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다스 칼럼/망해야 할 기업은 망해야한다

한국의 기업들은 왜 남의 돈을 가지고 기업을 꾸려가는 데만 연연할까.

직장을 그만두고, 구멍가게같은 편집회사를 꾸려가면서 느끼는 의문의 하나가 바로 이것이 다. 그 객관적인 단서는 아주 간단하다. 한국의 기형적 자본주의 구조가 왜곡된 기업인상 을 만들어 내는 데 일조를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왜곡된 기업인像, 그 모습은 이렇다.

그들은 첫째, 어떻게 해서든 기업을 확장하려고 든다. 왜일까. 한국의 경제 구조는 매출액 기준으로 재벌의 순위를 매기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부채 비율이 아무리 높아도 매출액 순 위에서 앞서가면 30대 재벌에 들 수 있다. 그러므로 그들의 꿈은 자기자본 비율을 높이는 것보다는 매출액을 높이는 데 있다. 여기서 하나의 답이 나온다. 매출액으로 ㄸ져서 30대 재벌의 순위에 들면 은행권도 꼼짝 못하고 '밑빠진 독에 물 붓듯' 여신을 할 수밖에 없는 것 이다.

그 실례 중의 하나가 삼미그룹이다. 삼미그룹은 도산하기 전까지 자기자본 비율이 2.9%인 그룹이 어떻게 30대 재벌 안에 들 수 있는가. 이것은 경제원론 강의를 한 시간만 들어본 사람이라면 자다가 일어나서 웃을 일이다. 말이 2.9%이지 거기에서 가족간의 지분율을 빼 고 어쩌고 하면 대표 1인의 지분은 거의 소수점 이하로 내려간다. 어찌 웃음이 나오지 않 을 수 있으랴. 그래서 나는 삼미그룹이 도산하게 된 것은 우리나라 경제를 위해 잘 된 일 이라고 믿는다.

그들은 둘째, 어떤 성격의 돈이든 빌릴 수 있는 만큼 빌리는 데 혈안이 돼 있다. 제1금융권 이든 제2금융권이든, 사체시장의 돈이든 그들은 가리지 않는다. 왜냐하면 어음을 막아야 할 일이 매일 돌아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심리적 배경에는 설마하니 재벌을 쓰러뜨릴 수 있으랴 하는 배짱이 숨어 있고, 「빌릴 때는 엎드려서 빌리지만 갚을 때는 서서 갚을 수 있 다」는 똥배짱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한심한 일이다. 그런데 그 한심함은 정부의 경제 정 책 담당자들이 키워준 것이다. 그들은 재벌이 탄생하기까지는 큰소리를 떵떵 치고 융숭한 대접을 받았지만 재벌이 탄생한 이후에는 언제나 질질 끌려다녔다. 하나의 재벌이 도산하 도록 내버려 두었다가는 국가 전체의 경제 혼란이 온다는 지레짐작 때문에. 그리고 그 재 벌로부터 받았던 융숭한 대접이 혹이 되어 돌아올까 두렵기 때문에.

나는 이런 분석에 이의를 달 수 있는 공무원이, 경제 관료가 있다면 그 사람이야말로 진정 한 이 나라의 공복이라고 생각한다.

얘기가 빗나갔지만 사채시장에서 돈을 빌리는 데 주저하지 않는 회사는 언젠가 망해야 한 다. 우리 나라의 금리가 얼마나 높은가. 적어도 제도권 금융의 비용조차 10% 이하는 없 다. 그 반면에 금융 선진국의 금리는 6∼7%에 불과하다. 제도권 금융을 이용해도 연리 13% 이상의 고금리를 부담해야 하는 한국의 기업이 2부, 3부짜리 사채를 쓰면서 어떻게 국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인지,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그러므로 그들 기업 은 망해야 하는 것이다.

한가지만 더 얘기하자.

그들은 셋째, 경영을 개선할 생각보다는 어떻게 재테크를 할 것인가에만 열중하고 있다. 주 식시장이 약세를 보이면 그 틈을 타 어린 아들에게 주식을 증여해 증여세를 조금 물 궁기를 하느라 딴생각이 없으며, 그렇게 하고 나서도 주식시장이 더 안 좋아지면 증여를 취소한 후 더 싼 가격에 증여하는 편법을 동원하기에 바쁘다. 이런 사람들이 어떻게 기업인으로 존재 할 수 있는지 참으로 모를 일이다. 종업원들이 임금 협상을 강력하게 밀고 나오면 직장 폐 쇄 조치를 취하기 바쁜 사람들이 가족에게 재산을 물려주는 일에는 얼마나 지능적인가.

물론 그런 수법이 범죄화되지 않는 우리 실정법도 문제이니, 그런 법의 틈새를 이용하는 것 이 왜 나쁘냐고 물을 수도 있겠으나 그런 질문은 어린 아이들이나 하는 법이다. 올바른 기 업인으로 자리매김되려면 도덕적 무장이 무엇보다 선행돼야 한다는 뜻이다.

마무리를 하자면, 우리 기업인들은 한국적 자본주의의 틀에서 벗어나야 한다. 아무리 큰 기 업도 망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경제 관료들 역시 아무리 큰 기업도 망해야 할 때 망하도록 내버려 두는 뱃심이 필요하다. 만일 그런 인식을 강화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영원 히 한국식 자본주의, 세습식 기업인을 양성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경제의 순환 논리에도 어긋나는 일이다. 미래를 예비하지 않고 남의 돈으로 땜질식 경영에 단맛을 들인 기업이 어떻게 자본주의의 복판에 살아남을 수 있단 말인가. 그렇다면, 정도를 걷는 중소기업인이 견디다 못해 자살하는 일은 영원히 막을 수 없게 된다. 나는 이 진실을 믿는다. 그리고 이 진실이 받아들여지는 사회야말로 건전한 사회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