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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를 바꾼 1등 삼성

Posted September. 23, 2017 07:22,   

Updated September. 23, 2017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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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 하나의 불량품도 안 된다. 모두 폐기 처분하라.”

 1993년 6월 독일 바덴바덴의 한 호텔. 삼성그룹 임원들과 차를 마시던 이건희 회장은 화가 잔뜩 나 있었다. 사내방송에서 현장 직원이 불량 세탁기 뚜껑을 칼로 깎아낸 뒤 조립하는 모습을 본 직후다. 옆자리 이수빈 비서실장이 “회장님 뜻은 알겠지만 현장에선 고충이 적지 않습니다”라고 하자, 이 회장은 “왜 말귀를 그렇게 못 알아듣느냐!”며 큰 소리로 역정 냈다. 티스푼을 세게 내려놓는 바람에 찻잔 받침이 깨지는 듯한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마누라 자식만 빼고 다 한번 바꿔보자”는 이건희의 신경영 선언은 이렇게 탄생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도쿄, 프랑크푸르트까지 68일 동안 임직원 1800여 명을 모아놓고 책상을 내리치며 기강을 다잡았다. 이 회장이 몇 번씩 강조한 것은 품질경영과 1등주의였다. 4년 후 닥칠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를 누구도 예측 못 했을 때 삼성은 신경영으로 위기를 극복하고 초일류기업 반열에 올랐다.

 ▷진화 속도가 빠른 산업에선 빠르고 통 큰 결단을 할 수 있는 오너십 지도자가 단기 성과에 집착하는 전문경영인보다 낫다. SK하이닉스가 참여한 한미일 연합의 일본 도시바 메모리 인수합병(M&A) 성공이 이를 웅변한다. 미국, 대만 기업과의 재협상 등 후보들 간 우열이 수시로 변하는 상황에서 최태원 SK 회장의 결단이 없었다면 성사가 힘든 피 말리는 게임이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최 회장의 뚝심이 빛을 발했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가 ‘지난 100년간 전 세계를 바꾼 5대 아시아 기업’에 삼성을 첫 번째로 올렸다. 일본 도요타, 소니, 중국의 알리바바보다 삼성을 앞세웠다. 우리 경제의 버팀목인 반도체, 자동차는 글로벌 시장에서 끊임없이 도전한 오너의 기업가정신과 장기적인 안목, 과감한 투자 결정 없이는 탄생할 수 없다. 참모가 아무리 유능해도 최종 결정은 오너 몫이다. 주인이 자리를 지켜야 할 엄중한 시기에 발목이 잡혀 있다면 국가적 손해다.

최 영 해 논설위원 yhchoi6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