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꽃잎을 피우려 안간힘을 다하는 국화를 지켜보면서, 미당(未堂)은 소쩍새의 처연한 울음과 먹구름 속 천둥, 차디찬 무서리를 견딘 인고의 순간들을 기억해냈다. 흐르고 흐르는 개화까지의 시간을 하나씩 되짚으면서 시인은 그 인고의 아픔을 함께하고 싶었으리라. 뿐이랴. 예부터 국화는 지조의 선비, 고결한 은자의 형상에 비유되곤 했다. 옛시조 ‘국화야 너는 어이 삼월 동풍 다 지내고/낙목한천(落木寒天)에 너 홀로 피었는가./아마도 오상고절(傲霜孤節)은 너뿐인가 하노라’(이정보)가 그런 노래다. 꽃철의 거의 끝자락에 매달린 국화의 속성에 착안하여, 시인은 차가운 서릿발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이 견뎌낸 국화의 강인한 생명력에 찬사를 보냈다.
당 왕조 몰락의 결정적 계기가 된 ‘황소의 난’을 주도했던 바로 그 인물, 황소가 바라본 국화의 풍모는 자못 이질적이다. 그에게 국화는 정원 가득 피었건만 하필이면 차디찬 계절에 꽃과 향기를 드러낸 탓에 나비조차 찾지 않는 외로움의 표상처럼 비친다. 이 소외된 존재를 달래줄 방법이 무엇일까. 시인은 봄을 주도하는 신이자 꽃의 신이기도 한 청제(靑帝)가 되어 국화를 위해 백화제방(百花齊放) 속에 오롯이 한자리를 마련해 주겠노라 다짐한다. 농민 반란을 주도한 인물답게 모든 소외된 이들을 제대로 챙겨주겠다는 야심 찬 기개를 암시한 것일까, 아니면 시운을 만나지 못한 울분을 삭이려는 자위(自慰)의 외침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