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다스 칼럼/단체손님 아니라고‘찬밥’대우?

어느 음식점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문구 중의 하나가 바로 '단체환영'이다. 특히 유명 관광지의 집단시설지구에 자리잡은 음식점의 대부분은 '단체환영'이라는 글귀를 대문짝만하게 써서 오가는 사람들에게 잘 보일 만한 위치에 내걸어 놓고 있다. 그러 나 직업의 특성상 동행인도 없이 혼자 돌아다니는 내 입장에서는 그 '단체환영'이라는 말이 불쾌하기 짝이 없다. 그 말은 곧 "단체가 아니면 환영할 수 없다"는 말로도 해석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단체는 고사하고 대체로 혼자서 식사를 해야 하는 내 처지로서는 그런 음식점에 들어가기조차 망설여진다. "왕 같은 손님 대접은 커녕 사 람 대접이나 제대로 받을 수 있을까", 또는 "내 돈 내고 먹는 밥이 눈치밥이나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마저 든다. 그쯤 되면 일부러라도 그런 음식점은 외면하고 다른 곳 에서 끼니를 때우고 만다. 음식 맛은 조금 떨어질지라도 적어도 손님 대접은 받을 수 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저러한 사정으로 말미암아 '단체만 환영하는' 음식점이더라도 들어갈 수 밖에 없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괜히 들어왔구나" 하는 생각부 터 들기 시작한다. 뒤따라 들어오는 사람이 없음을 눈치챈 주인과 종업원들의 표정에 는 이미 실망스런 기색이 역력하다. 그런 사람들로부터 따뜻한 인사말이 나오기를 기 대하기란 무망한 일이다. 간혹 "어서 오세요"라는 말로 맞이하는 이가 없는 건 아니지 만 습관적이거나 무의식적으로 나오는 말일 뿐이다. 그리고 그런 인사말을 건네는 이 의 반쯤은 인사 받을 사람의 얼굴조차 쳐다보지 않는다. 건성으로 건네는 인사말에서 정이나 따뜻한 마음을 느낄 수 없음은 자명하다.

음식점 주인의 따가운 눈총을 애써 외면하고 좌정한 뒤에도 불쾌한 일은 끊이질 않는다. 으레 주문을 받기 전에 먼저 나와야 할 물잔은 한참동안 기다린 끝에 이쪽에 서 먼저 요구해서야 비로소 식탁 위에 올려진다. 단체 손님이 앞서 들어와 있는 곳이 면 그나마의 서비스조차도 아예 기대하기 어렵다. 애시당초 주문 받을 생각조차 않을 뿐더러 주문을 받고 돌아간 뒤에도 음식이 나오기까지는 하릴없이 기다려야 한다. 그 음식점의 모든 가용인력이 단체 손님을 접대하느라 부산떠는 모습을 보노라면 오히려 상황 판단도 못하고 혼자 달랑 들어와선 그나마 모자란 일손을 빼앗은 내 자신이 오 히려 죄스럽다.

어쩌다 메뉴판을 좀 꼼꼼히 훑어볼라치면 짜증이 묻어나오는 목소리 로 주문을 재촉하기도 한다. 어디 그뿐이랴? 먹고 싶은 음식을 주문하면 어떤 음식은 1인분은 안되고, 어떤 것은 재료가 다 떨어졌기 때문에 안되고, 또 어떤 것은 뚜렷한 이유도 없이 "오늘은 왠지" 안된다고 한다. 안된다는 이유야 음식마다 다르지만 그 속 셈은 하나같이 "그렇게 팔면 이문이 남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면 메뉴 선택의 폭은 훨씬 좁혀지고, 늘 그랬듯이 결국에는 김치찌개나 된장찌개로 결정되게 마련이 다.

굳이 '단체환영'이라고 문구를 내걸 필요도 없이, 장사하는 이들이 단체 손님을 환 영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한두 사람보다는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몰려와서 돈을 쓰고 갈 때에 아무래도 더 많은 이익이 생기기 때문이다. 그런 큰 이익을 안겨 줄 단체 손님에게 양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 또한 그리 어려울 것이 없다. 사실 단체 손님을 환영하는 것 자체만은 어떠한 시비거리도 되지 않는다. 문제는 단체손님이 아니면 환영하지 않는다는 데에 있다.

물론 '단체환영'이라는 문구를 내걸은 식당 가운데에는 사람의 수에 관계없이 균일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곳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내가 찾아가본 음식점의 주인 중에 그런 상도의를 보여준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도 되지 않는다. 다수의 음식점에서는 단체 손님이라고 해서, 또는 단체 손님이 아니라고 해서 서비스의 질과 메뉴 선택의 폭이 매우 탄력적으로 운용된다.

이익을 추구하는 것은 장사꾼의 생리이자 장사의 목적이다. 그것은 또한 인간의 타 고난 속성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익을 추구하는 데에도 원칙과 정도(正道)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 흔히 상도의(商道義)라고 하는 장사의 원칙과 정도가 결여된 이는 예로 부터 '장사치'라 하여 얕잡아 불렀다. '소탐대실(小貪大失)', 그런 장사치들의 공통점은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한 나머지 나중에 더 큰 것을 잃게 된다는 점이다. '단체만 환영 하는' 음식점들이야 말로 바로 그런 경우가 아닐까?

그런데 곰곰히 따져보면, 장사하는 이들이 그토록 선호하는 단체 손님은 한 사람으 로부터 출발한다. 하나가 둘이 되고, 그 두 사람이 다시 다섯, 열, 스물이 되는 것이 다. 어떤 음식점에 혼자 들어갔다가 뜻밖에도 맛과 서비스에서 깊은 인상을 받으면 다음에는 다섯, 열, 스무명을 데리고 다시 찾게 된다. 실제로 누구에게나 그런 경험이 한번쯤은 있게 마련이다. 혼자 찾아왔던 또다른 사람이 다시 열명, 스무명의 사람을 끌어오게 되고, 다른 어떤 사람이 또 그렇게 하고…. 여러 해 동안 그런 일이 되풀이 되면 그 음식점은 늘 문전성시가 될 것이다.

요즈음의 현실과는 조금 괴리된 이야기를 늘어놓은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하지만 모든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마다 원칙과 정도를 지키며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 회가 진정 건강한 사회가 아닐까 싶다.

고백컨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이 힘에 부치게 될 즈음엔 미련없이 그만둘 셈이 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여행작가였던 경험과 생각들을 밑천 삼아 경치 좋고 인심 좋 은 이 땅의 어느 곳에다가 산장을 겸한 음식점을 열어볼 작정이다. 그리고 그 문밖에 는 이런 내용의 글귀를 내걸어 놓을 것이다.

"단 한분의 손님이라도 정성껏 모시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