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5호/2002.0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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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프리카 내전 씨앗 미국이 뿌렸다

美 국익논리 따른 군사 개입·철수 반복에 나라 꼴 엉망 … 소말리아·앙골라 대표적 피해

지난 1월 아프간 현지 취재에서 만난 카불 지식인들은 미국을 곱지 않게 바라보고 있었다. “9ㆍ11 테러사건이 없었다면 미국은 여전히 팔짱 낀 채 아프간 내전을 구경하고 있을 것”이란 얘기들이다. 1980년대 냉전시대에 옛 소련군을 상대로 오사마 빈 라덴이 아프간에서 싸울 때 미국은 군수물자를 대줬다. 따지고 보면 미국이 빈 라덴을 키워준 셈이다. 그러나 소련군이 물러나고 곧이어 해체되는 운명을 맞자 미국은 전략적 이용가치가 없어진 아프간을 떠났다. 그 힘의 공백 속에 다시 내전이 벌어졌고, 빈 라덴은 내전의 승자인 탈레반 정권의 비호 아래 9ㆍ11 테러사건을 기획한 모양새다. 23년 내전을 겪으며 “한 국가의 대외정책은 국익에 바탕해 결정된다”는 현실논리를 온몸으로 터득한 아프간 지식인들은 “이용가치가 없어지면 미국은 언젠가 또다시 아프간을 떠날 것”이란 생각을 갖고 있다.

냉전 종료 후 대부분 원조 중단

만성적 가난과 내전, 에이즈로 고통 받는 아프리카에도 아프간과 비슷한 역사적 고통을 겪어온 나라들이 여럿 있다. 소말리아와 앙골라가 대표적이다. 최근 전투중 사망한 앙골라 완전독립민족연합(UNITA) 반군 지도자 조나스 사빔비(68)는 냉전시대엔 미국의 지원을 받았으나 90년대 초부터 버림받은 인물이다(앙골라 내전으로 50만명 이상 숨지고 인구의 3분의 1인 400만명의 난민이 발생했다).

소말리아는 특히 내전이 현재진행형인 ‘아프리카의 아프간’이다. 부시 행정부가 아프리카로 ‘테러와의 전쟁’ 전선을 넓힌다면 소말리아는 0순위로 꼽힐 곳이다. 소말리아는 예멘과 함께 빈 라덴의 알 카에다 조직의 뿌리가 강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93년 미군 특수부대 ‘레인저’와 ‘특수부대 중 특수부대’라 일컫는 최정예부대 ‘델타포스’ 병력이 군벌 모하마드 파라 아이디드의 핵심참모 두 사람을 잡으려다 되레 큰코다치고 물러난 곳이 소말리아다. 현재 전 세계적으로 막대한 흥행수입을 올리고 있는 영화 ‘블랙 호크 다운’(Black Hawk Down)의 줄거리가 바로 93년 10월3일 소말리아 수도 모가디슈에서 벌어진 미군 특수부대와 아이디드 반군 간 시가전을 그린 것이다.

이 영화를 보며 관객들이 의아하게 여긴 부분이 있을 법하다. 수많은 소말리아인들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악착같이 미군 정예부대에 맞섰다는 점이다. 영화 끝부분엔 한 중년 부인이 총을 들고 나서다 흑인 미군 병사가 쏜 총탄에 쓰러지는 장면도 나온다. 미국에 대한 증오심이 없다면 그럴 수 없는 일이다. 그들로선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80년대 말 냉전시대가 막을 내릴 때까지 소말리아는 미국으로부터 막대한 군사원조를 받았다. 아덴만(灣)과 홍해를 사이에 두고 미국의 석유자원 이해가 걸린 아라비아 반도를 바라보는 곳에 자리한 만큼 소말리아는 지정학적으로 중요하다. 1960년 독립한 뒤 소말리아는 소련의 우방이었으나, 경찰 간부였던 모하마드 시아드 바레가 69년 쿠데타로 정권을 잡아 군사독재를 펴면서 70년대엔 친미 쪽으로 돌아섰다. 각종 무기원조와 더불어 군사고문관들이 80년대 소말리아로 밀려들었다. 소말리아로선 미국의 원조가 젖줄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소련 붕괴 후 미국은 이용가치가 사라진 소말리아의 독재정권을 더 이상 돌보지 않고 철수했다. 소말리아에 남은 것은 60년대 소련제 무기와 그 뒤에 들어온 미제 무기들뿐이었다. 가난한 소말리아에 남은 몇 줌의 자원을 둘러싸고 부족간 내전까지 터지면서 시아드 바레 정권은 91년 초 무너졌다. 때마침 닥친 기근과 더불어 소말리아는 중앙정부가 없는 이른바 ‘실패한 국가’로 전락했다. 소말리아인의 눈엔 이 모든 불행의 씨앗을 미국이 뿌린 것으로 비쳐졌다. 92년 말 유엔 식량차량이 소말리아에서 반군에게 탈취당한 사건이 일어나자 당시 부시(아버지) 대통령은 ‘인권 차원의 개입’을 내세워 소말리아에 다시 군대를 파견했다. 그러나 소말리아인들은 “미국은 인권을 말할 자격이 없다”며 코웃음쳤다. 소말리아가 불안해지면 아라비아만에서 미국의 석유자원 수송이 위협받게 된다. 미국의 국익을 위해 냉전 직후 팽개쳤던 소말리아에 다시 군대를 보낸 데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현지인들은 꿰뚫어보았다.

굶주림과 내전 속 ‘반미감정’ 고조

‘냉전시대 독재정권 지원→냉전 해소 뒤 지정학적 이용가치 소멸→철수’라는 냉엄한 미국의 국익논리가 싹틔운 반미감정이 모가디슈 시가전에서 그토록 치열한 저항을 불러일으켰다고 보면 정확하다. 93년 10월3일 당시 소말리아 주둔 미군사령관은 체포작전이 30분이면 끝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오후 2시 작전이 개시된 뒤 다음날 새벽까지 15시간 동안 벌어진 전투에서 미군은 18명의 사망자와 70여명의 부상자, 2대의 헬기(Black Hawk)를 잃었다. 반면 소말리아측 피해는 사망 500여명, 부상 1000여명으로 기록됐다(피해자의 상당수는 비전투원인 모가디슈 시민). 머릿수로만 따지면 미군의 승리일지 모르나 사실상 미군의 패배였다. 다음해 미군은 철수했다. 수백만 소말리아인의 목숨을 기근과 내전의 공포로부터 보호하려 나섰다던 ‘인권 개입’ 발언은 미군 병사들의 죽음이 있고 나서 쑥 들어갔다.

소말리아는 초강대국 미국으로선 베트남과는 다른 차원에서 체면과 자존심을 구긴 곳이다. 그런 내력을 가진 소말리아를 부시 행정부는 곱지 않은 눈으로 바라본다. 그러나 미국이 아프간에서처럼 소말리아에서도 대규모 군사작전을 벌일 것으론 보이지 않는다. 소말리아는 지난해 여름 어렵게 과도정부를 출범시켰고, 과도정부에 반대하는 일부 군벌들도 9ㆍ11 테러사건 뒤로는 내전 종식을 위한 평화회담에 적극적이다. 부시 정권은 이런 분위기를 꿰고 있을 것이다. 더구나 그동안 알 카에다 조직과 연계된 것으로 알려져 미 국무부가 ‘테러단체’ 리스트에 올려온 이슬람교 근본주의 세력(알 이티하드, 알 이슬라미)은 이웃 에티오피아군의 공세로 궤멸되다시피 한 상태다.

미국의 소말리아 지역 전문가 켄 멘카우스 교수(데이비드슨 대학)는 최근 워싱턴 전략국제문제연구소에 기고한 글에서 ‘소말리아 무장세력은 알 카에다와는 이렇다 할 관련이 없는 자생적 이슬람 운동세력’이라 주장했다. 부시 행정부는 잘못된 정보를 바탕으로 아프간에서 오폭을 일삼아 비난을 받는 중이다. 소말리아 작전도 부시 특유의 밀어붙이기 식이어선 곤란하다. 600만 소말리아인은 굶주림과 내전에 지칠 대로 지쳤다. 유엔의 한 조사로는 소말리아 어린이의 13%만이 학교에 간다. 그들이 바라는 것은 평화지 전쟁이 아니다. 미국의 섣부른 군사 개입은 더구나 바라지 않는다.

< 뉴욕=김재명/ 분쟁지역 전문기자 > kimsphoto@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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