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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의 외로움

Posted April. 27, 2017 07:24,   

Updated April. 27, 2017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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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대통령의 임기 초반에는 점심·저녁식사를 희망하는 사람들로 미어터져 비서실이 교통정리하느라 진땀을 흘린다. 집권 4년차가 넘어가면 이젠 대통령이 누구누구를 부르라고 해야 할 정도로 한산해진다. 그때 초청받아 오는 손님들도 입이 나와 있다고 한다. ‘잘 나갈 땐 안 부르더니 이제야 불러…’ 김영삼 전 대통령도 정권말 ‘저녁에 썰물 빠지듯 사람들이 떠나버린 청와대 넓은 관저에 노부부만 남아 있으면 외로움이 밀물처럼 밀려온다’고 했다는 전언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대통령정책실장을 지낸 김병준 국민대 교수가 대통령 주변을 도로에 비유했다. ‘집권 초기에는 마주 오는 차들만 보인다. 나를 봐달라고 경적까지 울린다. 중반에 접어들면 오는 차도 있고 가는 차도 눈에 띈다. 임기 말이 되면 모두 떠나는 차들뿐이다. 행여 붙잡힐세라 가속 페달을 힘껏 밟아 도망가는 차들도 적지 않다.’ 오죽했으면 노 전 대통령이 정권 말에 자신만 말하고 아무 토론이 없던 청와대 회의를 끝낸 뒤 이렇게 탄식했을까. “오늘도 원맨쇼 했네.”

 ▷비선 실세 최순실 씨의 단골 성형외과 의사였던 김영재 원장의 부인 박채윤 씨가 25일 법정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이 굉장히 외로워했다”고 증언했다. 청와대를 드나들며 박 전 대통령의 개인적 고민 등을 나눴고 관저 침실에 들어가 대화도 했다는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이 ‘혼밥’을 먹는 이유에 대해 ‘부모님을 잃은 뒤 소화기관이 안 좋아 밥을 잘 못 먹는다’고 설명했다고도 한다. “국민 여러분이 가족이고 일하느라 외로울 틈이 없다”는 박 전 대통령의 말은 더 없이 외롭다는 뜻으로 새겨들어야 했던 것 아닌가 싶다.

 ▷대통령도 외로울 수 있다. 그러나 대통령의 고독과 그로 인한 정서불안은 국정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 대통령이 아무에게나 위로와 위안을 얻으려다가는 국정이 산으로 간다. 우리는 그 폐해를 여러 대통령에게서 보았다. 국가와 국민의 명운을 좌우할 결정을 내릴 대통령은 국정능력 못지않게 정서적 안정감이 필수조건이다. 곧 새 대통령을 뽑을 유권자 모두 유의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