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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침묵

Posted December. 26, 2009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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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중국에 언변이 뛰어난 장의()라는 사람이 있었다. 여기저기 떠돌다 재상의 식객이 됐다. 어느 날 왕이 하사한 진귀한 구슬을 보여주는 잔치가 벌어졌다. 그런데 구슬이 감쪽같이 없어져 가난한 장의가 범인으로 지목했다. 그는 수없이 매질을 당했지만 끝까지 침묵했다. 재상은 실신한 그를 할 수 없이 풀어줬다. 그는 초주검이 되어 귀가한 뒤 아내의 물음엔 대꾸도 않고 혀를 쑥 내밀며 내 혀가 있소 없소라고 되물었다. 혀야 있지요라고 하자 그럼 됐소라고 말했다. 그는 결국 혀 하나로 재상에까지 올랐다. 시오설()이란 고사()다.

장의는 침묵할 때와 말할 때를 잘 가리는 기지() 덕분에 출세한 사례다. 예로부터 내려오는 침묵은 금(), 웅변은 은()이란 말이 언제나 진리는 아닌 것 같다. 사람에 따라, 상황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지니는 게 침묵이다. 때론 동의 자백 승낙을 뜻하기도 하지만 반대 무시 거부의 뜻을 갖기도 한다. 그 때 그 때 적절히 사용하지 않으면 화()를 부르기도 한다. 기자들이 정치인이나 고위공무원, 사건 관계자의 노 코멘트를 잘못 해석해 엉뚱한 뉴스가 되기도 하는 것은 침묵의 그런 묘한 속성 때문이다.

생각을 정확히 전달하기 어렵거나 속마음이 들킬 염려가 있을 때, 변명이나 거짓말로 오해받을 수 있을 때 등엔 침묵이 유용할 수 있다. 수사나 재판 과정의 진술거부권은 침묵을 지킬 자유를 법적 권리로 보장받은 것이다. 5만 달러 수수 혐의를 받고 있는 한명숙 전 총리가 지난주 검찰의 대질조사에서 침묵으로 대응한 것은 진술이 오히려 불리할 것으로 생각한 때문일 것이다. 문제의 총리공관 오찬에 동석했던 정세균 민주당 대표가 한동안 침묵을 지킨 것도 같은 이유였을 것이다.

정 대표는 그제 침묵을 깨고 대()정권 투쟁을 선언했다. 자기 측근의 2만 달러 수수설은 날조이고 명예훼손이기 때문에 묵과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총리공관 오찬 참석 경위와 인사청탁 관련 의혹에 대해선 여전히 침묵을 지키고 있다. 검찰도 법정 전략 때문인지 한 전 총리 조사 이후 계속 침묵 중이다. 진실은 재판이 시작돼 불꽃 튀는 법정 공방이 전개돼야 알 수 있을 것 같다.

육 정 수 논설위원 soo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