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다스 칼럼/천지간… 말들의 풍경

꿍따리 샤바라.

와아 꽃세상입니다. 이 황음무도한 도시에도 꽃들은 거임없이 피어나 까르르까르르 재롱을 피웁니다. 혁명입니다. 파천황입니다.

이 주리를 틀어도 시원찮을 적막강산에 꽃들마저 없었다면 어쩔 뻔 했을까요.

'악의 꽃'은 원래 없습니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고 꽃은 꽃일 뿐입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에겐 산은 산으로 보이고 꽃은 꽃으로 보입니다. 그것뿐입니다.

말이 필요없습니다. 말은 말을 낳고 글은 글을 낳습니다.

'말과 글의 감옥'에 한번 빠지면 세상은 더 이상 보이지 않습니다.

언어는 욕망입니다. 느물거리는 '뱀의 혀'입니다. 그래서 말과 말이 부딪치면 썩은 고름이 뚝 뚝 떨어집니다.

진짜 말과 글을 찾아 꽃들을 찾아갑니다. 아가들의 웃음소리가 산사의 새벽 쇠북소리처럼 귓가를 간지럽힙니다. 아직도 남아 가늘게 떨고 있는 몇 떨기 붉은 동백꽃. 우우우 벌떼처럼 들고 일어나는 노란 개나리꽃들. 병아리 부리처럼 뾰족하게 입술을 내밀고 수줍게 입맞춤을 기다리고 있는 하얀 목련꽃 봉오리들.

와아 하얀 새떼처럼 후드득, 비잉글 날아오르는 저 눈부신 벚꽃 무리. 길은 가슴속 빨간 숯불처럼 이글이글 타오르는 붉은 진달 래와 진홍색 철쭉군단.

여염집 규수처럼 볼을 살짝 붉히며 골목 모퉁이에 옹기종기 서 있는 앵두꽃 아가씨들. 먼 세월의 뒤안길 돌아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은 복사꽃들...

그러나 '꽃들의 혁명'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라일락, 아카시아, 장미꽃의 싱그러운 향기 가 갈 길 몰라 으르렁대며, 어슬렁거리는 짐승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고 두 발 달린 즘생 인간들의 눈물을 닦아 줍니다.

그렇습니다. 혁명은 무조건 깨부수는 게 아닙니다. 그것은 라일락 꽃향기같이 싱그러운 것입 니다. 코 끝을 간지럽히는 바람 같은 것입니다. 꽃과 같은 것입니다. 눈에서 살기를 빼는 것입니 다.

부처님 눈처럼, 예수님 눈처럼 한없이 그윽한 눈을 가지는 것입니다. 말과 글은 꽃입니다. 아카시아 향기입니다. 혁명입니다.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찾아가 어루만져 주는 바람입니 다.

아이들의 말과 글은 모두 시이고 꽃입니다. 그들은 하나같이 시인입니다. 아이들의 말엔 언 제나 치자꽃 향기가 납니다. 서울 방배동 아람유치원 아이들의 말을 들어봅니다.

"엄마, 왜 지구 위에서 떨어지지 않아? 지구는 둥근데 말야"

"생선은 가시가 박혀 있어 무척 따갑겠다"

"목하고 엉덩이하고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는 거야? 목이 아프면 목에 주사를 맞아야 되는 거 아니야? 왜 목이 아픈데 엉덩이에다 주사를 맞는 거지?"

"엄마, 왜 누나만 보약해주고 난 안해줘? 나도 누나처럼 밥 안먹을테니 보약해줘"

"밥 먹으면 밥이 뱃속에 있는데 어떻게 다리랑 팔에 살이 들어가?"

"어른들이 부르는 노래는 참 이상해요. 돈이 없는데 어떻게 집에 가서 빈대떡이나 부쳐 먹 지요? 말도 안돼요. 밀가루도 야채도 사야 하잖아요. 그러니가 돈이 있어야 하잖아요"

"하나님은 사람을 참 이상하게 만들었어. 어떻게 피가 빙글빙글 돌아가게 만들었을까? 머리 속도 꼭 차고... 아이고 나도 모르겠다"

"엄마 달이 자꾸 나를 따라와. 이리 가도 따라 오고 저리 가도 오네. 엄마, 달이 살아있나 봐"

"엄마, 피는 우리 몸에 누가 넣어줘?" "응. 원래 태어날 때부터 몸속에 들어있는 거야"

"그럼 말은? 우리가 하는 말 말이야. 말은 태어날 때 병원에서 몸 속에 넣어줘?"

"할머니, 우리 엄마 참 나빠. 엄마의 엄마한테 화 내면 안되는데"

"나쁘긴 뭐가 나빠? 네엄만데..." "그럼 나도 엄마한테 화나게 말해도 돼?"

"엄마, 저 흑인들은 왜 까매요? 나는 저 사람들이 세수를 잘하면 하얗게 될 것 같은데..."

"봄 여름 가을 겨울이 한데 뭉쳐있으면 좋을텐데" "왜?" "추울 땐 옆으로 가고 더울때도 옆으로 가게"

"엄마, 라디오에 사람이 어떻게 들어갔어? 이 라디오 탁 깨면 사람이 보여?"

"엄마, 저 아줌마는 왜 이불을 쓰고 가?" "응, 이불이 아니라 망토야, 망토..."

"할머니, 애들이 때려, 잉..." "왜 때리노? 괜히 왜 때리노? 넌 손이 없나 발이 없나? 왜 못 때리노 잉?" "할머니 난 때리는 손 없어. 잉..."

"엄마, 고추는 빨간색이라 불이라서 매운 거야?"

"엄마, 왜 비가 오는지 알아? 할아버지가 우리 보고싶어서 울기 때문이야"

"장난감 치우라고 말하지 마세요. 엄마가 말 안해도 제가 치울거란 말이에요. 무얼 먼저 치 울까 생각하느라고 빨리 못 치우는 거예요"

"어, 이게 뭐야?" "응, 그건 옥수수 수염이야" "어 그럼 옥수수는 다 할아버지네"

"김치 줄까? 멸치 먹을래?" "음... '계치'줘. 아빠가 치자로 끝나는 말로 했으니까 계란도 계치지 뭐?"

"엄마, 왜 언니 먼저 나왔어? 내가 먼저 나왔으면 좋았을텐데... 누가 언니를 먼저 엄마 뱃속 에 넣었을까?"

"엄마, 난 정민이가 이뻐" "그래? 어디가 그렇게 예쁠까?" "엄마는 그것도 몰라? 이쁘니까. 이쁘지"

"엄마, 삼촌 집에 가고싶어. 삼촌 결혼했으니까 여보 하는거 보고 싶어"

"엄마, 오늘 비 안올거예요. 어제도 텔레비전에서 저 아저씨가 비 온다고 했는데 안왔잖아요"

"엄마, 나 커서 바보가 될 거예요. 바보가 난 좋아요"

"엄마, 뚱뚱한 사람은 다 얘들이 많은 사람이지? 근데 이상해. 뚱뚱한 남자들은 왜 뚱뚱할까?"

"난 할 수없이 작은 토끼반 선생님하고 결혼해야 돼. 선생님한테 내가 사랑한다고 말했거든"

"어머, 우리 영환이가 방귀 뀌었나?" "아니야, 엉덩이에서 나는 바람소리야"

"엄마, 쉬주머니가 고추 밑에 있으니까 자꾸 쉬하는거야"

"엄마 바꿀 거야. 옆집 도영이엄마하고... 도영이엄마는 혼내지 않는단 말이야"

"선생님 눈에는 내가 있어요. 선생님 눈동자에 내가 들어가 있어요"

"엄마, 내 코에 코 국물이 자꾸 나와요"

"나 빨리 여덟살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용돈 받으면 선생님 옷 사드리고 싶어요"

"엄마, 난 여덟살로만 가만 있으면 좋겠어" "왜?" "엄마랑 아빠랑 나이 먹어 죽으면 어떻게 해?"

"뉴질랜드가 더 커, 서울랜드가 더 커? 조성희 뉴질랜드로 이사 갔어. 우리는 서울랜드로 이사가자"

"이모, 우리 아빠 차뒤에 타. 앞에 타면 신경질나. 앞에는 우리 엄마만 타야돼"

"형이 화났나 봐요. 그러니까 아직도 속이 안들은 거에요. 속이 꽉 차면 흔들리지도 않고 단단할텐데"

"엄마는 좋겠다. 뭐든지 엄마 마음대로 할 수 있어서. 전부 다 엄마 마음대로 하잖아"

"난 치과에 가기 싫어요. 엄마는 거짓말로 백화점 간다고 해놓고 나를 치과로 데리고가요"

"소나무는 눈 오는 겨울에도 항상 초록색 잎이 있는 나무야" "맞아 눈사람 눈썹 만들어야 되니까"

"엄마는 수술 잘 한다" "현석아 생선 요리하는 거야" "생선 피도 나고 치료도 하니까 엄마 는 의사선생님같다"

"우리 집에 새엄마가 하나 더 있으면 좋겠다. 그러면 새엄마는 청소하고 엄마는 설거지하고 그리고 우리하고 같이 놀아주면 엄마도 덜 힘들고 우리도 재미있잖아?"

"엄마, 상진이가 목욕을 하는데 왜 거울이 땀을 흘리지?"

"엄마, 내가 형 됐으면 좋겠다" "왜?" "내가 형한테 '형 안하고 야'하고 싶어"

"파자마가 아니라 잠바지에요. 잠을 잘 때 입으니가 잠바지잖아요"

"버스는 우리집 간다는 얘기도 안했는데 어떻게 알고 방배동에 내려줘?"

"엄마, 나 피부과의사 선생님 될래요" "왜?" "엄마 늙지 말라구요"

"엄마 아파? 어, 열이 조금 있네...엄마 몇 살이야?" "왜 그래? 서른다섯 살"

"그럼 됐어. 참을 수 있어. 난 일곱 살인데도 열나도 참잖아"

"나요? 제일 싫어하는 게 배 아픈 거예요. 그래서 애 낳기 싫어요"

초등학교 시험 문제 하나. 눈이 녹으면 뭐가 되나요? 정답: 물.

그런데 한 어린이만 '봄'이라고 대답했습니다.

문제 또 하나. 동물의 나라에서 동물들이 줄을 서서 극장표를 사고 있습니다. 그때 사자가 줄 서있는 토끼에게 다가와 자리를 양보해 달라고 말했습니다. 내가 토끼라면 어떻게 할까요? 정답: 뒤에 줄을 서라고 말해준다.

그러나 많은 어린이들은 '얼른 비켜 준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어린이도 어른을 닮아갑니다. 크면 말과 글에 욕망의 때가 끼기 시작합니다.

살기가 감돌고 말과 글이 꽃이 아니라 창이 되어 상대의 목을 겨눕니다.

1997년 서울 그리고 봄. 혼돈입니다. 대통령은 없습니다. 대통령은 이미 시중에 넌센스 퀴즈대상으로 남아 있을 뿐입니다.

먹을수록 머리가 나빠지는 것은? 칼국수.

하면 할수록 무식해지는 것은? 조깅.

광해군 연산군 대원군보다 더 무서운 군은? 영삼군.

'아들의 허물은 아비의 허물'이라 한다. 그러면 아비의 허물은 누구의 허물인가? 머리.

그 잘난 용들의 전쟁이 또 시작됐습니다. 욕망의 젖과 꿀이 흐르는 말과 글들이 강호에 황사바람처럼 자욱하게 내려앉고 있습니다. 주리를 틀어도 시원찮을 이 강호에 어느 누가 무림제왕이 된들 이 세상이 끄덕이나 하겠습니까. 무림왕을 만들어 한몫 보려고 구름같이 모여든 강호의 그 잘난 협객들은 또 누가 먹여 살리겠습니까?

세상이 온통 새빨간 불덩이속입니다. 어찌해야 한 송이 눈꽃을 구할 수 있겠습니까?

어찌해야 병속의 새를 꺼낼 수 있겠습니까?

이 미치도록 환장할 눈부신 봄. 봄. 봄... 아이들의 꽃같은 말에서 혁명을 꿈꿔 봅니다.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