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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박연차 유죄판결과 노 전 대통령 일가의 문제

[사설] 박연차 유죄판결과 노 전 대통령 일가의 문제

Posted September. 17, 2009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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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이 정관계 인사들에게 로비 자금을 살포하고 세금을 탈루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3년6개월의 실형과 벌금 300억원을 선고받았다. 박 씨가 정대근 전 농협회장,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 등 19명에게 70억원이 넘는 뇌물을 준 혐의에 대해 재판부는 모두 유죄()를 인정했다.

박 씨는 추적을 피하기 위해 뇌물을 모두 현찰이나 100달러짜리 미화 또는 상품권 등으로 전달했다. 이 때문에 검찰이 수표 추적과 같은 방법을 통해 요지부동의 증거를 확보하기는 어려웠다. 그러나 재판부는 박 씨와 관련자의 일관된 진술, 메모를 남긴 다이어리, 통화 내역 등에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뇌물공여죄는 통상 뇌물수수죄보다 약하게 처벌받지만 박 씨는 뇌물의 대가를 크게 챙겼기 때문에 실형을 피할 수 없었다.

검찰은 박 씨가 노무현 전 대통령과 그 가족에게 뇌물을 준 혐의에 대해서는 기소하지 않았다. 노 전 대통령 일가는 박 씨로부터 640만 달러를 받은 혐의를 받고 있었다. 박 씨는 또 노 전 대통령 부부에게 1억원 상당의 피아제 시계 두개를 선물했다. 박 씨가 다른 정관계 인사들에 대해서만 사실과 부합하는 진술을 하고 노 전 대통령 일가에 대해서는 거짓으로 무고()를 했다고 볼 수는 없을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이 자살하는 바람에 법정에서 진실을 가릴 기회가 사라졌지만 뇌물수수 혐의로 기소됐다면 이번 판결 취지에 비추어 유죄판결을 받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부 선동적 매체는 많은 신문과 방송이 노 전 대통령의 혐의를 중계하듯 보도해 그를 억울한 죽음으로 몰고 갔다고 주장했다. 이번 판결을 보더라도 노 전 대통령이 억울한 모함을 당한 것은 아니다. 전직 대통령의 비리 혐의는 국민적 관심사라는 점에서 언론이 신속 정확한 보도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당연하다.

노 전 대통령과 천수이볜 대만 전 총통은 어려운 가정에서 태어나 변호사가 됐고 대통령 퇴임 후 검찰 수사를 받는 등 닮은 점이 많다. 천 전 총통은 재임 중 뇌물수수죄, 국가기밀비 횡령죄 등으로 지난 11일 타이베이 지방법원에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법정에서 아내가 직접 뇌물을 받고 관리해 나는 모른다고 진술했지만 중형을 피할 수 없었다. 국정 최고책임자는 퇴임 후 어떤 식의 검증을 당하더라도 꿀릴 게 없도록 자신과 주변을 관리해야 한다. 이는 한국과 대만의 두 사건이 남긴 교훈이기도 하다.

5만 원 권 현찰이 등장하면서 뇌물수수가 더 쉬워졌다고 우려하는 시각이 있으나 이번 판결은 고액권 현찰도 뇌물죄의 법망을 피해갈 수 없음을 일깨워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