 약해 보인다. 전체적으로
는 상하의 비례가 우아하고 안정감이 있으
며, 맨 위쪽의 상륜부까지도 거의 완벽하게
남아 있어 형태미가 빼어나다.
부도와 함께 세워진 부도비는 현재 비신(碑
身)이 깨진 채로 귀부(龜趺)와 이수(머릿돌)
사이에 끼워져 있다.
마멸이 심해 비문의 판
독이 쉽진 않지만, 행서체로 쓰인 비문은 필
력이 굳세고 아취(雅趣)가 엿보인다.
귀부와 이수는 곳곳이 떨어져 나가거나 깨졌지만 조
형이 매우 사실적이다. 특히 이수에는 네개
의 용머리와 날개를 활짝 펴고 힘차게 비상
하는 가릉빈가(迦陵頻伽·불교에서의 극락
조) 한마리가 고부조(高浮彫)로 생동감있게
표현돼 있다.
그런데 이 이수는 본래 적인선
사의 부도비에 올려져 있던 것이라고 한다.
두 부도비의 이수가 뒤바뀌게 된 연유는 자
세히 알 수가 없지만, 본래 자리에서 옮겨올
때에 그리 된 것으로 추정된다.
부도 밭 위쪽의 완만하게 흘러내린 산비탈에
는 근래에 다시 들어선 가람이 아늑하게 들
어앉아 있다.
천년고찰다운 고풍스러움은 덜
하지만 선찰다운 적요함만은 여전히 살아 있
다. 더욱이 대웅전 보제루 선원 등 가람을
이루는데 꼭 필요한 건물만이 알맞은 규모로
들어서 번다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가람의 중심에서 살짝 벗어난 선원 뒤쪽의
높은 언덕에는 적인선사 혜철의 부도와 부도
비가 서있다. 약간 가파른 계단과 작은 배알
문(拜謁門)을 지나야 부도가 세워진 곳에 다
다르는데, 문을 지날 때는 고개가 절로 숙여
진다.
자연스레 머리를 조아리며 드나들게
하려고 배알문을 일부러 낮고 작게 만든 탓
이다.
「적인선사조륜청정탑」(寂忍禪師照輪淸淨塔)
이라는 긴 이름을 가진 부도는 혜철스님이
입적한 해인 신라 경문왕 1년(861)에 세워졌
으며 현존하는 부도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
중 하나로 꼽힌다.
전체의 높이는 3.1m이며,
광자대사의 부도와 같이 전형적인 팔각원당
형이다. 그러나 광자대사의 것보다는 훨씬
더 장중하고 세련된 느낌을 준다. 특히 하대
석의 여덟 면에는 각기 방향과 동작이 다른
사자가 하나씩 입체적으로 조각돼 눈길을 끈
다.
전체적인 조각수법은 단순한 편이지만
안정감과 장중함이 잘 구현됐다. 부도 옆에
는 근래 비신을 새로 세운 부도비가 있다.
그밖에도 태안사에는 조선 세종 29년(1447)
에 효령대군이 왕실의 수복(壽福)을 기원하
는 뜻에서 제작한 바라(보물 제273호)가 있
는데, 이는 우리나라에서 규모가 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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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조하세요
신라 원성왕 1년(785)∼경문왕 1년(861).
법명은 혜철, 시호는 적인이며 선문구산의 하
나인 동리산파의 1대조.
15세 때 출가해 영
주 부석사에서 화엄경을 공부하고 30세 때
당나라로 건너가 남종선(南宗禪)의 지장선사
문하에서 공부했다.
지장선사에게 법통을 전
수받은 네 제자 중에 혜철스님을 비롯해 세
사람이 신라인이었다고 한다.
55세 때 귀국
해 화순 쌍봉사에서 9년간 머무르다 63세에
태안사에서 동리산문을 열었다.
77세 때 입
적하자 경문왕은 적인이라는 시호를 내렸다.
그의 문도(門徒)로는 풍수도참설로 유명한
도선(道詵), 동리산문의 2대조 여선사(如禪
師)와 3대조 광자대사 등 헤아릴 수 없을 정
도다.
양악(洋樂)의 심벌즈와 비슷한 타악기의 하
나이며, 두개의 놋쇠판을 얇고 둥글게 두드
려서 솥뚜껑 모양으로 만든 것이다.
일명 자
바라 발 제금(提金)이라고도 하며, 크기에 따
라 자바라 요발 동발 향발 등으로 나뉜다.
그 중 절에서 많이 쓰이는 것은 동발이다.
바라는 주로 불가에서 큰 집회와 장례식, 새
로운 주지를 맞아들이는 의식을 올릴 때 사
용하지만 속세의 취타(吹打)와 무악(巫樂)에
서도 중요한 악기다.
바라춤은 도량(道場)을
성스러운 장소로 정화하고자 할 목적으로 추
는 춤인데, 막바라로 시작해서 명바라 천수
바라 내림게바라를 거쳐 사다니바라로 끝난
다.
빠른 동작으로 전진 후퇴 회전을 하며
추기 때문에 동작이 매우 활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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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박향’은어에 소주한잔 “세상 시름이 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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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곡면 석곡리에서 오곡면 압록리에 이르는
30리 길은 내내 보성강 하류의 아름다운 강
변을 끼고 달린다.
이 물길은 「석압강」(石鴨
江)이라고도 불리는데, 사시사철 물이 맑고
강가 곳곳마다 대숲이 울창해 풍치가 매우
빼어나다. 교통량도 많지 않은 편이라 강변
드라이브 코스로도 제격.
숨죽인 채 유유히
흐르는 강물을 따라가다 보면 사람들의 마음
과 발길조차 절로 느즈러지고, 깨끗한 강바
람에 머리 속까지 맑아지는 듯하다.
보성강과 섬진강이 합류하는 압록에는 3만평
의 은빛 백사장이 펼쳐져 여름철마다 피서객
들로 붐빈다. 수심이 얕고 물살이 약해 아이
들과 함께 물놀이를 즐기기에 좋다. 인근에
는 은어 쏘가리 등의 입질이 잦은 낚시터가
즐비하다.
태안사 입구에는 태안산장(0688-62-4797)을
비롯해 민박집과 겸한 식당이 두어 곳 있지
만 압록으로 나가는 게 숙식을 해결하기 편
리하다.
압록에는 섬진강의 진미인 은어와
참게 요리를 전문으로 하는 용궁산장
(0688-62-8346) 새수궁장(0688-62-8352) 순
천식당(0688-62-8428) 등의 음식점들이 밀집
해 있고, 리버사이드모텔(0688-63-8201) 같
은 숙박업소가 있다.
석곡IC를 통해 태안사에 드나들고도 석곡리
의 돼지숯불구이를 맛보지 못하면 두고두고
아쉬움이 남는다.
이곳은 한때 남도의 장돌
림들이 다 모여드는 오일장이 들어섰던 곳인
데, 「입 안에서 살살 녹는」 석곡 돼지구이의
명성은 그 적부터 이미 짜했다.
지금도 석곡
버스정류장 앞의 석곡식당(0688-62-3133)을
찾아가면 그 맛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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