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to contents

김정은과 머리 맞대겠다는 文, 정상회담 거론 시기상조다

김정은과 머리 맞대겠다는 文, 정상회담 거론 시기상조다

Posted June. 16, 2017 07:16   

Updated June. 16, 2017 07:38

中文

 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6·15 남북공동선언 17주년 기념식 축사를 통해 “저는 무릎을 마주하고, 머리를 맞대고, 어떻게 기존의 남북간 합의를 이행해 나갈지 협의할 의사가 있다”고 밝혔다. 또 “북한 핵의 완전한 폐기와 한반도 평화체제의 구축, 그리고 북-미관계의 정상화까지 포괄적으로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김정은을 명시하지 않았을 뿐 남북 정상회담에서 6·15 선언, 10·4 선언 등의 이행을 논의할 용의가 있고 이를 북핵 해법으로 본다는 뜻이다. 사실상 과거 대북 햇볕정책의 부활을 천명한 것으로 해석해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2000년 6월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이 체결한 6·15 공동선언은 ‘통일문제를 우리민족끼리 자주적으로 해결’하고, ‘남측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해 그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하는 것이 큰 골자다. 이산가족 상봉과 경제 사회 문화 교류 활성화 등도 담고 있다. 분단 후 남북 정상 간 첫 합의로 일부 관계 개선의 성과가 없지 않았지만 결과적으론 대북 퍼주기의 근거가 됐다. 특히 통일 관련 부분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방안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는 헌법 제4조에 배치된다는 논란이 컸다.

 문 대통령은 과거 남북 합의가 정권교체로 이행되지 않은 것에 아쉬움을 토로했지만 북은 남북대화를 핵· 미사일 개발 시간을 벌고 재원을 마련하는 수단으로 여길 뿐이다. 14일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성명도 “특히 서해열점지역에서의 북방한계선을 고수하겠다고 매달리지 않아야 한다”고 문재인 정부를 압박했다. 서해 공동어로구역과 평화수역 설정이 담긴 2002년 10·4 공동선언과 관련해 노무현 대통령이 NLL(북방한계선) 포기 발언을 했는지를 둘러싼 논란과 맥이 닿은 공세다. 문 대통령에게 과거 정권의 빚을 청구할 의도가 뻔한 데도 대화를 서두르다간 무슨 덤터기를 쓰게 될지 알 수 없다.

 정전 체제를 극복하고 한반도 평화체제를 구축하려면 북의 핵과 미사일 포기가 전제돼야 한다. 북의 행동을 먼저 요구하는 대신 미국과 북이 동시에 움직여 관계정상화와 비핵화를 이루게 만들겠다는 것이 우리의 주도적 역량을 과신하기 때문이 아닌지 냉철하게 봐야 한다. 월스트리트 저널이 문재인 정부가 강대국 사이의 균형자 역할을 하면서 대북 협상을 추구하려는 것에 “이런 순진함은 한국의 안보를 위험에 빠트린다”고 지적한 것이 무리가 아니다. 국제사회가 대북 제재에 전력을 쏟는 상황에서 새 정부가 개성공단 재개까지 생각한다면 한국도 왕따가 될 수 있다. 문 대통령부터 엄혹한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