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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막걸리 찬가

Posted October. 17, 2009 0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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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둑해질 무렵 종로 피맛골은 직장인들이 빈대떡 안주에 막걸리 한 사발 마시러 들르는 곳이었다. 해방 직후부터 문을 연 이곳 빈대떡 막걸리 집에는 문인 예술인들과 근처 직장인들이 단골이었다. 올 봄 재개발 공사가 시작된 후에도 몇 군데가 철거된 건물 사이에서 문을 열고 있지만 머지않아 사라질 것 같다. 막걸리 집 주인들은 새 빌딩의 월세가 비싸 들어갈 수 없을 것 같다고 걱정이다. 새 빌딩이라 나무의자에 앉아 마시는 옛 맛이 날지 알 수 없지만 그래도 몇 곳은 문을 열었으면 싶다.

서민의 애환이 서린 뒷골목에서나 볼 수 있었던 막걸리의 인기가 요즘 치솟고 있다. 맥주집이 즐비하던 대학가에 산뜻하게 단장한 막걸리 전문점이 들어서고, 골프장 그늘집에도 막걸리 메뉴가 등장했다. 백화점에도 막걸리 코너가 생겼다. 국제선 항공기에까지 막걸리가 진출했다고 한다. 아시아나 항공이 일본 노선에 서비스하는 막걸리는 탄산이 없고 냄새가 나지 않도록 개발된 금속캔 제품이다.

예전부터 각 지방을 대표하는 막걸리 제품이 있었다. 포천이동막걸리 서울장수막걸리 부산동래산성막걸리 단양오곡막걸리 등이 인기를 누렸다. 그중 일부는 일본 등 해외 시장을 개척해 김치의 뒤를 잇는 대표적인 한류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막걸리가 부활하면서 막걸리 종류도 다양해졌다. 대학가에선 커피를 첨가한 에스프레소 막걸리, 망고주스를 넣은 망고 막걸리도 나오고 있다. 귀에 생소한 이름이지만 그만큼 막걸리의 높은 인기를 반영하는 것 같다.

그제 이명박 대통령은 주한 외국대사와 국제기구 대표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막걸리와 한식을 대접했다. 이 대통령은 막걸리가 건강에 좋고 여성들에게는 미용과 피부에 좋다면서 막걸리 국제홍보팀장을 자임했다. 이달 초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도 두 나라 정상은 막걸리로 건배를 했다. 앞으로 국내에서 열리는 국제회의에서 막걸리를 더 자주 보게 될 것 같다. 고려대학은 막걸리 대학 이미지가 국제화에 방해된다며 개교 100주년 기념 와인을 만들었으나 요즘은 다시 막걸리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막걸리를 마셔도 사내답게 마셔라는 막걸리 찬가()가 부활할 모양이다.

박 영 균 논설위원 parky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