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o to contents

외로운 사람 도우며 외로움 잊어갑니다

Posted February. 17, 2007 07:26,   

ENGLISH

고통을 겪어 본 사람은 남이 겪는 아픔의 깊이도 헤아리게 된다. 고통은 나누면 반이 되고,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된다는 사실도 겪어 본 사람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안다.

방글라데시 출신 외국인 노동자 20여 명으로 이뤄진 엑몬봉사회. 낮에는 공장, 밤에는 단칸방에서 생활하며 코리안드림을 키워 가는 이들은 매월 네 번째 일요일이면 나들이에 나선다. 5년째 봉사하고 있는 정신지체장애인시설을 찾아가는 것이다.

고국 그리워 시작된 선행

이들이 처음 봉사에 나선 것은 태풍 루사가 전국을 강타했던 2002년 9월. 서울 성동구 성수동 일대 공장에서 일하며 5분 거리의 단칸방에 모여 살던 이들은 TV로 강원 지역의 물난리 현장을 지켜보다가 고향 생각에 울컥해졌다.

방글라데시에는 일 년에 서너 차례 홍수가 나요. 집이 온통 물에 잠겨 가재 도구를 모두 잃고 이웃 사람이 죽어나가지요. (나딤 회장)

금세 10여 명의 방글라데시인들이 TV에서 본 수해지역 사람들을 도우러 가자고 의기투합했다. 하지만 TV에서 들었던 강원도라는 곳이 어디에 있는지 아는 사람이 없었다.

인근 옥수사회복지관의 도움으로 강원도에 갈 소형버스를 빌리고 구호 식량을 샀다. 1인당 갹출한 돈이 4만 원. 100만 원 안팎의 월급을 받아 60만70만 원은 써보지도 않고 고향에 부치며 사는 그들에게는 거금이었다.

남의 기쁨이 나의 기쁨

이듬해 방글라데시에서 청소년적십자(RCY) 활동을 했던 소던(32) 씨를 주축으로 성동구 성수동 일대 공장에 다니던 동향 친구들과 봉사회를 만들었다. 방글라데시어로 한마음을 뜻하는 엑몬이란 이름도 지었다.

2003년 9월 경기 하남시의 정신지체장애인 시설인 나그네의 집과 인연을 맺은 뒤 엑몬봉사회 회원들은 매월 넷 번째 일요일 방문을 거르지 않고 있다.

나그네의 집에 머무는 사람은 10대에서 90대까지 60여 명의 장애인. 처음엔 낯선 생김새의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눈도 주려 하지 않았다.

하지만 경계는 잠시. 사람이 그리웠던 그들은 어눌한 한국말로 할머니, 할아버지, 형, 동생이라 부르며 안기는 엑몬 회원들과 가족이 됐다.

나그네의 집 이난애(49여) 간사는 양쪽 모두 말이 어눌하지만 그런 동질감 때문인지 이곳을 찾는 다른 봉사자들에 비해 금세 친해졌다고 했다.

가장 힘들다는 목욕 일을 도맡는 한국 체류 8년째인 아따울헉(36) 씨는 나도 목욕 시켜줘하며 달려드는 장애인들 덕에 한 달을 버틴다고 했다.

봉사를 하면 몸은 피곤해도 다음 주 일하는 것이 즐거워요. 짧은 시간이라도 함께 있으면 그분들 얼굴이 환해지는데 저까지 덩달아 좋아요. 외로운 것도 모두 잊게 돼요.

사람이면 다 같은 사람이지요

엑몬봉사회 회원들은 지난달 가슴 아픈 이별을 겪었다. 봉사회 살림살이를 모두 책임지던 회장 소던 씨가 강제출국된 것.

불법 체류자 신분이던 그는 거리에서 검문을 당해 출입국관리소로 넘겨진 뒤 일주일 만에 방글라데시로 보내졌다.

공항에서 소던 씨는 봉사회를 후원하던 지역 적십자 봉사관에 전화해 살아온 시간의 대부분을 나만을 위해 보냈는데 한국에서 조금이라도 남을 위해 시간을 보내는 법을 배웠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회원들 가운데 몇 명의 동료들이 이렇게 갑자기 고국으로 떠나갔다. 남아 있는 회원 가운데도 언제 적발돼 한국에서 추방될지 모르는 위태로운 처지에 있는 이들이 있다.

그래도 엑몬봉사회는 흔들리지 않는다.

한국에 얼마나 더 있을지 알 수 없지만 봉사는 계속 할 거예요. 나눔은 내가 남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를 인정하는 과정이에요. 나누는 데 한국인, 외국인이 어디 있어요. 사람이면 다 같은 사람인걸요.(나딤 회장)



홍수영 gae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