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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풍령                       - 서문경


2.

트럭들은 고속도로의 주행선을 따라 일렬로 늘어서서 달렸다. 그래서 서울로 가는 상행선 고속도로는 주행선으로 달리는 길다란 트럭행렬과 추월선으로 달리는 일반차들의 행렬로 나뉘어졌다.
차의 계기판은 50킬로미터를 가리키고 있었다. 아버지는 그것이 모두와 약속해놓은 속도라면서 더 이상 올리지 않고 달렸다. 그 바람에 추월선으로 달리는 다른 차들도 길게 밀려서 제 속도를 내지 못했다. 저 멀리 트럭행렬이 끝나는 뒤쪽에도 일반 차량들이 뒤따르고 있었지만 그들 역시 아버지의 트럭 속도에 맞춰 달려야 했다. 그러다 보니 꼬리가 자꾸만 길게 늘어났다. 반면에 중앙분리대 건너편의 부산 쪽으로 가는 차들은 쌩쌩 바람을 가르며 지나갔다. 차들이 지나갈 때마다 아스팔트 바닥 위에서 전선줄이 우는 듯한 마찰음이 일어나 길게 파장을 그리며 차 안으로 날아들었다.
핸드폰이 울렸다. 아버지가 받더니 운전대 옆에 있는 라디오를 틀었다. 뉴스가 나오고 있었다.
"전국농민회총연맹 등 20여 개 농민단체들과 농민들이 지금 전국 곳곳에서 농가부채 경감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습니다. 이들 중 일부는 국회의사당 앞에서 농촌 회생 촉구 1백만 궐기대회를 갖기 위해 차량에 나눠타고 고속도로와 국도로 진입하고 있습니다. 남아 있는 농민들은 경부, 중부, 중앙, 호남, 88고속도로 십여 곳을 점거해 시위를 벌이고 있어 최악의 고속도로 교통대란이 빚어질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 부산지역 트럭노조도 이에 편승하여 50여 대의 트럭을 몰고 서울로 향하고 있습니다."
남자 아나운서가 자세한 내용을 알아보겠다며 지역 아나운서를 불러냈다. 그러나 아버지는 더 들어보지도 않고 꺼버렸다.
뒷자리가 조용해 돌아다보니 내 바로 뒷자리에 앉아 있는 연희는 언제나 주머니에 넣어 갖고 다니는 수첩에다 뭔가를 적고 있고 동호는 왼쪽 창으로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연희가 적은 것을 나에게 불쑥 내밀었다. 아마도 시나 산문일 것이 분명했다. 중학교 3학년인 연희는 자기가 쓴 시나 산문을 언제나 나에게 보여주곤 했다. 예상대로였다. 수첩에는 연희가 방금 쓴 시인지 산문인지 모를 글이 쓰여져 있었다.

<가을은 황금마차를 타고 나무 위를 달린다. 마차가 방울을 짤랑짤랑 울리면서 지나간 자리에는 나무들이 모두 황금빛으로 물이 든다. 마차를 끄는 갈색말은 공중에 하얀 콧김을 내뿜으면서 히히힝 하고 운다. 목덜미를 덮고 있는 갈기를 만지고 싶지만 나는 지금 이곳에서는 날 수가 없다. 내가 날 수 있는 곳은 을숙도뿐이다. 나는 을숙도에 가고 싶어졌다. 하지만 지금 나는 아버지의 트럭을 타고 서울로 가고 있다. 을숙도와 점점 멀어지고 있다.>

"응, 잘 썼어."
나는 언제나처럼 그 한 마디로 일축해 버렸다. 연희의 머릿속을 이해할 수가 없기 때문에 그렇게 말해준 것이다. 사실 암기하는 거라면 몰라도 시나 산문을 읽고 평하는 데는 자신이 없었다. 연희의 언어 구사력은, 학교에 다녔더라면 고등학교 2학년인 나에 못지 않았다. 하지만 그 언어로 자신의 생각을 복잡하게 얽어서 표현하는 데는 나보다 뛰어났다. 그래서 서울의 큰고모는 연희에게 시적인 재능이 있다고 했다.
"동호야, 아까 너 뭐 가지러 집에 갔다왔어?"
연희가 물었다. 말을 거의 하지 않는 연희지만 궁금증을 참기가 힘든 모양이었다.
"아무 것도 아니야."
그 한 번의 거절에 연희는 더 이상 조르지 않고 나를 본다. 그런 연희가 나에게는 가끔씩 그림 속의 소녀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언제나 조용하게 행동하고 큰 소리를 내지 않아 집에 있어도 있는 것 같이 느껴지지 않아서뿐만은 아니었다. 긴머리에 커다란 눈과 가녀린 몸매를 가진 만화 속의 소녀를 닮았다는 점만도 아니었다. 연희를 감싸고 있는 쓸쓸하고 서글픈 분위기도 그 한 원인이었다. 언제부터 연희에게서 그런 분위가 느껴졌는지는 알 수가 없다. 다만 나는 연희가 엄마가 사라지기 전에는 지금보다 좀더 명랑하고 말수도 더 많았던 점에 비추어 그때부터가 아닐까 추측해 보지만, 그보다는 시골에 살고 있는 할머니의 말처럼 연희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에서 비롯된 것이 더 큰 원인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연희는 아버지와 어머니가 신혼 여행 가던 날, 조용한 아이라는 예상을 뒤엎고 같이 따라가겠다며 울고불고 고집을 부려 결국은 함께 갔다 온 유일한 자식이었다. 나는 뒤늦은 아버지와 어머니의 결혼식장에서 연희가 보여준 그 예상밖의 행동에 깜짝 놀랐다. 연희는 언제나 있는 둥 마는 둥한, 여간 해서는 울지도 웃지도 않는 소녀였다. 그런 연희의 갑작스런 행동을 두고 할머니는 사랑과 관심에 굶주려 있던 아이여서 그랬던 것인지도 모른다고 했다. 네 명의 아이들이 웬만큼 크고 난 후에야 올리는 결혼식이야말로 모든 사람들의 관심을 집중적으로 받을 수 있는 기회였고, 연희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할머니의 말대로 연희는 집안의 관심권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아이였다. 언니는 집안의 첫아이라는 이유로, 나는 사람들의 말을 빌면 뭐든지 번개같이 암기해 버리는 똑똑한 아이라는 이유로, 그리고 막내인 동호는 기다리고 기다리던 사내아이라는 이유로 모두의 관심을 받았지만, 연희는 오히려 이번에는 사내겠지 하는 기대의 폭만큼 미움을 뒤집어 쓴 아이였다. 연희가 가진 장기란 가난한 집에서는 오히려 불필요하기 짝이 없는 착한 천성뿐이었다. 큰고모는 시적 감수성이 있는 아이라고 말했지만 그것이 연희를 달리 생각하게 해주지는 않았다. 그런 말은 배고픈 사람들에게는 그림 속에서 날고 있는 나비를 볼 때 느껴지는 감정처럼, 그저 아무런 느낌도 주지 않는 말일 뿐이었다.
"막내누나, 저것 좀 봐. 차들이 엄청 길어."
동호는 주머니 속에 든 것을 연희에게 보여주지 못하는 미안함을 삭일 생각인지 말을 붙였다. 앞쪽을 바라보고 있던 연희가 몸을 돌려 동호가 얼굴을 붙이고 내어다보는 후미창에 얼굴을 붙였다. 그때 아버지가 경적을 울렸고 뒤쪽의 차들이 연달아 경적을 울려댔다.
"연희누나, 누난 저 차들이 뭐 같이 보여?"
경적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동호가 연희에게 물었다. 동호는 연희를 막내누나라고 부르다가 가끔씩 이름을 넣어 부르기도 했다. 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작은누나라고 부르다가도 때론 주희누나라고도 불렀다.
"달팽이."
"달팽이? 왜?"
"느리게 가니까."
"달팽이가 저렇게 큰가 뭐?"
"그럼 왕거북."
"왕거북도 저만큼은 못 돼."
"그럼 넌?"
"난 코끼리."
그 말에 연희가 뭔가를 생각하다가 코끼리는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자 동호가 그 이유를 물었고 연희는 잠시 사이를 두었다가 대답했다.
"코끼리는 제일 나이 많은 암놈이 길을 안내한다잖아. 그런데 우린 엄마가 없잖아."
그 말에 동호가 입을 다물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앞을 보았다. 나의 머릿속에는 타조 떼가 떠올라 있었다.트럭의 경적소리가 거위 울음소리처럼 들리고, 거위 울음소리는 타조의 울음소리로 착각되고, 더구나 저 멀리 뒤따르는 차들은 아지랑이처럼 가물가물 피어오르는 엔진의 열기에 부풀려져 차의 형태를 잃어버리고 성큼성큼 달리는 타조의 형상으로 보였다.
언젠가 모처럼 시간이 난 아버지는 양산 근처에 있는 타조농장으로 나와 연희와 동호를 데리고 갔다. 양산은 아버지와 어머니가 처음 보금자리를 튼 곳이었고 타조농장은 그때 이웃에 살던 아저씨가 몇 년 전에 만든 것이었다. 정문 옆에 '양산타조농장'이라고 써붙여진 간판이 서 있었다. 입구 안쪽으로 길이 나 있었고, 길 양쪽으로 둘러쳐진 쇠울타리 안에서는 타조들이 호기심어린 눈으로 우리를 내다보고 있었다. 백 마리가 넘어보였다.
나와 동생들은 아버지를 따라 현판을 지나쳐 안쪽으로 들어갔다. 몇 마리의 거위들이 울타리 주변에서 서성이고 있다가 목을 쳐들고 울어댔다. 나중에 아저씨가 이야기해 주어서 알았지만 거위들은 타조 떼를 지키는 타조 지킴이들이었다. 개를 이용하면 타조들을 물어 죽일 염려가 있어 대신 거위를 이용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관악기 같은 울음소리가 너무나 커서 거위들이 우는 소리가 아니라 울타리 가득 갇혀 있는 타조들이 울어대는 듯이 느껴졌다. 사실 몇 마리밖에 되지 않는 거위들은 그들이 울었기에 존재를 알아볼 수 있었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어른 키보다 더 큰 타조들에 가려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았을 것이었다.
우리가 타조 우리 가까이로 가자 몇 마리의 타조들이 성큼성큼 다가와서 우리를 내려다보았다. 그 중 한 마리가 연희가 두르고 있는 빨간 목도리에 끌렸던지 길다란 목을 빼어 연희 쪽으로 가져갔다. 너무나 갑작스런 행동에 연희는 깜짝 놀라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타조는 아쉬움이 가득한 눈으로 연희를 응시했다. 나에게는 그 눈이 어딘지 모르게 낯익었다. 왕구슬처럼 크고 맑은 눈. 나는 타조의 눈을 뚫어져라 들여다보았다. 단순한 낯익음을 넘어선 그 이상의 친근감이, 연희가 나중에 나에게 들려준 표현대로, 여울빛 수정체 저 안쪽으로부터 물결처럼 흘러나오고 있었다. 타조들은 곧 무리로 돌아가서 긴 목을 쳐들고, 울타리 밖 저 멀리, 하늘과 땅이 맞닿는 곳에 출렁이고 있는 산맥 쪽을 바라보았다. 그들의 맑은 눈에는 그리움과 슬픔이 가득 괴어 있었다. 그렇게 느껴진 순간, 마침내 나는 그 눈의 낯익음을 기억해냈다. 연희의 눈이었다. 왕구슬처럼 크고 맑은 연희의 눈은 외형상으로뿐만 아니라 그 눈 속에 담겨 있는 의미까지도 너무나 타조의 눈과 닮아 있었다. 그러자 나에게는 마치 타조들이 연희의 목도리에 이끌린 것이 아니라 연희의 눈을 보고 자기들과 동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끌린 듯이 여겨졌다.
타조들을 구경하고 있는 사이에 농장 안쪽에 있는 양옥집에서 주인아저씨가 웃으면서 나왔다. 아버지는 그 아저씨와 반갑게 인사를 나눈 다음 우리를 소개시켜주었다. 아버지가 타조가 이렇게 키가 큰 줄은 몰랐다고 하자, 주인 아저씨가 이놈들은 아직 덜 자란 놈들인데 저기 안쪽에 다 자란 놈들은 사람보다 더 크다면서 안쪽으로 안내했다.
안쪽 울타리에 있는 타조들은 키가 3미터 가까이나 되었다. 연희가 울타리 가까이로 가자 조금 전처럼 타조들이 가까이 다가왔다. 그 중 한 마리가 연희가 방심한 틈을 타 목도리를 부리로 쪼았다. 연희가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서며 비명을 질렀다. 주인아저씨가 웃으면서 이놈들은 호기심이 대단하다, 아무 거나 처음 눈에 띄는 거면 한 번씩 건드려 본다, 그런 점에서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점에서 사람과 비슷하다고 말했다.
"키도 비슷하고, 사람처럼 칠팔십 년을 사는 것도 그렇고, 화가 나면 발길질 하는 것도 그렇지. 그런데 눈은 사람보다 훨씬 더 밝아. 이놈들은 12 킬로미터 밖에서도 사물을 구별해내니까. 아마도 옛날에 하늘을 날 때, 높은 데서 땅에 있는 먹을 걸 찾아내자니 눈이 발달할 수밖에 없었을 거고, 그래서 눈이 그렇게 좋은 걸 거야."
"옛날엔 타조가 날았어요?"
동호가 물었다.
"그렇다고 하더구나. 아프리카 전설인데, 타조가 신들에게서 불을 훔쳐 인간 세상에 갖다주었다는 거야. 그 바람에 신들의 노여움을 사서 날 수 없게 되었다는 거지."
이어서 아저씨는 백여 마리가 넘는 타조를 관리하는 법에 대해 알려주었다.
"타조들은 잃을 염려가 조금도 없단다. 웬지 아니? 그건 바로 타조들의 머릿속에 마이크로 칩이 내장되어 있기 때문이지. 마이크로 칩은 새끼들이 부화한 지 한 달쯤 됐을 때 주사기로 찔러넣는데, 죽을 때까지 갖고 있지. 타조들의 머릿속에 들어간 마이크로 칩에는 번호가 새겨져 있어. 세계적인 고유번호야. 그래서 세계 어디에 가더라도 스캐너를 머리에 대기만 하면 타조들의 신분을 확인할 수가 있지."
그 말을 듣고 보니 웬지 슬퍼졌다. 나는 타조새끼가 보고 싶었다.
"그런데, 아저씨, 타조새끼는 어디서 부화하는데요?"
나의 질문에 아저씨가 우리를 부화실로 데리고 들어갔다. 부화실은 타조를 분양받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을 맞는 사무실 바로 안쪽에 있었다. 아저씨는 대형냉장고처럼 생긴 부화기의 문을 열고 내부를 보여주었다. 붉은 조명이 밝혀져 있는 안쪽에는 철사로 만든 쇠그물망이 가로로 여러 개 걸쳐져 있었고 그곳에 여섯 개의 타조알이 분산되어 놓여져 있었다.
"이 알들은 여기에서 39일을 보낸 후에 바로 여기 발생기로 옮겨진단다."
아저씨가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말한 후에 다시 그 옆에 있는 커다란 직사각형의 발생기 문을 열었다.
"알은 부화기에서 이곳 발생기로 옮겨진 지 3 일이 되면 새끼가 껍질을 깨고 나오지."
발생기의 내부는 부화기나 비슷한 구조였다. 세 개의 알이 쇠그물 위에 올려져 있었는데, 두 개는 반쯤 알껍질이 깨어져서 축축하게 물기에 젖은 타조새끼의 모습이 보였고 한 개는 아직 그대로였다. 그런데 바로 아래쪽 그물에는 금방 부화해 나온 타조새끼 한 마리가 고개를 처박은 채 어깨를 달싹거리면서 외롭게 새근거리고 있었다. 바로 그 타조새끼를 보는 순간 나는 마치 그 새끼가 내 모습처럼 느껴지는 우울한 감정에 휩싸였다. 그런 감정은, 돌아가기 위해 출구로 걸어나올 때, 잘 가라는 인사를 하듯 몇몇 타조가 성큼성큼 걸어와서 울타리 너머로 길다란 목을 빼어 내려다볼 때도, 곧 그들이 무리로 돌아가서 예의 그 슬픔과 그리움이 가득 괸 눈빛으로 멀리 산쪽을, 마치 그들의 고향 아프리카가 그 너머에 있기라도 하듯 바라볼 때도, 집으로 돌아와 잠자리에 누웠을 때까지도 사라지지 않았다.
고속도로 위를 달리는 타조 떼의 형상 끝에서, 그날의 발생기 속에 웅크리고 앉아 있던 타조새끼가 어느 트럭 위의 컨테이너에 실린 채 따라왔다. 축축하게 젖은 몸으로 외롭게 달싹거리고 있는 타조새끼가 떠오르자 마음이 울적해졌다.
나는 축 처진 마음을 털어버리기 위해 힘차게 날고 있는 타조를 상상해 보았다. 만약 타조가 날 수 있게 된다면 기러기 떼처럼 브이 자 형태를 그리며 날지도 모른다. 지금의 트럭 행렬이 타조 떼라면 아버지는 브이 자의 맨앞에 있는 타조다. 그리고 나와 동생들은 아버지의 편대를 이루는 브이 자의 타조들이며, 아버지 차를 따르는 트럭들은 뒤쪽을 이루는 브이 자 편대의 타조들이다. 그런 생각의 끝자락에서 아픔이 밀려왔다. 기러기는 식구들을 거느리는 연장자가 제일 앞에서 날다가 지치면 다음 연장자와 교대를 한다고 했다. 만약 타조들도 그렇다면 아버지가 지칠 경우 어떻게 하나, 하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라서였다. 지금은 엄마도 없고 언니도 없다. 아버지가 지치면 이 편대를 이끌어갈 사람이 없어진다.
나는 우울한 기분을 떨쳐버리려고 옆창을 통해 밖을 내어다보았다. 여전히 차들이 길게 늘어서서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것이 아버지의 트럭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자 우울했던 마음이 사라지고 웬지 금방 기분이 우쭐해졌다. 아버지는 훨씬 큰 트럭을 갖고 있으면서도 언제나 아버지 트럭의 반의 반도 안 되는 승용차를 타고 다니는 배불뚝이 아저씨에게 굽신거리면서 쩔쩔 매고는 했다. 그런데 오늘의 아버지는 당당해 보였다. 누구에게도 굽신거리지 않고 커다란 트럭의 위력을 마음껏 발휘하고 있었다.
뒤쪽 저 멀리까지 길게 늘어서서 따라오고 있는 차들을 바라보고 있다가 동호에게 시선을 돌렸다. 동호가 창 아래쪽의 누군가에게 혀를 내밀면서 장난을 하고 있었다. 잠시 후 우리 차를 천천히 앞질러 가는 회색빛 승용차에 눈이 머문 순간 나는 동호가 누구와 장난을 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승용차에는 가족인 듯이 보이는 사람들이 타고 있었는데, 뒷좌석에서 밖을 내어다보고 있는 하얀 살결의 예쁜 여자아이가 여전히 동호에게 혀를 낼름낼름 내밀고 있었다. 조금씩 멀어져가는 승용차 안에서 혀를 내밀며 우리 차를 올려다보는 여자아이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언젠가 동호가 유치원에 다닐 때 엄마에게 하던 말이 생각났다.
"엄마, 난 예쁜 여자아이들만 보면 피아니스트가 되고 싶어져."
그러면서 동호는 무대 위에서 까만 정장을 입고 나비넥타이를 하고 정열적으로 피아노의 건반을 두드리는 자신의 모습을 상상할 때면 날아갈 듯이 기분이 좋아진다고 했다. 그런 데다 유치원 선생님에게서 동호가 다른 아이들보다 빨리 배운다, 나중에 훌륭한 피아니스트가 될 소질이 있다는 칭찬을 듣고 엄마는 없는 돈을 들여 따로 동호를 피아노 학원에 보냈다. 그러나 동호의 꿈은 어느 날 엄마가 사라지고, 피아노 학원을 그만두면서부터 끝이 났다.
고속도로의 회색빛 바닥이 나른하게 흐르는 물처럼 트럭 밑으로 지나갔다. 아버지가 경적을 울렸고 이어서 그 소리의 길다란 연속음이기라도 하듯 뒤쪽에서 차례대로 경적소리들이 일어나 멀리 행렬의 꼬리 쪽으로 달려갔다. 나는 좌석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았다.
아버지가 다시 라디오를 틀었다. 교통방송임을 알려주는 로고음악과 일반 회사의 광고용 씨엠송이 흘러나온 후에 아나운서가 나왔다. 아나운서는 현장의 기자를 불러냈고 기자가 현장의 상황을 전했다.
"기자는 지금 남해 고속도로 진교 나들목에 나와 있습니다. 이곳 농민들은 오전 10시경 출정식을 가진 뒤 승용차와 트럭 등을 타고 고속도로를 통해 서울로 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상황을 미리 알아차린 경찰의 원천 봉쇄에 막혀 뜻을 이루지 못하자 도보로 고속도로로 진입해 차량 통행을 막고 시위를 벌이며 경찰과 대치하고 있습니다. 잠시 전에는 한 농민이 저지하는 경찰을 트럭으로 밀어버리는 바람에 전경 한 명이 손에 심한 상처를 입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습니다. 이곳 농민들은 '올들어 농가 부채와 농산물 가격 폭락 등으로 비관 자살한 농민만도 7 명에 이른다'며 '경제위기 극복이라는 명분 아래 언제까지 농민들만 봉이 돼야 하느냐'고 항변하고 있습니다. 그런 한편, '부실한 은행과 기업에는 1백조원도 넘는 공적자금을 투입하면서 가장 소외된 농민에게는 1조원도 아까워한다.'며 추가양보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잠시 후에 아나운서가 다른 지역의 기자를 불러냈다.
"예, 이곳도 사정은 마찬가집니다. 경찰의 원천 봉쇄에 막혀 고속도로로 진입하지 못한 농민 차량들이 우회하면서 국도가 정체 현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한편 경찰의 저지를 뚫고 고속도로로 진입한 차량들은 서행운전을 하면서 시위를 하고 있습니다."
핸드폰이 울렸고 아버지가 라디오를 껐다. 아버지가 핸드폰을 잡아 귀에 갖다 댔다.
"앞쪽의 상황이 좋지 못합니다. 앞차들이 밀려서 지금 20Km밖에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속도가 반으로 떨어져 있었다. 언제부터였는지 멀리까지 뚫려 있던 앞쪽의 도로가 온갖 승용차와 트럭들로 채워져 있었다. 추월선의 사정도 다를 바 없어 고속도로는 강물이 느릿하게 흘러가는 듯이 보였다.
아버지는 침울하게 가라앉은 얼굴 표정으로 차창에 왼팔을 건 채 앞을 내다보고 있었다. 앞쪽의 저 먼 곳에서 기어가고 있는 차들은 차가운 대기 속으로 피어오르는 차체에서 나는 열기에 풀어져, 바닥에 앉았다가 날개를 치며 막 비상하는 커다란 새처럼 보였다. 아마도 차들이 그렇게 보인 것은 여전히 나의 머릿속에 남아 있는 조금 전의 타조 생각 때문이거나 연희가 보여주었던 글의 영향 때문일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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