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to contents

크렘리놀로지와 북한

Posted April. 17, 2017 07:20,   

Updated April. 17, 2017 07:33

ENGLISH

 옛 소련의 독재자 이오시프 스탈린이 1953년 사망했을 때 서방은 라브렌티 베리야를 후계자로 꼽았다. 그는 스탈린의 심복에다 국가보안위원회(KGB) 전신인 내무인민위원회(NKVD) 위원장이었다. NKVD는 스탈린 시절 최대 200만 명이 희생됐다고 알려진 대숙청을 실행한 정권 보위 기관이었다. 하지만 권력 암투에서 살아남은 사람은 니키타 흐루쇼프였다. 베리야의 실각이 처음 외부에 알려진 것은 볼쇼이 발레단 공연장에 그가 나타나지 않았을 때다.

 ▷냉전 시절 서방이 소련 지배층의 동향을 포착하기 위해 궁여지책으로 개발한 방법이 ‘크렘리놀로지(Kremlinology)’다. 크렘린(Kremlin)에 학문을 뜻하는 ‘-ology’를 붙인 용어다. 소련 정치국원들이 찍힌 사진 속 서열이나 당 기관지에 실린 기사, 성명 등을 분석해 크렘린 움직임을 간접적으로 파악했다.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서기장이 숨진 1982년 모스크바 붉은 광장에서 볼셰비키 혁명 65주년 기념 열병식이 열렸을 때도 서방은 이를 관람하는 정치국원들 면면에서 후계자를 찾아내려고 신경을 곤두세웠다.

 ▷15일 북한 조선중앙TV가 내보낸 북한군 열병식 생중계 화면에는 2월 숙청됐다고 통일부가 보고한 김원홍 국가보위상이 주석단에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 등 핵심 실세들을 처형하는 데 앞장섰던 그가 김정은에게 허위 보고를 일삼다가 연금됐다더니 두 달 만에 건재하다는 사실이 확인된 것이다. 그동안 어떤 우여곡절을 겪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눈에 띄게 수척해진 모습이 북의 요동치는 권력부침을 말해준다.

 ▷이달 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시리아 공군기지 폭격을 보고받던 당시 사진의 좌석 배치가 화제였다. 스티브 배넌 수석전략가는 문 쪽으로 밀려나 있고 사위인 재러드 쿠슈너 선임고문은 트럼프 대통령과 같은 탁자에 둘러앉았다. 백악관의 권력 향배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진이었다. 투명하지 않은 권력집단의 내부 역학을 알기 위해 창고 속에서 먼지를 뒤집어쓴 크렘리놀로지를 다시 꺼내야 하는 시대가 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