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증후군'이 번지고 있다.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은 최근 어떤 일간지에 탁월한 대통령 박정희를 재조명하는 글을
연재했다. 구미의 박정희생가를 찾는 이도 늘었다. 인터넷에
박정희 대통령기념관 (www.newpage.co.kr / 516)이 개설됐다. 마침 박정희를 미화한 전기 '인간의
길'이 출간돼 열기에 부채질하고 있다. 이름도
긴 '박정희대통령과 육영수여사를 좋아하는 모임'이 생겼다.
박정희는 헤진 런닝셔츠에 꽁보리밥을 먹고 막걸리를 마시며 국가발전에 온몸을 던졌다고
한다. 한때 그가 경제발전에 매진했었고 이른바 한강의 기적을 일궈냈다는 점은 인정하자.
그러나 칭찬은 여기서 그쳐야한다. 성공한 쿠데타를 단죄해야 하듯 성공한 개발독재도
비판으로부터 자유롭지 않으므로. 그에게 실제보다 더 많은 덕목을 갖다 붙이거나 선글래스 뒤에
있는 또다른 모습을 외면해서는 안된다.
박정희는 결코 깨끗한 대통령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졸개들의 부패를
용인했다. 정경유착이라는 패악은 그가 도입한 차관을 배분하는 과정에서 싹텄다. 핵개발을 두고
민족주의자라고들 칭송하지만 그건 당시 카터행정부가 인권문제를 들어 미군철수를 거론하자
이에 대응하기 위한 것이었다. 일본육군사관학교 졸업식장에서 “대동아공영권을 이룩하기 위한
聖戰에서 사쿠라와 같이 훌륭하게 죽겠습니다”라고 선서한 그는 민족주의자가 아니었다.
과연 박정희시대로 회귀해야 할까. 홧김에 서방질한다고 박정희에게 표를 던지자.
|
아무리 훌륭한 제도라 하더라도 이를 지킬 수 있는 능력이 없을 때에는 취약하다며 민주주의를 말살한
그의 시대를 잠깐 열어보자.
당신이 교사라면 초롱초롱한 눈망울의 학생들 앞에서 유신과 독재의 상관관계를 설명하고싶지
않을까. 유신체제를 비판하고 싶더라도 참아야한다. 집회를 열거나 유인물을 뿌려 당신 생각을
알리는게 원천적으로 봉쇄되므로. 혹여 시도하더라도 인혁당이나 민청학련 사건처럼
조직사건으로 조작된 뒤 줄줄이 엮여 다시 햇빛을 보기 힘들어질 공산이 크다.
그는 지역감정을 부추겨 가까스로 대통령자리를 지킨 다음 헌법을 뜯어고쳐 '통일을 위해서는
나를 중심으로 철통같이 단결해야 한다'는 궤변을 늘어놓으면서 유신이라는 이름의
종신대통령제를 만들 것이다. 그러나 일단 장기집권에 성공한 뒤에는 평화통일을 내팽개칠
것이다. 국민들이 들고 일어나면 "사태가 더 악화되면 내가 직접 발포명령을 내리겠다. 대통령인
내가 발포명령을 하는데 누가 총살하겠는가" 라고 말하다 암살될 것이다. 그가 암살된다 해도
민주주의가 열렸다고 환호하기는 이르다. 그가 양아들처럼 키워놓은 군부가 '권력은 곧
정의'라며 더욱 많은 피와 눈물을 요구할 테니까.
어떤 이는 배를 불려놓으니 이제와서 그 공을 무시하고 딴소리를 늘어놓는다며 박정희를
비판으로부터 감싸기도 한다. 그러나 자유로이 생각하고 말할 수 있게 된 지금, 박정희를
미화하는 것은 밀실에서 고문당하고 생명을 잃은 이들을 모욕하는 게 아닐까.
백 우 진 (동아일보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