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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풍령                       - 서문경


1.

새벽에 아버지가 잠을 깨웠을 때 나는 어리둥절했다. 아직도 푸르스름한 여명이 휘장처럼 창을 가리고 있는 시간에 아버지가 잠을 깨운 적은 한 번도 없었다. 나는 서울로 도망치려는 나의 계획을 아버지가 알아챈 것이나 아닌가 싶어 더럭 겁이 났다. 그러나 나뿐만 아니라 동생들도 깨우는 것을 보고는 그것이 아님을 알았다.
아버지의 굳은 표정은 뭔가 심상찮은 일이 벌어졌음을 드러내고 있었다. 흔히 그랬던 것처럼 지난 밤에도 아버지는 모두가 잠든 후에 들어왔다. 하지만 다른 때와는 달리 일을 나갔다가 늦은 것이 아니라 트럭기사들과 무슨 회의를 하다가 늦은 것이었다. 아버지는 타지에 나갔다가 저녁 무렵에 부산에 도착했지만 회의가 있어 늦게 들어온다고 전화를 했었다. 아마도 그 회의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 모양이었다. 여전히 잠이 들러붙어 있는 눈을 꿈벅거리며 아버지를 쳐다보는 연희의 모습도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동호는 일어나 앉기는 했지만 잠에 취해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나는 동호를 흔들어 정신을 차리게 했다.
"빨리 옷 입고 차 타러 가자."
아버지의 메마른 음성이 나직하게 방 안을 채웠다. 그 풀기없는 음성에서 나는 나의 계획이 허물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하필이면 왜 오늘인가. 짜증이 났다. 하지만 아버지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새벽 골목에서 어둠이 서성이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 바다내음이 났다. 바다는 아파트 촌 저 멀리, 어둠이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을숙도 뒤편에 있다. 을숙도는 낙동강이 긴 여행을 끝내고 바다가 되는 곳이다. 을숙도는 연희의 친구, 새들이 잠자는 곳이기도 했다. 연희는 을숙도에만 가면 새가 된다고 했다. 아직 새들은 새벽 잠에서 깨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아버지는 벌써 골목을 거의 다 빠져나갔다. 골목을 벗어나면 제과점이 나온다. 제과점에서는 언제나 구수한 빵굽는 냄새가 흘러나온다. 초등학교 2학년인 동호는 그 냄새를 똥냄새 같다고 했다. 나는 동호가 말하는 냄새가 내가 느끼는 구수한 냄새보다 더 깊이 그의 마음에 밀착되어 있다는 것을 안다. 동호에게 그 냄새는 어릴 적 기저귀에서 나던 똥냄새와 다르지 않다. 동호는 그 냄새를 미칠 듯이 좋아했다. 동호는 언제나 제과점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제과점의 유리창에 코를 바싹 붙이면 동호의 코는 돼지코가 된다. 돼지코가 되어도 그 냄새와 유리면에 닿을 때 느껴지는 매끈한 감촉이 좋아서 자꾸만 그렇게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수는 없었다. 제과점 아줌마가 날카로운 눈으로 동호와 나를 흘겨보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걸음걸이는 언제나 발끝이 밖으로 벌어진다. 사람들은 그런 걸음걸이를 팔자걸음이라고 했다. 엉거주춤 주저앉을 듯이 걷는 아버지의 걸음걸이가 오늘따라 유난히도 동작이 커보였다.
다시 바다내음이 났다. 밤새 어둠에 묻어 밀려와 잠자던 바다내음을 아버지가 휘저어 잠깨워 놓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아니더라도 어차피 바다내음은 제과점의 빵냄새와 새벽버스의 매연냄새에 깨어나 바다로 되돌아갈 것이다.
하늘이 낮게 내려앉아 있었다. 구름으로 덮여 있는 하늘이 나에게는 툭툭한 솜이불처럼 무겁게 느껴졌다. 어젯밤 뉴스에는 오늘 오후쯤에 서울 지역에는 눈이 올 거라고 했었다. 함께 뉴스를 보고 있던 연희는 부산에도 내렸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러나 부산에는 눈이 올 확률이 극히 희박했다. 다른 지역에는 눈이 와도 부산에는 거의 언제나 비가 내렸다.
"아빠, 지금 우리 어디 가는데요?"
골목 끝에 다다랐을 때 동호가 물었다. 그것은 나도 묻고 싶었던 질문이었다. 그런데 아버지의 표정이 너무나 굳어 있어서 감히 입을 떼지 못하고 눈치만 보아 왔었다.
"싸우러."
아버지는 짧게 대답했다. 의외였다. 아버지가 어머니 외에는 누구와 싸우는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나는 그 무겁게 가라앉은 대답 속에 숨어 있는 또다른 아버지의 모습이 궁금해졌다. 어머니와 싸울 때처럼, 자조섞인 한탄과 냉소를 흘리며, 가끔씩 콧방귀도 뀌어가며, 더러는 술에 취해 혀꼬부라진 소리로,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싸우는 것일까? 아니면 권투선수나 레슬링 선수들처럼 주먹이나 머리로 치고박고 하면서 싸우는 것일까?
"누구하고 싸우러요?"
동호가 다시 물었다. 그 목소리에 긴장감이 돌았다. 아버지는 뭔가 우물거리다 대답을 하지 못하고 주머니를 뒤졌다. 아마도 담배를 찾는 모양이었다. 아버지는 제대로 설명할 수 없는 문제에 부닥칠 때면 담배를 피운다. 아버지의 침묵에 동호가 멍한 얼굴로 내 얼굴을 쳐다보았다. 나 역시 동호의 얼굴을 멀뚱하게 쳐다보다가 연희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연희 또한 코알라 같은 유순하고 조용한 얼굴로 물끄러미 나를 쳐다볼 뿐이었다.
"어디로 싸우러 가는데요?"
동호의 끈질긴 질문이 이어졌다.
"서울."
아버지의 그 짧은 한 마디가 내 귀를 때렸다. 그곳은 바로 오늘 내가 도망가려던 곳이 아닌가. 불끈 희망이 솟았다. 그것은 차비를 들이지 않고도 서울에 갈 수 있다는 얘기였다.
"서울요? 그럼 큰고모네가 살고 있는 데잖아요?"
동호가 다시 물었다.
"그래, 니도 전에 한 번 가본 적 있잖아."
"그럼 굉장히 먼 덴데…, 잠깐만요."
무엇을 잊어먹은 듯 동호가 부리나케 집쪽으로 되돌아 뛰어갔다. 아버지의 팔자걸음을 그대로 빼닮은 동호는 골목을 좌우로 휘저으며 뛰었다.
아버지가 담배를 빼어물었다. 찰칵, 하는 소리와 함께 피어오른 라이터 불의 섬광에 아버지의 피곤해 보이는 얼굴이 밝게 드러났다가 사라졌다. 남자친구가 가끔씩 사주던 모카 빵의 딱딱한 껍질처럼 굳어 보이는 아버지의 표정은 2 년 전 우리집에 그 사건이 터졌던 날을 떠올려주었다. 그날처럼 아버지의 얼굴은 절망에 빠져, 죽기를 작정하고 절벽 끝에 서 있는 사람의 얼굴과도 같은 거무죽죽한 빛이었다. 문득 나는 우리 공주님들 일어났나, 어허, 우리 왕자님도 일어났구마, 하며 학랑과 장난기어린 얼굴로 대하던, 2 년 전의 그 사건이 있기 전까지의 아버지의 표정이 그리워졌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들어오던 그날이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혼한 날이었음을 언니에게서 듣고 알았지만, 그날 이후 아버지에게서는 농담과 웃음이 말끔히 사라졌다. 골목에 동호의 모습이 나타나자 아버지는 대로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아버지의 트럭은 대로 한쪽에 세워져 있었다. 희미한 아침빛 속에서 웅크리고 있는 트럭은 한데서 밤을 새운 무슨 커다란 짐승처럼 보였다. 18톤짜리 트럭은 앞바퀴 2 개, 중간바퀴 2 개, 뒷바퀴 8 개, 해서 모두 12 개나 되었다.
아버지가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서 시동을 걸었다. 나는 운전석 반대편의 문을 열고 올라가서 연희와 동호의 손을 잡아올렸다. 동생들은 트럭에 올라오자마자 운전석 뒤편의 길다란 좌석으로 들어가 앉았다. 이렇게 아버지의 차를 타고 먼길을 갈 때면 으레 뒷좌석은 우리들 차지였다. 만약 언니가 있었더라면 지금 조수석에 앉아 있는 나도 언니에게 자리를 넘겨주고 뒷자리로 들어가야 했다. 그리고 어머니가 있었더라면 언니도 어머니에게 자리를 넘겨주고 뒷좌석으로 들어가야 했다. 그러나 이제 어머니와 언니는 없다. 2 년 전까지만 해도 어머니까지 합쳐 식구가 모두 6 명이었지만 그 가을에 아버지와 어머니가 이혼함으로써 5 명으로 줄어들었고 1 년 전에 언니가 집을 나감으로써 다시 4 명으로 줄어들었다. 한 때는 나마저 집을 나가 3 명까지 줄어든 적도 있었다. 만약 한 달 전에 아버지가 나를 찾아내지 못했더라면 지금과 같이 4 명이 아니라 3 명을 그대로 유지했을 것이다.
밤새 한데서 보낸 트럭 안은 몸이 움츠러들 정도로 추웠다. 아버지도 느꼈는지 히터를 작동시켰다. 올해의 11월 하순은 작년보다 더 추운 것 같았다. 나는 일주일 전에 강원도 지역에 펑펑 쏟아지던 텔레비전 속의 눈오는 장면을 떠올리며 어젯밤 뉴스에 나오던 일기 예보가 딱 들어맞아 오늘 서울에도 눈이 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다시 해보았다. 그것은 나의 탈주를 축하해 주는 꽃가루가 될 것이었다.
"아빠, 우리도 싸와요?"
아버지 뒤편에 앉아 있는 동호가 물었다.
"아니, 너들은 그냥 가만 앉아 있는 거야."
"그런데 왜 우리를 데려가요?"
"너들이 있으면 힘이 되니까."
아버지가 앞을 내다보면서 말했다.
트럭이 톨게이트에 도착했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트럭들이 이미 이십여 대나 모여 있었고 계속해서 다른 트럭들이 도착하고 있었다.
"아빠, 웬 트럭이 이렇게 많이 모여요?"
"응, 싸우러 가기 때문이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묻는 동호의 질문에 아버지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질문은 원점으로 돌아갔다. 나는 동호가 다시 누구랑 싸우러 가는 거냐고 물을까봐 걱정이 되었다. 만약 아버지가 그것을 설명할 줄 안다면 집에서 나올 때 벌써 해주었을 것이다. 문득 나는 아버지를 떠나려고 하면서도 아버지의 심정을 헤아리고 있는 나 자신이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는 차를 트럭 행렬의 제일 앞쪽으로 몰고 가서 세웠다. 핸드폰이 울렸다. 아버지가 기어 바로 옆에 놓아두었던 핸드폰을 집어들었다.
"여보세요, 7호찹니다."
저쪽에서 뭐라고 했는지 다시 아버지는 예, 방금 맨 앞에다 세웠습니다, 하고 말했다. 그러고 보니 아버지는 누군가에게 지시를 받고 있었다.
"아빠, 우리가 맨 앞에서 가는 거예요?"
아버지의 통화가 끝났을 때 동호가 물었다.
"응, 우리가 맨 앞에서 가는 거야."
아버지는 공기압력기를 틀어 쉭쉭, 하는 소리를 내며 운전대 주변과 발밑을 대충 청소했다.
"와, 차가 너무 많다!"
동호의 감탄 소리에 나는 오른쪽 차문의 유리창을 열고 뒤쪽을 보았다. 언제 모였는지 차들이 길다랗게 늘어서서 끝이 보이지 않았다.
다시 핸드폰이 울렸고 아버지가 받았다.
"아, 사장님. 예예. 고생은 뭘요. 뭐 평생 트럭운전수로 살아갈라믄 어차피 해야지요. 예, 아이들까지 데리고 갑니다. 예예. 그래야 힘이 나거든요."
아버지를 운전수로 고용한 차주에게서 온 전화인 모양이었다. 핸드폰을 들고 아버지와 통화하고 있을 배불뚝이 아저씨의 모습이 떠올랐다. 한참 주고 받던 아버지가 갔다오겠다는 말을 하고 끊었다.
"아빠, 우리하고 싸우는 사람이 많아요?"
"나중에 추풍령 휴게소에서 쉴 때 준태 아버지하고 만날 거다. 물어보고 싶은 게 있으면 그때 물어봐라."
동호의 질문에 그렇게 대답해 준 후에 아버지는 핸드폰에 나타나 있는 시간을 보더니 조수석 앞에 있는 뚜껑을 열고 선글라스를 꺼내어 썼다. 비록 165센티미터 정도의 작은 키와 팔자걸음 탓에 밖에서는 엉성해 보이지만, 차 안에서 선글라스를 쓰고 운전대를 잡은 아버지의 모습은 늠름해 보였다. 아버지가 기어를 바꾸어넣고 차를 출발시키면서 클랙슨을 울렸다. 그러자 그 소리를 신호로 뒤쪽의 트럭들이 차례대로 경적을 울려댔다.
트럭 행렬이 고속도로 위로 들어서기 시작했다. 안녕히 가십시오, 당신은 지금 부산을 떠나고 있습니다. 어디선가 머릿속 깊은 곳에서, 어젯밤 서울로 탈출하는 장면을 상상했을 때 들려왔던 말이 울려퍼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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