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다스 칼럼/“모른다”…“어쩌란 말이냐”…

"가만히 좀 있어요"

"무슨 소릴 하고 있는 거야"

"완전히 짜고 치는 고스톱이구만"

시장판에서 싸움붙은 사람들끼리나 주고받을만한 언쟁. 하지만 이말들은 보름이 넘게 열리고 있는 한보청문회 내내 특 위위원들이 주고받는 대화(?) 내용이다.

청문회에 증인으로 나서면 '모르쇠'가 되버리는 사람들의 문제는 일단 뒤로 접어두고, 한보사태의 의혹을 캐보자는 특위위원들이 청문회를 대하는 태도를 살펴보자. 한보사태의 주인공격인 정태 수씨가 증인으로 나온 날에는 마치 권투경기를 보는듯한 착각에 빠질 정도였다. 증인에게서 의혹을 밝혀내려하기 보다는 여야가 상대방에겐 스트레이트 펀치를, 자신은 맞지 않으려고 안면수비 를 강화시키기에만 열중했다. 물론 이날 경기의 심판은 정태수씨 였다. 양선수가 열심히 싸우는데 그 말고 심판 볼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때론 지그시 눈을 감고 적당히 판정만 해주면 되는 것 이지.

한보에게서 돈을 먹은 것으로 혐의받고 있는 자기당 소속 국회의 원들이 증인으로 나올 때는 더욱 과관이었다. 심판이 편파적으로 판정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을까. 누가 누구에게 질의를 하는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였다.

지난 24일 작은 해프닝이 일어났다. 이날 오후 청문회가 시작되 자 현경대 특위위원장이 편지 한통을 소개했고 특위위원들은 모 처럼 웃음 띈 얼굴로 박수를 치며 즐거워 했다.

대구에서 고물상을 경영하는 한 시민이 보낸 격려편지 때문이었 다. '청문회를 보니 의원님들이 참 똑똑하더라' '끝까지 열심히 잘 해달라'는 부탁과 함께 휴식시간에 커피라도 마시라며 4만원을 보내온 것.

특위를 잘 이끌어달라는 민초의 작은 성의가 잘못됐다는 얘기가 아니다. 다만 매일 청문회에 대한 불만을 털어놓는 독자들 전화 받느라 짜증나는 일선기자의 입장에서 특위위원들이 이 편지를 면죄부로 착각하지나 않을까하는 걱정이 들기 때문이다. 청문회 개최를 기대했던 국민들 사이에 요즘 청문회 무용론이 퍼져 있다 는 것을 모르지는 않을텐데….

한보의 5조원이 넘는 거액부도로 국가 경제가 휘청거린다. 나아 가 부실대출을 해준 은행들 때문에 외국에서 우리나라 국가신용 도는 땅에 떨어졌다. 하지만 이와 같은 사태를 일으키는데 결정 적 역할을 한 어느 누구도 책임이 없다고 발뺌을 하고 있다. 사 태의 책임소재를 밝힐 의무가 있는 국회특위도 나중에 의혹을 밝 히지 못한 책임을 질 것 같지 않다.

청문회 증인으로 나선 전 청와대 경제수석은 '한보문제를 제대로 해결못해 진 책임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명확하게 대답했다. "그 래서 자리에서 물러나지 않았는가"

책임을 밝혀내는 것도 현재로선 힘이 들지만 설사 책임소재가 드 러난다고해도 기껏해야 자리를 내놓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우리 사회의 '책임지는 행동'인 것 같다.

최근 외신을 통해 전해진 두가지 소식이 우리식 '책임'을 이젠 바꾸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바램을 갖게 한다. 하나는 미국 코네 티컷 주지사의 벌금이야기. 코네티컷 주지사는 이글스, 셀링디온 등의 팦콘서트를 공짜로 관람한 것이 문제가 됐다. 결국 2000달 러의 벌금과 함께 1800달러를 자선단체에 기증하라는 명령을 받 았고 주지사는 이 조치를 흔쾌히 받아들였다는 얘기다. 또 하나 는 미국 하원의장 뉴트 강리치의 경우. 강리치는 하원 본회의에 서 면세처리를 잘못했다는 이유로 견책과 벌금 30만달러의 징계 를 당했다.

아무리 작은 금액의 경우도 정상적이지 않은 것은 용납되지 않는 원칙과 잘못내린 결정으로 손해를 입었을 때 이에 대해 금전적으 로도 책임지울 수 있는 구상권(求償權)이 그들에게는 있다.

기천만원 정도는 떡값이고 내용 검토도 없이 수백건의 법률안을 하루사이에 통과시키는 선량들, 국가정책을 세우면서 잘못된 결 정이었다면 물러나면 그만이라는 공무원, 은행돈을 자기 주머니 의 쌈지돈 쯤으로 생각하는 기업인에게 구상권을 행사한다면 그 토록 무책임한 일들을 함부로 벌이지는 않을 것이다. 의혹을 풀 자질도 열정도 없어보이는 한보특위위원들에게도 국민의 이름으 로 구상권을 행사하는 것이 어떨까. 반복되온 잘못에 대한 책임 을 묻고 앞으로는 같은 일이 되풀이되지 않게 하는 원칙을 세우 는 지름길이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