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다스 칼럼/봄은 똥냄새로부터 시작됩니다

어느새 봄이 왔습니다.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눈을 감아 봅니다. 땅 속에서 씨앗들이 기지개 켜는 소리가 우우우 들립니다. 겨울잠을 자느라 들어앉은 먼 산. 그 우람한 산등을 아지랑이들이 자꾸만 간지럽히며 장난을 칩니다.

들판엔 연초록 아기보리들이 까르르 까르르 웃으며 재롱을 피웁니다. 참새들의 재잘거리는 소리가 자장가처럼 들립니다. 여기저기서 울끈불끈 힘쓰는 소리가 들립니다. 외양간 암소의 워낭소리가 딸 랑딸랑 가슴을 박하처럼 환하게 식혀 줍니다. 황소의 씩씩거리는 소리도 들 려 옵니다.

헛간의 퀴퀴한 냄새가 어머니 냄새처럼 포근합니다. 들판 군데군데 더운 김 이 모락모락 나는 거름더미. 거기서 솔솔 풍겨나오는 시큼한 똥냄새. "아, 내가 살아있구나!" 난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러봅니다. 정말 이렇게 똥 냄새가 그리운 줄은 몰랐습니다. 도회지의 시멘트 냄새보다 몇천배나 좋은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그렇습니다. 봄은 똥냄새로 옵니다. 아장아장 이쁜 짓하는 아기보리들로부터 옵니다. 아기보리는 대나무처럼 꼿꼿하게 조그마한 주먹손을 만들어 우우우 함성을 지릅니다. 보리는 아무리 어려도 고개를 숙이지 않습니다. 누렇게 늙어 가시 이삭을 만들어도 꼿꼿합니다.

동학 농민군들처럼 당당합니다. 씩씩합니다. 울퉁불퉁한 보리밥은 부처님 볼 처럼 인자하게 생겼습니다. 보리밥엔 부처가 들어 있습니다. 백제 부처님들 처럼 관능미가 넘쳐 흐릅니다. 잘 먹고 잘 싼 똥처럼 기름이 자르르 흐릅니 다. 똥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세상에서 똥같이 살다간 사람들을 생각합니 다. 스스로 개똥같이 살다가 그 개똥마저 남의 밥을 위하여 내던진 사람들...

부처님 예수님 노자 장자 광대 그리고 UR에 뿌리뽑혀 좌절과 분노로 잠 못 이루는 조선 농민들. 이 시대의 생명복음가 김지하 시인은 밥과 똥과 일과 돈과 춤 그리고 굿을 이야기합니다. 투박하지만 내식으로 이해한 그의 '똥...밥...' 생각들을 한번 정리해볼까 합니다.

"밥은 돌고 돌게 돼 있습니다. 일을 해서 밥을 만들고 밥은 또 힘을 만듭니 다. 힘은 일을 만들고요. 그리고 한 사람이 만든 밥이라도 그 밥은 만든 사 람 혼자 처먹는 것이 아니라 서로 나누어 먹게 돼 있습니다. 밥이 돌고 돌다 보면 똥이 됩니다. 똥이 되어야만 흙으로 돌아갑니다.

흙은 쌀을 만들고 다시 밥이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밥으로 하여금 돌고 돌게 하는 것은 바로 돈 입니다. 밥이 한 사람에게 있어서 똥-흙-밥이 되는 윤회를 할 수 있는 것은 돈이라는 수단이 있어서입니다. 물론 주체는 밥이지만 수단은 돈입니다. 그 런데 돈이 들지 않는데 오늘날 현대의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면 당연히 밥이 돌지 않습니다.

여러 사람 속에서 돌고 돌면서 나눠 먹게 하는 것도 돈입니다. 그런데 돈이, 밥이 돌지 않는다니... 이때는 오직 돌게끔 만드는 것만이 유일한 치료 방법입니다. 굳어진 밥, 굳어버린 돈을 뱉게 해야 합니다. 똥싸 게 해야 합니다. 관장해야 합니다. 이 때 굳어진 밥과 녹슨 돈을 부드럽게 풀어 주고 반짝거리는 새돈으로 만들어 똥을 싸게 하는 것이 바로 '춤'입니 다. 그리고 이 '춤'을 추게 하는 인간의식이 '굿'입니다...

그렇습니다. 굳어진 돈, 굳어진 밥을 똥을 싸게 함으로써 춤을 추게 하고 춤을 추게 함으로써 제 대로 돌고 돌아 사람을 튼튼하게 만드는 깊은 뜻이 바로 춤에 있고 춤을 집 행하는 것이 바로 굿입니다. ...밥-돈-똥-춤-굿은 죽은 생명을 살리는 윤회의 영원불멸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똥을 싸지 못하면 그것은 곧 죽음입니다. 요즘 신생아들 중에는 똥구멍이 없는 경우가 간혹 있다고 합니다. 수술로 항문을 만들어 주지 못 하면 어떻게 될 것인지 그것은 너무도 뻔한 일입니다. 밥을 먹기만 하고 똥 을 누지 않으면 배가 터져 죽습니다.

서울대 '똥박사' 전경수 교수는 고백합니다.

"우리 아버님은 변비로 무척 고생하셨습니다. 제가 시골집에 전화를 걸 때는 '아버님. 요즘 변 잘 보십니까?'로 인사를 시작합니다. 아버님께서 변소에 들 어가시면 가족들은 모두 긴장합니다. '잘 돼야 할텐데...' 변소에서 나오시는 아버님의 얼굴빛으로 우리집 하루 기분이 좌우되곤 하였습니다. 어머님께선 항상 '잘 달래보세요'라고 성원하십니다. 사실 '밥 먹었나'하는 인사는 있지만 '똥 누었나'하는 인사는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집에서는 이것이 가장 중요한 인사입니다"

똥을 잘못 누워서 고생한 것은 전경수교수 아버님만 그런 것이 아니었습니 다. 그 유명한 마오 쩌둥도 그랬습니다. 솔즈베리에 의하면 그는 지독한 만성 변 비증 환자였습니다. 그가 쭈그리고 앉아 끙끙댈 때면 그의 관자놀이 혈관이 불뚝불뚝 튀어 나왔다 합니다.

얼마나 답답했을까요? 마오는 나흘이나 닷새를 똥을 못싸게 되면 화를 잘 내고 마구 신경질을 내었다 합니다. 똥을 못누어서 비롯된 욕구 불만 때문에 그는 사람들을 들들들 볶은 것이지요. 그의 경호원들은 마오의 변비증세가 심할 때에는 그의 항문에 손가락을 집어넣어 똥을 끄집어 내어야 했다 합니 다.

마오는 똥누는 일이 마치 전투를 치르는 것과 같은 고역이라고 투덜대곤 했 답니다. 보통 인간이 똥누는데 평생 쓰는 시간이 평균 2년이라고 그럽니다. 여자들은 물론 몇 달쯤 조금 더 길다고 합니다. 이렇게 보면 마오가 똥 누 는데 평생 쓴 시간은 2년이 훨씬 넘게 걸렸다는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늘 똥눌 때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혹자는 '문화대혁명' 은 똥눌 때 얻은 아이디어라는 말도 합니다.

연안(延安)시절 마오가 8~9일 동안 똥을 누지 못하다가 마침내 똥을 누게 되 면 이런 말이 퍼져 나갔다 합니다. "주석님 창자가 움직였다. 주석님이 똥을 누셨다" 결국 10억에 가까운 중국 인민들은 마오의 똥구멍사정에 따라 큰 영향을 받 은 것입니다.

좀더 심하게 말한다면 마오의 똥구멍정치에 목을 매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똥에도 품격이 있고 인격이 있습 니다. 등급이 있습니다. 이 분야선 '한국 지성계의 빨치산' 김용옥교수의 '기 (氣)철학에서 본 배설학'이 걸작입니다.

"항문은 몸이라는 소우주에서 대우주로 나가는 출구를 의미하며 그 출구는 인간의 모든 희로애락과 느낌을 담고 있다. 좋은 똥에는 여섯 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 좋은 똥일수록 냄새가 나지 않는다. 좋은 똥은 냄새가 은은하며 그 은은한 냄새는 자기 체질에 맞게 맞춰져 있으므로 전혀 불쾌감이 없다.
둘째, 좋은 똥의 색깔은 샛노랗거나 시꺼멓지 않은 누리끼리한 중용(中庸)의 색이다.
셋째,건강하고 액티브한 삶일수록 똥은 마른 편에 가깝되 묽은 것은 좋지 않다.
넷째, 똥은 흰떡방아에서 굵은 떡가래가 일정하고 길게 나오듯이 쭈욱쭈욱 빠져 나와 끊어지지 않고 두꺼운 것이 좋다.
다섯째, 똥은 반드시 누고 난 다음에 직장이 깨끗이 비워졌다는 '공복의 느낌'이 들도록 누어야 한다. 그래야 허리가 가뿐해지고 삭신이 쑤실 때에는 삭신 쑤시는 것이 사라 진다.
여섯째, 똥은 밥 먹는 양보다 많이 쌀수록 좋다. 현대인은 100년전의 사람들보다 훨씬 더 싼다. 그래서 각종 병에 시달린다."

나는 문득 빙긋이 웃습니다. 제친구들 중에도 똥을 푸짐하게 잘 누는 사람이 몇 명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확실히 먹은 것보다 싸는 양이 많아 보입니 다. 어쨌든 그들은 매우 튼튼합니다. 그것만 봐도 김용옥교수의 배설학은 매 우 정확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 그럼 이번엔 그 똥이 흙이 되는 과정을 보아야 합니다. 그것은 '한국의 숨어 있는 성자' 권정생 선생의 혜안이 놀랍습니다. 그는 정말 개똥같이 살 았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시골 예배당 종지기로 소리없이 살고 있습니다. 똥 친 막대기같이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의 동화에는 똥친 막대기처럼 사는 이웃들의 얘기가 참으로 많이 나옵니다. 그 중에서도 '강아지똥'은 너무도 슬 프고 아름다운 얘기입니다.

"여기저기서 버림받고 구박받고 천덕꾸러기로 굴러다니던 강아지똥은 절망 합니다. '난 역시 아무 데도 쓸모없는 찌꺼기인가봐.' 그리고 하느님도 원망 합니다. '하필이면 더럽고 쓸데없는 찌꺼기똥까지 만들 필요가 뭐가 있습니 까? 하느님?'하고 대들기도 합니다. 울부짖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밤 강아지똥은 밤하늘을 바라보다가 눈부시게 아름다운 별에 흠뻑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그 별들을 그리워합니다. 그 별들만 가질 수 있 다면 아무리 더러운 똥이라도 조금도 슬프지 않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 강아지똥은 그의 가슴 한곳에 그리운 별들의 씨앗을 심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민들레싹을 만났습니다. 그 민들레싹이 반갑게 강아지똥에게 말했습 니다.

'강아지똥아 네가 나의 거름이 돼줄 수 있겠니? 그렇지 않으면 나는 클 수가 없거든...' 강아지똥은 자기 귀를 의심했습니다. '내가 쓸모가 있다 니...' 그는 가슴이 울렁거려 숨이 막힐 듯 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되지...' 그 는 이말도 부끄러워 더듬거리며 간신히 말했습니다. 민들레싹은 말했습니다. '응, 너의 몸뚱이를 고스란히 녹여 내 몸속으로 들어오는거야. 그래서 별같이 예쁜 꽃을 네가 틔우게 하는 거야."

강아지똥은 너무 기뻐 민들레싹을 꼬옥 껴안았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내가 거름이 되어 별처럼 고운 꽃이 피어난다면 온 몸을 녹여 네 살이 될 게' 어느 새 봄비가 소리없이 오고 있었습니다. 강아지똥은 잘게 부서졌습니 다. 그리고 봄이 한창인 어느 날 민들레는 한 송이 아름다운 꽃을 피웠습니 다."

똥은 꽃입니다. 화엄입니다. 부처입니다. 예수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굶주림 과 재난과 질병을 다 짊어지고 가겠다던 강증산선생입니다. 똥이 밥이 되는 세상은 정말 아름답습니다. 굳은 밥, 굳은 똥, 멈춰버린 윤회의 땅은 지옥입 니다. 돈에 걸신들린, 돈귀신에 홀린 세상은 똥누지 못해 관자놀이 혈관이 불뚝불뚝 솟는 그런 곳입니다. 밥을 여러 사람과 나눠 먹는 것이 아니라 혼 자서 배가 터지도록 똥 싸지 않고 먹는 것입니다. 밥은 똥입니다. 똥은 밥입 니다. 사각사각 새콤달콤 베어먹는 나주배입니다. 생각만 해도 입에 침이 돕 니다.

마침내 김지하시인은 절창을 뽑아 냅니다. 동편제 소리로 무청처럼 싱싱하게 한자락 시원스럽게 내지릅니다.

            "똥보면 베먹고 싶어
            새벽 샘물
   샘위 어덩위
   산죽닢 스쳐오는 바람을 마셔
   동트는 산 봉우리 흰 안개구름 마셔
   내 몸이 곧 흙이어설 게야
   흙이 똥을 마다 안함
   오곡이 장차 가득가득히 익어 끝내는
   열매 열리게 될 터이어설 게야
   똥속에서 배시시
   애린이 웃어설 거야
            꼭 그럴게야
            아아 똥만 보면 베어먹고 싶어..."

아아 내귀엔 "나는 똥이 되고 싶어. 그런데 잘 안 돼. 왜 안되지?... 정말 개 똥이 되고 싶어... 그런데 그게 맘대로 잘 안돼... 난 원래 안되는 놈인가 봐...먹물이라서 그럴 거야...그래서 안될거야"라고 들립니다.

김지하의 절망을 읽습니다. 그것은 창으로 되돌아와 나의 가슴을 사정없이 찌릅니다.나는 왜 똥이 될 수 없을까요? 왜 그 부드러운 봄비에 강아지똥처 럼 나의 몸을 잘디잘게 부수지 못할까요?

똥박사 전경수교수는 말합니다.

"난 저녁에 잘 먹고 다음 날 아침 많은 양의 똥을 눌 때에는 '저 똥 참으로 아깝다'는 생각이 절실해집니다. 한사람이 하루에 평균 1리터 정도의 똥을 누는 것이 정상적이라고 하니 우리집 네식구가 하루에 누는 똥의 합은 두되 반은 넉넉하게 됩니다. 이 정도면 개 두 마리 또는 돼지 한 마리의 아침 배 를 채우기에는 넉넉하지 않을까요?

우리 아파트 한동에는 약 150세대가 삽니다. 매일 아침 이 곳에서 나오는 똥의 양을 생각하면 약 150마리의 돼지에게 한 끼니를 먹일 수 있는 사료가 그대로 쓰레기가 되어서 나갑니다. 또한 그것이 바로 한강 오염의 주범이 됩니다. 서양식 영농방식, 돼지 사육방식이 들어온 이후 우리조선사람들은 무공해사료인 똥을 더러운 것이라고 천대하 고 있습니다."

밥은 하늘이고 당연히 똥도 하늘입니다. 똥을 하늘과 같이 모시지 못하면 천 벌을 받습니다. 후천개벽의 시대에 갈 수 없습니다. 봄은 똥냄새로부터 시작됩니다. 나의 서른도 똥냄새로부터 시작돼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러질 못했습니다. 땅에 굳세게 뿌리받지 못하고 먼지처럼 늘 떠다녔습니다. 그러니 똥이 밥이 되고 밥이 똥이 될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합니다.

이제 어느새 마흔하나의 봄을 맞고 있습니다. 똥냄새도 못 맡아보고 나의 서 른을 보내 버렸습니다. 똥이 없으면 나의 꽃은 필 수 없습니다. 이젠 꽃을 피우기보다 내가 똥이 되는 법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내가 스스로 똥이 됨으 로써 남에게 밥을 주는 것.... 그것이 바로 내가 해야 할 일입니다.

합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