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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의 통치논리, 법의 논리와 충돌

Posted March. 15, 2008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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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성군인 세종이 부패 관리를 중용하기 위해 수사기관의 사형 요구를 물리친 이야기예요. 믿기 어려운 일이죠. 법조인 신분에서 당연히 분개할 일입니다. 하지만 세종은 법을 집행하는 사람이 아니라 국가 경영을 책임지는 통치권자였어요. 그 점이 중요합니다.

서정민(32) 검사의 전화 목소리는 무척 부드러웠다. 성격도 마찬가지라고 했다. 대구지검 포항지청에서 공직, 기업 비리를 수사한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그는 강압적으로 범죄를 자백 받는 시대는 지났다며 기분 좋은 웃음을 터뜨렸다.

그가 세종, 부패사건에 휘말리다(살림)라는 흥미로운 제목의 책을 냈다. 병조판서 조말생(13701447)의 부패 문제를 둘러싸고 그를 사형에 처하자는 사헌부, 사간원과 그를 살려 중용하려는 세종의 논쟁을 치밀하게 재구성했다.

1426년(세종 8년) 조말생은 뇌물을 받은 부패 인물로 지목된다.

세종은 조말생을 귀양 보내고 엄정한 수사를 지시한다. 수사기관인 사헌부와 사간원은 부패의 핵심 조말생에게 사형을 구형했다.

그러나 세종은 이를 물리치고 귀양으로 마무리하라는 판결을 내린다. 사헌부 관리들이 판결 번복을 간청했지만 세종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5년 뒤 조말생은 함길도(지금의 함경도) 관찰사에 임명된다.

요즘 법 감정으로 보면 부패 관리를 감싸는 세종의 태도가 이해되지 않는다. 그런데 서 검사는 그런 세종의 선택이 옳았다고 말한다.

제가 사헌부 관리였더라도 사형을 구형했을 겁니다. 하지만 세종은 법 집행자가 아니라 국가 경영자였습니다. 국가의 기틀이 아직 완전히 잡히지 않은 당시 적재적소에 쓸 수 있는 인재가 제한돼 있다는 점을 간파했어요.

서 검사는 그렇다고 세종이 법치주의를 무시한 것은 아니라고 강조했다.

세종은 사헌부의 사형 요청은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유죄라는 수사 결과를 뒤집지는 않았어요.

조말생이 사면 받은 뒤 무죄를 주장하자 세종은 그걸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조말생의 아들이 관리로 진출하는 것까지 막으려는 대신들의 움직임에는 제동을 걸었다.

부패 문제가 정략적으로 악용되는 걸 막기 위한 조치였다는 것이 서 검사의 분석이다.

그는 현재 서울대 대학원 박사과정에서 한국법제사를 전공하고 있다. 책 쓰는 일이 힘들거나 본업에 방해가 되진 않았을까.

거짓을 밝히고 진실을 추적하는 일을 하면서 과거엔 어떤 법적 장치가 이런 일에 대응했을지 궁금할 때가 많아요. 글을 쓰고 공부하면서 얻은 지혜가 검사 업무를 자극해 오히려 도움이 됩니다.



윤완준 zeitu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