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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 위기 맞은 ‘개천 용’

Posted September. 26, 2017 08:04,   

Updated September. 26, 2017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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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에르토리코 출신 미국 빈민가의 소녀 소니아는 일곱 살에 소아당뇨를 진단받았고 여덟 살 때부터 스스로 인슐린 주사를 놓았다. 알콜 중독자 아버지는 소녀가 9살 때 세상을 떠났다. 대학에 들어가니 ‘소수계 우대정책’ 덕에 입학했다는 이유로 조롱받았다. 그가 바로 미 최초의 히스패닉계 연방대법관 소니아 소토마요르(63), 미국판 개천에서 난 용이다.

 ▷문재인 정부가 첫 경제사령탑으로 김동연 경제부총리를 발탁했을 때 청문회에서 개룡남(개천에서 태어나 용이 된 남자)이 화제가 됐다. 모 국회의원이 “개천에서 용 나는 사회의 상징 같은 인물”이라고 찬사를 보내자 김 부총리는 “개천에서 (난) 용은 굉장히 부담스러운 말씀”이라고 했다. 실제로 그는 무허가 판잣집의 소년가장 출신. 11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상고를 나와 은행에서 일하면서 야간대학에 다녔고 행시와 입법고시까지 합격한 입지전적 인물이다.

 ▷대한민국의 오늘이 있기까지 불우한 환경에서도 꿈을 이룬 사람들이 쏟은 땀과 눈물이 있었다. 부와 지위의 대물림이 고착되면서 이제는 ‘개천 용’ 찾기도 힘들어졌다. 오죽하면 ‘통장에서 용 났다’는 말이 생겼을까. 실제 연구에서도 이런 현실이 입증됐다. 서울대 경제학부 주병기 교수, 박사 과정 오성재 씨가 발표한 논문에 의하면 계층 이동에 성공한 사람의 숫자가 최근 13년 사이 절반으로 줄었다. 연구팀이 자체 개발한 ‘개천용 지수’를 통해 부친의 직업과 학력에 따라 기회의 불평등이 좌우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과 이탈리아 역시 한국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멸종 위기를 맞은 개천 용의 개체수를 늘리는 것은 국가의 미래와 직결된 문제다. 계층이동의 사다리가 끊어진 사회에서는 경제성장은 물론 젊은이들이 희망을 찾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분노와 한탄만 할 수는 없다. 미 역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운 소토마요르는 자신을 만든 비결을 ‘두렵다는 이유로 멈추지 않은 것’이라며 이렇게 성공을 정의했다. 단순한 신분상승이 아닌, 출발점에서 얼마다 더 멀리 왔느냐가 그 잣대가 돼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