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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소화전까지 막는 불법주차

Posted January. 05, 2018 09:32   

Updated January. 05, 2018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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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 아래에 뭐가 있다고요? 글쎄, 처음 보는데요.”

 4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희동의 주택가 골목. 정모 씨(62)가 자신의 하늘색 승용차를 바라보며 대수롭지 않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정 씨의 하늘색 준중형 승용차는 주차 구역이 아닌 골목길 위에 세워져 있었다.

 차 앞바퀴와 뒷바퀴 사이로 맨홀 뚜껑이 눈에 띄었다. 뚜껑 바깥으로는 노란색 원 테두리가 그려져 있었다. 평범한 하수도 맨홀 같지만 이 설비는 엄연한 ‘소화전’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소화전을 지하에 넣어둔 것이다. 소화전 인근 5m에 주차하는 것은 법 위반이다. 권 씨는 “친척을 방문하려고 잠시 세워놨는데 지하식 소화전이라는 게 있는지도, 주차를 하면 안 되는 것도 오늘 처음 알았다”고 말했다.

 소화전은 화재 현장에 출동한 소방펌프차의 물이 떨어졌을 때 이용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수단이다. 이 때문에 소화전 인근에는 주차를 하거나 장애물을 쌓아둬서는 안 된다. 그러나 동아일보 취재팀이 3, 4일 서울 종로구, 은평구, 강북구, 양천구 등 주택가와 상가 골목 일대를 살펴본 결과 지하식 소화전 위에 세워진 차가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시민들과 운전자 대부분은 아예 지하식 소화전이 있는지조차 잘 모르고 있었다. “소화전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는 표식이 변변치 않아 잘 눈에 띄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울 강서구 화곡동에서 20년을 살았다는 주민 이모 씨(56·여)는 지하식 소화전을 보고는 “평범한 맨홀 아니냐”고 기자에게 되물었다. 한참을 들여다본 뒤에야 “매일 이 길을 지나는데 오늘 처음 알았다”고 말했다. 일부는 “큰불이 나면 내 차를 부수거나 견인하고 소화전을 쓰면 되지 않느냐”며 “주차 공간이 부족해 어쩔 수 없다”며 당당한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지하식 소화전 뚜껑에는 노란색으로 ‘소화전’ ‘주차금지’ 등이 써 있지만 운전자의 시각에서는 잘 눈에 띄지 않는다. 그나마 노란색 도색이 벗겨진 채 방치된 곳도 많다. 흰색 노란색 페인트가 덧칠돼 정체를 알기 어려운 것도 있었다. 큰불을 진압할 마지막 카드가 ‘숨은그림찾기’처럼 방치돼 있는 것이다.

 최돈묵 가천대 소방방재공학과 교수는 “소화전 옆에 세운 차량이 화재 진압에서 파손돼도 문제가 없도록 한 미국처럼 지방자치단체나 국가가 제도를 강화하고 계도할 필요가 있다”며 “이 과정에서 일어날 분쟁에 대해서도 가이드라인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권기범기자 kaki@donga.com · 김은지기자 eunj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