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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무새 죽이기' 의 대반전

Posted July. 15, 2015 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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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개봉된 임상수 감독의 바람난 가족은 온 가족이 바람을 피운다는 도발적 소재를 담고 있다. 남자주인공 주영작은 반전이 있는 인물이다. 그는 625전쟁 때 학살사건의 변론을 펴는 양심적 인권변호사지만 나이 어린 여자와 불륜을 저지르는 속물적 욕망의 포로다.

어제 전 세계에서 동시 출간된 소설가 하퍼 리(89)의 두 번째 소설 파수꾼의 내용을 놓고 미국 사회가 들썩인다. 첫 작품 앵무새 죽이기의 후속편 원고가 55년 만에 출간된다는 소식에 고령의 작가가 제대로 판단한 것인지 논란을 빚었던 그 소설이다. 문제는 앵무새 죽이기에서 억울한 흑인 피의자를 돕는 정의로운 변호사로 그려진 애티커스 핀치가 속편에서 인종차별주의자로 묘사됐다는 점이다. 미국인들 마음속 영웅이 하루아침에 환멸의 대상으로 전락해버린 대반전이 일어난 것이다.

파수꾼은 앵무새 죽이기에 앞서 집필된 원고다. 책이 나온 뒤 미국 언론은 파수꾼 같은 습작에서 걸작을 이끌어낸 편집자의 역할을 새삼 주목하고 있다. 서구에서는 문인의 초고가 책으로 출간되기까지 편집자의 입김이 중요하게 작동한다. 눈 밝은 편집자는 사소한 오류부터 내용, 문체에 이르기까지 작가와 끝없는 소통을 거쳐 위대한 작품의 탄생에서 핵심적 역할을 한다. 그래서 작가와 편집자는 때론 친구처럼 때론 원수처럼 가깝고도 먼 사이다.

배우 콜린 퍼스의 차기작 지니어스의 경우 헤밍웨이와 토마스 울프의 전설적인 편집자 맥스웰 퍼킨스에 대한 영화다. 문학사에는 유명한 작가-편집자 커플이 등장한다. 에즈라 파운드는 T S엘리엇의 대표작 황무지의 편집자였다. 파운드는 초고의 절반이상을 잘라낸 뒤 영어로 된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시가 나왔다고 자랑했다. 찰스 디킨스는 폼페이 최후의 날을 쓴 작가 겸 편집자 에드워드 불워-리튼의 의견을 들어 위대한 유산의 마지막 대목을 고쳐 썼다. 만약 앵무새 죽이기 편집자의 의견을 들었더라면 고령의 작가가 파수꾼을 출판하지 못하도록 막았을 것 같다.

고 미 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